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553화 (553/569)

암흑대공전기(暗黑大公傳奇) 4화

후회

암상인 마뉘엘은 비록 에스텔의 믿음은 저버렸지만 대금은 제대로 치를 거라는 약속은 지켰다.

정광은 그 점을 높이 샀기에 자연히 입에서 나오는 말도 고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사람은 첫인상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안 그래요, 자오?”

“맞습니다, 단주. 에스텔을 배신한 게 아쉽긴 하나 나름대로 신의가 있는 자였습니다. 차가운 언행과 어울리지 않게 인심도 좋더군요. 제가 시세는 모르지만 평소 거래하던 에스텔이 그렇게 놀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요.”

“제 말이. 딱한 사정이 있는 게 뻔한 데 매몰차게 대하면 쓰나.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줘야죠. 하하하.”

두 사람이 음침한 골목길을 걸으며 내리는 후한 평가에, 에스텔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신의 있고 인심 좋기는. 정광 너 때문이잖아.”

아까의 비밀 상점은 단순한 폐가가 아니었고 사방에 널린 잡동사니 또한 그랬다.

혹시 모를 불청객을 위한 마법 아이템과 기관 장치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상황에 한구석에 있던 초라한 소라 껍데기가 어떤 용도이고 어디로 소리를 전달하는지 단숨에 파악하다니.

정광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에스텔도 감탄했는데 생면부지인 마뉘엘은 오죽할까.

“너 같은 괴물이 코앞에서 협박하면 귀족 가문 망나니도 바로 전 재산을 바치고 성직자가 될걸.”

“진심이에요?”

“당연하지. 그러고도 남아.”

심지어 마뉘엘은 가진 걸 다 주고도 모자라 상당분은 문서로 남기지 않았던가. 나중에 주겠다고.

하지만 정광은 겸손한 남자였다.

“협박이 아니라 제안이었는데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던 사람이 말 몇 마디에 흔들릴 리 없죠.”

에스텔이 콧방귀를 뀌었다.

“흔들리는 게 아니라 아주 휘청휘청하더라. 유령이라도 만난 듯 놀란 얼굴로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분, 얼굴이 시체처럼 파리한 게 귀신처럼 생겼더라고요.”

“말 돌리지 마. 마뉘엘 입장에선 실력으론 답이 없고 살려주겠다는데 살아야지. 그놈의 보고까지 알아서 할 수 있게 됐는데.”

“그렇게 됐죠.”

“여보세요,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 얘기거든요. 하아아. 그 인간은 갑자기 왜 그렇게 변한 거야?”

세상을 떠난 스승님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믿었던 자가 뒤통수를 칠 줄이야.

우울해하는 에스텔의 귀에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변하곤 하지만 쉽게 변하진 않아요.”

“무슨 말이야? 쉽게 말해줘.”

정광은 순식간에 바짝 붙은 에스텔의 얼굴을 밀어내며 설명했다.

“애초에 왕의 명령을 받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단 얘기죠.”

“……!”

에스텔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갔다.

“난 또 뭐라고. 재미없는 농담이네.”

“진담인데.”

“그런 자가 정체를 숨기고 암상 길드에 들어가 한 지역을 총괄하게 됐다고? 거기는 그렇게 허술한 곳이 아니야.”

“좁은 숲에서 살다 나오셔서 그런지 넓게 못 보시네요.”

“그건 또 무슨…….”

“이러다 날 샐라. 싫어도 곧 알게 될 거예요. 빨리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 편안한 곳에서 자죠.”

정광은 에스텔을 재촉해 고급스러운 여관으로 갔다.

시간이 너무 늦어 거창한 요리는 구경도 못 했으나 종업원이 방으로 올려다 준 부드러운 빵과 향기로운 수프가 어딘가?

정광은 제 몫을 깨끗이 비우고 모든 비용을 지불한 에스텔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잘 먹었어요.”

“그런 말 할 필요 없어.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던 에스텔이 정광과 자오를 번갈아 보며 선언했다.

“언어를 가르치고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 목숨을 보호해 주는 것과 대등한 값일 순 없지요. 여비는 전부 내가 책임질게요.”

“오오. 역시 에스텔. 고귀한 존재답게 통이 크네요.”

“……지금 비꼰 거지?”

“설마요.”

“어쨌든. 두 사람 덕분에 얻은 걸 팔아서 마련한 거지만 입을 싹 씻는 것보단 낫겠지.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오면 똑같이 나누는 걸로 하자. 어때?”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구나.”

“큰 빚을 지고 못 갚은 적이 있어서.”

에스텔이 스승을 떠올리며 우울한 표정을 짓자 정광이 쾌활하게 수락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는 찬성. 자오는요?”

“그것도 좋습니다만 언어를 알려주는 시간을 많이 늘려주는 게…….”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수심까지 날려 버린 에스텔이 소리쳤다.

“이, 이 대 일! 내 제안을 정광이 찬성했으니 다수결로 결정됐네요. 그럼 내일 봐요.”

지금도 틈만 나면 가르쳐 달라고 괴롭히면서도 더 의욕을 불태울 줄이야.

기겁한 에스텔은 급히 방문으로 향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서 정광과 자오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미안해요. 내 탓이에요.”

정광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일이요?”

“응. 내가 마뉘엘을 너무 믿었어. 하다못해 욕심이라도 덜 부려서 적게 가져갔으면 그런 의심은 사지 않았을 텐데.”

“많이 벌었으면 됐죠.”

“오늘은 괜찮았지만 내일부터 아주 시끄러워질지도 몰라.”

“괜찮아요.”

“정말?”

“어차피 그렇게 흘러가게 돼 있는데요 뭐.”

* * *

정광의 말대로였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에스텔이 사라진 일행을 찾다가 일 층 식당으로 내려가는데 벌써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이, 이 인간들이 진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주시하는 꼴이라니.

어디 그뿐이랴.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목소리를 낮출 생각도 못 한 채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뭐야 저 인간들은? 아니, 인간이 맞긴 하나?”

“너무 나갔네. 말로만 듣던 동방 사람들이겠지. 정말 신기한 모습이긴 하군. 왠지 무섭기도 하고.”

“빌어먹을. 나까지 으스스해졌어. 그 먼 곳 사람들이 여기엔 뭐 하러 왔을까? 최소한 좋은 일로 온 건 아닐 텐데…… 이보게, 정 궁금하면 한번 가서 물어보게나.”

“뭐? 무기를 지닌 수상쩍은 자들에게? 자네, 내 친구 맞나?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이렇게 의견을 교환하다가 다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엄마, 왜 얼굴은 빨갛고 눈은 빠질 것처럼 커졌어? 괜찮아?”

“응? 응, 응. 아무렴, 괜찮지. 괜찮고말고.”

“저 오빠, 이상하긴 한데 진짜 진짜 잘생겼다. 같이 있는 아저씨는 이상하면서도 진짜 진짜 평범하고.”

“어머, 그러고 보니 한 사람 더 있었네. 정신이 팔려서 몰랐어. 가만. 그런데 너, 왜 고기만 먹고 콩은 안 먹어? 자꾸 그러면 저 이상하고 평범한 아저씨에게 데려가서 혼내달라고 한다!”

“으아아앙. 잘못했어요 엄마.”

“그럼 어서 먹어!”

한마디로 개판.

이런 일들을 보고 들으며 계단을 내려온 에스텔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일행이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탁자를 양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빨리 이 지역을 떠나야 할 판에. 너. 미쳤어?”

당사자가 오물오물 씹던 스테이크를 삼키고 대꾸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떠나야죠. 식사하기엔 조금 시끄럽지만요.”

“네가 더 시끄러워. 자오는 그래도 정상 쪽으로 약간 기운 사람이니 이러자고 했을 리 없고. 네 생각이지?”

“뭐가요?”

에스텔은 이를 갈며 따졌다.

“숲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히 그랬었어. 얼굴도 체형도 피부색도 바꾸는 기술이 있다고.”

“네. 이름이 꽤 긴 무공이죠.”

“그런데 왜? 대낮에,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이면 당연히 써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겠다고 한 적 없는데.”

“……!”

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에스텔은 끊어지려고 하는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다, 다, 당연히 할 줄 알았지. 그런 말을 들었는데 자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는 게 정상이잖아.”

“음. 사고방식의 차이에 의한 오해네요. 이런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어쩔 수 없죠.”

“…….”

말은 그럴듯하긴 한데.

에스텔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있어. 왜 쉬운 길을 두고 소란을 키우는 건지 들어나 보자.”

정광은 바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굳이 본모습을 바꿀 필요가 없으니까요. 제게 잔소리할 사람들은 이역만리에 있거든요. 여기서 뭘 하든 간에 그들 귀에는 들어가지 않을 텐데 귀찮게 뭐 하러 그래요.”

“……그게 다야?”

“이유 중 하나죠.”

“……나도 이제 모르겠다.”

에스텔이 고개를 젓다가 의자에 앉아 포크를 쥐자 정광이 싱긋 웃었다.

“어차피 이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니까요.”

“그래, 너 때문에.”

“에스텔 탓도 큰데요.”

“그래, 그렇다 치지 뭐.”

“진짠데. 에스텔이 오고 더 심해졌어요. 못 느끼겠어요?”

“…….”

과연.

그랬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에스텔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서, 설마?’

당황한 에스텔은 귓가에 슬쩍 손을 댄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그랬듯이 긴 금발을 늘어뜨려서 하프 엘프임을 나타내는 뾰족한 귀를 가리고 묶어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마녀라는 걸 알아봤을 리도 없고.

“네 경우처럼 심각한 이유로 저러는 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마.”

“알아요. 에스텔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죠.”

“네가 그러니 칭찬으로 안 들린다. 어쨌든 그러려니 해. 예전에 팔려 다닐 때도 여관에 들르면 저랬어. 내 귀만 가리고 있으면 대부분 저러다 끝나.”

“과연 앞으로도 그럴까요? 뭐 그건 그거고.”

정광은 에스텔의 잔에 와인을 따르며 권했다.

“이거, 에스텔이 빚은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요. 정말이니까 믿고 마셔보세요.”

* * *

에스텔은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속삭였다.

“정광, 너 혹시 미래를 보는 마법을 쓸 줄 알아?”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저러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여관에서 짐을 챙겨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길을 가면 갈수록 많은 사내들이 합류해 따라오고 있었다.

그녀가 경계할 만큼 안 좋은 느낌을 풀풀 풍기며.

심지어 정광을 따라오던 그 많은 여인들이 전부 겁을 먹고 돌아갈 정도였다.

“너무 심한데. 식당에선 다들 쳐다보며 떠들다 말았잖아.”

“거기와 길거리가 같나요.”

“단지 그 차이로?”

“이것부터 말할게요. 예전에 팔려 다닐 땐 에스텔을 감시하거나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죠? 길을 갈 땐 사방이 막힌 수레에 갇힌 채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실려 갔고요.”

“안 좋은 기억을 왜 또…….”

“거의 다 끝났어요. 그때는 권력자의 보호를 받는 사유물로 이동됐고 지금은 자신의 의지로 달랑 두 명의 남자와 걷고 있죠. 이 차이는 커요. 특히 길거리에서는요.”

정광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흩어지는 것도 쉬운 길거리에 사내라면 누구나 눈을 번쩍 뜰 만한 아름다운 여인이 혼자 있을 때, 혼자가 아니라 이성과 있을 때, 그 이성이 생전 처음 보는 이민족일 때, 게다가 잘난 얼굴이라면? 그걸 본 사내는 뒤로 갈수록 질투심을 넘어 분노하게 되죠. 머릿수까지 많아지면 분위기에 휩쓸려 이상한 정의를 부르짖으며 행패를 부릴 수도 있고요.”

“아!”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소싯적 일이지만 저 때문에 피해를 본 이민족 여인들이 꽤 많죠.”

“……아.”

“자오, 봤어요? 에스텔이 조금 전과 다르게 성의 없이 ‘아’ 하는 거.”

“네, 단…….”

“자오, 쓸데없이 맞장구치면 단어며 문법이며 엉망으로 가르쳐 줄 거예요.”

“그, 그건 안…….”

“정광, 대충 이해했으니까 딴소리하지 마. 이제 어떡할 거야?”

“그야 순리대로 가야죠.”

정광은 발걸음을 멈추고 목을 좌우로 움직여 우두둑 소리를 낸 뒤 손뼉 쳤다.

“자. 자. 자. 시간 아까우니 빨리 끝내죠. 오세요.”

“……!”

갑자기 뭐가 어째?

흠칫 놀란 사내들이 서로를 보며 눈치를 보는데 한 덩치 큰 청년이 분연히 나섰다.

“네 이놈! 머나먼 동방에서 온 야만인이라 예절을 몰라 그랬을 테니 한 번은 이해하마! 그 잘난…… 요, 요사한 얼굴로 순진무구한 여인을 희롱하지 말아라! 안 그러면, 커억!”

청년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훨훨 날아올랐다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어느새 다가와 청년을 그렇게 만든 정광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또 정의를 설파하실 분.”

“……!”

언제 어떻게 움직여서 건장한 청년을 날려버렸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누가 감히 나설까.

사람들이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기만 하자 정광이 탄복했다.

“예절에 박식한 분들이라 서로 양보하시네. 그럼 사양하지 않고 갈게요.”

“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하늘을 날며 땅바닥을 나뒹구는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게다가 이번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손가락질하며 쑥덕거리는 건 무시하고 가면 되는데 시비를 거는 놈들이 꼭 있었다.

물론 정광은 사양하지 않고 전부 때려눕혔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에스텔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간 끝이 없어. 이래서 어느 세월에 다른 지역으로 가? 방법을 찾아야 해.”

정광에겐 천변만화역용축골마공(千變萬化易容縮骨魔功)이라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지만 그럴 의향이 없었다.

“뭐가 걱정이에요. 계속 패면서 가면 되지.”

“병사들이 달려올 거야. 기사들도 올 거고. 아. 어차피 들이닥치게 돼 있었지.”

마뉘엘이 이곳 영주인 에브뢰 후작에게 보고했을 게 분명하니 시간문제였다.

“아니야. 그 시간을 미뤄보기라도 해야 해.”

어깨를 축 늘어뜨렸던 에스텔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빛내자 정광이 위로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처음부터 괜찮다고 했잖아요.”

“이기면 더 강한 자가 올 건데? 그러다가 후작까지 오면 어떡하려고. 그는 대단한 기사야.”

“접해본 적 없는 무공을 쓰는 강자가 알아서 찾아오는 건 환영할 일이죠.”

“……괜찮다는 게 그런 이유였어?”

“역시 이유 중 하나인데요.”

“그놈의 이유는 대체 몇 개나 있는 거야!”

부들거리는 에스텔에게 자오가 부드럽게 말했다.

“마침 오는 것 같소.”

“망할. 숲 밖으로 나온 게 뼈저리게 후회되네.”

벌써 이렇게 되다니.

에스텔은 급히 몸을 돌려 자오가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했다.

휘황찬란한 갑옷과 무기를 자랑하며 거대한 군마를 탄 이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맥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병사들은 건너뛰고 바로 기사단이 오다니…….”

정광이 기뻐했다.

“저분들이 말로만 듣던 기사들이라는 거죠? 일이 아주 착착 진행되네요.”

“……너무 잘 진행돼서 탈이지. 가만. 에브뢰 후작의 기사단이 아닌 것 같은데. 갑옷 형식이 달라. 저게 어디 것이었더라?”

에스텔은 이맛살을 모으며 생각하다가 더 가까워진 기사단을 눈에 힘을 주고 바라봤다.

“분명 어디서 봤던 장식과 문양인데…….”

기사단을 훑어보던 에스텔의 눈길이 한 기사가 높이 들고 있는 화려한 깃발에 멈췄다.

그녀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기억났다!”

“누군데요?”

정광이 흥미롭다는 듯 묻는 말에 에스텔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휜펠 제국의 기사단. 그것도 황제 직속의 슈테른 기사단이야.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지.”

“황제 직속이라. 금의위 같은 건가. 보기엔 그럴듯하네요.”

정광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주 잘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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