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494화 (493/569)

2부 223화

조금 아깝긴 한데

‘지존!’

곽상은 도저히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자 멍한 얼굴로 청년을 올려다봤다.

분명 이십여 년 전에 귀천한 존재가 돌아와 옛 얘기들을 늘어놓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그렇다고 마냥 부정할 순 없었다.

그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얘기들을 알고 말할까?

‘용모와 목소리가 다른 건 문제가 아니야.’

그깟 것들이야 역용술과 변성술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알아봤듯이 실제로 역용하고 있었고.

하지만 언행만큼은 자연스레 배어 나올 수밖에 없는 법.

곽상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자꾸 눈길이 갔던 것이구나. 그러면서도 불가능한 일이라 본능적으로 부정했던 것이고.’

청년이 자신의 신분을 한 번 더 증명했다.

“네?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요?”

“…….”

과연.

입도 벙긋 안 했는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꾸미는 걸 보니 확실했다.

“바쁜데. 어쩔 수 없죠. 다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청년은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곽상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빈 예배실로 질질 끌고 들어가 바닥에 대충 던졌다.

쿵!

“윽.”

“엄살은. 일어나.”

곽상은 재빨리 신형을 일으켰다가 바로 부복했다.

“만세…….”

“만세는 개뿔. 그 백분지 일 정도밖에 못 사는 거 빤히 봐놓고 놀리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사죄는 사죄고.

곽상은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다.

지존은 귀천했던 게 맞다.

그 후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나 부활한 것이다.

마치 그 생각을 읽은 듯 청년이 주의를 줬다.

“어떻게 다시 살아난 것인지는 묻지 마. 나도 모르니까. 내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

“맞습니다. 지존께선 그런 귀찮은 일을 하실 만큼 부지런한 분이 아니십니다.”

“이걸 칭찬해야 하나 패야 하나.”

청년은 작게 탄식한 뒤 말을 이었다.

“아까 바쁘다고 했는데 빈말이 아니야. 잘 듣고 빨리 대답해.”

“네, 지존.”

“내 명에 따라.”

“……지존. 일어서도 되겠습니까?”

“애초에 그러라 했는데 네놈이 엎어졌잖아.”

“감사합니다.”

곽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무겁게 물었다.

“현 교주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응. 마뇌도.”

“다시 교주가 되려고 그러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당연하지. 내가 미쳤냐?”

“그럼 왜 그러십니까? 교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여전하네. 교를 위한 일이어야 따르겠다? 아니면 죽음을 택하고?”

“죄송합니다. 지존께서 교주셨으면 목숨을 걸고 명을 받들겠지만…….”

“죄송한 걸 왜 하냐고. 그러니까 승진을 못 하지.”

정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피식 웃었다.

“하긴.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지.”

“지존께선 많이 변하셨습니다. 진체를 숨기기 위해서 그러셨겠지만 존대까지 하시고 말입니다.”

“나라고 다를까. 쉽게 변한 게 아니야.”

정광의 머릿속에 검소하다 못해 궁핍하게 살며 도경(道經)에 세뇌당한 아픈 세월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곽상이 경악했다.

“대, 대체 그간 어떤 간난고초(艱難苦楚)를 겪으셨길래 지존께서 그렇게…….”

“그만. 더 생각하기 괴로우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자. 연가 놈과 마뇌가 아래 애들에게 쓸데없이 피를 흘리게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새로운 초석을 다지고 떠날 거야.”

“교주가 곤륜을 치는 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허나 지존께서도 귀천하시기 전까지 일곱 번이나…….”

정광이 황당해했다.

“내가 쳤냐? 아랫것들이 하도 보채서 살짝 풀어준 거지. 그리고 선을 지키게 했잖아.”

“그렇긴 하지요. 더구나 지금은 곤륜산에 정파무림이 모여 있다시피 하니 피해가 클 겁니다.”

“그게 다가 아니야. 마령강시를 왜 복원했겠어? 밀약(密約) 알아?”

“처음 듣습니다.”

“연가 놈과 마뇌가 천하를 집어삼키겠다고 음모를 꾸몄었어. 전부 망했지만.”

“그런…….”

“하나 더 있지.”

정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뇌야 원래 탐욕스러운 놈이지만 연가 그놈도 눈빛을 보니 또 다른 욕심을 품었더라.”

“…….”

“왜? 안 믿겨?”

곽상의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파였다.

“아닙니다. 지존께서 아무리 가벼우셔도 이런 큰일을 거짓으로 말씀하실 분은 아니지요.”

“그냥 패 죽이고 차선책을 택할까.”

정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해온 게 아깝네. 할 거야 말 거야? 대답은 듣고 죽여주마.”

절체절명의 순간.

곽상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왜 그렇게 참으시면서까지 소인을 부리려고 하십니까?”

정광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필요하니까 그러지. 교에 너 같은 놈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했었잖아.”

“……!”

곽상의 눈이 커졌다.

“이해가 안 가? 네가 교를 위한 일이라 판단하고 움직이면 다른 녀석들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너를 이용해 명분을 쌓고 동조하는 세력을 만든다. 이게 내 계획이야.”

“…….”

곽상은 잠시 침묵하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정녕 그렇게 믿으십니까?”

“당연하지. 왜? 불만이냐?”

그럴 리가 있나.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라.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법.

무인도 그랬는데 곽상은 훌륭한 무인이었다.

“소인이 무엇을 하면 됩니까?”

“호교당의 임무가 뭐야?”

“총단을 전력으로 보호하는 겁니다.”

“제일 주의를 기울여 지켜야 하는 곳은?”

세월이 흐르며 많이 퇴색된 건 사실이나 천마신교는 종교 집단.

답은 당연했다.

“신전입니다.”

“그래, 여길 지켜.”

곽상의 눈썹이 꿈틀했다.

“교주가 신전을 칠 거라 보시는 겁니까?”

“연가 놈보단 마뇌겠지. 내 일행이 있으니 그럴 거야.”

곽상은 미간을 모았다가 풀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존께서 돌아오셨음을 알리면 쉽게 일을 끝내실 수 있을 텐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정광이 코웃음 쳤다.

“그걸 알면 다들 좋아할 것 같아? 칠대가문과 총단 애들 중에서 최소 절반은 안 그럴걸. 숨통이 트여서 편하게 살다가 또 종노릇하고 싶겠냐고.”

“……지존의 말씀이 옳습니다.”

연휘준과 마뇌는 물론이오, 악에 받쳐서 저항하는 무리가 분명히 나올 터.

놈들을 진압하려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곽상은 두 눈을 빛냈다.

마음과 머리 모두 지존을 따르라 했다.

“호교당 삼향주 곽상, 지존의 명을 목숨을 바쳐…….”

“뭐? 기껏 오래 살게 했더니 뭐가 어째? 정신 안 차릴래?”

“……!”

그래.

그때도 그랬었다.

곽상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엔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버티겠습니다.”

정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만 가자. 다른 애들 앞에선 말 놓고.”

“존명.”

정광은 예배실 밖으로 나가 일행에게 곽상을 소개했다.

“호교당 삼향주님 아시죠? 여러분을 돕기로 하셨어요. 따돌리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곽상을 주시했다.

특히 정광의 진체를 모르는 고이륵단가 무인들은 더했다.

‘저 꼬장꼬장한 영감이 교주를 배신하고 우리를 돕는다고?’

‘역시 진혼이구나!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걸까?’

‘가만. 그러기엔 이곳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 좀 그런데…….’

사람들은 일제히 아극소연가주 연혁소를 바라봤다.

곽상은 그의 장남 연규종을 악명 높은 연옥(煉獄)에 처박아 버린 장본인 아닌가?

쉽게 말해 원수.

연혁소가 그런 자와 얌전히 손을 잡을 리 없을 거라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아! 아극소연가주는 부친인 교주를 배반했지!’

‘더구나 진혼이 진행하는 일이야. 그런 문제를 간과했을 리 없지.’

생각대로였다.

연혁소는 잠시 불편한 표정을 짓다가 담담히 말했다.

“삼향주, 지난 일은 잠시 제쳐두겠소.”

곽상도 태연히 대꾸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겠소, 가주. 일이 끝나면 그때 따지시오.”

정광이 미소 지으며 손뼉을 쳤다.

“벌써 이렇게 살갑게 지내시니 보기 좋네요.”

“…….”

어디가?

정광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할 말을 했다.

“삼향주님, 나 소저 지시에 따르셔야 해요.”

나민이 곽상을 뚫어져라 보며 두 손을 모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곽상도 답례하며 진심으로 말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오.”

정광은 신전 문을 열며 작별 인사를 했다.

“다 됐네. 그럼 모두 수고하세요.”

사람들이 분분히 말을 던졌으나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로 잠행술을 펼쳐 은밀하게 이동했다.

목적지는 천마궁(天魔宮)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 * *

천마신교주 연휘준은 시비들의 시중을 받아 의관을 정제하고 침소에서 나왔다.

높은 담벼락 때문에 천마궁 바깥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분노에 찬 목소리와 하늘로 치솟는 매캐한 연기로 미루어 보아 상황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연휘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총단에 불을 지르다니. 겪으면 겪을수록 놀라운 놈이군.’

침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적혼대주(赤魂隊主)가 급히 보고하려 했으나 한 손을 살짝 들어 제지하고 천마전(天魔殿)으로 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뇌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앉아 있다가 재빨리 부복했다.

“만세만세…….”

“그런 걸 외칠 때가 아니지. 고개를 들고 일어서게.”

연휘준은 마뇌가 명을 따르자 나직이 힐난했다.

“놈의 장단에 맞춰주는 게 아니라 넘어갔군.”

마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죄송합니다, 교주.”

“실망이야. 이런 수를 쓸 거라 예상 못 했나?”

마뇌는 이를 지그시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전대 교주도 총단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는데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거란 걸 어떻게 내다보겠는가?

“솔직히 그렇습니다. 범상치 않은 놈이란 건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미쳤을 줄은 몰랐습니다. 속하를 벌해주십시오.”

“본좌가 실망한 건 다른 이유가 더 커. 진작에 나가서 진두지휘해도 모자랄 판국에 왜 아직도 여기에 있나?”

마뇌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교주를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해야 할 얘기는 어제 다 한 것으로 아는데. 본좌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

마뇌는 솟구치는 분노를 억지로 눌렀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으니 네가 알아서 하되 절대 실패하지 말라고 다시 강조하는 의미여서였다.

‘사갈(蛇蝎)보다 음험한 놈 같으니. 벽을 깨더니 욕심이 생긴 것이냐?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 오랜 시간 동안 충성을 다한 내게 이딴 식으로 물을 먹여?’

향리객잔에는 벌써 토로번손가주 손재등을 보냈다.

다음은 신전에 있는 놈들을 처리할 차례.

허나 진혼 그 악귀가 신전을 방패 삼아 움직이고 있기에 원래 계획보다 일을 크게 벌일 수밖에 없어 양해를 구하려고 했거늘, 그것조차 안 들으려고 할 줄이야!

오기가 치솟았다.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천요문주(天妖門主)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게 곧 끝난다.

그 대법(大法)이 성공하면 영생까진 아니더라도 수명을 많이 늘리게 될 터.

‘그때까지 진혼 패거리를 모두 죽이고 사태를 정리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뇌는 공손히 부복했다.

허나 바닥을 향하고 있는 그의 눈은 짙은 원망과 뜨거운 분노로 번들거렸다.

“교주,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속하가 하는 모든 일은 교주를 향한 충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혹여나 교도들에게서 안 좋은 얘기가 나와도 얼마 안 가 깨끗이 정리할 테니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목소리만 들으면 충심이 절절 흐르는 간곡한 청.

연휘준의 음성도 자애로웠다.

허나 마뇌가 볼 수 없는 그의 얼굴엔 조소가 맺혀 있었다.

“물론이지. 본좌는 자네를 믿어. 이제 되었나?”

“……네, 교주.”

“그럼 그만 나가보게. 무운을 빌며 기다리겠네.”

“존명!”

마뇌가 벌떡 일어나 나갔다.

연휘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코웃음 쳤다.

‘머리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는 군사까지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군.’

무림은 결국 힘이 지배하는 곳.

모사(謀士)의 자리는 잘해봐야 이인자일 수밖에 없다.

‘그간 천요문(天妖門) 놈들을 끌어들여 헛된 꿈을 꾸는 걸 방관해 왔으나 상황이 바뀌었어.’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던 벽을 깨니 욕심이 생겼다.

수명만 더 늘리면 몇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했다.

‘그렇게만 되면…….’

평생 열등감에 빠져 살게 했던 ‘그’를 능가할 수 있을지도.

그의 후인을 죽이고 결국엔 생전의 그도 제친다.

그야말로 진정한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이 되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전신이 짜릿해졌다.

연휘준의 입가에 굵은 미소가 걸렸다.

‘진혼, 본좌를 실망시키지 마라. 약조한 게 있어서 마뇌에게 손을 대기는 싫으니 네가 죽이고 본좌 앞에 서라.’

* * *

정광은 남의 청을 쉽게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총단 무인들이 당장 튀어나와 목을 내밀라고 소리 지르며 사방을 헤집었으나 귀신 같은 잠행술로 비켜 지나가며 적당한 곳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났다.

‘좋아, 여기가 딱이네.’

천마신교 최강 무력대인 사흉대(四凶隊). 그중에서도 교활하고 야비한 놈들이 모인 도철대(饕餮隊)가 쓰는 전각이었다.

‘아주 텅텅 비었구나.’

천마궁을 지키는 인원 중에 정예 중의 정예인 사흉대가 없을 리 있나.

최소한의 인원만 빼놓고 박박 긁어갔는지 느껴지는 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지붕 위로 올라가 등에 메고 있던 길쭉한 보자기를 풀었다.

삼척(三尺)쯤 되는 길이에 검붉게 빛나는 활과 기름을 먹인 천을 묶은 화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라 반갑네.’

왼손으로 비룡(飛龍)을 쥐고 오른손으론 화섭자(火攝子)를 꺼냈다.

화살에 불을 붙이고 활시위에 메긴 뒤 정면을 바라봤다.

화시(火矢)가 내려앉기 좋은 거리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잘 아는 놈이 마인들을 이끌고 나와 신전 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한동안 지켜보다가 다시 목표물로 시선을 돌렸다.

‘흠. 조금 아깝긴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새 사람은 새집에서 살아야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추억들을 감상하다가 금방 지루해져서 끊고 시위를 놓았다.

화시가 날아가 높은 담벼락 안쪽에 떨어졌다.

거친 외침과 함께 병기로 쳐내는 소리가 들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하나만 주면 정 없지.’

정광은 신궁(神弓)!

오른손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이며 화살에 불을 붙이고 활시위를 당겼다 놓는 걸 반복했다.

수많은 화시들이 하늘을 시뻘겋게 뒤덮으며 날아가는데 그것들을 어찌 다 쳐내겠는가?

바람도 신이 났는지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결국 불길과 연기가 솟구치며 비명 같은 고함이 울려 퍼졌다.

“부, 불이야! 천마궁에 불이 났다! 천마전에도 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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