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22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도올대주(檮杌隊主) 곽상은 이를 악물었다.
지독한 피로감과 전신의 상처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피는 둘째 문제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혈도를 눌러 지혈하는 이 짧은 순간에도 수하들이 하나둘 쓰러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지독한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적에게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내 대에 이르러 도올대의 명성에 먹칠을 하다니!’
서역과 중원을 잇는 교역로 중 하나인 천산북로(天山北路)에서 천마신교의 영역인 신강 바로 옆에 있는 알마아타.
이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니 즉시 이동해서 기존 세력을 도우라는 명을 받았을 때만 해도 쉽게 생각했다.
허나 수하들을 이끌고 달려와 전황을 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한 반란이라 치기엔 적들의 수가 너무 많을뿐더러 제대로 된 궁기병(弓騎兵)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외세를, 그것도 피슈페크 놈들을 끌어들일 줄이야.’
피슈페크도 교역로에 위치해 있었으나 주도로(主道路)인 알마아타와 달리 통행량이 적은 종도로(從道路)였다.
그간 상인들로 넘치는 알마아타를 보며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반란 세력의 요청을 받자마자 신이 나서 달려온 게 분명했다.
‘이놈들을 전멸시키거나 몰아내는 건 힘들어.’
수많은 궁기병들에게 포위되어 화살비를 맞고 있는 판국에 무공이 무슨 소용인가.
이대로 힘만 빼다가 탈진해서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리려고 하는 순간.
화살비가 뚝 그치더니 거대한 말을 탄 색목인이 앞으로 나와 유창한 한어로 소리쳤다.
“위대한 천마신교의 마인이여! 헛된 피를 흘리는 걸 멈추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싶소! 잠시만이라도 시간을 내주시오!”
곽상은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해라?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는 귀교(貴敎)와 반목하고 싶지 않소이다! 그럴 힘도 없을뿐더러 마음 또한 없소! 귀교와 협력하여 번영하고 싶으니 그만 싸우고 좋은 연을 맺읍시다!”
곽상은 색목인을 노려보다가 외쳤다.
“내 대원들을 이렇게 해쳐놓고 잘도 떠드는구나! 그렇게 쉽게 넘어갈 상황이라 믿는 것이냐?”
색목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점은 미안하오. 귀하들이 너무 거세게 달려들어서 어쩔 수 없었소이다. 허나 냉정히 판단해 주시오. 귀교보다 우리 측의 피해가 막대하지 않소?”
그의 말대로였다.
피슈페크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궁기병이라는 이점도 갖고 있었으나 상대는 천마신교 최강 무력대 중 하나인 도올대 아닌가?
도올대의 사상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마(人馬)가 숨을 거둔 상태.
색목인이 이렇게 항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더구나 귀교는 신강 밖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왔잖소? 그래서 누구인지 모른 채 싸웠던 것이오! 허나 알게 되자마자 이렇게 거리를 벌렸소! 소강상태로 이끌어 활에서 손을 뗐고! 이제 모든 연유를 설명했으니 하나만 청하겠소!”
색목인은 말에서 내려 정중히 포권했다.
“길을 열어드릴 테니 돌아가 주시오! 훗날 본인이 귀교 총단으로 찾아가 소교주께 예물을 바친 뒤 발치에 엎드려 죄를 빌겠소이다!”
곽상은 묵묵히 듣다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돌아가라고?”
“그렇소! 간곡히 부탁드리오!”
곽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말이 돌아가라는 것이지 패주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지독한 모멸감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지금 내게 지껄인 말이냐? 본 도올대에게?”
색목인이 다급히 말하려 했으나 곽상이 더 빨랐다.
“고노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건장한 장년인이 허리를 꼿꼿이 폈다.
“네! 대주!”
“본대(本隊)의 좌우명이 무엇이더냐?”
“임전무퇴(臨戰無退)입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라!”
지목된 고노진뿐만이 아니었다.
도올대원 모두가 적의 핏물을 머금은 귀두도(鬼頭刀)를 곧게 세우며 이를 드러냈다.
동시에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영광스럽게 산화합니다!”
“좋아!”
엄청난 투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곽상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단전에 남은 내공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전신에서 진득한 마기를 쏟아내며 귀두도의 도첨(刀尖)으로 색목인을 겨눴다.
색목인도 재빨리 말에 올라타더니 악독한 표정을 지으며 활을 잡았다.
곽상의 입에서 혼이 실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도올대!”
“하!”
“너희들과 함께해 영광이었다! 이제 최후의 돌진을…….”
“놀고 있네.”
“……!”
곽상은 갑자기 들려온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군가 뒤를 점한 것이다.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해 돌아서며 귀두도를 휘둘렀다.
그리고 귀두도가 허공을 덧없이 벨 때,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이, 이건!’
또 뒤에서 똑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바보는 평생 바보인가.”
빠악!
“크윽!”
뒤통수가 박살 난 것 같은 고통!
곽상은 그대로 엎어졌다가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간신히 일어섰다.
눈앞에 요사스럽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청년이 서 있었다.
곽상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하지만 미청년의 눈은 한심한 축생이라도 보는 듯 가늘어져 있었다.
“곽가야. 거리 벌리는 게 귀찮아? 그래서 맨날 제 자리에서 싸우는 거야?”
곽상은 너무 놀라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거렸다.
“소, 소교주! 여긴 어떻게!”
“잘. 하여간 미련하기는. 쓸데없는 겉멋에 절어 있으니 네놈 실력에 비해 잡기가 훨씬 더 쉽잖아. 응?”
청년은 곽상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연이어 때리며 훈계했다.
“기마대가 우습냐? 활이 노리개로 보여?”
“크윽. 아, 아닙니다!”
“일찍 죽기 싫으면 내가 한 말을 잘 외워놔. 겉멋 얘기 말하는 거야. 할 수 있지?”
“컥. 존명!”
“존명이고 자시고. 외우라고.”
“으윽. 아, 알겠습니다!”
“그나마 제일 가까운 곳에서 훈련하고 있어서 먼저 보냈더니 헛짓거리나 하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죄송할 걸 왜 해? 앞으로 두고 본다.”
“네! 소교주!”
청년은 그제야 주변을 돌아봤다.
석상처럼 굳어 있던 도올대원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목 놓아 외쳤다.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 위대한…….”
“시끄러워. 몇 년 안 남았는데 왜 자꾸 개소리야.”
도올대원들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
“임전무퇴는 무슨. 산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도 아니고.”
청년은 못마땅한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색목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입을 떡 벌리고 있던 색목인이 다시 말에서 내려 두 손을 모은 뒤 순식간에 메말라 붙어버린 입술을 억지로 떼었다.
“위대한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뵙게 되어 영광…….”
“너 뭐야?”
“소, 소인을 말씀드리자면 피슈페크에서 온…….”
“피슈페크? 아. 골목길에서 꼬맹이들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시골뜨기들? 거기 종자였구나.”
“……!”
색목인의 배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향까지 욕보이다니.
천마신교 소교주라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그러나 그래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 많은 궁기병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전과를 올린 도올대.
그런 그들조차 두려워 쩔쩔매는 마신(魔神)이었으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해.’
화를 삼키고 공손히 대답하려고 하는데.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그의 수하들 중 한 사내가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따졌다.
“소교주! 그대의 전설 같은 위명은 귀가 따갑게 들었으나 너무 무례한 것…….”
퍼엉!
안타깝게도 사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나 버려 떠들 입이 사라진 것이다.
색목인은 물론이오, 피슈페크에서 온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암기인가? 하다못해 희끗거리는 것도 없었는데?’
경악한 그들과 달리 청년은 태연했다.
“무례한 놈은 좋은 곳으로 보내줬으니 편하게 말해.”
이런 상황에 누가 감히 편할 수 있을까.
색목인은 바짝 긴장하여 필사적으로 입을 놀렸다.
그의 입에서 곽상에게 했던 얘기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청년은 지루한 얼굴로 죽은 말에 걸터앉아 듣다가 설명이 끝나자 탄식했다.
“그깟 재물을 가지고 왜 이리 난리인지 원.”
죽음의 위기 앞에서 꼿꼿한 자가 얼마나 될까.
색목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아부했다.
“천하마도의 종주이신 소교주께선 초탈하신 존재라 그러시겠지만 소인들 같은 범부는 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탈하진 않은데.”
“역시 소교주이십…… 네?”
청년은 별것 아니라는 듯 알려줬다.
“재물이란 건 뭘 하든 간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 나는 아랫것들이 알아서 벌어 오니까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야.”
“……역시 소교주이십니다.”
“입에 발린 소리는 됐고. 막대한 예물을 바치고 통행세로 번 돈의 일부를 주기적으로 내겠다?”
색목인이 반색하며 맹세했다.
“그렇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럼 네놈들은 상인들한테 돈을 더 거두겠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러려고 일을 벌였고 천마신교에 돈을 바치려면 더욱더 그래야 했다.
청년은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경신술이 빠른 게 죄지. 그래서 귀곡자가 내게 애원한 거야. 혹시 모르니 제발 좀 가달라고.”
“……무슨 말씀이신지?”
“넓고 길게 봐야지. 네가 상인이라 치자. 턱없이 많이 뜯기면 기분 좋겠어? 어떻게든 다른 길을 개척하려고 할 거 아냐. 당장은 안 되겠지만 훗날에라도.”
“허, 허나…….”
“그럼 당장만 봐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참 밑지는 장사인데?”
청년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전설 속의 흉수(凶獸) 도올(檮杌)이 수놓인 무복을 걸친 자들이 몇 명이나 쓰러져 있었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이거?”
색목인이 사색이 되어 변명했다.
“그, 그건 사고였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 소교주시여!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
콰앙!
색목인 좌우에 있던 사내들의 머리통이 터졌다.
청년이 싱긋 웃으며 설명했다.
“이것도 사고였어. 이해해 줄 거지?”
“헉! 무, 물론입니다!”
퍼엉!
사내 둘이 더 죽고 청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또 사고가 났네.”
“……!”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사고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좋게 될걸.”
색목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이게 어떻게 좋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호사(好事)에는 마(魔)가 붙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 마를 사고라고 폄하한다니까. 사고로 깨끗이 보내줄게. 개똥밭에서 구르지 말고 편한 곳에서 쉬어.”
청년의 몸에서 지옥의 겁화(劫火)처럼 새카만 마기가 타올랐다.
궁기병들은 공포에 질리고 그들이 탄 말들은 크게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었다.
“일단 발은 묶었고. 시작해 볼까.”
청년이 움직이려는 순간.
도올대원들과 함께 부복해 있던 곽상이 간절히 청했다.
“소교주! 속하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죽고 싶어 환장했냐? 몸도 성치 않은 놈이 무슨.”
“속하들은 도올대입니다! 이 이름을 더 이상 더럽힐 순 없습니다!”
“내 귀가 더러워지네.”
청년은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도올대를 내려다봤다.
“막내. 네 이름이 고노진이었지?”
건장한 장년인이 땅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외쳤다.
“그렇습니다, 소교주!”
“임전무퇴라는 헛소리 말이야. 그게 그렇게 좋냐?”
누가 들어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으나.
고노진은 솔직히 말했다.
소교주에겐 그래야 했다.
“네! 그러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웃기는 소리. 어차피 죽으면 후회할 수도 없잖아.”
“그래도 좋습니다!”
“이 어린애를 지독하게 세뇌했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냐?”
도올대원 전부가 힘차게 답했다.
“네! 소교주!”
“이런 꼴통들을 봤나.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청년은 혀를 차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원하는 쪽으로 밀어주마. 혹시라도 죽기 직전에 후회해서 원한을 품은 귀신이 되어 나를 찾아오면 안 돼.”
“감사합니다!”
“귀 따갑다. 일어나.”
“존명!”
곽상을 비롯한 도올대원들이 일어나 마기와 살기를 흩뿌렸다.
청년은 곽상을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다른 놈들은 그렇다 쳐도 대주라는 놈까지 목숨을 가볍게 여기다니.”
“죄송합니다!”
“죄송은 개뿔. 이런 일이 생기면 또 그럴 거잖아.”
“그렇습니다!”
“고지식한 놈. 돌아가서 보자. 어울리는 보직으로 옮겨주마.”
천마신교 소교주 진천마가 소름 끼치도록 아름답게 웃었다.
그리고 무저갱의 암흑보다 어두운 불길이 되어 궁기병들에게 날아갔다.
“따라와!”
“존명!”
* * *
적들을 몰살시킨 뒤 바로 피슈페크로 달려가 박살 내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곽상은 머릿속에서 흘러가던 풍경이 흩어지자 옛 기억을 억지로 떠올렸다.
‘아! 총단으로 돌아가자마자 귀곡자를 구타하셨지.’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해도 임전무퇴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도올대를 보내고 소교주까지 뒤따르게 한 멍청한 일 처리를 꾸짖는다는 명목이었다.
‘심지어 이 정도 변수도 예상 못 하냐며 마뇌까지 불러서 두들겨 패셨어.’
귀곡자와 마뇌가 하늘이 놀랄 만한 두뇌의 소유자라 해도 세력권도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찌 알까?
오히려 세작이 전서구를 보내기 전에 먼저 의혹을 느끼고 도올대와 소교주까지 가게 한 판단력은 칭찬받아야 마땅했다.
‘그리고 나는…….’
소교주에게 개처럼 얻어맞고 직위를 박탈당한 후 호교당(護敎堂) 삼향주로 좌천됐다.
‘……한동안 많이 원망했지.’
그러나 소교주가 교주 자리에 오른 뒤 어느 날 던진 말에 생각을 고쳤다.
“호교당으로 옮겨놓으니 나보다 오래 살게 됐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교주.”
“말 그대로지. 호교당 애들한테도 임전무퇴 어쩌고 하냐?”
“아닙니다.”
“왜?”
“호교당의 임무는 총단을 전력으로 보호하되 적이 강할 시엔 최대한 시간을 끌며 구원군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과부적인 상태가 되면 그럴 거야?”
“그렇습니다.”
“헛소리. 수하들은 그렇게 시키고 네놈은 정면으로 맞서다가 죽을 거지?”
곽상의 얼굴이 점점 굳더니 일그러졌다.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였다.
미청년이 피식 웃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진 않지.”
“죄송합니다.”
“네가 교를 위하는 건 알아. 하지만 진정으로 위한다면 네 목숨도 챙겨야 해. 너처럼 고지식한 녀석이 교에 한 명쯤은 필요하거든.”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하진 못했으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청년이 싱긋 웃었다.
“열심히 해서 승진 좀 하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말이 많아지네. 네가 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야.”
그게 마지막이었다.
청년은 교주가 된 지 일 년도 안 되어 귀천해 버렸다.
‘가만. 혹시 여기가 지옥인가?’
그렇다면 그분도 반드시 계실 터.
두 눈을 떠서 확인하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여 눈에 힘을 주는데 양 뺨이 뜨거워졌다.
‘이건 뭐지?’
짙은 의혹을 느끼는 그때,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삼향주님, 일어나시죠.”
짜악!
“괜찮으시죠? 잠깐 얘기 좀 해요.”
짜아악!
극심한 고통과 함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익숙한 얼굴이 그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셔서 다행이네요.”
“……!”
곽상의 두 눈이 커졌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전에 그분이 남기셨던 마지막 말.
존대로 바뀌었으나 똑같은 것을 들어서였다.
‘지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