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556화 (556/569)

암흑대공전기(暗黑大公傳奇) 7화

탐욕

정광이 후작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미소 지었다.

“제가 있잖아요. 어제 한 약속, 조금 바꾸죠.”

“갑자기 무슨 말이냐?”

정광은 눈살을 찌푸리는 후작을 안심시켰다.

“더 좋은 쪽이에요. 휜펠 제국 황제 폐하께 전해주세요. 제가 신하분들을 훈육한 건 이쪽 예법을 몰라 실수한 거라 인정했고, 드래곤도 구경할 겸 사과의 의미로 정벌군의 선봉에 설 테니 받아달라 했다고요.”

“……진심이냐?”

“물론이죠.”

“……휜펠에 가면 네 능력에 따라 생을 더 늘릴 수 있지만 ‘침묵의 산’으로 가면 드래곤이 깨어난 날 반드시 죽는다. 진짜 목적을 말해라.”

“뻔하죠. 드래곤을 잡으려고요.”

아까부터 에스텔이 정광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난리를 치고 있었으나 후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정광이 하는 말들을 되새기며 정광의 눈을 들여다보는 데 온 정신을 집중했다.

말은 일리가 있고 눈은 티 없이 맑고 깨끗했다.

“황제 폐하도 ‘치크’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걸요.”

사실이었다. 후작이 아는데 황제가 모를 리 없었다.

“자오의 수다를 밤새워 들으시고 전부 헛소문인 건 아닐까 의심하시는 건 아니죠? 오해예요, 오해.”

한때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으나 자오가 그 연유까지도 미치도록 소상하게 늘어놨기에 오해할 일은 없었다.

“제가 그 치크고 도무지 잡을 수가 없었다 하세요. 폐하께선 오히려 저라는 좋은 칼이 생기는 셈이니 화를 내시진 않을걸요. 원래 없던 것이니 부러져도 아깝지 않고요.”

그 말을 전할 알베르 공작이 애를 많이 써야겠지만 욕심 많은 황제라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

“어때요, 이쪽이 더 좋죠? 제가 한 손 거들면 프로부뉴 정병들이 피를 조금이나마 덜 흘릴지도 모르니까요.”

마지막으로 정광이 도문(道門) 냄새가 풀풀 나는 상청무상신공(上淸無上神功)을 슬며시 운기하며 마무리를 짓자 후작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평생을 금욕하고 세상에 헌신하는 수도사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광명정대한 기운이라니.’

어차피 다른 길은 없었다.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서적에서 본 바로는 이게 동방의 예절이었다. 정광, 미리 조의를 표하마. 정말 고맙다. 좋은 곳으로 가기를.”

후작은 지체 없이 시종에게 명령했다.

“당장 알베르 공작님을 모셔와라! 아르노 경에겐 국왕 전하께 통신 마법으로 보고드릴 준비를 하라고 전하고!”

이미 죽은 사람으로 취급받아 어이없어하던 정광이 두 눈을 빛내며 시종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세요, 어서. 후작님, 왕궁과 바로 연락이 되는 거예요?”

“이것저것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고 몇 다리 건너야 한다.”

“그게 어디에요. 전서구보다 훨씬 좋은데. 구경 좀 해도 되죠?”

“불가하다. 네가 고맙긴 하나 아국의 기밀들을 들려줄 순 없어.”

“쩨쩨하시기는. 정말 고맙긴 한 거 맞아요?”

쩨쩨한 후작은 다급히 달려온 알베르 공작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논의까지 한 뒤 통신용 마법 수정구를 통해 국왕에게 보고했다.

프로부뉴 국왕 발부에 6세는 추기경과 함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허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정광은 후작에게 침묵의 산으로 출발하겠다고 통보했다.

“왜 이리 빨리 가려는 것이냐? 알베르 공작님과 사절단이 아직 휜펠 제국 놈들을 마차에 싣고 떠나지도 않았다.”

“성은 허름하고 주인마저 인색한데 더 있어서 뭐 해요. 프로부뉴가 볼품없긴 해도 이곳보단 나아요. 천천히 가면서 구경하려고요.”

정광이 그러겠다는데 어쩔 수 있나.

후작은 필요한 조처를 한 뒤 정광 일행을 환송했다.

“잘 가거라. 너희들의 희생을 잊지 않으마.”

“차라리 악담을 하시죠.”

그래도 후작의 배려 덕분에 정광 일행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기사를 몇 명 붙여준 것이다.

또한 연락을 담당하고 드래곤과 휜펠 제국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사람도 있었는데 마침 정광 일행이 아는 자였다.

얼굴이 창백한 중년인, 바로 마뉘엘이었다.

그들은 후작이 내어준 말을 타고 여유롭게 가다가 괜찮은 여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려고 하는데 정광이 한 사람을 불렀다.

“보고 싶었어요. 궁금한 것도 있고요. 제 방으로 가서 술이나 한잔하시죠.”

마뉘엘은 창백한 얼굴이 파리해질 만큼 두려웠지만 임무를 잊지 않았다.

잊을 만한 능력도 배짱도 없었고.

“알겠소. 갑시다.”

두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자 자오도 당연하다는 듯 따라갔다.

졸지에 포악하기로 이름 높은 드래곤의 레어를 방문하게 된 에스텔은 그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콧방귀를 뀌며 사라졌고.

정광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와인을 권하며 드래곤에 대해 질문했다.

마뉘엘은 제정신으론 안 되겠는지 와인을 연거푸 마시며 일일이 답변했다.

정광은 흥미진진한 동화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와! 그런 게 있어요?”

“그렇소. 역사서에도 있고 구전으로도 내려오고 있소.”

“용언마법(龍言魔法)이라. 신기하네요. 그냥 말만 해도 마법이 발현되다니.”

그간 에스텔에게 묻거나 관찰하며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의 마법이란 입으로 주문을 외어서 복잡한 수식을 머릿속에 더 강하게 되새기며 자신이 품고 있는 마나를 그 수식에 맞게 성질을 변형시키고 섞어 발산하는 것이었다.

엘프도 인간과 같은 방법을 쓴다고 들었거늘, 용은 역시 달라도 뭔가 한참 다르지 않은가!

‘잠깐. 에스텔은 숲에 박혀서 스승에게만 배웠지.’

혹시나 하고 물었다.

“사람이 그런 기술을 썼다는 기록이나 설화는 없나요?”

“언령(言霊)이란 개념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말에는 힘이 있다는 추상적인 정도일 뿐 마법을 발현한 이는 없는 것으로 아오.”

“하긴. 말만으로 마법을 쓸 수 있으면 자오는 천하제일인이 뭐야, 세상이 다 자오의 것이죠.”

“다, 단주.”

“칭찬이에요. 그런데 아쉽긴 하네요. 그게 가능하면 마뉘엘에게도 좋을 텐데. 예를 들면…….”

정광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스텔의 성격이 부드러워진다.”

“벌써 취했나, 웬 헛소리야?”

“마뉘엘, 그냥 받아들이세요. 에스텔, 이분께 할 말이 있어서 왔죠? 일단 한 잔 드세요.”

에스텔은 정광을 못마땅한 눈으로 쏘아보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빈 술잔을 탁자에 강하게 내려놨다.

탁!

“마뉘엘, 왜 날 배신한 거예요?”

그의 창백한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럼 왕궁에서 암상 길드에 심은 첩자예요?”

“그것도 아니다.”

“결국 여기까지 오네. 정광이 나보고 넓게 보라고 했었는데, 암상 길드 자체가 국왕의 것인가요?”

“…….”

마뉘엘은 입을 다물고 에스텔은 확신하게 됐다.

“기가 차네 진짜. 명색이 국왕인데 손댈 게 따로 있지. 프로부뉴도 다 됐네요.”

“에스텔, 말이 지나치다.”

“충신 나셨네. 꼭 서훈이라도 받은 기사처럼 불쾌해…… 너무 나갔다. 이건 아니지요?”

“…….”

“와아. 맞나 보네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에스텔이 커진 눈을 깜빡거리다가 술잔이 아니라 아예 술병을 들고 마시자 정광이 설명했다.

“사람이 돈이 필요하면 못 할 일이 없죠.”

“크으으. 알아. 그래도 명색이 국왕인데 체면이 있지, 어둠의 돈을 챙기는 건 아니지.”

“체면도 차릴 여유가 있을 때 차리는 거예요. 휜펠 제국으로 가는 프로부뉴 사절단의 짐을 떠올려 보세요. 가난한 소국이 뇌물로 바치기엔 너무 많은 양 아니었나요?”

정광은 에스텔이 아닌 마뉘엘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프로부뉴 백성들은 가난하긴 해도 헐벗지는 않았더군요. 백성들에게선 수탈하지 않고 어두운 돈을 챙긴다면 성군이시라 할 수 있죠.”

“…….”

마뉘엘의 표정은 여전했지만 눈빛만은 다소 부드럽게 변했다.

약소국이 평화를 유지하려면 강대국에게 많은 걸 바칠 수밖에. 이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되 백성들에게 피해를 적게 주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능할 리 있나. 프로부뉴 왕실은 오래전부터 암상 길드 같은 음성적인 조직을 만들고 키우며 밀무역에까지 손을 댄 형편이었다.

그런데 정광이 이런 속사정을 알아채고 국왕을 성군이라 평가하니 마뉘엘은 고마움을 넘어 감동까지 받게 됐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마뉘엘, 전에 우리에게 줄 돈이 모자라서 문서로 남겼던 금액은 성군이신 국왕 전하께서 보증하시는 거죠?”

“…….”

“침묵은 곧 긍정이죠. 그렇게 이해할게요.”

마뉘엘에게 화가 났었지만 사정을 알게 되니 약간은 풀린 에스텔이 정광을 나무랐다.

“적당히 좀 해라.”

“그러고 있는데요.”

“그보다 너. 제국군이 오기 전에 드래곤을 잡으려는 거야?”

“굳이 왜요? 역시 우린 사고방식의 차이가 너무 크네요.”

“……네가 그 말 할 때마다 겁나거든. 그럼 어쩌려고?”

“글쎄요.”

“휴우우. 내가 말을 말아야지.”

답답해하는 에스텔에게 자오가 충고했다.

“단주께서 확실히 말씀하시지 않을 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요. 단주를 믿으시오. 때가 되면 알려주실 것이고 잘 풀릴 것이오.”

“자오. 자오는 정광이 지옥에 뛰어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갈 분이잖아요. 나도 믿고 싶어요. 진심이라고요. 그런데, 아. 모르겠다.”

혼란스러워하는 에스텔에게 정광이 불쑥 물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실래요? 그럼 몸도 마음도 편해지실 텐데.”

“……!”

에스텔의 얼굴이 굳었다.

‘맞는 말이야. 숲 밖으로 나온 게 뼈저리게 후회된다고 말한 적도 있고. 그런데 내가 정말 돌아가고 싶은 건가?’

감정 변화의 기복이 적고 무탈했던 숲에서의 삶과 희로애락이 수시로 바뀌게 되고 위험천만한 정광과의 동행.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전자를 택해야 하건만, 에스텔은 단 한 번도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대체 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 넓은 세상을 두 발로 걷는 뿌듯함이었다.

다음은 동행하겠다고 말한 책임감 때문이었고.

그리고 마지막은…….

‘……나를 하프 엘프나 마녀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로 봐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었어.’

정광이 그랬고 자오가 그랬다.

에브뢰 후작은 그런 점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지금쯤이면 휜펠 제국으로 떠났을 알베르 공작 또한 동등한 협력자로 대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았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편안했지. 자유로웠고.’

이 배에서 내리기 싫었다.

어디까지 항해하게 될진 모르지만, 더 많은 이들을 만나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정광.”

“네.”

“난 이 배에서 안 내려.”

“그랬다가 나쁜 사람한테 수장되면요?”

에스텔이 고개를 치켜들고 결연히 답했다.

“무섭긴 한데 내가 그냥 가라앉을 것 같아? 어렸을 때도 순종하지 않고 반항해서 이리저리 계속 팔려 다녔는데 다 큰 지금은 더하지. 물귀신이 되어 그놈과 함께 갈 거야.”

“그럴 일은 없어요.”

정광이 싱긋 웃었다.

“우리와 함께 다니면 안전하다고 말했었잖아요.”

에스텔은 울상을 지었다.

“그 말을 한 네가 제일 위험해 보여.”

* * *

‘해가 지는 땅’에서 제일가는 강대국의 중심지이자 대륙을 군림하는 절대자가 기거하는 황궁.

수많은 귀족들과 대신들이 숨죽인 채 늘어선 가운데 찬란한 옥좌에 앉은 노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동방의 괴인 때문이었다.

‘짐의 신하들을 그 꼴로 만든 주제에. 실수를 인정하고 드래곤 정벌군의 선봉에 설 테니 받아달라 했다고?’

휜펠 제국의 황제 슈폰하임 11세는 이번에도 또 프로부뉴 사절단의 대표로 온 알베르 공작이 쫓겨날 때까지 되풀이한 절절한 호소를 곱씹었다.

‘프로부뉴로선 막을 수도 잡을 수도 없었으니 통촉해 달라고 지껄였는데 그럴 만도 하지.’

그놈이 정말 그 ‘치크’라면, 놈에 대해 들은 정보의 반의반만 사실이라면 그러고도 남으리라.

아까 작위를 박탈하고 지하 감옥에 처넣은 슈테른 기사단과 에티호넨 백작을 카마우라는 중년인과 단둘이 박살 내는 것으로 최소한의 능력은 증명하지 않았던가.

황제는 밭고랑처럼 깊은 주름살로 가득한 얼굴을 찡그렸다.

제국의 체면이 깎이기도 했고 ‘신의 힘을 가진 자’라니, 과해도 너무 과해서였다.

‘불쾌하긴 하다만. 놈이 약조를 지키면 쓸 만한 칼이 생기는 셈이다. 죽여서 화풀이하느니 그렇게라도 써먹는 게 나아. 짐의 힘을 그만큼 보전할 수 있어.’

‘드래곤도 구경할 겸’이라는 황당무계한 이유를 굳이 달았다고 하니 오히려 더 믿음이 갔다.

황제가 아는 치크는 무도한 자인 반면에 본인의 말을 책임질 줄 아는 기이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설령 다른 속셈이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집단도 위대한 휜펠 제국의 힘을 감당할 순 없었다.

제국의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슈폰하임 11세는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바텐베르크 공.”

“네, 폐하.”

“대륙 제일의 기사이자 마검 블루우트 프라센다 데이몬의 주인이며 드래곤 정벌군의 총사령관인 공에게 명을 내린다.”

각진 얼굴에 체격이 건장한 노인이 절도 있게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하명하옵소서, 폐하.”

황제의 쉬고 갈라진 음성이 말을 이을수록 쩌렁쩌렁해졌다.

“프로부뉴에서 동방의 괴인들을 만나면 유용한지 아닌지 확인해라. 유용하면 적절히 사용하고 아닐 시엔 희귀한 인종이니만큼 짐이 노리개로 쓸 터. 황궁으로 보내라.”

“소신, 명심하겠나이다.”

“또한 짐이 작위를 박탈한 콘라트와 에티호넨이 탐냈다는 하프 엘프는 공에게 하사할 것이니 그리 알고 이번 정벌에 최선을 다하라.”

바텐베르크는 물론이오, 장내에 있던 모든 이들이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

황제는 그런 그들을 오연히 둘러보며 속으로 코웃음 쳤다.

‘기쁜데도 표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바텐베르크야 그렇다 치고. 다른 녀석들은 가관이군. 뇌물을 얼마나 받아야 프로부뉴를 그렇게 변호할까.’

프로부뉴군이 너무 많이 죽으면 치안이 무너져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데다 그 유민들이 휜펠 제국으로 들어와 부랑자가 될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줘야 한다고 하나같이 조심스레 간언하던 꼴이라니.

어디 그뿐이랴.

‘정광’이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그놈의 청 또한 그랬다. 냉정하게 이득을 따져보면 합당한 면이 많으니 굳이 괜찮은 칼을 부러뜨리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부분 틀린 말이 아니란 게 더 우습지. 그래, 그렇게 타국들의 피를 빨아 먹어라.’

신하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한편, 먹을 가치도 없지만 마음대로 주무를 필요는 있는 소국들의 발전도 막는 길이기에 어느 정도 선까지는 눈감아주는 게 좋았다.

‘허나 그놈만큼은 용서 못 해.’

황제는 정벌군이 자신에게 바칠 위대했었던, 하지만 곧 사냥당한 뒤 갈가리 찢길 존재를 떠올렸다.

백태가 낀 황제의 눈이 탐욕으로 불타올랐다.

‘이 대륙의 주인인 짐의 생명도 유한한데 짐보다 오래 살게 놔둘 순 없지. 짐의 대륙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도 용납 못 해. 놈을 죽이고 사체마저 빼앗으리라.’

이제 마무리를 지을 차례였다.

“황궁 밖에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프로부뉴의 알베르 공작에게 전해라.”

황제다운 위엄이 좌중을 떨어 울렸다.

“짐이 친아우처럼 아끼는 프로부뉴 국왕 발부에 6세의 간곡한 청들을 적절히 허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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