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15화
아주 막돼먹은 놈은 아니었네
섬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손강의 우세를 점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직접 부딪쳐 보니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저놈은 강해. 지금껏 싸워온 그 어떤 놈보다 더.’
모든 여정은 첫걸음을 떼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던가.
자신이 모자란 걸 시인하니 더 확연히 알게 됐다.
‘후우우. 그게 아니잖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부정하고 있었던 거야.’
스스로 자질이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으나 내 하루는 타인의 하루와 완전히 다르다고, 엄청난 고통과 압박 속에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훌륭한 수준에 올랐다고 자랑스러워해 왔다.
‘그래, 그렇게 나를 높여서 명문가 녀석들에게 주눅 들지 않으려고 했던 거지.’
지금까지는 잘 통해왔는데.
손강과 겨루게 되니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 벌거숭이가 되었다.
‘쪽팔려라. 진짜 힘 빠지네.’
저도 모르게 어깨가 살짝 처졌다.
그걸 알아봤는지 손강이 밉살스럽게 웃으며 이죽거렸다.
“광대야, 안 올 거야? 그럼 내가 갈까?”
섬랑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어깨가 다시 올라가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힘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
생사투가 무공 수위만으로 결정되면 뭐 하러 싸우나?
고수가 양쪽 수준을 판별해서 ‘너 승, 너 패’하고 판정하면 되지.
‘투지만큼은 지지 않아! 대인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리며 쏘아붙였다.
“이 어르신께서 친히 가주실 테니 엉덩이 맞고 울지나 마.”
“이 미친 새…….”
호흡을 끊는다.
보법을 밟아 목표물의 측면으로 다가갔다.
놈이 신형을 돌리며 만도(彎刀)로 반격하려는 순간, 품속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하얀 가루가 허공을 뿌옇게 뒤덮었다.
손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재빨리 따라붙으며 하얀 가루를 더 뿌렸다.
손강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이글거렸다.
동시에 녀석의 손에 들린 만도가 춤을 췄다.
하얀 가루를 남김없이 밀어내며 사방을 물샐틈없이 방어했다.
그러나 섬랑은 어느새 뒤로 훌쩍 물러나 쌍단봉을 겨드랑이에 낀 채 손에 묻은 하얀 가루를 툭툭 털어내고 있었다.
“이거야 원. 아무리 밀가루가 싫어도 호흡까지 멈추면서 칼춤을 출 줄이야.”
“……!”
“설마 독분(毒粉)일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겁먹어서 그런 건 아니지? 그렇지?”
“…….”
“그래, 그렇게 잘난 척하던 놈이 그 정도 안목도 없을 리는 없지. 그런데 왜 그렇게 난리를 쳤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짚이는 게 하나밖에 없네.”
손강의 눈이 더 붉어지고.
섬랑은 활짝 웃었다.
“말해봐. 이제 누가 광대지?”
“……!”
구경꾼들이 왁자하게 웃었다.
섬랑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쌍단봉을 양손으로 잡고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오독. 오도독.
그리고 손강이 도발했던 것처럼 비릿하게 웃으며 쌍단봉을 까딱거렸다.
“광대답게 춤을 잘 추는구나. 다시 와봐. 기꺼이 놀아줄게.”
구경꾼들이 환호했다.
손강은 인상을 쓰며 만도를 고쳐 잡았다.
섬랑은 여유 있는 미소를 흘리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속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허점을 보이면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 무슨 놈의 칼질이 저렇게 으스스해?’
허점 비슷한 거라도 보여야 뭘 하지.
어쨌든 도발은 먹혔다.
손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와 만도를 폭풍처럼 휘둘렀다.
제대로 열받은 것이다!
‘좋아! 바로 이거지!’
수준 차이가 명확하니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해질 수밖에.
화가 나면 더 강해지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자극해서 빈틈을 보이게 한다.
대인이 짜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집중력을 끌어 올리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어서 틈을 드러내! 바로 작살을 내주마!’
허나 쾌재를 부른 것도 잠시.
손강은 강했다.
가끔 허점이 보이면 뭐 하는가?
뭘 할 새도 없이 무시무시한 살초(殺招)를 연이어 펼쳐서 막고 피하기도 벅찬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섬랑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집중했는데도 왼쪽 옆구리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대인! 얘기가 다르잖아요!’
엉덩이를 때려주겠다고 도발했는데, 오히려 이쪽 엉덩이가 시큰해지며 눈물이 찔끔 나왔다.
‘설마 대인께서 틀리신 건가?’
섬랑에게 대인은 무척 특별한 존재였다.
천신이 정말 있다면 그 바로 밑이라고 할까?
일말의 의심도 없이 철석처럼 믿어 왔거늘 이런 실수를 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손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만도를 내질렀다.
섬랑은 타고난 승부사의 감으로 간신히 피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야! 대인께선 실수 따위 하지 않아!’
왼쪽 가슴이 살짝 베이며 출혈이 일어나서 그런지 심장이 뜨거워졌다.
‘대인은 완전무결해! 적에게 통하지 않을 지시를 내리신 이유가 있을 거야!’
그걸 알아내는 건 섬랑의 몫이었다.
‘뭘까? 뭐지? 빨리 알아채야 하는데…….’
상처가 또 늘었다.
답답해서 성질이 났다.
동시에 공포심이 스멀스멀 솟았다.
죽음의 위협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옥당(玉堂)에 웅크리고 있던 ‘그놈’이 눈을 떴다.
섬랑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망할! 장기전으로 가기 전에 목숨을 위험하게 해서 이놈을 깨우려고 그러신 거구나!’
아이고, 고맙기도 하셔라.
차가운 공포심에 뜨거운 분노가 더해졌다.
마혼의 파편이 기다렸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반은 차갑고 반은 뜨거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와 양쪽을 전부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머리로 치달릴 준비를 했다.
섬랑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무서움에 떨고 화가 나서 소리치는 건 사치였다.
지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할 건 단 하나였다.
‘잡아먹히면 안 돼! 집어삼켜야 해!’
잡아먹혀도 대인이 꺼내준다고 약조했으나 백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좋아하는 술은 마실 수 있을 거라고 다독이기까지 했지만 아무런 위로가 안 됐다.
그렇게 살아봐야 아비가 그랬던 것처럼 술만 퍼마시다가 결국 술에 잡아먹힐 것 아닌가?
‘와라! 한번 해보자!’
마음을 굳게 먹는 순간!
머리로 솟구치려고 도약을 준비하던 ‘그놈’이 마음속에 쪼그려 앉았다.
‘……뭐?’
손강의 만도가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새로운 상처가 생기자 ‘그놈’이 가늘게 진동했다.
마치 비릿한 혈향(血香)을 음미하고 비웃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또 놀려?’
욕할 시간도 없었다.
손강이 펼치는 탈혼십삼도(脫魂十三刀)를 가까스로 피하다가 마환각(魔環脚)에 배를 걷어차이고 나뒹굴었다.
“흡!”
순간 숨이 막혔으나 재빨리 몸을 틀어 뒹굴었다.
간발의 차이로 날카로운 만도가 바닥을 쪼갰다.
퍼억!
섬랑은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말았다가 펴는 탄력으로 일어섰다.
손강이 바닥에 박힌 만도를 뽑으며 빙글거렸다.
“숨겨둔 한 수가 있는 것처럼 나불대더니 역시 그냥 버러지였네. 하긴, 술주정뱅이와 밑바닥 년이 낳은 새끼니 잘나봤자 이 정도겠지.”
섬랑의 벽안(碧眼)이 새파랗게 빛났다.
“……뭐?”
손강의 붉은 눈이 번들거렸다.
“이해가 안 가? 핏줄은 속일 수 없다고. 너같이 천한 놈이 소교주를 꿈꾸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주제를 알아야지.”
“……!”
분노와 함께 반발심이 솟았다.
아비가 한심하기 그지없는 주정뱅이였던 건 사실이지만 거지 같은 족쇄를 채워서라도 나를 살리려고 하지 않았는가!
어미는 너무 일찍 죽어버려서 얼굴도 몰랐지만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하고 젖까지 먹였고!
그런데 뭐?
누가 천해?
주제를 알라고?
옥당이 부르르 떨렸다.
분노에 모든 걸 맡기라고, 그럼 다 알아서 해주겠다고 ‘그놈’이 달콤하게 속삭였다.
섬랑은 뽀송뽀송한 작은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마음속으로 외쳤다.
‘내가 밸도 없는 줄 아냐? 자꾸 짜증 나게 굴지 말고 찌그러져 있어, 인마!’
진짜 자존심은 모든 걸 인정하게 됐을 때야 비로소 똑바로 세울 수 있는 법.
마지막 것까지 받아들이자 냉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언제부터 남한테 기댔다고. 질척대지 마. 너 따윈 필요 없어 새꺄.’
아비가 죽은 뒤 홀로 살아왔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까지 돌보면서 말이다.
그러다 운 좋게 대인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됐거늘, 그 많은 은혜를 받아놓고 또 남에게 기대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심지어 이놈은 사람도 아니잖아.’
투혼(鬪魂)을 낀 양손으로 쌍교(雙蛟)를 고쳐 쥐었다.
소매 속에 있는 비섬(秘閃)을 떠올리며 코를 찡긋거렸다.
‘오경이 봤으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대인께 삼신기(三神器)까지 받았어. 이런데도 지면 얌전히 죽는 게 나아.’
‘그놈’이 아니라고 진동했다.
나를 받아들이라고, 내게 복종하면 장차 천하를 주겠다고 장담했다.
섬랑은 코웃음 쳤다.
‘네놈한테 숙이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겠냐? 그럼 천하를 손에 넣어봐야 방에만 처박혀 있어야 하잖아.’
손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제를 알라고 했을 텐데. 그 표정은 뭐지?”
섬랑은 이를 한껏 드러내며 웃었다.
“애처럼 보채기는. 지금부터 알려줄게.”
묵영보(黙影步)를 펼쳤다.
질풍처럼 내달리며 쌍단봉을 내질렀다.
쌍단봉이 헛되이 튕겨 나가고 몸에 자상이 새겨져도 전혀 개의치 않고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두 발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움직였다.
단단한 쌍단봉이 형체 없는 그림자처럼 손강을 노렸다.
달리면 달릴수록, 공격하면 공격할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움직임은 은밀해졌다.
그러자 몽롱한 쾌감이 일어나 전신을 질주했다.
쿠얼러에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보법을 밟을 때 느꼈던 그 기분, 현로를 처음 만난 날 저녁에 열심히 수련하다가 현로가 모닥불에 엎어져 깜짝 놀라 깨졌던 그 깨달음이 돌아온 것이다!
‘그래, 이거였어!’
그 대가로 상처가 더 늘었지만 상관없었다.
상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으니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끊임없이 몰아쳤다.
손강이 이를 갈며 만도를 바람보다 빠르게 휘둘렀다.
만도가 귀곡성을 흘리며 섬랑의 정수리를 탐했다.
‘초식 이름이 귀성참(鬼星斬)이었나?’
대인이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알려준 것이었는데 예상보다 빠르고 강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섬랑의 몸은 이미 반사적으로 움직여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내고 있었다.
쩌엉!
한쪽 무릎이 반쯤 꺾였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래도 열십자로 엇갈려 들어 올린 쌍교는 만도를 단단히 물고 있었다.
섬랑은 핏물을 꿀꺽 삼키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렸다.
“으아아!”
끼리리릭-
반보 내딛자 쌍교도 앞으로 나가며 만도를 긁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과 함께 불똥이 튀며 재수 없는 놈의 얼굴이 확대됐다.
‘뒈져!’
멸살법(滅殺法) 제삼식(第三式).
쌍단봉 중 하나를 놓으며 소매 속에서 비섬을 꺼냈다.
잡고 있던 단봉은 비스듬히 밀어 만도를 흘리고 비섬은 그대로 반원을 그려 손강의 목을 노렸다.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수!
‘됐…… 헉!’
손강이 절묘하게 뒤로 반보 물러나며 엄청난 힘으로 만도를 내리눌렀다.
비섬은 간발의 차이로 손강의 목을 스쳐 지나갔고 만도는 섬랑의 어깨를 베었다.
서걱!
“크흑!”
섬랑은 고통을 참으며 옆으로 굴렀다.
달걀만 한 살점이 베인 어깨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손강이 자신의 목을 쓰다듬어 출혈을 확인하더니 흉신(凶神)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너 이 새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주마.”
섬랑은 몸을 간신히 일으킨 뒤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까와 달리 하얀 이가 붉은 핏물에 젖어 섬찟하게 빛났다.
“이 녀석 보게. 나를 지극히 봉양하려고? 효심을 봐서라도 승낙해야 하나?”
손강은 혀를 차며 만도를 치켜올렸다.
섬랑은 만도를 올려다보며 피식거렸다.
‘젠장. 손아귀에서 힘이 빠져 쌍교도 비섬도 놓고 왔네. 꽤 아플 텐데 어쩌나.’
손강의 만도가 시퍼렇게 빛났다.
동시에 섬랑의 옥당이 쿵쿵 소리가 날 만큼 크게 울렸다.
그놈이었다.
그놈이 나를 받아들이라고, 그러면 네 적을 멸해주겠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섬랑의 입가에 가는 선이 생겼다.
‘웃기지 마, 인마. 나는 내 거야.’
놈이 협상을 포기하고 순식간에 머리로 치솟았다.
섬랑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지? 죽을 때가 되니까 쫄리나 보네.’
놈은 대답할 시간도 없다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섬랑의 벽안이 금세 암청색으로 변했다.
살의가 들끓어 올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피를 갈구하는 갈증 때문에 입술이 메말랐다.
암청색으로 변했던 눈이 새카맣게 물들고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버렸다.
놈이 시야까지 앗아간 것이다.
하지만 섬랑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먹힐 것 같냐?’
이미 겪어본 일이고 삼켰었다.
이놈이 그새 몸집을 불리고 전보다 제대로 싸우려 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먹으면 되는 일!
살의로 가득 차버린 머릿속에서 전에 들었던 맑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집어삼켜! 전부 먹어치우고 그 힘으로 네가 죽이고 싶은 놈만 죽여! 그게 마를 이용하는 방식이고 진짜 마인(魔人)이 되는 길이다!
그래, 나는 진짜 마인이 될 거다.
천하마도의 정점에 우뚝 서서 손바닥만 한 세상을 오연하게 굽어보는 교주가!
‘모조리 먹어주마!’
피를 갈구하던 갈증이 마(魔)를 탐했다.
심신을 갉아먹어 가고 있던 놈을 의지로 물어뜯었다.
놈이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허나 섬랑의 굳센 의지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짙은 어둠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놈은 이리저리 도주하다가 막다른 곳에 밀리자 요사하게 웃었다.
섬랑도 웃었다.
‘센 척하기는.’
의지로 마음을 완전히 감쌌다.
‘나를 놀릴 땐 재밌었지? 반대로 네놈이 놀림을 당하니까 기분이 어때?’
미친 듯이 날뛰는 녀석을 움켜쥐고 부르짖었다.
‘앙탈 그만 부리고 따라와! 얼마나 세서 목이 그렇게 빳빳한지 솜씨 한번 보자!’
세상을 뒤덮고 있던 어둠이 산산이 깨지고 시야가 확 트였다.
손강의 만도가 정수리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실제론 순간이었으나 당사자에겐 영원 같았던 시간.
그 속에서 승리를 쟁취한 섬랑은 새로 얻은 종복을 마음껏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압!’
뜻이 서자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였다.
대인에게 배운 대로 토납을 하며 중단전(中丹田) 옥당에서 마혼의 파편을 개방했다.
놈은 호흡과 어우러져 아래로 달려가 하단전(下丹田) 석문(石門)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단전에 고여 있던 보잘것없는 내공을 머금었다.
‘간다!’
놈이 몸을 일으켜 섬랑이 인도하는 곳으로 솟구쳤다.
마공이어서 가능한 괴이한 경로로, 천하의 그 어떤 마(魔)보다 정제된 마혼의 파편이 폭발적인 마기를 일으키며 올라가 섬랑의 양손에 맺혔다.
섬랑은 그 손들을 모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손강의 만도를 움켜잡았다.
콰직!
양손을 감싸고 있던 권갑 투혼(鬪魂)이 터져 나갔다.
핏물이 튀어 올랐으나 섬랑의 양손은 잘리지 않은 상태!
믿을 수 없는 기사에 손강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섬랑은 그사이 녀석의 배를 걷어찼다.
마혼의 파편이 증폭시킨 마기가 다리를 타고 들어가 손강의 배에 꽂혔다.
퍼엉!
“커헉!”
손강이 허리를 새우처럼 접으며 내장 조각이 섞인 핏물을 토했다.
이미 피투성이였던 섬랑은 그 핏물까지 뒤집어썼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고 검푸른 눈동자로 녀석의 뒤통수를 내려다봤다.
“아주 막돼먹은 놈은 아니었네. 하직 인사도 하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던 손강이 풀썩 무릎을 꿇는가 싶더니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간신히 중얼거렸다.
“이, 이 새끼…… 제법이네.”
섬랑은 건조하게 받아쳤다.
“역시 상종 못 할 놈이었어. 칭찬하려면 욕은 빼야지.”
“끄끄끄.”
손강이 뒤틀린 웃음을 흘리더니 안간힘을 다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원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욕설을 내뱉으려고 하는데.
섬랑의 검푸른 눈동자와 온몸에서 은은하게 일렁이는 검은 마기를 보자 온몸을 가늘게 떤 후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그게 유언이냐?”
“우웩. 이, 이번 생은 어쩔 수 없고. 쿨럭쿨럭. 다음 생엔 내 눈에 띄지 마라.”
“너야말로.”
섬랑은 오른발을 들어 올렸다가 강하게 내려쳤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