소설리스트

견마지로-2화 (2/226)

2. 금월방(1)

사람이란 누구나 원래 자기가 정해 놓은 선을 지키고 그 선이 넘어가지 않게 애쓰는 법이다.

하지만 그 선이라는 것을 어떤 식이든 한 번 넘어가 버리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기 기준을 내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법이기도 하다.

지금 노인을 수발들던 아룡의 경우가 딱 이 경우였다.

산동 연주의 금월방에 육 개월쯤 전에 입방하여 이리저리 갖은 고생을 치르고 온갖 금월방의 구차한 일을 떠맡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던 기개라는 것이 있었다.

“사람이 한족으로 태어났으니 별 수 없지. 내가 이 흑도(黑道)에 손을 담갔으니 사람 죽이는 것도 업으로 삼게 될 터! 하지만 나도 하늘 두려운 것은 아느니 아녀자와 노약자에게는 절대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이 무두리! 천지신명께 약조하노라!”

아무도 보는 눈이 없을 때 정안수 한 잔을 떠 놓고 휘영청 달빛 아래 혼자 감격하여 눈물 흘리며 하늘에 맹세한 바 있는 아룡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룡은 언제 그런 맹세를 했냐는 듯 혼자 알아듣지 못할 욕을 씨부리며 멍하니 누워 있는 노인의 뺨을 잽싸게 후려치고 있었다.

“오늘은 밥 대신 매나 맞아 늙은이, 네 죽은 내가 대신 드셨다. 왜 드셨냐고?”

짝 소리와 함께 노인의 흰 수염과 볼이 흔들렸다.

맨 처음에는 노인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죽 주는 것도 무서워하던 아룡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성을 놓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노인의 뺨을 한 번 후려친 뒤에는 소소한 일상의 화풀이 상대로 늙은이만한 것이 없었다.

“저 찢어죽일 아륙이라는 놈이 오늘도 나한테 눈을 부라렸거든. 그 죄는 네가 받아야 돼. 왜냐고?”

짝 소리와 함께 노인의 얼굴이 다시 흔들렸다. 하지만 노인의 눈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그대로였다.

“너 때문에 내가 이 골방에서 산송장 수발이냐 드는 거 아니냐고! 내가 왜 아륙 같은 놈한테 구박을 받으면서 널 먹여야 하느냐고! 응? 네가 잘못 한거야! 그지?”

짝 소리와 함께 훽 돌아가던 노인의 입술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깜짝 놀란 아룡이 엉겁결에 자기 저고리 자락으로 노인의 입술을 닦고 난 뒤에 다시 성질이 난다는 듯 노인의 다른 쪽 얼굴을 때렸다.

“대체 넌 뭐야? 왜 안 죽어서 나한테 이런 시련을 주는 건데? 뭐냐고 이 늙은아!”

***

그 순간, 뺨을 맞는 노인의 세상이 뒤틀리며 변하기 시작했다.

천지사방 어느 것도 구분이 안가던 세상이 흔들렸다.

천하가 흔들리며 음영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둥이 사방을 강타하면서 부터였다. 그와 함께 번개가 칠흑 같은 사방 한 가운데를 쪼개고 지나간 다음부터였다.

순식간이었다.

쾅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방이 환해지며 짙은 안개가 하늘과 땅에 자욱하게 깔려있는 것이 사내의 눈에 들어왔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흐릿한 세상에서 꿈틀거렸다.

그와 함께 사내가 발 디디고 있는 암흑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계속 쿡쿡 사방을 찔러대는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의문이었다.

“무엇인가?”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때였다.

번쩍번쩍하는 빛이 하늘 여기저기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밑바닥에서 꿈틀대던 녀석이 위로 솟구치며 사방의 벽을 찔러대었다. 빛이 생길 때마다 보이는 음영들이 확인될 때마다 흐릿한 기운은 깃발과 창칼로 변하여 사내의 앞에 나타났다.

“무엇이냐?”

“우리는 너의 친우이자 형제니라!”

천둥이 번개를 데려오고 번쩍이는 빛은 연이어 이어지는 소리를 가지고 왔다. 소리가 울리며 빛이 들어오고 빛이 울리며 소리가 요동쳤다. 소리가 요동칠 때는 세상이 요동쳤다.

세상이 요동치자 다시 다른 깃발이 나타나며 날선 창칼이 불쑥 사내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내가 소리쳤다.

“너희는 무엇이냐!”

“우리는 방패이자 벽이고 성이자 희망이니, 네가 우리를 불렀노라!”

음영은 빛이 나타나는 횟수가 진해질수록 선과 선이 떨어지고 쾅쾅대는 천둥과 번개가 떨어질수록 세상에 빛이 쌓여갔다. 어느새 어두운 하늘과 땅의 구분이 희미하게나마 생기는 것 같았다.

그때가 되어서야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이고 아래에 있는 것은 땅이 되는 것임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이 생기자 기억이라는 것이 생겼고, 의문이라는 것이 다시 하늘로 치솟자 기억이라는 것이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 지금까지 사내 앞에 떠올랐던 창과 칼이 깃발 앞에 수두룩하게 올라오며 수많은 깃발들이 물결처럼 파도처럼 잿빛으로 일렁거렸다. 사내의 입이 다시 열렸다.

“너희는 무엇이냐!”

깃발과 창칼이 사내의 물음에 동시에 답하였다.

“우리는 네 동지였으나 너를 치는 자로다!”

“우리는 네 혈육이었으나 너를 찢고 베는 자로다!”

“우리는 네 방패이자 성이었으나 이제는 무너져 내 머리로 쏟아지는 돌덩이니라!”

사내의 목소리가 터지는 천둥과 번쩍이는 번개 속에서 다시 한 번 쏟아졌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냐!”

***

“밥은 잘 먹이고 있냐.”

노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슬쩍 흘리는 아륙의 말에 아룡은 이를 깨물고 있다가 순순히 대답했다.

“이 늙은이가 밥 안 처먹는 거 봤냐. 똥을 얼마나 거하게 싸는지 알잖아.”

“……조금만 참아라. 대가께서 사람 바꿔주신다고 하더라.”

“뭐라고?”

아룡이 눈을 들어 아륙을 쳐다보는데 아륙은 슬쩍 단도를 허리춤에 꽂고는 작은 방의 창문으로 좌우를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상부방 놈들이 애들 추려서 우리 부둣가로 오려는 것 같다는데? 대가가 어제 슬쩍 언질을 주었다. 이제 너도 제대로 병사가 되어서 금월방의 일을 하게 되는 거야. 여기서 산송장 수발드는 일도 이제 끝나는 거지.”

“상부방 놈들이?”

상부방이라는 말에 이상하게 힘이 들어갔다. 아룡의 심장이 미칠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제야 사내는 늙은이가 누운 평상 아래 단도가 들어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금월방에 입방하기로 했을 때 대가가 줬던 단도였다.

아룡은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래, 이제 내가 나설 차례구나.”

“나갔다가 첫 번째로 창자나 쏟지 말라고. 아룡.”

“미친 놈. 내가 넌 줄 아냐.”

아륙은 껄껄 웃더니 아룡을 보며 까닥까닥 손짓을 했다.

“노인네 밥 먹였으면 잠깐 나가자! 이제 생사결이 눈앞인데 술 한 잔이라도 같이 해야 하지 않겠냐?”

“나랑? 네가?”

“왜? 좋잖아!”

아륙이 껄껄 웃더니 아룡을 뒤에 두고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아룡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륙을 따라 밖으로 나가려다 뭔가 생각나는 게 있다는 듯 잠깐 뒤로 돌아 노인의 평상 아래 있는 단도를 잡고 허리춤에 쑤셔 넣었다.

사내는 흥분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더니 말없이 눈을 뜨고 있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히죽 아룡의 입술이 올라가며 오른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철썩 따귀 한 대를 노인에게 올려붙였다.

“갔다 올 테니까 뒈지지 말라고, 늙은이!”

***

천둥과 번개가 동시에 치며 사방이 환해졌다.

“뒈지지 말라고, 늙은이!”

천둥은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천둥소리는 또 다른 소리가 되어 세상을 진동시켰다. 웅웅대는 소리가 계속 사라지지 않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젊은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세상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어디서 뭘 먹을 건데?”

순간 의문과 기억이 동시에 머릿속에 돌아왔다. 의문은 여기저기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찌르고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어디서 뭘 먹을 건데 라는 말이 메아리치며 세상을 굉굉대며 울리는 중이었다.

그 때 기억이 의문과 같이 움직이며 웅웅 소리 나는 곳을 향하였다. 의문이 조용하지만 또렷한 소리로 물었다.

여기는 어디인가?

여기가 어디인가?

더이상 세상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천지는 여전히 어둡고 캄캄하였다. 그렇게 다시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듯싶었다. 허나 웅웅대는 소리는 여전히 공간을 진동시켰다.

***

그리고 며칠이 흘렀을까.

문이 벌컥 열렸다. 두 사람이 쓰러질 듯 비틀대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룡이 겨우 문설주에 기대어서 문을 꽉 잡고 바깥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또 한 사내 아륙이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와 탁자에 손을 얹고 탁자 위의 물병에 손을 올리려다가 이내 무릎이 풀썩 꺾이며 뒤로 고꾸라졌다.

문설주를 잡고 있던 아룡이 조금 뒤 방 안을 돌아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놈들은 여기까지 안 오는 것 같아! 다 따돌렸어! 이젠 괜찮다고!”

“괜찮아? 이…견자야……뭐가…… 괜찮…은데….”

바닥에 쓰러진 아륙의 아랫배는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아륙이 들어온 방에는 핏자국이 걸레질을 한 것처럼 붉게 이어져 있었다. 아룡은 아륙의 몰골을 보면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륙이 눈을 들어 아룡을 바라보았다.

“이 돼먹지 않은 견자…야! 대가가…같이…나랑 같이…왼쪽을…맡으라고 했잖아! 왜…왜 넌… 안 오고…나…내…뒤……….”

아륙은 통증이 심한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배를 잡고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아룡이 아륙을 보더니 슬쩍 혀로 입술을 핥았다.

“아륙, 네가 너무 빨리 나갔잖아. 그 다음에 나도 나가려는데 대가가 포위되어 계신 것 같아서 그 쪽을 먼저 좀 확인하고 가려다가…내가 가니까 벌써 넌 누워 있고…내가 그래도…널 데려 왔잖아?”

“데려와? 내 발로 왔는데? 너…내 뒤를 따라온…주제에…….”

갑자기 그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륙의 몸이 꿈틀하더니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아룡은 문가에서 아륙의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다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룡은 슬쩍 아륙의 발아래 떨어져 있는 아륙의 칼을 멀리 차버렸다.

아륙이 깜박이는 눈을 들어 아룡을 쳐다보았다. 아룡은 아륙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프냐?”

“이…견자 놈아…그럼…안 아프냐…?”

“이러면 어떠냐?”

순간 아룡의 발이 아륙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

아륙의 눈이 커지며 입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차마 숨이 안 쉬어지는지 꺽꺽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아륙을 보면서 아룡이 다시 히죽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 그때 나한테 뭐라고 그랬어? 팔기군 돼지새끼라고 그랬지? 그지? 오늘이 그 팔기군한테 한족 놈이 뒈지는 날이야. 알았어?”

“아…아룡….”

“무두리! 내 이름은 무두리야! 청나라 이름이 내 이름이야! 어디서 아룡이야! 내가 너 같은 견자랑 친구냐? 엉? 친구야? 산송장 같이 봐주는 친구냐? 앙!”

아룡의 발이 쾅 하고 누워있는 노인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노인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아룡은 아래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아륙의 얼굴을 보면서 히죽히죽 웃느라고 다른 곳은 볼 새가 없었다.

“하하! 오늘이 길일(吉日)일세! 속 시원하네! 앓던 이가 빠지고 악운이 물러가는 날이구나! 너 없어지면 그 날부터 내가 대가의 부름을 받을 테니까! 만약 대가가 죽고 상부방이 부두를 먹으면 네 목을 끊어 가면 되는 거고! 어때? 좋지?”

아륙의 목에서 그르륵 소리가 나더니 조금씩 온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아룡은 잘 생긴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널 천 갈래 만 갈래 안 찢어 죽인 걸 은혜라고 생각해라 아륙! 명부에 가거든 내 말 좀 잘해달라고! 알았어?”

더이상 아륙은 말이 없었다. 같은 집에서 밥을 나눠먹던 이의 눈이 뒤로 넘어갔다.

아룡의 미소 짓던 입이 서서히 닫혔다. 아룡은 주변을 둘러보며 짧게 한숨을 쉬더니 천장을 바라보는 노인을 보더니 그를 향해 슬쩍 칼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아룡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노인네는 아니다. 일단 대가를 찾아봐야겠지.”

아룡의 마지막 말까지, 노인의 귓속으로 또렷하게 빨려 들어왔다.

이후 아룡은 천천히 뒤로 돌아 다시 방문 앞에 가서 기척을 확인했다. 우왕좌왕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조금 전 쿵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울렸다는 것 역시 고스란히 기억으로 남았다. 순간 의문이 다시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그 소리를 바깥의 소음을 모두 없애버리고 사람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크게 노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너는 누구냐!

순간, 흐릿하던 음영에 색깔이 들어가며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두운 황갈색의 천장이 노인의 눈앞에 나타났다.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그와 함께 역한 피내음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노인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에게 말없이 대답하였다.

당태세

귀린갈(鬼燐蠍) 당태세(唐泰勢)

순천문주(順天門主) 귀린갈 당태세.

보국구대문파맹주(保國九大門派盟主) 순천문주 귀린갈 당태세.

배신당한 맹주 귀린갈 당태세!

그 순간 아룡이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서서히 닫히며 노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노인의 오관이 다시 세상을 얻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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