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의기투합(意氣投合)
순간이었지만 억겁 같은 시간이 흐른 뒤, 도도하게 일렁이던 검은 악귀가 사그라들고 세상의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처럼 어둡게 물들었던 섬랑의 눈이 원래의 벽안(碧眼)으로 돌아왔다.
마혼(魔魂)으로 그 지독한 진합만향(塵合萬響)을 남김없이 태워 버린 것이다.
섬랑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마혼 이 새끼 때문에 크게 망신당할 뻔했잖아.’
덩치가 커진 만큼 말도 안 들어서 한동안 봉인해 뒀다 풀었더니 어찌나 기세등등하게 날뛰는지 원, 회수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인마, 또 이렇게 나대면 혼난다. 알아들었어?’
다시 중단전 옥당(玉堂)에 틀어박힌 마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치 웃는 것처럼 가볍게 진동했다.
우우웅-
‘쯧쯧. 웃음이 나오냐? 하여간 철들려면 멀었다니까.’
섬랑은 속으로 혀를 차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놀라기는. 이런 때일수록 기품 있게 가야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우아하게 훔치고 칭찬했다.
“잘 먹었습니다. 상당히 괜찮은 독이네요.”
“…….”
다들 어이가 없어 섬랑을 바라보기만 했다.
당예지도 얼마나 놀랐는지, 겨울 호수처럼 고요했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진합만향을 배출하는 것도 아니고 소멸시킬 줄이야…….”
섬랑이 씩 웃었다.
“주인이 대접한 걸 손님이 뱉으면 쓰나요. 전부 소화해야죠.”
“차라리 뱉는 게 낫지.”
“네?”
“그토록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만든 것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줄은 몰랐네. 배출했으면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씀씀이가 너무 헤프지 않나?”
“…….”
섬랑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 신위를 보였는데도 독이 아깝다고 따지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마혼을 굴려서 꽤 멋진 모습이 나왔었을 텐데 어떻게 된 거야?’
혹시 별로였나 싶어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역시 그럴듯한 광경이었는지 당오군을 비롯한 정파 사람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고 눈은 긴장감을 품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왜?’
확인해 볼 수밖에.
당예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까 마신이 활활 타오르던 모습 못 보셨어요?”
“마신은 모르겠고. 마귀가 일렁이던 건 봤네.”
“감정 표현이 소극적이시네요. 어쨌든 그걸 목도하셨는데 왜 경계하지 않으시죠?”
당예지가 아름다운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자네가 대단한 마인인 건 알지만 단주가 택한 인재 아닌가? 남과 다른 면은 있을지언정 무도한 이는 아닐 텐데 뭐 하러?”
“……!”
섬랑은 입을 살짝 벌린 채 당예지를 응시하다가 손뼉을 짝 치며 기뻐했다.
“당 소저야말로 제 종자기(鍾子期)셨군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았는지, 그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무척 힘들었어요.”
“그건 못 믿겠네만 일단 넘어가세. 진합만향, 어땠나?”
“까다로우시기는. 다채롭던데요.”
“자세히 부탁하네. 자네 같은 귀인을 만나 품평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당예지의 눈에서 뜨거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사람을 향한 투지가 아닌, 독에 대한 열망이었다.
섬랑도 할 때는 하는 사내.
장난기를 깨끗이 지우고 성실히 설명했다.
“즉각적인 효과도 대단하지만 제일 감탄한 부분은 병기를 계속 바꿔가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연환기 같은 특성이에요. 처음에는 마비독(痲痹毒)인 줄 알았는데…….”
당예지는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빛냈다.
그러다 섬랑의 얘기가 끝나자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빤히 바라봤다.
섬랑이 한 걸음 물러났다.
“소저, 나이 차이를 생각하셔야죠. 가까운 유 대협으로 만족하시지 왜 저를…….”
“그런 의미로 본 게 아닐세.”
“……시원섭섭하네요. 그럼 왜 그러세요?”
“설명하는 걸 듣다 보니 독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러네.”
섬랑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정도야 상식이죠.”
“상식의 범주가 아니야.”
당예지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독을 겪어봐야, 아니, 독에 직접 당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지. 이는 곧 자네가 순탄하게 성장해 온 건 아니라는 얘기야. 마인들이 단주를 천신으로 떠받들고 단주가 후계를 정했다 들었는데 차기 교주가 될 소교주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자네의 입지가 불안해진 것인가?”
섬랑은 깔끔히 부인했다.
“아뇨. 탄탄한데요.”
“그런데 왜?”
“탄탄하니까 그 정도에서 끝난 거죠.”
섬랑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인을 모두 두려워하긴 하나 마인이 괜히 마인인가요. 가끔 머리가 돌아버려 객기를 부리는 자들이 나올 수밖에요.”
그리고 섬랑은 그런 마인들 중에서도 진정한 마인이라 불릴 만한 존재였다.
“근데 그것도 한때의 추억이지, 썰고 또 썰다 보니 최근에는 잠잠해졌어요.”
광기가 치솟은 마인도 감히 덤비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웬만하면 중원도 그러길 바랄게요.”
너희도 나를 넘볼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라.
섬랑의 오만한 경고에 당예지의 눈이 서늘한 빛을 뿌렸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 그지없군. 한 번만 더 겨뤄봐도 되겠는가?”
“시시한 것이면 곤란한데. 독 이름이 뭐예요?”
당예지가 품속에 손을 넣으며 대답했다.
“진합만향과는 궤가 다른 것이니 흡족할 걸세. 부동현자행(不動賢者行)이라 하네.”
“……!”
섬랑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안 움직이는 현인이라고?
뭐가?
“그, 그거 혹시 예전에 만드신 군자행(君子行)과 비슷한 거예요?”
“군자행까지 아는가?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군. 자네 말이 맞아. 그걸 극도로 개량한 것일세.”
“……!”
개량까지 했다고?
그것도 극도로?
섬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잠깐! 거기까지. 꺼내지 마세요.”
“갑자기 왜 그러나?”
“왜라뇨. 웬만하면 다투지 말자니까요. 아까 가주께도 말씀드렸는데 저는 평화주의자예요.”
섬랑은 당오군을 매섭게 노려보며 눈짓했다.
“맞죠?”
“……그런 말을 하긴 했지.”
“그럼 이만. 규서, 성오, 뭐 하는 거야? 어서 가야지. 시간은 돈보다 소중하다고.”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그깟 돈이야 또 벌면 되지요. 이왕 늦은 거, 원하시던 독을 실컷 맛보십시오.”
“현자가 되는 독이라는데 소교주께서 머리까지 좋아지시면 천하에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어서 드시지요.”
섬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세군, 말세야. 이런 것들을 수하라고 데리고 다니다니. 그냥 나 혼자 가마.”
당예지가 잡았다.
“벌써 갈 셈인가? 조금만 더 머무르게. 남은 독이 무궁무진해.”
당오군도 나섰다.
“할아버님께 처소에서 기다리시면 찾아뵙겠다고 약조하지 않았나? 다 같이 식사라도 하세.”
섬랑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사양했다.
“어제부터 속이 안 좋아서 독도 밥도 안 들어갈 것 같아요. 어르신께 는 인사만 드릴게요.”
“속이 불편하면 쉬다가 가는 게 나을 것 같네만.”
섬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상하게 잡으시네. 가주님, 뭘 원하세요?”
“하다못해 차라도 마시며 대화하고 싶어 그러네.”
“차는 마셨다 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솔직히 말씀하세요.”
당오군은 섬랑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어디로 갈 셈인가?”
“일단 장강으로 가서 다시 배를 타야죠.”
“그 후에는?”
“중원을 유람하려고요. 질문이 너무 많네요. 하나만 더 받을게요.”
당오군은 지체 없이 물었다.
“중원에 온 진짜 목적을 알고 싶네.”
“당가타에 온 이유와 같아요. 후계자로서 선인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거죠.”
“진심인가?”
“거짓이어도 판별할 수 없으시잖아요. 그냥 받아들이시죠.”
당오군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까 누이의 말을 듣고 다시 깨우쳐서 자네가 무도한 자가 아닌 것은 아나 다른 이들은 달라. 온갖 잡음이 끊이질 않을 걸세.”
“일을 크게 키우지는 않을 테니 믿어보시라니까요.”
“자네가 존경해 마지않는 대인도 항상 그렇게 말하곤 했지. 하지만 결국에는…….”
과거 정광과 함께 강호를 질주했던 이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사안에도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았던가.
유정풍의 마음속에서 의협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세 살 난 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것 같군. 아니지, 그러면 차라리 나아. 그 반대야.’
섬랑이 바다요, 그와 마주칠 이들이 어린아이였다.
‘누군가 동행해서 목적지에 미리 소식을 알리고 분란이 일어나는 걸 최대한 막아야 하는데.’
이 자리에서 그럴 만한 능력이 있고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 있는 건 유정풍 본인밖에 없었다.
‘망할. 일 년 만에 당 소저를 만났거늘, 바로 가야 한다니.’
내키지 않으나 별수 있나.
천하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유정풍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억지로 벌렸다.
“이보게, 소교주.”
“네?”
“중원 지리를 잘 아는가?”
“아뇨.”
“그것참 큰일이군. 듣자 하니 시간이 부족한 것 같은데 더 그렇게 되겠어. 언제 어디서 또 지체될지 모르지 않나?”
섬랑이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다.
“뭐 어쩔 수 있나요. 그러려니 해야죠.”
“다행히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네만.”
“뭔데요?”
유정풍은 가슴을 활짝 폈다.
“중원 방방곡곡을 아는 길잡이가 있으면 되네. 마침 이 자리에도 있는 상황이고.”
“맞다! 유 대협이 계셨지! 멀쩡한 몸으로 유리걸식(流離乞食)하시느라 안 가본 곳이 없으시죠?”
“크흠. 표현이 좀 그렇네만 비슷하네. 내 발자국이 안 찍힌 곳이 없지. 도와줄까?”
섬랑은 단칼에 거절했다.
“아뇨.”
유정풍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아서였다.
“내가 정보를 흘릴까 봐? 어차피 소문은 퍼지게 되어 있지 않나? 적당히, 꼭 필요한 것들만 흘릴 테니 안심하게. 길을 더 빨리 가는 게 이익 아닌가?”
“그런 거 때문에 사양하는 게 아닌데요.”
“그럼 왜?”
섬랑이 코를 쥐며 인상을 찡그렸다.
“직업을 생각하셔야죠. 더럽고 냄새나요.”
“……뭐?”
“당 소저가 계속 퇴짜 놓으신 것도 그것 때문이잖아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거지와 함께 다니고 싶으세요?”
“…….”
아니, 확실히 그렇긴 한데.
아니, 그래도 그렇지.
면전에서 대놓고 그딴 소리를!
유정풍의 심정을 느꼈는지 당예지도 섬랑을 나무랐다.
“소교주, 말이 너무 심하네.”
“뭐가요?”
“내가 유 대협의 청혼을 계속 거절하는 건 신분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일세.”
“……저기요, 심한 쪽은 당 소저 같은데요. 유 대협을 보세요, 우시잖아요.”
유정풍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울긴 누가 울어!”
“눈물이 고였는데. 왼쪽 가슴은 왜 움켜잡고 계시죠?”
“습관이다, 습관!”
“가슴이 아파서 그러시면서 무슨.”
섬랑은 정말 안쓰러운지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유정풍을 쳐다봤다.
“이제 그만 본분에 충실하세요. 당 가주께서는 가주가 되셨는데 아직도 후개시면 되나요.”
“…….”
너무 화가 나면 웃음이 나온다더니 과연.
유정풍은 허탈하게 웃으며 결심했다.
‘앞으로 이놈과 상종하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좋은 생각이 났다.
‘가만. 나만 이렇게 울화가 치밀면 억울하잖아. 저놈을 이대로 보낼 수도 없고. 그래, 사부를 우습게 여기는 그 녀석을 붙이면 되겠어.’
마침 올 때가 된 상황.
구겨진 얼굴을 억지로 풀고 자상하게 권했다.
“내가 싫으면 다른 이를 추천하겠네. 나만은 못하지만 중원 지리에 밝고 발도 넓은 편이니 도움이 될 걸세.”
“누군데요?”
“내 제자.”
“거지는 싫다니까요.”
유정풍의 관자놀이에서 핏줄이 툭 불거졌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
“보통 거지가 아니야.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아, 왔군.”
잠시 뒤.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은 당오군을 비롯한 정파 사람들에게 예를 취하고 유정풍에게 따졌다.
“사부, 급하다고 먼저 가버리시면 어떡합니까?”
“네 경공술이 형편없는 걸 탓해야지.”
“사부께 배운 덕분이지요.”
“하하. 그래, 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청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갑자기 왜 말로 그러십니까?”
“언제는 타구봉이라도 휘둘렀더냐?”
“그야 당연히…….”
“으하하하!”
유정풍은 껄껄 웃으며 섬랑에게 청년을 소개했다.
“내 제자인 이관휘일세. 강호에선 결룡(潔龍)이라 불리지.”
섬랑은 이관휘를 멍하니 보다가 탄복했다.
“무슨 거지가 이렇게 깨끗하죠?”
여느 거지에 비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정말 말쑥했다.
그래도 거지는 거지인지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으나 먼지 한 톨 안 묻어 있지 않은가!
“별호도 깨끗한 용이고. 세상은 참 넓네요. 나오길 잘했어요.”
섬랑은 호감을 표현했으나 이관휘는 적개심을 드러냈다.
“용모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그대가 섬랑이오?”
섬랑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합격.”
“……합격?”
“마교 운운 안 하니까 더 마음에 드네요. 이것도 인연인데 친하게 지내죠. 아니,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친하게 지내자.”
이관휘의 눈썹이 치솟았다.
“걷는 길이 다른데 무슨!”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말은 또 왜 놓는 것이오!”
섬랑은 대답하는 대신 유정풍에게 양해를 구했다.
“유 대협, 제자분 얼굴에 멍 좀 드는 건 괜찮죠?”
유정풍은 기꺼이 동의했다.
“그 나이 때는 싸우다가 의기투합(意氣投合)하는 거지. 후유증만 안 남으면 괜찮네.”
“사부! 대체 무슨 말씀을…… 헉!”
이관휘는 반발하다가 재빨리 용호풍운보(龍虎風雲步)를 밟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태.
섬랑의 주먹이 귀신처럼 따라와 시야를 덮어버렸다.
“앞으로 잘 부탁해.”
콰앙!
* * *
이관휘가 정신을 차렸을 때, 처음으로 보인 건 푸른 하늘이었다.
‘여, 여긴 어디…….’
무시무시한 주먹에 맞은 게 마지막 기억인데 외부에 있다니.
‘이럴 때가 아니야.’
벌떡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떡 벌렸다.
‘서, 설마 장강?’
뱃전에 기대어 빈둥거리고 있던 섬랑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일어났어? 풍경 좋지?”
그렇긴 한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왜 나를 납치한 것이오?”
“납치라니. 엄연한 동행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정신을 잃은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보시오!”
“그게 궁금했구나. 당 소저는 많이 아쉬워하시더라. 이해는 가. 천하의 그 어떤 고수가 당가의 독을 넙죽넙죽 먹고 품평까지 해줄까. 전대 독존께는 인사만 드리고 튀었어. 지팡이를 휘두르며 길길이 날뛰시던데 그 정도로 정정하시니 얼마나 다행이야. 마지막으로 마방에 들러 말들을 도로 팔았지. 시세를 미리 확인해서 손해는 안 봤으니 걱정 안 해도 돼.”
“…….”
점입가경이라더니.
이게 다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이관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 사부는? 그대가 해를 입힌 건 아니겠지?”
“얘가 큰일 날 소리를 하네. 그 친절한 분께 내가 왜 그래?”
“……지금 친절한 분이라 했소? 내 사부가?”
섬랑은 보는 이의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미소를 지었다.
허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으스스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유 대협이 너를 빌려주셨거든. 기억 못 하는 것 같으니 다시 한번 말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