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38화
훗날 그 순간이 왔을 때
간밤에 일어난 소란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유성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졌어도 난리가 났을 것이거늘, 역으로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다니. 이런 기사(奇事)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입방정을 떨었다.
“크으. 그런 장관을 봐서 그런지 술맛 한번 기막히군. 내 살다 살다 그런 황당한 일은 처음일세.”
“내 말이. 그냥 유성도 아니었어. 찬란한 금빛 유성이었다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중구난방으로 한마디씩 떠들어댔으나 그럴듯한 답안은 없었다.
그러자 눈치를 보고 있던 한 청년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향리객잔 지붕이 통째로 날아갔잖습니까? 그럴 만한 고수는 진혼밖에 없습니다. 그가 깨달음이라도 얻고 무공을 펼친 흔적일 겁니다.”
그나마 제일 사실에 근접한 추측이었으나.
대부분의 마인들은 혀를 차며 무시했다.
“쯧쯧. 요즘 것들이란. 그걸 무공으로 보다니. 수련은 안 하고 사람이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잡서만 읽는가 보군.”
“말세야 말세. 한창 구슬땀을 흘리며 야망을 불태워야 할 소중한 시기에 뭐 하는 짓인지 원.”
“그러게 말입니다. 거참. 저 때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큰일입니다.”
아무도 청년의 편을 들지 않았다.
청년이 기죽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단지 의견을 꺼냈을 뿐인데 너무들 하십니다. 왜 무공이 아니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가르침을 주십시오.”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노인이 으스대며 설명했다.
“나름 예의를 차리는 걸 보니 아예 못 쓸 성품은 아니구먼. 좋아, 기분이다. 무공은 무엇이고 왜 익혀야 하는가?”
청년은 재깍 대답했다.
“강해지기 위한 수단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을 죽이기 위해 수련하지요.”
“허허. 아주 맹탕은 아니었군. 올바른 마음가짐이야.”
청년을 깔보던 다른 마인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인이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자네 말이 옳아. 무공은 강해지기 위해 수련하고 남을 죽이는 용도로 쓰는 것이지. 우리가 간밤의 기사를 사람의 짓이라고 보지 않는 게 바로 그래서야.”
노인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내가 비록 대단한 재주는 없지만 살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고수를 보았네. 객잔의 지붕을 단번에 통째로 없앤다? 진짜 고수라면 가능해. 헌데 그 금빛 유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사람이 그런 것을 쏘아 올릴 수 있다고 믿는가?”
청년은 물러서지 않았다.
“바로 얼마 전에 비슷한 광경을 봤습니다. 교주께서 검을 높이 드시고 태양보다 찬란한 금빛 광채를 퍼뜨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대단한 신위였지.”
노인은 짧게 인정한 뒤 길게 부정했다.
“허나 그건 교주의 능력만으로 해낸 게 아니야. 그 검이 어디 보통 검이어야지. 이녕임가 전대 가주 역천마장(逆天魔匠)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벼려낸 신검 마혼(魔魂)이야. 진기를 불어넣으면 황금빛이 나는 기물이란 말일세.”
“그래도 교주가 그만큼 강하니까 그렇게 밝은 빛이…….”
“교주의 능력은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나?”
“…….”
노인은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청년에게 조곤조곤 설명했다.
“하지만 어제 본 빛은 교주의 것보다 휘황찬란했네. 그런 신검이 있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지. 이제 답이 나오지 않나?”
노인은 청년은 물론이오, 다른 사람들도 둘러보며 확언했다.
“어떤 무공을 익혀도, 아무리 고수라도 그럴 수는 없네. 그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어. 무공이 아닌 이적(異跡)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게야.”
마인들이 동의했다.
청년은 작게 한숨을 쉰 뒤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어르신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시는 겁니까?”
“꼭 그렇지는 않아. 짐작하는 건 있네.”
“역시! 무엇입니까?”
청년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으. 술기운을 빌어 말하지. 본교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얘기일세. 다들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게야.”
노인의 입에서 신화 한 토막이 흘러나왔다.
“언젠가 천하가 도탄에 빠지면 직접 내려와 본신을 성화(聖火)로 불태워 세상을 정화시킬 것이다. 나를 믿어야 금빛 성화에 타지 않고 살아남아 태평성세를 누리게 될 거다. 잘 들었나? 천신께서 남기셨다는 예언일세.”
“네? 천신이요?”
“그렇네.”
청년은 어이가 없어 두 눈을 끔벅거렸으나 다른 마인들은 얼굴을 굳혔다.
노인이 지적한 것처럼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했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요즘 세상에 누가 천신을 믿는다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신강이 피와 뇌수에 잠기겠지.”
신권(神權)이 아무리 퇴색됐어도 천마신교의 본질은 종교 집단.
본능적으로 품고 있던 두려움이 엄습했는지 마인들이 일제히 몸을 떨었다.
청년의 얼굴에도 경련이 일어났다.
다른 이들과 다른 이유로.
“이런 빌어먹을 영감탱이를 봤나. 얼마나 거창한 얘기를 하나 싶어 장단을 맞춰줬더니 뭐가 어째?”
“무어라?”
청년은 노인이 평가했던 것처럼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은 죽인다.
바로 비수를 꺼내 노인의 목에 꽂아 넣었다.
“천신은 개뿔! 죽어!”
“크윽!”
술에 취해 있던 노인은 암습을 막지 못하고 절명했다.
청년이 깊숙이 박았던 비수를 뽑으니 노인의 목에서 선혈이 콸콸 흘러나왔다.
“하여간 별것도 아닌 게 우쭐거리기나 하고 말이야.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청년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시체를 몇 번 걷어차고 떠났다.
마인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지켜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 그렇지. 요즘 젊은것들이란.”
“저 영감도 똑같아.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야 천신…… 망할. 그게 말이 돼?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향리객잔에 가서 직접 물어보세나.”
“밤에 갔다가 쫓겨났는데 또 가자고? 기억 안 나는가? 번을 서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난 데다 해도 뜨고 있으니 크게 경계하진 않을 거야.”
“으음. 일리가 있군. 한번 가보세나.”
향리객잔으로 우르르 몰려가 보니 그다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객잔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 기세가 보통 살벌한 게 아니었다.
“끄응. 이거야 원.”
와보자고 했던 마인은 입맛을 다시다가 안면이 있는 자를 발견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오. 이게 누구신가. 신강제일전주(新疆第一錢主) 독두(禿頭) 아닌가?”
독두의 민머리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던 거무튀튀한 철퇴도 빛났다.
햇살을 쪼갤 기세로 떨어져 내려 가까이 다가온 마인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직!
마인은 머리통이 박살 나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독두는 시체에 침을 뱉고 으르렁거렸다.
“얼마나 많이 봤다고 친한 척을 하며 망발을 지껄이느냐! 나는 금두(金頭)다!”
죽은 마인과 함께 온 자들은 독두의 기분을 맞춰줬다.
“별호를 바꿔 부르다니. 말로 상처를 줄 땐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잘 죽였네, 금두.”
“그런데 간밤에 있었던 일 말일세. 대체 어찌 된 건가? 누가 그런 이적을 행했는지 좀 알려주게나.”
독두는 입을 꾹 다물고 손을 내저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마인들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체면을 세워줬으면 돌아오는 게 있어야지. 그냥 가라고?”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 하는군. 한번 해볼까? 응?”
다들 병기를 손에 쥐고 살기를 끌어 올리는 순간.
뒤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기운차시네요. 무슨 일로 싸우시려는 거예요?”
“그야 당연히…… 헉!”
마인들은 흥분한 와중에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챘다.
급히 신형을 돌려 보니 예상했던 인물이 있었다.
“지, 진혼?”
“네.”
“자, 자네가 왜 다른 곳에서 오는 건가?”
“다른 곳에서 잤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마인들이 이유를 물으려 했으나 정광이 더 빨랐다.
“제가 살짝 예민한 상태거든요. 조용히 밥 먹고 싶으니 자리를 피해주시겠어요?”
마인들은 정광을 편히 생각하면서도 어려워했다.
물론 지금 같은 경우엔 후자였다.
고수 중의 고수요,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보다 적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악귀가 자신이 예민한 상태라고 경고하는데 누가 감히 비위를 거스를까.
‘아차! 몇 시진 후면 교주와 생사투를 벌이지. 당연히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
‘후우우. 바로 손을 쓰지 않고 말해줘서 목숨을 건졌어. 역시 여느 젊은 녀석들과는 다른 인재야.’
마인들은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히 포권했다.
“무운을 비네.”
“고마워요. 이따 봬요.”
어차피 총단에서 다시 볼 사이였다.
마인들은 호기심을 억누르며 사라졌고 정광은 번을 서는 사람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고생이 많으세요. 독두는 아침부터 피를 보셨네요.”
독두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마음이 가벼워지네요.”
독두는 억지로 크게 웃었다.
“하하. 중요한 승부가 코앞인데 어서 들어가셔서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네? 아까 예민한 상태라고 하셨잖습니까?”
“아, 그거. 침상이 조금 딱딱했거든요. 결린 데는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
“이제 그만 가서 쉬세요.”
독두는 살짝 벌렸던 입을 닫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소인은 대인의 승리를 확신합니다. 총단에서 뵙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럼 이만.”
독두 무리는 떠나고 정광은 향리객잔에 들어갔다.
벌써 탁자 위에 갖가지 요리가 그득히 올라와 있었다.
정광은 사람들에게 인사한 뒤 의자에 앉았다.
“다들 낭만을 만끽하셔서 그런가. 안색이 좋네요.”
혼자 멀쩡한 곳에서 자고 온 주제에 이딴 말을 하다니.
허나 아무도 불편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다소 쌀쌀하긴 했으나 밤하늘을 이불로 덮고 별을 세다가 잠드는 게 의외로 나쁘지 않았던 터라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광도 씩 웃으며 권했다.
“드시죠.”
그 말을 신호로 모두 식사를 시작했다.
정광이 배를 든든히 채우고 젓가락을 내려놓자 먼저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던 나민이 조용히 부탁했다.
“잠깐 독대를 청해도 되겠습니까?”
“무섭게 왜 그래요?”
“진지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광은 나민을 빤히 보다가 승낙했다.
“그러죠. 다른 분들은 떠날 채비를 하고 계세요.”
두 사람은 정광의 방으로 갔다.
나민은 의자에 앉자마자 현 상황을 얘기했다.
“날이 밝았으니 금방 소문이 퍼질 겁니다.”
“객잔 지붕이 날아간 거요?”
“정확히 말하면 찬란한 금광이지요.”
“그게 뭐 대수라고.”
나민의 기준으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소문이 돌다 보면 걷잡을 수 없이 살이 붙을 겁니다. 진혼의 무위에 탄복하는 걸 넘어 천신의 예언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겠지요.”
“그래서요?”
“결국 천신이 진혼으로 현신했다고 믿는 이들이 나올 겁니다.”
“그건 너무 심한데. 나 소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나민은 정광을 뚫어져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다른 교도들도 대부분 그렇지요. 허나 진혼은……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납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정광은 빙글빙글 웃으며 농을 던졌다.
“제가 교를 꿀꺽 삼킬까 봐요?”
“그래 주시면 오히려 좋지요. 지겹더라도 섬랑이 장성할 때까지만 어떻게든 버텨주십시오.”
정광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곤란한데.”
“교주를 꺾으신 뒤 어떡하실 계획입니까? 바로 훌쩍 떠나실 겁니까?”
“저런. 너무 앞서가시네요. 제가 지면요?”
“스승님께서 진혼을 믿으시니 저 역시 믿습니다.”
“어라? 사제관계를 맺었어요? 축하해요.”
나민은 짧게 감사를 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는 당신이 곤륜의 진옥룡이라고 믿습니다.”
정광의 눈이 살짝 커졌다.
“신선하네요.”
“당신이 나타난 시기도 그렇고 동시대에 당신 같은 성품을 지닌 천재가 둘이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마공과 정공을 어떻게 동시에 익혀요?”
“사람이 어제와 같은 이적을 행할 수도 없는데 그 정도 일이 무슨 대수입니까?”
나민은 정광이 대꾸할 새도 없이 계속 파고들었다.
“또한 당신은 전대 교주의 후인이 아니라 전대 교주입니다. 그러지 않고선 그 놀라운 신위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 스승께서 말씀은 편하게 하시지만 당신을 지극히 공경하고 다른 분들 역시 내색은 안 하나 조심스럽게 대하는 게 또 다른 증거입니다.”
“점입가경이네요.”
“천신의 현신인 것보다는 훨씬 신빙성이 있지요. 당신을 만난 이래로 모든 상식이 무너지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근데 본론은 언제 나오죠?”
“지금부터입니다.”
나민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음성은 낮게 가라앉았다.
“당신이 아무리 위대해도 성질이 판이한 두 무리를 완전히 품을 수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그러려고 하면 당신을 존경하며 따르던 이들도 등을 돌리고 칼을 갈 겁니다. 지금이 아니면 물을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서 이러는 것이니 제발 대답해 주십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마(魔)를 택하실 겁니까, 정(正)을 택하실 겁니까?”
정과 마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훗날 그 순간이 왔을 때 어느 쪽에 설 것인지 묻는 말이었다.
나민은 정광의 입술을 주시하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당신이라는 존재는 지금도 그렇지만 교주를 꺾고 나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당신이 본교를 저버리면 본교는 자연스레 붕괴될 것입니다. 곤륜을 그 무엇보다 위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신의 진짜 뿌리는 본교! 온전히 받아들이십시오!’
나민의 긴 바람과 달리.
정광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때 봐서요.”
“……네?”
“제가 정말 그런 존재라면. 그때그때 상황을 보고 마음에 안 드는 쪽을 두들겨 패면 되죠. 오늘 총단으로 가서 하려는 것처럼.”
나민이 반발했다.
“진혼, 그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제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그 둘이 저를 택해야 해요.”
“……!”
“똑똑하시니 이해하셨을 거라 믿어요.”
이렇게 오만할 수 있나.
하지만 그 오만함마저 자연스러웠다.
나민이 할 말이 없어 입만 벙긋거리는 사이, 정광은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지붕이 없어서 그대로 내리쬐는 햇살이 정광을 밝게 비췄다.
“슬슬 가죠.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