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93화
감회
탁목이봉(托木爾峰)은 한등격리봉에 내려왔던 천신(天神)이 자신의 본가인 하늘과 더 가까운 곳을 원해서 택한 산이니만큼 천산산맥에서 제일 높았으며 그 높이가 거의 이천오백장에 달했다.
산세도 무척 험하기로 유명했는데 깎아지른 듯한 빙벽과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만년설을 마주하면 그 위용에 압도되어 천신에 대한 경외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섬랑도 그랬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풍경을 감상했다.
“우와! 멋져라. 위엄이 철철 넘치네요. 천신께서 보금자리를 꾸미실 만한데요?”
정광의 생각은 달랐다.
아주 오래전, 천신인 것처럼 행세하며 천마신교를 창교(創敎)했던 선조를 저주했다.
‘사기를 쳐서 세력을 모은 건 좋은데. 터를 잡아도 하필이면 이런 곳에 잡다니.’
오르내리기 힘들뿐더러 기후 또한 혹독하기 그지없었다.
반란을 일으킨 형을 피해 몸을 숨길 만한 산을 고른 건 이해하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섬랑은 짧은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이야! 정말 끝내주네. 구름 위로 올라와서 굽어보니 마치 신선이 된 것 같아.”
정광은 하도 어이가 없어 핀잔을 줬다.
“마인이 신선은 무슨. 정파로 갈아타려고?”
섬랑이 정색하며 손을 저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세상에 신선이 어딨어요? 말코 도사 놈들이 사기 치는 거잖아요. 그런 협잡꾼들과 부대끼며 살 바엔 차라리 죽을 거예요.”
정광은 정파 최고 명문인 구파일방 중 하나요, 도교의 성지인 곤륜파(崑崙派)의 도사.
‘넌 이미 죽어 있다’라고 말하려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지.’
태어난 이래로 안 좋은 얘기들만 들으며 컸을 텐데 어떻게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가면 곤란해.’
머리가 굳어버리기 전에 직접 보고 느끼게 해서 더 큰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섬랑.”
“네?”
“이립(而立)이 뭔지 알아?”
“하! 저를 뭐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섬랑이 가슴을 활짝 펴고 입을 열었다.
작은 입에서 흘러나온 하얀 입김이 세찬 바람에 부딪혀 어지러이 흩날렸다.
“공자(孔子)가 서른 살에 자립했다고 자랑하면서 우매한 너희들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거냐며 놀린 거죠.”
정광은 잠시 고민했다.
뒤통수를 한 대 후려쳐야 하나, 하려던 말을 꺼내야 하나.
그래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기에 주먹 쥐었던 손을 풀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선다는 게 뭘 의미할까?”
섬랑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광의 손을 힐끔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돈을 충분히 버는 거 아닐까요? 돈이 있어야 따로 나와서 살 수 있으니까요.”
옆에서 조용히 걷던 나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나 깊은 한숨인지.
오답이란 의미 아닌가?
섬랑은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무, 물론 무공도 강해야죠. 그래야 돈을 지킬 수…… 아, 아닌가? 나 소저, 왜 자꾸 한숨 쉬는 거예요?”
나민은 쌀쌀맞게 쏘아붙이려다가 정광의 말을 듣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잘 아네. 돈과 무공. 제일 중요한 것들에 속하지.”
섬랑의 흔들리던 벽안이 남보석(藍寶石)보다 더 화려한 빛을 발했다.
“역시 대인이시네. 암요. 그렇고말고요.”
“하지만 그것들을 손에 넣으려면 선행되어야 할 게 있어.”
“항상 독심(毒心)을 품고 손속은 가차 없어야 하는 거죠?”
“제법이네.”
“으하하. 뭐 이런 걸 가지고. 앞으로도 아낌없는 지도 편달을 부탁드릴게요. 지금처럼 상냥하게요.”
“그런데 내가 알려주려던 건 그런 것들이 아니야.”
정광은 손가락으로 섬랑의 중단전 옥당(玉堂)을 가볍게 짚었다.
“마음을 먼저 세워. 그래야 스스로 설 수 있어.”
“네? 그게 무슨 뜻이죠? 아! 혹시…….”
섬랑이 자신의 옥당에 잠들어 있는 마혼(魔魂)의 파편을 입에 올리려 하자 정광이 제지했다.
“네 생각이 맞아. 다른 것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얘기지.”
섬랑이 몸을 부르르 떨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다짐했다.
“으으…… 그래야죠. 반드시 그럴게요.”
“너 자신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저한테도요?”
“네 마음이 언제나 옳을 리는 없잖아.”
정광은 발걸음을 옮기며 섬랑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었다.
“마음은 감정, 생각, 기억이 자리 잡거나 생겨나는 곳이야. 네가 무언가를 직접 보진 않고 남을 통해 듣기만 했다고 치자.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그로 인해 일어난 생각, 그리고 정리되어 굳어진 기억이 제대로 된 걸까?”
섬랑이 이맛살을 좁히며 듣다가 부정했다.
“아닐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런 편이지. 거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차후에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이미 자리 잡은 마음을 고치긴 힘들어.”
“왜요?”
“그냥 예전처럼 있는 게 굳어져 있던 마음을 허물고 새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쉬우니까.”
“뭔가 알 듯 말 듯 하네요.”
섬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광이 웃었다.
“하하. 간단히 정리해 주는 게 낫겠네. 일이 잘 풀려서 소교주가 되고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중원에 나가 봐. 유람하며 경험을 쌓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거야.”
섬랑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어렸다.
“어쨌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중원으로 가서 실컷 놀아보라는 말씀이죠?”
“이립을 얘기한 건 예를 들려고 그런 거고. 실력을 쌓다가 너무 늦기 전에만 경험해 보면 돼.”
섬랑의 눈이 더 뜨거워졌다.
“아뇨. 이왕 가는 거, 최대한 빨리 가야죠. 이립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약관이 되면 바로…….”
“이런. 점점 더 빨리 죽으려고 용을 쓰네.”
“……생각해 보니 이립쯤이 적당하겠네요.”
“그것도 빠를 텐데. 뭐 네 목숨이니 알아서 해봐.”
섬랑이 입술을 삐죽였다.
“너무 무시하시네. 대인처럼 약관의 나이에 해치울 순 없겠지만 이립쯤엔 꼭 해낼 거예요.”
“나처럼이라니?”
“대인께서도 말씀하셨던 과정을 거쳐서 이렇게 강해지신 거잖아요.”
“나는 원래 강했는데.”
“…….”
언제부턴가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일행이 쓴웃음을 지었다.
섬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다시 주변 풍경을 구경했다.
“와아! 절경 중의 절경이로구나!”
“자꾸 소리 지르지 마. 그러다 눈사태 난다.”
“흡! 지, 진작 말씀해 주시지.”
섬랑은 숨조차 조심히 쉬면서 잰걸음을 놀렸다.
정광은 성큼성큼 걸으며 머릿속의 기억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비교했다.
‘길을 깔끔하게 닦아놨네. 쓸데없는 데 돈을 썼어.’
전생의 정광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었으나 연가 놈이나 마뇌나 위엄을 세우는 걸 좋아하니 이랬을 것이다.
‘길에서 더 볼 건 없고. 빨리 가볼까.’
섬랑을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멨다.
섬랑은 비명을 지르려다가 간신히 참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정광이 이러는 이유를 눈치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정광이 일행을 한번 둘러보고 산 위쪽을 가리켰다.
“슬슬 달려보죠.”
마뇌와 맞닥뜨릴지도 몰라 귀곡자는 향리객잔에 남겨두고 흑서와 민현유를 호위로 붙인 상태.
정광 일행은 신법을 펼쳐 산을 올랐다.
산이 너무 높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광은 신형을 세우고 천마신교 총단을 훑어봤다.
‘어라? 여긴 안 건드렸잖아. 돈이 부족했나?’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드높은 담과 그 위로 솟은 거대한 전각들.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외관이 두 눈에 깊게 새겨졌다.
‘흐음. 기분이 이상하네.’
그래도 고향이라 그런 걸까.
가만히 보고 있자니 남다른 감회가 가슴을 메웠다.
수구초심(首丘初心) 따위는 전혀 없는 줄 알았건만, 그토록 지겨웠던 이곳이 이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줄이야.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정광은 감회를 털어내고 대문을 바라봤다.
총단 경비를 책임지는 호교당(護敎堂) 무인들이 엄숙하게 번(番)을 서고 있었다.
‘애들을 제대로 굴리는 건가. 나쁘지 않아. 아니지, 나쁜 거잖아.’
전생의 호교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 칭찬했지만 총단에서 일을 벌이려 하는 지금의 정광에겐 좋은 일이 아니었다.
‘어라? 뭐야 저놈은? 저 나이를 먹고도 저러고 있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강산이 아무리 변해도 저 녀석까지 바뀔까.
어찌 된 연유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소가주님, 가시죠.”
“그러세나.”
정광은 단영을 앞세워 대문으로 다가갔다.
단영이 누가 봐도 우두머리인 노인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삼향주(三香主)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계셨습니까?”
노인은 마도칠대세가 중 하나인 고이륵단가의 소가주가 존칭을 써가며 인사하는데도 절도 있게 포권한 뒤 딱딱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신 뉘시오?”
“단영입니다.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어디서 오신 뉘시오?”
노인이 앵무(鸚鵡)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자 단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신분을 증명하는 옥패(玉牌)를 내밀었다.
“철두철미하신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십니다.”
노인은 아무런 말 없이 옥패를 뚫어져라 살피다가 돌려줬다.
“고이륵단가 소가주셨구려. 총단에는 무슨 일로 오셨소?”
“본가의 빈객이 멸혼생사투 본선에 출전하게 되어 등록하려고 왔습니다.”
노인의 시선이 정광의 어깨 위에 늘어져 있는 섬랑에게 향했다.
멸혼생사투에 참가할 만한 아이는 섬랑밖에 없어서였다.
“목패(木牌)를 줘라.”
정광이 대신 나섰다.
“여기요.”
노인은 정광을 흘깃 보고 멸혼생사투 본선 참가 자격을 증명하는 목패를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섬랑을 주시했다.
“다른 곳도 아닌 묵영권가(黙影權家)의 적자가 성명을 버리고 별호를 쓰는 것이냐?”
“얘기가 길어지네. 잠시만요.”
정광은 그제야 섬랑을 내려놨다.
섬랑은 헛구역질을 몇 번 한 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대꾸했다.
“그런데요.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노인은 섬랑을 빤히 보다가 목패를 내밀었다.
“진품인 것을 확인했으니 상관없다. 목패는 당사자인 네가 가지고 다녀라. 출전 등록은 예기(禮旗)로 가면 알아서 해줄 거다.”
섬랑이 얼결에 목패를 받자 노인은 정광을 응시했다.
“어디서 온 누구냐?”
정광이 씩 웃었다.
“소문으로 들으셨을 텐데 왜 물으세요?”
“어디서 온 누구냐?”
“쿠차에서 온 진혼요. 우연히 묵영권가의 무공을 익혔고 섬랑에게도 가르쳐 줬죠. 지금은 고이륵단가 빈객 신분이고요. 단 소가주께서 확인해 주실 거예요.”
정광의 장담대로 단영이 보증하겠다고 하자 노인은 다른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정광이 더 빨랐다.
“총단분들은 예의가 없네요. 상대 신분만 묻고 본인이 누구인지는 함구하는 게 일상인가 봐요.”
노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호교당 삼향주 곽상이다. 왜 역용을 하고 있는 것이지?”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낯을 많이 가려서요. 역용을 하면 마음이 편해져서 이러고 다녀요. 교칙(敎則)에 어긋나는 건 아니잖아요.”
“네 말대로 교칙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곽상은 자오를 노려봤다.
“저자도 너와 같은 이유로 역용을 한 것이냐?”
“아뇨. 너무 못생겨서요.”
정광은 자오와 관엽을 가리키며 역시 고이륵단가의 빈객이라고 소개했다.
단영이 다시 보증하자 호교당 무인들은 정광, 자오, 관엽의 신상을 깨끗한 목패에 적었다.
그사이 나민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했는데, 곽상은 오로나가의 금지옥엽을 보고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신표만 확인했다.
그리고 신상이 적힌 목패를 각자에게 나눠준 뒤 단영에게 당부했다.
“소가주가 보증하셨으니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단가가 책임을 져야 하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들어가시오. 총단에 오신 걸 환영하오.”
거대한 문이 소음을 내며 열렸다.
섬랑은 정광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나직이 속삭였다.
“대인. 향주면 별것 아니죠?”
“대단한 지위는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대인의 역용을 알아봐요? 대단한 고수라는 말인데 총단 사람들은 다 저래요?”
“그건…….”
섬랑이 눈을 크게 뜨고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역시 총단은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칠대가문의 대장원도 대단했으나 총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넓은 토지에 하늘을 찌를 것처럼 높다란 전각들이 수없이 세워져 있었다.
섬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내 집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중에 여유가 되면 저쪽에 큰 연못이라도 만들어서 수공(水功)을 수련해 볼까? 대인 생각은 어떠세요?”
어떻긴 뭘 어때.
정광은 섬랑의 질문을 무시하고 또 다른 감회에 젖었다.
‘건물은 거의 그대로인데 다른 건 다 변했네.’
전생에 말년에 이르렀을 때 어찌나 심심하던지.
누가 반란이라도 일으켜 줬으면 하는 마음에 총단을 보호하던 것들을 전부 없애 버렸다.
헌데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상당히 뛰어난 것들로 총단을 뒤덮은 것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이것들을 촘촘히 까느라 총단 외관에 돈을 못 바른 거였어.’
눈에 보이는 삼엄한 경비가 다가 아니었다.
기감을 퍼뜨리자 곳곳에 은신해 있는 무인들의 기척은 물론이오, 수많은 진법과 기관 장치가 일목요연하게 느껴졌다.
‘정말 괜찮네. 그래, 이쯤은 되어야 섬랑과 멸혼생사투를 이용해서 빙 돌아온 보람이 있지.’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편하게 들어와 쉽게 끝낼 수 있는 길이었다.
‘가만. 연가 놈과 마뇌를 죽이려면 꽤 많이 망가뜨려야 할 텐데.’
제 모습을 잃기 전에 머릿속에 담아두게 해야 했다.
“나 소저.”
“네, 진혼.”
“숨어 있는 무인들이 느껴져요?”
“있을 거라 짐작은 했으나 전혀 모르겠습니다.”
“진법과 기관 장치는요?”
“부끄럽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부끄럽긴요. 그게 정상이죠.”
나민이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 해도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거늘, 그런 그녀에게 읽혀버리는 것들이라면 무엇에 쓸까.
“티 안 나게 가려드릴 테니까 ‘그 눈’으로 보세요. 똑똑히 보시고 훗날 더 나은 것들을 강구하셔야 해요.”
나민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새카만 동공이 확대되며 보이지 않던 것들을 잡아냈다.
‘아! 정말 대단하구나!’
감탄도 잠시.
나민은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담기 시작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것들도 빠짐없이 기억했다.
나중에 풀어낼 지식을 쌓게 되면 그때 파고들어 깨우쳐도 절대 늦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고 형태가 복잡해 곧 한계에 부딪혔다.
정신력을 너무 쏟아부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가 핑 도는 그때.
정광이 손을 잡았다.
그 손을 통해 더없이 순수한 기(氣)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덕분에 머리가 바로 맑아졌으나 크나큰 의구심이 들었다.
‘이건 마기가 아닌데? 설마 정파 내공?’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직접 대해보진 못했지만 관련된 서책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던가.
그 어떤 정파의 것이라도 이렇게까지 깨끗하고 자연스러울 수는 없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기에…….’
정광이 그녀의 상념을 흩트렸다.
“이거야 원. 떠먹여 드려도 드시질 않네.”
“아!”
나민은 정신을 집중했다.
사방을 둘러보며 닥치는 대로 암기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불청객이 나타났다.
능력을 쓸 필요도 없이 뻔히 보이는 미청년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역시 날카로운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나 소저. 그자가 누구길래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