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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마협-569화 (외전 완결) (569/569)

암흑대공전기(暗黑大公傳奇) 20화

절초

마도칠대가문 중 하나이자 마도제일야장들을 배출해 온 이녕임가는 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가문의 변화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철모(鐵母) 모서형이 임종을 맞이하고 있어서였다.

어느덧 태상가주가 된 임종호는 두 눈을 감은 채 병석에 누워 있는 그녀를 퀭한 눈으로 내려보다가 나직이 속삭였다.

“어머님, 소자가 젊었을 때 새벽부터 망치질을 하느라 문안 인사도 안 드린다고 삼시 세끼 풀죽만 먹이셨던 거, 기억하십니까?”

철모는 아들이 내공을 주입하여 호흡을 쉽게 하도록 돕는데도 쌔액쌔액 간신히 숨만 쉴 뿐 대답하지 못했다.

임종호는 손에 쥐고 있던 그녀의 앙상한 손에 힘을 줬다.

“소자만이 아니라 모든 식솔에게 그러셨지요. 온종일 풀죽만 먹는데 무슨 힘을 쓰겠습니까. 그런데도 윗분들은 어찌나 정정하신지 쇠 대신 소자를 매일 두들겨 패셨습니다. 망치를 놓고 어머님께 문안 인사를 드릴 때까지 말입니다.”

철모의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아들도 웃었다.

“하하. 덕분에 소자는 마도제일효자로 명성을 떨치게 됐습니다. 하루에 최소 반 시진은 아내의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를 치라 하셔서 마도제일애처가도 됐고요.”

추억을 회상하던 임종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제 다 옛날얘기일 뿐입니다. 소자를 그렇게 옥죄시던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게 됐으니 마음대로 살렵니다.”

철모가 눈을 번쩍 떴다.

드러난 그녀의 눈은 죽음을 코앞에 둔 병자가 아니라 이녕임가의 전성기를 열은 여장부의 것이었다.

임종호는 만족했다.

“다시 힘이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효과가 짧은 미봉책이었지만 이게 어딘가?

어미를 조금이라도 늦게 보낼 수 있다면 지금껏 그랬듯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버티십시오. 어머님도 원하신 일입니다. 항상 천신을 뵙고 죽을 거라 노래를 부르셨으니 책임을 지셔야지요.”

하지만 사람의 정신력은 한계가 있는 법, 철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고 졸음이 밀려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어머님…….”

임종호의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솟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어미의 손을 잠시 어루만지다가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식솔들이 임종호의 입을 주시했다.

“……귀천하셨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임종호는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했다.

‘무척 바쁘신가 봅니다. 이왕 늦으신 거, 아예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미의 소원을 외면한 하늘은 아들의 바람마저 무시했다.

“실례합니다, 잠시만요.”

“헉!”

임종호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나동그라졌다가 재빨리 일어섰다.

“어떤 놈이 감히…….”

“사과했잖아요. 잘 계셨어요?”

임종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어미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존재가 어미의 침소에 나타나 어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임종호를 비롯한 전 식솔이 오체투지를 하며 외쳤다.

“만세만세만만세! 위대한 천마신교의 조종(祖宗)이시며 드높은 하늘 위에서 세상을 굽어보시는…….”

“땅에 있는 사람한테 왜 엉뚱한 소리를. 바쁘니까 조용히 해주세요.”

이녕임가 사람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자오, 문을 막고 소리가 들어오지도 새어나가지도 않게 해주세요.”

“네, 단주.”

조금 늦게 온 자오가 명을 충실히 따랐다.

정광은 철모의 심장이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귀찮게 됐네.’

그렇다고 그냥 떠날 수도 없고.

일부러 들른 보람이 없지 않은가?

자연지기를 받아들인 후 손바닥으로 분출했다. 눈부신 황금빛이 철모의 가슴을 부드럽게 때렸다.

투웅-

철모의 상체가 조금 솟았다가 내려앉았다.

맥박은 여전히 뛰지 않았다.

‘다시. 심장이 터지면 할 수 없고.’

쿠웅-

철모의 몸이 한자는 튀어 올랐다가 풀썩 떨어졌다.

미약하지만 맥박이 뛰기 시작하더니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정광이 씩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저승 구경은 잘했어?”

“……!”

“다시 못 뵐 것 같다고 엄살 부리더니 잘 버텼네.”

철모는 정광을 멍하니 보다가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열었다.

“정말 놀랐습니다. 지존께서 제가 죽기 전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그래. 천하의 철혈화(鐵血花)가 녹이 슨 모습을 다 보네.”

정광의 농담이 재미없었는지 철모가 정색했다.

“돌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신 김에 부탁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면 들어주기 싫어지잖아. 뭐야?”

“제 남편이 지존께 진상할 검을 완성하고 죽었습니다.”

“그 검을 거둬달라고? 봐서. 어디 있는데?”

정광은 철모를 안고 그녀가 알려준 곳으로 날아갔다.

오래전 하루의 반은 쇠를 두들기고 나머지 반은 무공을 수련하는 사내들 때문에 철모가 불태워 버리자 다시는 타지 않게 쇠로 덮어버린 병기고였다.

가문의 큰 어른이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삼엄하게 번을 서고 있던 식솔들이 대경하여 병기를 뽑았지만, 그들이 정광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철모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썩 비키거라! 천신께서 신검을 가지러 오셨다!”

식솔들은 경악하며 오체투지 했고 정광은 헛웃음을 흘리며 병기고에 들어갔다.

“목청 한번 좋다. 너 죽어가던 거 맞아?”

“헉. 헉. 아이들이 앞을 가로막아 불쾌해하실까 봐, 쿨럭. 쿨럭.”

“검을 평가하는 데 악영향을 줄지도 몰라서? 많이 초조하구나. 나를 대충 알면서도 그런 걱정을 다 하고.”

“죄송합니다. 저쪽입니다. 네, 거기 숨어 있는 기관을…….”

“쉽게 가자.”

꽈아앙!

정광의 가벼운 발짓에 두꺼운 철판으로 된 벽면이 뻥 뚫렸다.

철모의 창백한 얼굴이 해쓱해졌다.

“지, 지존. 설마…….”

“뒤끝은 이걸로 없어진 거로 하고. 저거구나.”

정광은 철모를 빈 의자에 내려놓고 탁자 위에 있는 긴 목함을 열었다.

검집은 물론이오, 고동(古銅), 검반(劍盤), 검파(劍把)까지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이 드러났다.

‘흐음. 겉모양은 괜찮네. 무게도 그렇고.’

정광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속을 볼까.’

검집에 갇혀 있던 피처럼 붉은 검신이 세상에 나왔다.

색이 특이할 뿐 피부가 따끔거리는 예기도, 섬찟한 살기나 마기도 없는 평범한 검신이었다.

정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속도 나쁘지는 않은데. 이것까지 내 취향에 맞췄다고?’

검의 생명은 검신.

그 생명에 혼을 불어넣어야 할 야장이 그렇게 비굴하면 쓰나.

‘아니야. 그 녀석이 그럴 리 없지.’

현철을 통으로 써서 마혼을 만들었던 아비 역천마장(逆天魔匠)을 뛰어넘기 위해 현철을 능가하는 합금을 만들고 그것으로 천하제일검을 제련할 거라 했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충분하다는 의미.

정광은 멀쩡한 철벽을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철벽이 두부를 가른 것처럼 소리 없이 잘렸다.

‘이것 봐라?’

내친김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검은 운룡이나 마혼처럼 요란한 황금빛을 내지 않았다. 내공을 품은 채 자신이 쓰이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하하. 겸손도 떨 줄 알고.’

내심 웃은 뒤 손가락으로 검첨 부분을 튕겼다.

쩌어어엉-

검신이 맑은 소리를 내며 좌우로 세차게 휘다가 금세 제자리를 찾으며 탄성과 강도를 자랑했다.

‘그래, 마냥 겸손하면 그게 더 보기 싫지.’

이 녀석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운룡으로 시험하자니 아깝고. 아! 이놈으로 해볼까?’

역천경이 눈치를 채고 미친 듯이 진동했다.

-우웅! 우웅! 우웅!

-가만. 네가 마계로 통하는 문이랬지? 마족이라는 애들, 조금 하나 보던데 걔들을 썰어서 시험해 볼까?

역천경이 더 거세게 진동해서 정광이 인상을 쓰자 의자에서 일어나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철모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음에 안 드십니까?”

“글쎄.”

철모의 어두운 표정이 정광의 이어지는 말에 확 밝아졌다.

“들고 자시고 할 게 어딨어. 딱 내 검인데.”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존!”

“그때도 여기였지. 그 꿈, 계속 꾸라고 했더니 정말 해냈어. 감사는 네 남편과 너한테 해. 너희 둘이 해낸 거니까.”

정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어루만졌다.

“마검은 애초 생각대로 섬랑에게 주고 운룡은 수빈이에게 주면 되겠어. 잘 만들고 잘 지켰네. 노리는 놈은 없었어?”

철모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소교주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었습니다.”

“많이 컸다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내 것을 다 탐내고.”

철모는 정광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고 속으로 탄식했다.

섬랑이 괘씸하긴 하나 겨우 정해진 후계 구도를 망가뜨릴 수는 없지 않은가?

“패기가 과했지만 그래도 선은 지켰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진심이야?”

“……아니지만 부탁드립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유해진다더니 과연.”

정광이 손가락을 튕겼다.

“좋아, 대신 섬랑이 네 기일마다 네 묘에 찾아가 곡소리를 내게 할게. 이 검, 이름이 뭐야?”

기뻐하던 철모가 정색했다.

“당연히 없습니다. 지존께서 정하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뭐로 할까? 그렇지.”

정광은 화상으로 뒤덮인 얼굴에 땅딸막한 체구를 지닌 노인을 떠올렸다.

이 검을 만든 야장이자 이녕임가의 전 태상가주 임철환이었다.

“검은 철환(鐵煥), 철혈화는 좀 기니까 검집은 철화(鐵花)로 하면 되겠다. 그 녀석이 재능을 꽃피울 때까지 네가 감싸준 것과 딱 들어맞는걸.”

“……!”

철모의 눈에서 참고 또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긴장이 풀리며 육신이 허물어졌다.

정광은 바로 그녀를 잡고 혀를 찼다.

“죽었다 잠깐 살아난 사람이 무리하면 되나. 내가 손봐줄게. 사오 년은 더 살 수 있을 거야.”

철모가 환하게 웃었다.

“지존, 저는 괜찮습니다. 마지막 숙원을 이뤘으니 남편 곁으로 가고 싶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 몰라?”

“이젠 정말 여한이 없습니다. 그냥 보내주십시오.”

정광은 뺨을 긁다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든지. 잘 가라.”

철모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간신히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정중히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존의 앞길에 광명이 비추길 빌겠습니다. 쿨럭. 쿨럭. 크흑.”

“내 앞길에 피를 토하면서 무슨.”

정광이 철모의 앙상한 손을 잡자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피가 멈췄다.

정광은 철모를 탁자 위에 반듯이 눕히고 권했다.

“생각이 바뀌었으면 말해.”

“후우. 후우. 정말 괜찮습니다.”

“그래 보이긴 하네.”

휜펠 제국 황제와 완전히 다른, 너무나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네 아들을 불러줄까?”

“지겹도록 봤습니다.”

“더 지겨운 남편을 만나러 가면서 할 말이야?”

“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군요. 후후후.”

철모는 작게 웃다가 그대로 숨을 거뒀다.

정광은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살릴걸 그랬나?’

간절히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살려서 뭐 하려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 또 이러긴 싫은데.’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곤륜에는 철모보다 훨씬 더 주어진 수명에 순응하고 말솜씨도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한 번 살렸었으니 더 거부하겠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 보니 간단한 해결책이 떠올랐다.

“자오! 빨리 가죠!”

* * *

“장문인! 큰일 났습니다!”

듬직하고 성실한 성격에 연륜까지 더해져 정파무림의 신망을 받는 곤륜파 정 자 배 대사형 정우가 삼청전(三淸殿) 문을 부서져라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길래 그 소란이냐?”

허청의 물음에 정우가 흥분된 어조로 대답했다.

“정광이 돌아왔습니다!”

“무어라?”

허청이 벌떡 일어나 질문을 퍼부었다.

“어때 보이더냐? 상한 데는 없고?”

“피부가 더 뽀송뽀송해졌습니다.”

“그, 그렇겠지. 어디 있느냐? 여기로 오고 있는 게냐?”

“아닙니다. 다짜고짜…….”

“이런 고얀 녀석을 봤나! 집에 돌아왔으면 사부부터 보러 와야지 어디로 새?”

화를 내던 허청은 정우의 설명을 듣고 민망해했다.

다짜고짜 사조가 있는 곳을 묻고 가버렸다는데 사부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어, 어쨌든 가보자.”

한편, 초췌한 얼굴로 병석에 누워 담담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운후는 불쑥 나타난 정광을 보고 인자하게 웃었다.

“허허허. 용케 시간을 맞춰 왔구나. 나는…….”

불문곡직(不問曲直)!

정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손을 썼다.

하늘의 섭리든 뭐든 알 게 뭔가?

내가 이러고 싶다는데.

선수필승(先手必勝)!

이 격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상대의 의중을 모르고 한 것인데 무엇이 문제랴.

자연지기로 운후의 삼단전(三丹田)과 기경팔맥(奇經八脈), 십이경맥(十二經脈), 십이경별(十二經別)에다 전신의 세맥까지 깡그리 정화하고 주름살도 살짝 펴줬다.

“안녕하세요, 사조님. 건강해 보이시네요.”

“아, 아니. 그건 네가…….”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하게 계세요. 약속한 거예요.”

“내, 내가 언제…….”

정광이 운후의 처소에서 나오니 허청이 다른 사람들과 달려오고 있었다.

정광은 입가에 손을 대고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저, 정광아아아아! 내 사부님만 보고 갈 것이냐? 네 사부는?”

“사조님 이제 진짜 몇 년 못 사세요! 그전에 돌아올 테니 곡차나 몇십 동이 하고 사조님 장례를 치르죠!”

산양 유모야 어차피 말을 못 하니 근엄하게 울든 말든 치료하고 바로 하산했다.

정광은 그만큼 바빴다.

섬랑과 팽수빈 때문에도 그랬고 청해성에 들어오자마자 대명 황제가 오늘내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였다.

‘투자한 게 얼만데 벌써 가려고.’

섬랑이 움직이는 경로를 그대로 따라갔다.

연이 있는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났고 나름 즐거웠지만 다들 수명이 한참 남은 이들.

심지어 독존 당기황도 그랬기에 서둘러 떠났다.

혜진에게는 왠지 살짝 미안한 마음이 있는 듯도 하고 그녀의 부처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이틀 동안 잡혀 있다가 다음에 돌아오면 같이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해야 했지만.

그리고 마침내 만난 대명 황제는 철모나 운후와 달리 더 살기를 원했다.

물론 불문곡직 선수필승의 절초로 치료해 주고 나서야 들은 얘기였다.

그리고.

“네? 섬랑이 황궁 밥을 한 끼만 먹고 갔어요?”

“하하하. 그렇다네. 진옥룡 자네보다 더한 면이 있더군.”

“그럼 또 봬요.”

“어, 어딜 가는가? 조금만 더…….”

황제도 정광을 잡을 순 없었다.

하북팽가도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정광은 팽수빈과 섬랑이 동귀어진하려는 걸 보고 혀를 찼다. 섬랑의 그림자 속에 은신해 있던, 이름이 오희성일 게 분명한 아이가 뛰쳐나와 막으려 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만.””

귀찮은 일을 피하고자 구경하고 있는 이들을 용언마법으로 묶고 새로 얻은 애검 철환을 두 제자 사이로 던졌다.

구경꾼들은 바로 굳어버렸지만 두 제자는 여전히 서로를 탐하려 했다.

“의욕이 이렇게 과해서야 원.”

정광의 단순한 손짓에 섬랑과 팽수빈의 머리가 끌려와 정광의 손바닥에 철썩 달라붙었다.

“자, 자. 가만히 있어야 착하지. 내가 꺼내줄…… 어? 그래도 꽤 버티고 있네?”

정광은 그들의 상태를 단숨에 파악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더 쉽지. 조금만 혼내도 되겠어.”

이번 여행에 끌고 다니며 부려 먹으면 딱 적당할 터.

정광은 불문곡직 선수필승의 절초를 다시 펼쳐 제자들을 치료했다.

“예나 지금이나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라니까.”

정광이 피식 웃는데 섬랑과 팽수빈이 눈을 떴다.

“……!”

섬랑의 벽안이 찢어질 것처럼 커지고 팽수빈의 영롱한 눈에선 수정 같은 눈물방울들이 떨어졌다.

그토록 만나길 바랐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대인!”

“사부님!”

정광은 두 사람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고 나무랐다.

“살벌하게 왜 그래. 애들은 애들답게 코피 정도 터뜨리는 선에서 끝내야지.”

진심이었다.

예전이었다면 크게 상관 안 했겠지만 둘이 사이좋게 지내면 기분이 조금 더 좋을 것 같았다.

‘좋아, 한번 엮어볼까.’

정광은 속으로 웃었다.

<곤륜마협> 특별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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