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2화
동상이몽(同床異夢)
모용수수가 자신을 소개하며 어떤 용무로 온 것인지 묻자 섬랑이 감탄했다.
“아!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팽가 분이라 해도 이상하더라니. 듣던 대로 기골이 장대하고 성품은 호쾌하시네요.”
“…….”
성품에 대한 소감은 그렇다 치고.
천하의 어느 여인이 체격이 건장하다는 얘기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까?
하지만 무림에서 여중호걸(女中豪傑)로 명성을 떨치는 모용수수는 달랐다.
안 그래도 넓은 어깨를 당당히 펴고 추궁했다.
“입에 발린 소리는 됐고. 본가에 왜 왔는지 말해라.”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고요.”
섬랑이 설명하려 하는데 다른 이가 나섰다.
“아주 대단한 일로 온 것이오. 모용 부인, 오랜만에 뵙소이다.”
모용수수가 포권하는 자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반갑다고 말하지 못해 미안하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금군(金君)께서 마인들과 함께 오셨소?”
백승무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천마신교 소교주가 황상을 배알하기를 원하오. 귀가가 다리를 놓아주셨으면 하오.”
“……!”
뜻밖의 말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팽가 무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혹세무민하는 사교의 대마두가 대명(大明) 황제를 만나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모용수수도 놀랐으나 곧 평정을 되찾고 손에 쥐고 있던 참마도(斬馬刀)를 등에 멨다.
“일단 들어오시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팽가 무인들이 길을 열었다.
모용수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더니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섬랑은 일행과 함께 그녀를 따라가다가 옆에서 걷는 백승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장강에서 이곳까지 말달리는 내내 다들 팽가, 팽가 하길래 문턱이 높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앞에서 가던 모용수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코웃음 쳤다.
“본가를 쉽게 보지 말아라. 너 때문이 아니라 백 대협을 믿어서다.”
섬랑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하하. 너무 탓하지 마세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호가호위(狐假虎威)해보겠어요.”
모용수수가 멈칫하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속이 좁지는 않군.”
“바다보다 넓죠.”
“오만하기 그지없고.”
“적절한 자신감인데요.”
모용수수는 고개를 미미하게 저으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십여 년 전 천하유람단주라는 신분으로 요녕성을 뒤집어엎었던 진옥룡이었다.
‘단주와 정말 비슷하구나.’
안도감이 드는 만큼 불안감이 커졌다.
‘무도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만 안심이 안 돼.’
이러한 염려를 하는 건 하북팽가주 팽강웅이 무림맹주가 되어 무림맹으로 떠난 뒤 그를 대리하여 가문을 관리하는 이도 마찬가지였다.
장대한 체구에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중년인이 널따란 집무실에 먼저 들어온 아내의 설명을 들은 뒤 손님들을 맞이했다.
“반갑네, 아우.”
백승무가 예를 취했다.
“잘 계셨소?”
“조금 전까진.”
중년인이 섬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본가에 오신 걸 환영하네. 팽강휘일세.”
“반갑습니다. 섬랑이에요.”
“인사는 이걸로 끝내고. 이런 말 하긴 뭐하네만 겁이 덜컥 나는군.”
“왜요?”
“단주가 떠올라서지. 하하.”
팽강휘는 호탕하게 웃고 백승무를 타박했다.
“피를 보지 않아 다행이긴 하나 아우답지 않아. 미리 서신이라도 보냈으면 아무런 소란도 없었을 텐데 왜 그랬나?”
백승무가 얼굴을 살짝 굳히며 사과했다.
“미안하오. 소란이 일어나길 바라서 그랬소.”
“이거 웃을 일이 아니군. 더 무서워졌어. 우형(愚兄)의 머리는 그리 좋지 않으니 쉽게 풀어주게.”
백승무의 음성이 낮아졌다.
“팽가 입장에서 천마신교 소교주는 느닷없이 찾아온 불청객이라고 소문이 퍼져야 하오.”
팽강휘의 눈썹이 꿈틀했다.
“황상을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놔달라며 그런 말을 하다니.”
“거듭 사과하겠소.”
“그걸로 될 일이 아닐세. 미리 거리를 두라는 얘기인데, 저 친구가 황궁에 들어가 무슨 사고라도 칠 예정인가?”
“솔직히 모르겠소.”
“그럼 왜 데려온 거야? 설마 끌려왔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리오.”
백승무는 악양루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덧붙였다.
“원래의 계획도 컸으나 천마신교까지 참여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시오.”
“……!”
굳이 상상할 필요도 없었다.
유례없이 거대한 사업이 되리라.
팽강휘와 모용수수가 경악하는데 섬랑이 한술 더 떴다.
“이왕 판을 벌인 김에 모용세가와 비마회(飛馬會)도 끼워주죠. 그럼 자연히 팽가도 참여하게 되고 황상의 주머니는 더 두둑해질걸요. 나쁘지 않은 제안이죠?”
“……!”
팽강휘가 입을 떡 벌렸다가 억지로 움직였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탈일세.”
“보기보다 통이 작으시네요.”
“상관없네. 이런 건에서는 신중해야 해.”
팽강휘는 고개를 돌려 백승무에게 물었다.
“저 친구의 말대로 하게 되면 입이 많아지는데 정족상단의 다른 이들과 사마련주가 받아들일 것 같은가?”
“무림맹도 관계된 일이오. 맹주께선 어떡하실 것 같소?”
팽강휘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확언했다.
“형님은 기꺼이 받아들이실 걸세.”
백승무도 단언했다.
“그들도 똑같소. 입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나 먹을 것은 더 커지잖소. 세세한 사항이야 차후 한자리에 모여 논의해야겠지만 제일 중요한 황상의 동의를 얻으려면 섬랑이 제안한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판을 키우려면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말이군.”
팽강휘가 백승무와 섬랑을 번갈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새 꽤 친해진 건가. 직책이 아니라 별호로 부르고.”
백승무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섬랑은 싱긋 웃었다.
“팽 대협도 편하게 그러시죠.”
“결정이 나면 그러겠네.”
“아직 마음을 못 정하셨어요?”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형님이 안 계시니 아버님께 여쭤야 해.”
“그럼 어서 모셔오셔야죠.”
팽강휘가 손을 저었다.
“정마대전에서 내 형님이 죽을 뻔하셨던 걸 모르나? 아버님이 자네를 보면 도부터 뽑으실 걸세.”
“저는 괜찮은데요.”
“……내가 안 괜찮네. 잘 설명해 드릴 테니 아우와 함께 밖에 나가서 기다리게.”
“흐음. 그럼 팽 대협의 개인 연무장에 가봐도 돼요?”
“거긴 왜?”
“그냥요.”
“볼 것도 없는 곳인데.”
“보는 사람에게 달린 일이죠.”
“뭐 좋을 대로 하게나.”
팽강휘가 모용수수에게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부인, 수고스럽지만 소교주를 안내해 주시겠소?”
한일자로 굳게 닫혀 있던 모용수수의 입이 부드럽게 휘었다.
“알겠습니다, 가가.”
섬랑이 두 눈을 부릅뜨고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백승무가 급히 전음을 보냈다.
-참게! 지금껏 잘해놓고 판을 뒤엎고 싶나?
-아니, 참는 것도 정도가 있죠! 팽 대협의 느끼한 눈빛 못 보셨어요? 모용 부인이 가가라고 부르는 거 못 들으셨고요?
-어허! 나는 마음이 편할 것 같은가? 피차일반일세. 어서 가세나.
-설마 백 대협도 남궁 부인과 그런 식으로…….
-아, 어서!
백승무가 섬랑을 억지로 잡아끌며 나오자 먼저 나와 있던 모용수수가 앞장섰다.
“저쪽이다, 소교주. 네 일행도 함께 가야 한다.”
“태상가주님의 눈에 띄지 말라는 말씀이네요. 그렇게 하죠.”
섬랑이 걸음을 옮기며 손짓하자 수하들과 이관휘가 따라왔다.
연규서가 섬랑의 뒤에 바짝 붙어 밝게 웃었다.
“사업 얘기는 잘되셨습니까?”
“아직. 기다려 봐야 해.”
“하하.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을 텐데 말입니다.”
단성오도 섬랑의 귀에 입을 대고 으르렁거렸다.
“여유는 다른 곳에서 부리십시오. 여기는 황궁이 코앞에 있는 무림맹주의 집입니다.”
일이 틀어지면 관군과 정파인들을 동시에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니 당연한 경고였다.
허나 섬랑의 생각은 남달랐다.
“오가기 편해서 좋네. 아! 다 온 것 같아.”
모용수수가 높은 담 사이에 있는 문을 활짝 열고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이다.”
“고마워요.”
섬랑은 연규서와 단성오가 말릴 틈도 없이 냉큼 들어가 연무장 중앙에 섰다.
다른 이들도 모두 들어가자 모용수수는 문 앞에 우뚝 서서 그들을 감시했다.
“드디어 왔네.”
섬랑이 감회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백승무가 의아해했다.
“와본 적이 있는가?”
“설마요.”
“……그런데 왜?”
섬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대인께서 무기명제자(無記名弟子)를 거두시고 여기에서 가르치셨다고 들었거든요.”
“수빈이를 말하는 것이군. 그래, 나도 그때 함께 있었지.”
“팽가에서 사업 제안을 수락하면 누가 대인의 진짜 제자인지 확인할 거예요.”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 있던 백승무가 대경실색했다.
“수, 수빈이를 만나 인사를 할 거라더니 비무를 할 셈이었나?”
“아뇨. 생사결(生死決)요.”
“……!”
백승무는 섬랑을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호승심을 자극할까 봐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바뀌었네.”
“말씀하세요.”
“팽가가 정말 대단한 건 역사상 최고의 성세를 누리는 지금보다 앞날이 더 밝아서야. 수빈이는 나이를 초월한 진짜 고수일세.”
섬랑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것참 잘됐네요. 마침 이쪽도 그렇거든요.”
중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하북팽가의 패검진협(覇劍眞俠)에 관한 얘기를 간간이 듣긴 했으나 대인의 사제인 백승무까지 극찬하자 더 믿음이 갔다.
‘그래, 그쯤은 되어야 이 먼 곳까지 온 보람이 있지.’
흥이 솟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스르릉-
신삼신기(新三神器) 중 당당히 수위를 차지하는 절멸(絶滅)이 서늘하게 웃으며 칙칙한 검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섬랑은 그것을 훑어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녕임가의 전대 태상가주가 죽기 직전에 벼려낸 신검을 가지고 싶었는데.’
오늘내일하는 철모(鐵母) 모서형은 물론이오, 임가 사람 전체가 대인에게 진상할 것이라며 길길이 날뛰는데 어쩔 수 있나.
오히려 준다고 해도 사양해야 할 판이었다.
섬랑은 입맛을 다시다가 아쉬움을 떨쳐냈다.
‘이놈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이녕임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명검이니 팽수빈이 어떤 병기를 지니고 있어도 처지지 않으리라.
‘결국 승패를 정하는 건 무공이란 얘기지.’
백승무가 진짜 고수라고 극찬하는 그녀는 대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고 얼마나 깨우쳤을까?
자오에게 들은 내용은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나는…….’
대인이 오래전에 명념반추대법(銘念反芻大法)을 펼쳐 뇌리에 새겨주고 스스로 샐 수 없을 만큼 궁리하며 수련해 왔던 무공들이 마치 대인이 귓가에 말해주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가만. 이거 뭔가 살짝 어색한데.’
주변 환경이 많이 바뀌어서 그런 건지 단순한 변덕 때문인지.
뒤로 미루지 말고 당장 확인해 봐야 했다.
‘수라혈검(修羅血劍) 제삼초 혈풍개세(血風蓋世).’
자세를 미세하게 조정해 가며 연달아 펼치다 보니 어느 순간 어색함이 사라졌다.
‘이것 봐라, 더 깔끔해졌잖아?’
내친김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또 다른 초식을 꺼냈다.
‘혈천마검(血天魔劍) 제일초 혈성화(血星火).’
어느새 중단전 옥당(玉堂)에서 기어 나와 제멋대로 날뛰려는 마혼(魔魂)을 무시하고 구결의 진의를 탐구하니 놈이 한 번만 봐주겠다는 듯 딱 적당한 기세로 움직였고 그 결과 검식이 자연스러워졌다.
‘재밌네.’
이어지는 초식들을 풀어내며 하나, 하나 되새겼다.
되새기면 되새길수록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게 됐다.
섬랑은 언제부터인가 무아지경에 빠졌다가 그 사실을 불쑥 자각하고 스스로 깨뜨렸다.
‘여기까지. 이 정도면 됐어.’
와장창-
팔방에서 그를 온전히 비춰주던 동경들이 산산이 조각났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속이 쓰리지는 않았다.
실력에 비해 지나친 깨달음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 이번에 깨우친 것을 제대로 녹여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서 있는 곳이 바뀌니 시각 또한 변한 건가.’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절멸을 검집에 넣는데 자신이 바뀐 만큼 변한 주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괜찮으세요?”
연무장은 엉망진창이 됐고 사람들은 멀찍이 물러나다 못해 담벼락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생소한 노인이 보였다.
입을 떡 벌리고 있던 노인은 실태를 깨닫고 헛기침했다.
“시끄러워서 와봤다. 검이 꽤 좋던데 혹시 철혈장에 들렀었느냐?”
“아뇨. 대인께서 두 번이나 탈탈 터셨다고 들었는데 저까지 가면 반기겠어요? 본교에도 훌륭한 야장(冶匠) 가문이 있으니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었고요.”
“자부심이 대단하군.”
“피차일반이죠.”
노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천마신교 소교주답지 않은 녀석이로다. 무아지경에 빠진 와중에도 사람은 피해 검격을 떨치다니, 여느 마두와 달라.”
“빗나간 건데요.”
“…….”
“농이에요, 제가 착하긴 하죠.”
섬랑은 노인과 그 옆에 서 있는 팽강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소개 안 하셔도 아드님과 너무 닮아서 알겠네요. 태상가주님이시죠?”
노인이 건장한 육신을 똑바로 펴고 대답했다.
“그래, 내가 팽수관이다.”
“인명피해는 없으니까 연무장이 조금 바뀐 건 그냥 넘어가죠.”
“욕 좀 해도 될까?”
“저한테 하는 것만 아니면요.”
“혼잣말이다. 빌어먹을, 새파랗게 어린놈이 뭐가 이렇게 강해? 소름 끼칠 정도잖아.”
팽수관이 진저리치다가 이를 드러내며 으스댔다.
“뭐 그래봐야 우리 수빈이한테는 안 되지만.”
섬랑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이죽거렸다.
“말이 나온 김에 부르시죠. 지금 확인시켜 드릴게요.”
“응? 없는데 어떻게?”
“네? 없다뇨?”
“무림맹에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몰랐다고?”
“거짓말!”
팽수관의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솟았다.
“이 녀석이! 내가 뭐 하러 널 속여? 수빈이만 간 줄 알아? 정파무림의 명숙들은 다 갔어. 당가에 들렸었지? 거기 독존이 있든?”
“…….”
그러고 보니 무림맹에 가 있다고 당오군이 말했었다.
“아니, 명숙들은 다 거기 가셨다면서 어르신은 왜 여기 계세요?”
“대를 이어 맹주가 됐으니 눈치 보이잖아. 알아서 빠져야지.”
“미치겠네. 그럼 이만.”
“잠깐!”
떠나려는 섬랑을 팽수관이 급히 잡았다.
딸이 이길 거라 믿었지만 상대는 간악한 마교의 소교주 아닌가?
만에 하나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만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수빈이는 행사가 끝나면 청해성으로 떠날 예정이니 이놈을 며칠만 잡아두면 돼.’
더구나 정족상단이 계획하고 섬랑이 살을 붙인 사업안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네 이놈! 대사를 눈앞에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천마신교가 중원에 아무런 뜻도 없다는 걸 황상에게 보증해야지!”
“사업에 참여하시려고요? 본교에 원한이 있으신 걸로 아는데.”
“내 그릇이 그렇게 작은 줄 아느냐?”
“제가 어떻게 알아요?”
“……크다. 너도 그래야 해. 필부면 모를까, 소교주씩이나 되는 녀석이 사사로운 승부욕으로 모든 걸 망치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아, 진짜.”
섬랑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갈등하다가 마음을 정했다.
빈손으로 총단에 돌아가면 잔소리쟁이 나민이 난리를 칠 터.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망할.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서라도 안 되겠네. 최소한 황궁 밥은 먹고 가야지.”
“……사업보다 그게 더 중요한 것 같구나.”
“그냥 가요?”
팽수관이 근엄하게 되물었다.
“다른 뜻을 품고 황상을 뵈려는 건 아니겠지?”
“하도 의심받다 보니 화낼 기운도 안 나네요. 원하시면 서류로 남겨 드리죠.”
섬랑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덧붙이는 말에 팽수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니 황궁에 사람을 보내세요. 지금 당장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