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05화
이상한 별호
예기(禮旗) 무인들이 비무대에 올라와 붉은 피로 더럽혀진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오경은 비무대 앞 천막에서 지켜보고 있던 화전오가(和田吳家) 사람들에게 인계됐다.
예기 무인이 시신을 건네며 칭찬했다.
“가주의 자제는 훌륭했소. 귀천한 건 안타까우나 천신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오.”
한쪽 귀가 잘린 중년인이 두 팔을 내밀어 가죽 포대처럼 축 늘어진 아들을 받았다.
최대한 조심스레 받았건만, 그 작은 충격에 부러진 뼈들이 맞닿아 갈리며 삐걱삐걱 비명을 질렀다.
중년인은 삭막한 눈으로 아들을 내려다보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화전오가 사람들은 섬랑을 뚫어지게 쏘아보고 떠났다.
섬랑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비무대 위에 우뚝 서 있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사람들은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 더 크게 환호하며 칭찬을 퍼부었다.
“상대가 보통이 아니었는데 대단하구나! 특히 마무리! 놀라운 초식이었어!”
“어찌나 독하게 손을 쓰는지 보는 내가 다 시원해지더군! 이러다 정말 우승하는 거 아니야?”
“섬랑! 두 번만 더 이기면 소교주다! 끝까지 응원하마! 높은 신분이 됐다고 나를 잊으면 안 돼!”
일행이 있는 천막 쪽으로 가던 섬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독두(禿頭) 아저씨는 볼 때마다 눈이 부셔서 얼굴을 기억 못 해요! 그래도 목소리는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독두는 얼굴을 붉히며 민머리를 긁었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소진혼(小眞魂)이라고 불린다더니 과연! 혀를 놀리는 실력도 만만치 않잖아!”
“더구나 이번엔 멋지게 이겼어! 진작 좀 이러지!”
“으하하! 그것 아오? 내가 이녕(伊寧)에서 멋지게 싸우라고 조언해서 그런 것이오!”
“예끼! 자네가 그랬다고 그게 되나? 섬랑이 잘 해낸 거지!”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올랐구나! 칠대가문의 적자들은 얼마나 잘 싸울까? 진짜 기대되는걸!”
교주 연휘준은 단상 위에서 섬랑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의 절초였나? 초식도 훌륭하고 자질도 좋군.’
승부사의 감이 있다더니 정말 그랬다.
‘지독한 독종이라는 정보도 사실이겠지.’
무공을 하나도 몰랐던 꼬마가 단시간에 저 수준에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비로소 꽃피운 거겠지만.’
오경이라는 아이가 죽어버린 게 아쉬웠다.
‘쓸 만한 말인데 아깝게 됐어.’
어차피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충분히 키우지 못할 거라 상관없긴 했다.
‘규서와 정말 비교되는구나.’
연휘준은 자신의 셋째 손자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녀석이 왜?’
자질이 부족하고 성품도 소심한 아이인지라 아무런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현 교주의 핏줄이 멸혼생사투에 불참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기에 형식적으로 출전시켰을 뿐인데 투지를 불태우다니?
‘설마 조금 전의 싸움을 보고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구경꾼들의 기대감 때문에 저러는 것일지도.
연휘준의 미간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어리석은 놈. 제 명을 스스로 재촉하는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번 상대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다음 상대인 섬랑을 꺾는 건 힘들었다.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중상을 입을 것이고 그다음 상대에겐 필패할 터.
몸성히 물러날 기회는 상대보다 조금이나마 강한 이번밖에 없거늘 쓸데없는 만용으로 걷어차려 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으나 꼭 나쁜 건 아니었다.
연휘준 자신에게는.
‘적당히 싸우다가 패배해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단 최선을 다하다 죽는 게 모양새가 더 좋긴 하지. 일단 지켜볼까.’
연휘준이 평생 애정을 줘본 적이 없는 손자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섬랑은 천막에 도착해 자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섬랑! 승리를 축하한다! 정말 수고했어!”
“뭐 이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하하. 이런 거라니? 강한 적을 상대로 훌륭히 싸웠다. 그렇게 멋지게 이길 줄이야. 네가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내 가슴이 다 벅차구나. 단주께서도 분명히…….”
“그럭저럭해냈네. 누구 덕인지 알지?”
정광의 말에 섬랑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대인 덕요. 감사해요.”
“그래. 가슴에 깊이 새기고 평생 받들어.”
“……갑자기 감사함이 사그라지네요.”
“괜찮아. 다시 새겨주면 되지.”
섬랑이 화제를 돌렸다.
“다, 다음 차례는 어떤 녀석들이죠?”
정광은 피식 웃은 뒤 턱짓으로 비무대를 가리켰다.
비무대 위에 있던 예기주 양방이 두 번째 생사투를 벌일 출전자들을 호명했다.
“다음 생사투를 진행하겠소! 삼 번 출전자, 탑성황가(塔城黃家) 황호! 사 번 출전자, 아극소연가(阿克蘇燕家) 연규서! 두 사람은 비무대 위에 올라 마주 서라!”
탑성황가는 신강 북부에 위치한 타청을 대표하는 가문이었는데, 오래전부터 이민족들과 교역을 해와 상당히 부유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이민족들과의 교역이 항상 순탄하게 풀릴 리 있나.
틈만 나면 분쟁이 일어나 혈투를 벌여야 했다.
자연히 사람들은 거칠어지고 무공은 일대일로 겨루는 게 아닌 다대다 전투를 치르는데 적절하게 변형될 수밖에.
의복과 병기 역시 보통 무인과 다르게 질긴 가죽 갑옷을 입고 끝이 뭉툭한 철추(鐵椎)를 거세게 휘두르며 전장을 질주하는 전사들이었는데…….
정광은 비무대로 향하는 황호를 보고 내심 혀를 찼다.
‘이거야 원. 대진표를 짤 때도 언뜻 봤지만 적응이 안 되네. 왜 저렇게 풀린 거야?’
과거 귀곡자가 사치품을 풀어서 이민족들이 재물을 소모하게 하고 분란까지 일으키도록 부추긴 영향 때문일까?
싸움이 적어져서 배에 기름이 꼈는지 황호를 비롯한 탑성황가 녀석들은 실전성보다 화려함에 치중한 차림새였다.
‘단명할 상이 아니라 단명할 차림새네. 그나마 이번 생사투는 상대가 이길 생각이 없을 테니 무사하겠지만…… 응?’
정광은 황호의 상대, 아극소연가 연규서가 있는 천막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저놈? 제대로 붙으려고 하잖아.’
눈빛만 그런 게 아니었다.
투지에 살기까지 일으키다니.
단단히 각오한 모습 아닌가?
나민에게 집적대다가 쫓겨났던 망나니 연규종이 꼴에 형이랍시고 나무라고 있었으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게 아우가 저럴 줄은 몰랐던 게 분명했다.
‘좋을 때다. 섬랑과 오경의 싸움을 보고 호기가 치솟았나 보네.’
그럼 가주이자 아비인 연혁소는 어떻게 나올까?
‘일단 아비의 눈치부터 보겠지.’
역시 그랬다.
연혁소는 높은 단상 위에 오연히 앉은 아비를 흘깃 본 뒤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때, 그 눈은 정광을 향하고 있었다.
정광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어줬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니 내키는 대로 해.’
입으로 말하진 않았으나 표정으로 읽었을 터.
연혁소가 시선을 돌리더니 투지를 불태우는 아들을 응시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연규서는 활짝 웃고 형인 연규종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공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막고 있어서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으나 분위기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할아비는 상관치 않고 아비는 밀어주고. 내일 섬랑이 싸울 상대가 정해졌네.’
예상대로였다.
“하압!”
연규서는 생사투가 시작되자마자 황호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황호는 연규서가 적당히 싸우다가 물러날 거라 예상하고 있었는지 크게 당황해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황호를 데려온 탑성황가 어른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극소연가 가주 연혁소를 힐끔거리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정광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연혁소가 우승 가능성이 없는 아들을 개죽음시키지 않을 거라고 속단한 대가지. 재밌게 됐어.’
연규서는 소교주가 될 자질은 없었으나 황호를 이길 능력은 있었다.
계속 날카롭게 압박하다가 가죽 갑옷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목에 검을 꽂아 넣었다.
한 소년은 목에서 핏물을 뿜으며 쓰러지고 다른 한 소년은 곳곳에 상처를 입었으나 당당히 섰다.
예기주 양방이 큰 목소리로 승패를 판정했다.
“연규서 승! 황호 패! 멸혼생사투 본선 두 번째 대결의 승자는 아극소연가를 대표해서 출전한 연규서외다!”
연규서는 환호성이 쏟아지자 상기된 얼굴로 예를 표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생사투를 지켜본 섬랑은 이맛살을 모으며 투덜거렸다.
“뭐가 저렇게 빨라? 검법도 복잡하고.”
정광은 섬랑의 머리털을 헝클어뜨리며 격려했다.
“네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역시 그렇죠?”
“응. 팔 하나만 내주면 될걸.”
섬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는 관 숙수처럼 되기 싫은데요.”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 하루라도 팔을 소중히 해줘.”
섬랑보다 더 팔을 아껴야 하는 건 신강 최북단에 있는 아륵태요가(阿勒泰姚家)를 대표해 출전한 요진극이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장한 소년이 단병기 중에서도 단병기인 원앙월(鴛鴦鉞)을 양손에 끼고 용감히 전진했다.
보보(步步)마다 비무대가 울리고 주먹을 내뻗을 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다.
훗날 대단한 권사로 성장할 싹수가 보이는 위력!
하지만 얼마 못 가 상대가 휘두르는 만도(彎刀)에 양팔이 깔끔히 잘렸다.
그리고 몸이 가로로 양단되어 절명했다.
예기주 양방의 음성이 장내를 울렸다.
“손강 승! 요진극 패! 멸혼생사투 본선 세 번째 대결의 승자는 토로번손가를 대표해 출전한 손강이오!”
앞에 있었던 생사투들의 승자도 훌륭했으나 손강은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어린 소년의 강한 무공과 독한 손속에 열광했다.
섬랑은 고개를 떨구고 탄식했다.
“천신께서 인세를 포기하셨나? 저런 악독한 새끼가 이기다니.”
정광은 다른 사람들처럼 손뼉을 치며 나무랐다.
“친구가 이겼는데 질투하면 쓰나. 인상 쓰지 말고 웃어.”
섬랑이 양팔을 긁으며 거세게 반발했다.
“친구는 무슨. 저를 뭐로 보시길래 그런 망언을 하세요?”
“쟤는 너를 보며 친근하게 웃고 있는데?”
섬랑은 고개를 번쩍 들어 손강을 봤다.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친근하게 웃긴 개뿔, 딱 봐도 비웃는 표정 아닌가?
섬랑은 이를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손강도 해맑게 웃으며 똑같은 행동을 했다.
구경꾼들이 두 소년을 번갈아 보고 함성을 질렀다.
“이야! 사이가 좋구나! 네 녀석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죽이겠다 이건가?”
“둘 다 내일도 이겨서 결승에서 만나라!”
섬랑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나야 당연히 올라가겠지만 저 녀석이 그럴 수 있으려나.”
정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했다.
“그만 가자.”
“네? 아직 한 판 남았는데 안 보실 거예요?”
예기주 양방이 다음 생사투 출전자들을 호명했고, 극랍염가(克拉閻家) 염기웅과 객십설가(喀什薛家) 설종위가 비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정광은 두 아이를 힐긋 보고 설명했다.
“누가 올라가도 내일 손강에게 질 텐데 뭐 하러 시간 낭비를 해?”
“……!”
섬랑은 눈을 크게 떴다가 벌써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정광과 자오를 급히 따라갔다.
‘대인께선 손강을 그렇게 높이 보시는 건가?’
극랍염가 녀석도 객십설가 놈도 마도칠대가문의 적자답게 강해 보였는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손강을 위에 놓다니.
아니, 그놈까지 갈 것도 없었다.
당장 내일 팔이 잘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오경을 꺾고 솟구쳤던 자신감이 사그라들었다.
‘망할. 본선이라 그런지 뭔가 다르긴 하네.’
침울해지는 것도 잠시.
섬랑은 두 눈을 빛내며 뛰어가 정광 옆에 붙었다.
“대인, 객잔으로 돌아가면 내일 팔이 안 잘리게 수련시켜 주실 거죠?”
“당연하지.”
“헤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근데 수련하다가 잘리는 건 내 책임이 아니야.”
“……하아. 역시 그러실 줄 알았어요.”
섬랑이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걷자 자오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하하. 아직도 단주를 모르느냐? 실제로 그러실 리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대신 팔이 잘리는 것만큼 아프고 괴롭겠죠.”
“크흠. 진짜 독비(獨臂)가 되는 것보단 나을 테니 기운 내고.”
“네. 정말 큰 힘이 되네요.”
섬랑은 힘없이 걷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산에서 내려가는 방향이 아닌데…… 아. 먼저 신전으로 가서 아줌마와 관 숙수를 데려가야지.’
생각대로였다.
얼마 안 가 그새 익숙해진 신전이 보였다.
익숙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행색이 남루한 자들이 우두커니 서서 하늘로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전오가 사람들이잖아. 아! 오경을 화장하는 건가?’
섬랑은 오경을 귀천시킨 당사자였기에 화전오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다.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조용히 지나가자.’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나 한 걸음 내딛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피해?’
섬랑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자연히 발소리가 커질 수밖에.
한쪽 귀가 없는 중년인이 고개를 내려 섬랑을 쳐다봤다.
화전오가의 가주이자 오경의 아비였다.
섬랑은 걸음을 멈추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뭐라고 하면 되지?’
잠시 고민하는데 중년인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쓸 것 없다.”
“……네?”
“경이는 해야 할 일을 했고 너 또한 그랬을 뿐이야.”
“……그렇긴 하네요.”
“게다가 너는 친절까지 베풀지 않았느냐?”
아들의 시신을 수습해 사라질 때까지 비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아 사람들이 더 크게 환호성을 지르지 않도록 배려했던 행동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네게 유감은 있으나 원한은 없으니 가던 길을 가거라.”
“그럼 이만.”
섬랑은 포권하고 걸음을 떼다가 단 한 걸음만 내디디고 멈춰 섰다.
“저, 근데요.”
“말해라.”
“지금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거. 오경 맞죠?”
“그렇다.”
“유골은 어떡하실 거예요?”
“고향으로 데려가서 좋아하던 자리에 묻어줄 거다.”
“음…….”
섬랑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은근히 물었다.
“저승길 노잣돈이라도 주고 싶은데 괜찮죠?”
중년인이 단칼에 거절했다.
“본가는 돈에 몸을 팔지만 동정받지는 않는다.”
“동정이 아니라 선물인데요.”
섬랑이 반발하자 중년인은 날카롭게 노려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반박했다.
“네 입장만 강요하는구나.”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섬랑은 코를 몇 번 찡긋거리다가 다시 한번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잘 가거라.”
섬랑이 발걸음을 옮기자 정광과 자오도 따라갔다.
신전 대문 앞에 거의 이르렀을 때 정광이 입을 열었다.
“저들을 돕고 싶어?”
“……네.”
“왜?”
“……오경만 봐도 알잖아요. 쓸 만한 애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 쭉정이보단 알맹이가 있는 녀석들이 많겠지. 어떻게 도우려고?”
“고용해서 일을 시키려고요.”
“네 수족으로 부리겠다고? 그걸 좋아할까?”
“최소한 쓸 만한 수준이 될 때까지 개죽음당하지는 않겠죠.”
“그럴듯하네. 그런데 왜 안 도와?”
“여건이 안 돼서요.”
“내가 도와줄까?”
섬랑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가 한 일이니까 제가 책임질 거예요.”
“뜻은 가상하다만 그 전에 다 죽어버리면?”
“……!”
섬랑이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정광이 피식 웃었다.
“네가 예선에서 싸우며 번 몫이 있잖아.”
“아!”
“전표는 지금 줘봐야 종이 쪼가리일 뿐이고 향리객잔에 있는 황금마차에서 떼줄게.”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하면 네 원래 몫에서 일할만 제하자.”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잠시만요. 금방 다녀올게요.”
섬랑이 화전오가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자오가 웃었다.
“하하. 천마신교에 마협(魔俠)이 나왔군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지만 섬랑에게는 딱 들어맞는…… 음?”
자오의 시선이 정광에게 옮겨졌다.
“왜요?”
“하하. 어떤 산에 이런 이상한 별호로 불리는 분이 있으셔서 말입니다.”
정광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깜빡 잊고 있었네요. 무당혈선(武當血仙) 대진 도장께선 무당산에서 잘 지내고 계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