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대공전기(暗黑大公傳奇) 2화
고귀한 존재
서걱서걱.
소운룡(小雲龍)의 예리한 날이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큼지막하게 잘랐다.
질겅질겅.
정광의 가지런한 치아가 그것을 열심히 씹었다.
우욱. 퉤!
쓸데없는 짓이었다.
정광은 억지로 씹던 고기를 뱉어내고 주위에 새까맣게 널린 괴물 사체를 허망한 눈으로 둘러보다가 한숨 쉬었다.
이렇게 많은 놈들 중에서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을 줄이야.
가죽을 말끔히 벗기고 피도 모조리 빼면 뭐 하나.
삶아도 보고 구워도 봤지만 답이 없었다.
괴물이 괜히 괴물인가?
먹지 못하니 괴물이지!
“망할. 괜히 헛심만 썼네요. 형편없는 맛도 문제지만 극독을 품은 놈들이 있어요.”
정광이 투덜대며 주즉시공(酒卽是空)으로 독기를 날려 버리자 진작 먹는 걸 포기하고 있던 자오가 빙그레 웃었다.
“역시 괴물은 괴물일 뿐이군요. 편견에 빠져 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자오의 말이 맞아요.”
정광은 고집을 꺾고 품속에서 물소 육포를 꺼내 몇 번 씹다가 감탄했다.
“이게 이렇게 맛있었나? 물소 육포도 먹을 만한 때가 있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저도 한 번…… 음. 과연! 오늘따라 유달리 말랑말랑하고 달짝지근하군요. 진미가 따로 없습니다.”
“이번엔 편견이 깨졌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본 채로 눈웃음 지으며 물소 육포를 씹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음식을 먹는 용도를 끝낸 자오의 입이 본연의 임무를 시작했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괴물들이 왜 이곳으로 몰려왔을까요?”
“아. 잘 먹었다. 글쎄요.”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무언가에 쫓겨 도주하느라 정신없는 것 같았습니다. 식칼이나 쇠스랑 등을 든 놈들도 있던 걸 보면 다른 마을을 휩쓸고 왔나 본데 그곳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본인의 배는 채웠겠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역천경을 움켜쥐고 괴물들의 피를 억지로 먹이던 정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있나요. 좋은 쪽으로 생각하죠.”
“이곳 사람들도 미리 알고 피신한 것 같으니 다른 마을 이들도 그랬을 거라 믿자는 말씀이군요.”
“네.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어찌 된 연유인지 알아보기라도 할 텐데 지금은 방법이…….”
정광은 말끝을 흐리고 고개를 돌리더니 아까 넘어온 야트막한 산을 응시했다.
“방법이 있네요.”
“네?”
“물어볼 사람이 있었다고요.”
“산에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산을 넘어오기 전에는 사람의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셨잖습니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네요. 어? 또 사라졌네.”
“헉! 단주에게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절대고수(絶代高手)가 이런 곳에 있다니!”
경악하는 자오와 달리 정광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가보죠.”
“네, 단주.”
그들은 산을 향해 신법을 펼쳤고 얼마 안 가 한 곳에 내려섰다.
‘분명 이쯤에서 나타났다가 없어졌는데.’
정광은 산중턱에 있는 으슥한 곳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시덤불이 우거진 부분을 보고 눈을 빛냈다.
‘이것 봐라?’
주변에 떠도는 기(氣)의 흐름이 부자연스럽지 않은 걸 보면 분명 진법은 아닌데.
이상했다.
자연스러운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정신을 집중해 보니 수상쩍을 만큼 과하지 않은가!
‘역(逆)에 또 역을 걸어서 자연스럽게 꾸민 건가? 재밌는 사술(邪術)이네.’
정광이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자오가 긴장한 얼굴로 가시덤불을 노려봤다.
“진법은 아닌 것 같은데 저곳에 뭔가 있습니까?”
“네.”
“어떤 것입니까?”
“사물을 특정한 방위에 맞춰 배치해서 혼란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연지기 자체를 강제로 움직여 공간을 자연스럽게 왜곡시키는 것이요.”
자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짧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대단한 술법이군요. 어떡하실 겁니까?”
“들어가야죠.”
“부수고 말입니까?”
정광이 씩 웃었다.
“아뇨. 오랜만에 재밌는 걸 만났는데 그럴 수야 있나요. 순리대로 풀어보죠.”
* * *
따뜻한 햇볕 아래 온갖 새들이 지저귀고 귀여운 토끼가 깡충거리는 평화로운 숲.
그 중앙에 있는 작은 오두막 앞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훤칠한 키에 긴 금발, 검은 로브를 걸친 그녀는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정면을 주시하다가 아름다운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여기를 발견한 걸까?’
보금자리로 들어오는 오솔길을 감춰주는 투명한 막 너머로 두 사내가 보였다.
‘맞는 것 같아. 아니야, 맞아.’
더없이 평범하게 생긴 중늙은이는 일단 제쳐두고. 눈이 저절로 커질 만큼 대단한 미청년이 투명한 막을 훑어보며 뭔가 계산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잠깐 나갔을 뿐인데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섬찟해서 바로 돌아왔는데도 정확히 쫓아와 마법까지 간파한 거야. 그게 아니곤 설명이 안 돼.’
수많은 몬스터들의 비명이 천지를 뒤흔들다가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조금만 더 참을 것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결국 이런 사달이 나다니.
‘이 궁벽한 곳까지 왜 온 거지? 나 때문일 리는 없고. 설마 스승님의 원수?’
그것 역시 아닐 것이다.
그녀의 스승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한둘이 아니라 해도 저들이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타의로 ‘해가 지는 땅’ 곳곳을 다녀본 그녀조차도 대륙 최동단에서야 딱 한 번 본 적 있는 인종, 동방에서 온 자들인데 무슨.
‘스승님께선 프로부뉴 왕국에서만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저들과 접점이 있을 리가.’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그다지 위로가 안 됐다.
‘어쨌든 위험한 자들이야.’
그 많은 몬스터들의 사체 한복판에 태연히 앉아 있던 모습이라니.
다른 사람은 없었으니 단둘이서 전부 학살한 것이리라.
그런 흉악한 자들이 좋은 마음으로 찾아왔을 리 있나.
스승님의 작품인 공간 왜곡 마법을 뚫지는 못할 테지만 언제 돌아갈지 모를 일.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식수는 충분하나 식량을 챙겨놔야 해. 채소를 뽑고 과일을 따서 말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응? 말도 안 돼!’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미청년의 가벼운 손짓에 따라 오솔길을 막고 있던 공간 왜곡 마법이 출렁이고 있었다.
‘마법을 이루고 있는 마나(Mana)를 저런 식으로 움직이는 게 가능해?’
그것으로 끝이면 다행이련만.
미청년은 한술 더 떴다.
‘저, 저건 또 뭐 하는 짓이야?’
마법이란 마나를 변형시켜서 만드는 것. 높은 수준의 마법일수록 각기 다른 성질의 마나들을 만들고 조합해서 펼치게 돼 있다.
공간 왜곡 마법이 바로 그 높은 수준의 마법에 속했는데, 미청년은 수많은 마나의 조각들에서 건드려도 괜찮은 틈을 알아냈는지 두 손을 쑥 밀어 넣어 비집고 안을 들여다보는 것 아닌가!
그리고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이, 인사?’
의외로 매너가 있었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장기를 펼칠 틈도 없는 급박한 상황. 재빨리 주문을 외워 복잡한 수식을 되새긴 뒤, 품고 있던 마나를 그 수식에 맞춰 가공하고 조합하여 발출했다.
‘이거나 먹어!’
화아아아악-
그녀의 양 손바닥에서 무시무시한 검은 화염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날아가 미청년의 얼굴을 강타했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오솔길을 집어삼켰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살짝 비틀거렸다.
상대가 강적임을 인지하고 전력을 다해 마력을 쏟아부은 대가였다.
‘스승님의 마법을 뚫은 젊은 녀석에게 큰 피해를 줬으니 한동안은 괜찮겠지.’
안심한 것도 잠시,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방심하면 안 돼. 놈이 얼마나 빨리 회복할지 모르는 일이잖아.’
정말 그랬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얼굴로 두 눈을 깜빡거렸다.
연기가 걷히고 투명한 막 안에 들어와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어, 어떻게!’
미청년이 살짝 빨개진 손바닥을 가볍게 터는 걸 보면 저걸로 막았다는 얘기인데 말이 되나?
‘잠깐. 중늙은이는? 밖에도 없는데?’
바로 알게 됐다.
스윽-
소름 끼칠 만큼 예리한 냉기가 목에 느껴졌다.
누군가 등 뒤에서 팔을 뻗어 그녀의 목에 비수를 들이밀고 있었다.
‘주, 중늙은이인가? 어느새 내 뒤로 온 거야?’
억지로 평정심을 찾으며 몰래 주문을 외우는데 살짝 떨어져 있던 비수가 목에 바짝 붙었다.
단순한 위협이 아닌 진득한 살기와 함께.
‘미친. 생긴 것답지 않게 눈치 한번 빠르네.’
그녀는 주문을 멈추는 건 물론이오, 머릿속에 떠올랐던 수식들도 지우고 정면에서 다가오는 미청년을 노려봤다.
“내게 뭘 원하는 거지?”
미청년이 웃으며 대답했지만 모르는 언어였다.
“프로부뉴어를 몰라? 그럼 대륙 공용어는?”
공용어로 물어도 마찬가지.
돌아오는 대답은 아까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미치겠네. 말이 통해야 살아날 구멍을 찾지.”
다행히 상대가 길을 열어줬다.
손짓 발짓이라는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정광.”
미청년이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개하자 그녀가 눈치채고 반색했다.
“아. 그게 네 이름이야? 발음하기 어렵지만 괜찮은 이름이네.”
미청년이 그녀를 가리키며 그녀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아. 그게 네 이름이야? 발음하기 어렵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러다간 끝이 없겠네.”
“이러다간 끝이 없겠네.”
“…….”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또박또박 말했다.
“에스텔.”
“에스텔? 에스텔, 에스텔.”
“……!”
그녀의 눈이 커졌다.
생소한 언어를 단 세 번 만에 완벽하게 발음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아까도 그랬어.’
듣자마자 거의 비슷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정광이라는 미청년이 손짓하자 그녀의 뒤에 있던 중늙은이가 비수를 거두고 입을 열었다.
“애스틸.”
“……에스텔.”
“웨스텔.”
“……에스텔.”
“에수퉬.”
“…….”
그래, 이게 정상이지.
중늙은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그나저나 악의는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자세히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좋아, 한번 해보자.’
에스텔은 땅바닥에 그림까지 열심히 그려가며 대화를 시도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그들이 별다른 목적 없이 천하를 주유하다가 이곳까지 왔다는 걸 알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지.’
게다가 잠시 이곳에 머물며 언어를 배우고 싶단다.
그 대가로 무엇을 줄 거냐고 물었더니 한쪽 입술을 끌어올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꼴이라니.
‘언제든 덤비라고?’
힘으로 누르겠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실력을 쌓게 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봤어.’
아무리 절호의 기회였어도 그렇지, 단 한 번에 전력을 쏟아내고 아무것도 못 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그렇게 하자. 손해 볼 건 없으니까.’
마법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녀를 이용해 배우려 하는 것이라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쫓아낼 힘도 없는데 그깟 게 뭐 대수라고.
에스텔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굳게 다짐했다.
‘스승님,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남을게요.’
* * *
에스텔은 정광과 자오의 도움을 받아 몬스터들의 사체를 해체하고 값나가는 것들은 몽땅 챙겼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지낼 통나무집이 완성되자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울화통을 동반하며.
“정광! 새들과 토끼들 좀 적당히 잡아먹어!”
“어떤 뜻인지 모르겠네요.”
“다 알아들었으면서 발뺌하기는!”
“아. 실전 경험을 하고 싶다는 뜻이죠? 오세요.”
“이익!”
다른 한 사람도 그녀의 속을 뒤집어놨다.
“에스텔, 날이 갈수록 언어를 가르쳐 주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소.”
“자오는 공부 좀 적당히 하세요!”
“나는 빨리 배워야 하오. 제발 도와주시오.”
“그렇게 배워서 뭐 하려고요? 오늘은 안 돼요, 내일 해요!”
“그럼 새벽에 시작합시다. 많이 부족한 공용어를 중점적으로.”
“아악!”
물론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에스텔은 실전 경험을 착실히 쌓았고 정광과 자오를 통해 많은 걸 생각하며 깨우치게 됐다.
잊고 있던 웃음도 많아졌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정광이 기지개를 켜고 통보했다.
“내일 떠날게요.”
“와! 드디어 가는구나. 속이 다 시원하네.”
에스텔은 손뼉까지 치며 기뻐하다가 정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경직됐다.
“스승님께서 삼 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죠? 혼자 심심하지 않았어요?”
“아주 약간.”
“그럼 세상으로 나가지 왜 여기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한곳에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쉽게 설명해 주시죠.”
“우리가 여기 처음 만난 날 기억하지?”
“물론이죠.”
“네가 이쪽 말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됐을 때 그때의 일에 대해 물어봤었잖아. 왜 괴물들이 그렇게 몰려왔었냐고.”
대륙 최강 휜펠 제국이 국력이 약한 프로부뉴 왕국으로 놈들을 밀어내서였다.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알려줬지.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이쪽 국경을 지키던 병사들이 퇴각하며 마을 주민들까지 챙겨서 간 것이라고.”
“몬스터들이 굶주려서 약해졌을 때까지 끌어들였다가 친다. 프로부뉴 왕국으로서는 최선의 전술이라고 하셨죠.”
“그래,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몬스터들이 휩쓸고 간 마을들은 쑥대밭이 돼. 그런데도 다시 돌아가 부서진 가옥을 고치고 엉망이 된 논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걸까?”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면 더 힘들어지니까요.”
“나도 비슷해. 밖은 위험해. 꼭 필요할 때만 제일 가까운 도시에 가는데 그것조차 두려워.”
“그 이유는요?”
에스텔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긴 금발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자 살짝 뾰족하게 솟은 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거 때문이지. 나는 하프 엘프거든.”
“처음 듣는 단어네. 귀가 그런 이상한 모양이라는 뜻이에요?”
“어휴. 너 같은 천재도 아직 배울 게 남았구나.”
에스텔은 하프 엘프가 무엇인지, 그 핏줄 때문에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 설명하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니다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스승님이 구해주셔서 여기에 오게 됐어. 그러고 보니 벌써 이십 년이 흘렀네.”
“그럼 지금 오십 살?”
“응.”
“이십 대이신 줄 알았는데 동안이시네요.”
“이제라도 알았으면 깍듯이 대해라.”
“아직 파릇파릇한 새싹이시면서 무슨.”
“뭐가 어째?”
정광은 피식 웃고 화제를 돌렸다.
“마법사가 겁이 왜 그렇게 많아요? 흔치 않은 직종일 텐데. 자신감을 가져요.”
“흥. 나는 마법사 따위가 아니야.”
“그럼 뭔데요?”
에스텔이 가슴을 활짝 펴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마녀. 마나와 학문을 효율적으로 접목해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고귀한 존재지.”
“고귀한 존재?”
“응.”
정광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 아닌 것 같은데.”
“……조금 오해를 받곤 하는데 편견이야. 사람들이 시기해서 불태우려 하는 거라니까.”
“하프 엘프여서가 아니라 마녀라는 직종이어서 여기 박혀 계시는 거 아니에요?”
에스텔이 펄쩍 뛰었다.
“아니거든! 얘가 생사람 잡네!”
“흐음.”
정광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마녀란 생긴 건 멀쩡한데 성격이 급하고 드세며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티를 못 내는 데다가 화려한 마법보다는 맨날 잡다한 것들을 솥에 집어넣고 끓여서 이상한 약물을 제조하고 저주를 퍼붓는 걸 장기로 삼는 고귀한 직종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