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두(序頭)
사내 하나가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아니, 사내는 죽었다고 봐야 하였다.
사내의 사지는 힘을 잃었고, 눈은 앞을 보지 못하였고 코는 사방의 체취를 감지하지 못하고 귀는 둘 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며 입 역시 들어오는 음식의 맛을 알지 못하였다.
육신이 이미 철저하게 무너져 죽은 이었다.
그것도 오랫동안 죽은 이였다.
오직 혼백만이, 그것도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백만이 차마 구천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간당대며 붙어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혼백이 사내에게 정기를 불어넣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성불하지 못한 모진 혼백은 그저 악착같이 무너진 육신에 붙어서 의미 없는 환각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싸워라!”
“두려워 말고 싸워라!”
사내가 어둠 속에서 내뱉는 소리는 늘 같은 말로 시작되었다.
“죽여라!”
“싸워라!”
“죽여라!”
귓가에 들리는 함성이 뭉개지며 귓속이 찌릿찌릿 울렸다.
누가 누구에게 외치는 소리인지 알 수도 없었다. 비명과 말발굽과 함성과 칼이 부딪히며 욕설이 들려왔다.
의미를 얼핏 가늠할 수 있는 욕설과 알아듣지 못할 저주가 섞여서 사방에서 바람이 되어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사방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혼돈이었다.
혼돈 속에서 굳건히 버티고 서 있던 다리가 흔들렸다. 아니, 다리가 아니라 다리가 딛고 서 있는 흙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말발굽소리와 사람의 발이 같이 땅을 구르는 소리였다.
쿵. 하는 둔한 소리가 사내의 등 뒤에 울려 퍼졌다. 북소리인가. 돌이 떨어지는 소리인가? 사내는 잠시 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큰 소리로 주변을 향해 외쳤다.
“포성이다! 포가 날아든다! 모두 몸을 피하여라!”
하지만 사내는 자신이 누구에게 소리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포성과 화살소리가 하늘을 가로세로로 찢어놓았다. 하늘과 땅이 같이 귀신같은 쇳소리를 내었다. 귀신같은 쇳소리 사이로 사람의 욕설이 같이 숨어들어왔다.
“죽어라!”
“배신이다! 배신이야!”
“더러운 놈! 더러운 놈!”
“피하십시오! 이곳은 제가 맡겠습니다!”
흔들리던 공기가 천둥이 되고 강렬한 바람이 되어 사방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다리가 끊어지는 날카로운 아픔이 허리와 등과 머리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소리 없는 비명이 입을 뚫고 퍼져나갔다.
하지만 통증보다 강한 분노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손에는 힘이 가득 들어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이가 뿌드득 갈리며 저절로 고개가 하늘을 향하였다. 비명대신 고함이 하늘을 향해 터져나갔다.
“누구냐!”
사내의 입이 열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외쳤다.
“누구냐! 누가 배신을 하였느냐!”
그 때 어둡기만 하던 사방에서 불꽃이 화르륵 일어나더니 불붙은 깃발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불이 뚝뚝 떨어지는 깃발에는 각 깃발의 문자가 쓰여 있었지만 사내는 그 글자를 알면서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셋, 넷…사내는 그 다음의 숫자를 셀 수가 없었다. 분명 읽을 수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두가 배신하였다.”
갑자기 불붙은 깃발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옆에 있던 깃발도 불똥을 뚝뚝 떨어트리며 말하였다.
“모두가 배신하였으니 결국 네가 배신한 것이다!”
그 옆의 깃발은 불꽃을 뚝뚝 떨어뜨리며 사내를 보며 간드러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모두를 배신하였다!”
모든 깃발이 일시에 불꽃을 하늘로 뿜으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야 하느니라!”
모든 말과 떨림이 일순간 멈추었다. 고통스러웠던 가슴의 진동이 다시 평온하게 돌아갔다.
아니, 돌아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시 사방천하는 의미 불명의 검은 세상으로 돌아갔다. 몸은 가늘게 뛰는 맥박을 부여잡고 스르륵 멀어져가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이름 하나를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몸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였고,
다시 세상은 어두워졌다.
***
“쓰레기 같은 늙은이가 배때지는 정말 바다 같구나. 죽이 남는 걸 못 봤어.”
“쓰레기라고 하지 마라. 아룡(阿龍). 네 쓰레기 같은 몸뚱어리가 저 쓰레기 덕에 먹고 산다.”
“넌 쓰레기 아니냐, 아륙? 그리고 날 아룡이라고 부르지 마라. 잘 들어. 내 이름은 무두리! 무두리 님이시다!”
“무두리? 그거 용이라는 뜻이지? 만주어 아니냐?”
“잘 아는구나, 아륙, 네 놈을 이 쓰레기더미에서 구원해주실 청나라의 창룡, 무두리님이 바로 나다.”
“애비 썩어 문드러진 소리 하고 자빠졌네. 한족 놈이 무슨 청나라의 창룡이냐? 새끼 쓰레기 둘이 늙은 쓰레기 하나 덕에 사는 건데.”
“야, 이 견자야. 내가 왜 저 늙은이 덕에 사는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두 사내는 아마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을 벌였을 것이다. 아니, 격해진 감정이 앞섰다면 선반 아래 놓아둔 단도를 누군가가 먼저 집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두 사내는 문을 열고 껑충한 키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오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동시에 들어온 사내를 보며 인사를 올렸다.
들어온 사내는 얼굴의 반은 주름이고 반은 흉터인 사내였다.
세월의 풍파와 인생의 험로가 사내의 얼굴에 제각각 골짜기를 파 놓았는데, 젊었을 때는 몰라도 연륜이 쌓인 지금 사내의 주름살은 나름대로 위엄과 권위가 있어 보였다.
사내는 두 사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불을 덮고 있는 노인을 살펴보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섭섭지 않게 보살펴드리는 것 같구만.”
“네, 대가. 성심껏 저희가 수발을 들어드리는 중입니다.”
대가라 불린 흉터투성이 사내는 눈을 돌려 대답한 젊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소년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또래의 아이는 하관이 날렵하게 빠지고 눈이 세모꼴로 생겨 꽤나 독종으로 보이는 아이였는데 말투가 짧고 단단했다. 흉터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륙, 네가 고생이 많다.”
“저는 바깥에서 방(幇)의 일을 보는지라 대부분의 수발은 아룡이 하고 있습니다.”
사내의 눈이 다른 아이에게로 옮겨갔다. 부리부리한 눈에 오뚝한 코, 강단 있어 보이는 턱에 한 일자로 다문 입술은 어디 내놓아도 귀티가 흐르는 대장부의 상이었다.
비록 머리는 한 움큼만을 남기고 다 삭발한 채 남아있는 머리를 길게 땋은 금전서미(金錢鼠尾)의 변발을 하고 있었지만 워낙 인물이 좋으니 변발을 해도 어색하지 않아보였다.
흉터투성이 중년은 아룡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월방에 온지 얼마 안 되는데도 열심이구나.”
“아, 아닙니다. 여기 아륙이 잘 해주고! 저 영감님도 잘 받아 드시고 잘 싸고 하니 제가 딱히 손 봐드릴 것이 없습니다! 대가께서 오실 줄 알았으면 저 영감님 낯이라도 닦아 드릴 걸 그랬습니다요! 헤헤!”
아룡이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을 듣던 흉터의 중년은 슬쩍 눈살을 찌푸리더니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초점 없는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 여기저기에 버짐이 피어있고 봉두난발이 된 회색머리는 감은 지 며칠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더께가 져 있는데 입에는 방금 밀어 넣은 미음이 아직도 번쩍이며 혀 아래에 남아있었다.
노인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 아륙을 바라보았다.
“눈을 돌리시거나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느냐.”
아륙은 고개를 저었다.
“눈을 감았다 뜨기는 하십니다만 다른 건 일체 변하신 게 없습니다.”
“하……정말 이 어르신 너무나도 안쓰럽습니다요.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니 몸은 살아있는데 영 혼백이 안 돌아오시는 분 같습니다. 아, 딱해요. 정말.”
아룡이 아륙 옆에서 추임새를 넣었지만 흉터투성이 중년인은 다시 아륙에게 말했다.
“혹여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으면 내게 말을 해 다오. 지체 없이 전해라.”
“알겠습니다.”
“되었다.”
중년인은 몸을 일으키고는 노인을 한 번 더 본 뒤에 문을 닫았다.
작은 초옥 안에 남은 두 사내는 슬쩍 사내의 발걸음이 사라지는 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제대로 몸을 펴고 앉을 수 있었다. 아륙은 여기저기 구멍이 난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그래도 좋은 말만 하고 가시는구나.”
“야, 아륙. 너 대가에게 꽤 잘 보인 모양이다?”
아룡의 말에 아륙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룡은 눈을 부릅뜨고 아륙을 잡아먹을 듯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까지 어려 있었다.
“무슨 소리야, 아룡?”
“내가! 내가 저 빌어먹을 늙은이 밥하고 똥까지 다 수발드는데! 대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시잖아! 내가 들인 공은 하나도 표시가 안 나고 넌 그저 아침하고 저녁에만 들어와 수발을 드는데! 왜! 왜 너한테만 말을 거냔 말이다!”
아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룡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대수냐? 살다보면 이일 저일 있는 거지 대가가 나한테 말 좀 더 걸었다고 네 공이 사라지는 거란 말이냐? 왜 그래? 아룡?”
“내 이름은 무두리라고! 무두리! 왜 날 무시하나! 네가 나보다 금월방 몇 달 먼저 들어왔다고 유세떠는 거 아니냔 말이다!”
아륙의 세모난 눈매가 슬쩍 찌그러들었다.
“이 견자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뵈는 게 없나.”
“뭐? 견자새끼?”
“아까는 늙은이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더니 수발하는 거 안 알아준다고 징징대? 사내로 태어났으면 말에 무게가 한 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뭐가 어째?”
순간, 아룡의 눈이 뒤집히더니 옆에 있던 나무 막대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손이 번개처럼 아륙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룡 스스로 생각하기에 ‘번개 같은’빠르기였을 뿐이었다.
어느새 아륙은 자리에서 펄쩍 일어나 허공을 헛치는 아룡의 나무막대를 피한 뒤에 슬쩍 옆으로 파고들어 아룡의 옆구리에 매섭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으헥!”
경망스러운 비명과 함께 아룡이 펄쩍 제자리에서 뛰며 나무 막대를 놓았다.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아륙의 손이 아룡의 턱과 코와 뺨과 가슴과 배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이 팔기군 돼지 같은 새끼야! 대가리 반질반질하니까 뵈는 게 없냐? 한족 놈이 만주족 세상이 되니까 근본도 잊어버렸냐?”
정해놓고 때리는 게 아니라 보이는 대로 일단 지르는 주먹이었다.
순식간에 아룡의 온몸에서 옷 터는 소리가 진동을 했다. 그와 함께 새된 비명소리가 초옥을 울리기 시작했다.
“주먹도 못 쓰는 게 금월방 들어왔으면 착실하게 권장도검부터 익힐 생각을 하든가!”
아륙의 무릎이 아룡의 배를 걷어차자 헉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아룡의 두 무릎이 저절로 꿇렸다. 아륙의 왼발이 바람을 가르며 아룡의 뺨에 그대로 꽂혔다.
“이도저도 아니면 찍소리 내지 말고 순순히 말이나 듣든가! 그렇게 청나라 놈들이 좋으면 다시 태어나든가!”
아륙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무릎 꿇었던 아룡의 몸이 서서히 옆으로 무너졌다.
노인의 입에 밀어 넣었던 죽이 한 방울 아래로 떨어지며 침과 함께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아룡의 얼굴로 죽과 침이 엿기름처럼 흘러내려 왔다.
그 꼴을 보고 있던 아륙은 인상을 쓰면서 바닥에 침을 뱉었다.
“견자 놈아, 나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그동안 늙은이 하고 방바닥 소제 다 해 놔라. 안 해놓으면 그땐 진짜 죽여서 강바닥에 처넣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아륙이 씩씩거리며 방은 빠져나가자 아룡은 끄응 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눈이 뒤집힌 채 기절했던 것도 그냥 엄살인 듯 보였다. 하지만 아룡은 윗몸을 일으킨 채로 바닥에 질펀하게 앉아서 허공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동안 한숨을 내쉬던 아룡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지더니 이내 씩씩대며 작은 욕설로 바뀌기 시작했다.
“……견자새끼! 근본 없는 새끼……이 무두리를……무두리를 뭐로 보고…….”
아룡은 아륙이 나간 문을 찢어버릴 듯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두고 보자, 거북이랑 붙어먹을 새끼. 두고 봐! 언젠가는 복수한다! 내 진정으로 복수할거다! 뭐, 청나라가 어째? 팔기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놈이…너 같은 놈은 사형 당해야 해. 시장 바닥에서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놓아야 해. 내가 그럴 거야. 이 새끼야. 내가 관에 밀고해서 널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놓을 거라고 이 견자 놈…….”
아룡은 그제야 생각이 났는지 자기의 뺨에 달라붙은 죽과 노인의 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아룡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면서 멍하니 눈을 뜨고 누워있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아룡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굳게 쥐어졌다.
“다 너 때문이야 이 늙은아!”
순간 아룡의 손이 펴지며 누워있는 늙은이의 뺨을 힘차게 갈겼다.
아룡은 제 성질을 못 이기고 두 번 세 번 미동도 없는 노인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벌어진 아룡의 입에서 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워서 세상 편하게 사니까 네가 왕이라도 된 것 같아! 앙? 다 너 때문이야! 이 늙은아! 너 때문이라고!”
아룡의 손바닥이 아래로 내려올 때마다 따귀를 맞은 노인의 몸이 들썩들썩 들렸다.
젊은 아룡의 손이 허공에서 내려올 때마다 철썩대는 소리가 방안을 가득히 메웠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았지만 아룡의 따귀에 합을 맞추듯 미동 없던 노인의 손가락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빛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