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454화 (453/569)

2부 183화

설마

정광은 향리객잔에 도착하자마자 민현유부터 찾았다.

“현유.”

“네, 대인. 늦으셨군요.”

“나 두 시진 전에 돌아온 거야.”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겁니까?”

“사고는 무슨.”

정광은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히 얘기했다.

“오다가 길을 잃어서 헤맸어. 창피하니까 진작 온 거로 하자.”

민현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밤이라 해도 임가 대장원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라 해봐야 뻔하거늘, 그걸 헷갈려 두 시진이나 헤맸다니?

객잔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기이한 마공으로 벽을 통과해서 몰래 들어온 사람이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예전이라면 한 번쯤 받아쳤겠지만.

최근 정광에게 받았던 강렬한 교육에 대한 기억이 재빨리 위험 신호를 보냈다.

“맞습니다. 대인께선 진작 오셨지요.”

“기특해라. 한 단계 성장했구나.”

민현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과찬이십니다. 어서 올라가셔서 푹 주무십시오.”

“응. 수고.”

다음 날 아침.

정광은 잠에서 깨어나 운기조식을 한 뒤 일 층으로 내려갔다.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모여 있던 일행이 인사를 건넸다.

정광은 일일이 답례하다가 민현유의 차례가 되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얼굴에 눈그늘이 내려앉았네. 잠을 설친 거야?”

민현유가 조용히 설명했다.

“새벽 내내 난리가 났었습니다. 이녕이 아예 뒤집혔지요.”

“왜?”

“임가에서 횃불을 밝히고 곳곳을 들쑤셨습니다. 그 연유를 알아보느라 이렇게 됐습니다.”

“흥미롭네. 표면적인 이유부터 말해봐.”

“임가에 수상한 자들이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찾고 있다더군요.”

“진의는?”

민현유는 정광을 물끄러미 보다가 대답했다.

“마령강시가 갑자기 사라졌답니다. 그것도 두 구 모두.”

“오. 진짜?”

다른 이들은 미리 들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으나 정광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난리가 날 만하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제 광명좌사자님은 어쩌나.”

“마령강시들을 찾아도 가볍지 않은 처벌을 받겠지만 못 찾으면 교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 총단에 돌아가기 전에 압송될지도 모릅니다.”

“임가의 협조만 믿고 기다릴 순 없으니 두 눈이 벌게져서 사방을 헤집고 있으시겠네.”

“도올대를 이끌고 새벽부터 그러고 있습니다.”

“도올대까지?”

“그렇습니다. 허나 오래 그러지는 못할 겁니다. 사흉대는 교주의 명만 받드니까요. 예정대로 모레 아침이 되면 총단으로 떠날 겁니다.”

“그럼 광명좌사자님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지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겁니다.”

“저런. 안쓰러워라. 밥도 안 넘어가시겠네.”

정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요리는 문제없지?”

“최종 예선 마지막 날이니만큼 솜씨를 부려봤습니다.”

“그래, 우리라도 열심히 먹고 힘을 내야지. 섬랑, 넌 특히 더 그래야 해.”

섬랑이 젓가락을 쥐며 의젓하게 말했다.

“맡겨주세요, 대인.”

정광 일행은 배를 든든히 채우고 임가 대장원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사이 정광은 귀곡자를 방으로 불러 간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아침을 먹기 전부터 제정신을 찾았던 귀곡자는 굳은 얼굴로 듣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여전하시군요.”

“뭐가?”

“수하들을 나름 아끼시는 것 말입니다. 호경과 관태는 기뻐하며 떠났을 겁니다.”

“노잣돈을 두둑이 줬으니 당연히 그래야지.”

“오랜만에 상대해 보시니 어떠십니까?”

“예전보다는 확실히 까다로워. 그래도 자연지기라는 실마리를 잡았으니 너를 계속 치료하며 궁리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소인이 쓸모가 있어 다행입니다.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그 말, 후회하지 마.”

귀곡자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다가 잔잔해졌다.

“물론입니다. 지존께선 수하들을 세상 그 무엇보다 많이 아끼시는데 무슨 후회를 하겠습니까?”

“그런 녀석이 왜 목소리가 떨려.”

정광은 피식 웃고 다른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총단에서 온 서신에 적힌 내용과 모서형과 나눈 대화였다.

귀곡자의 흉악한 얼굴이 더 보기 싫게 변했다.

“모서형은 화끈한 여인이니 알아서 잘하겠지만 총단이 문제군요. 꽤 귀찮아지실 것 같습니다.”

“이용하기 나름이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의외로 호재가 될지도…….”

귀곡자는 말끝을 흐리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참고해서 나민을 가르치겠습니다. 섬랑의 개념도 새로 잡아줘야겠군요.”

“걔들, 잘 따라오고 있어?”

귀곡자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당장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으나 싹수가 보이는 아이들이니 큰 염려는 안 하고 있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잘해봐.”

정광은 귀곡자와 함께 일 층으로 내려갔다.

떠날 채비를 마친 일행을 둘러보며 손뼉을 짝 쳤다.

“자. 슬슬 가보죠. 현유, 너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고.”

정광은 사람들과 황금 마차를 끌고 나갔다.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독두 패거리가 퀭한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은 함께 임가 대장원으로 향했다.

섬랑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옆에서 걷는 귀곡자를 올려다봤다.

“현로. 하나 여쭤봐도 돼요?”

“호기심은 발전의 초석이지. 그걸 해소하려는 마음가짐은 기둥이 되고.”

“하아. 노망난 노인 아니면 현인이라니. 왜 이렇게 극단적이세요? 그냥 ‘그래라’ 하시면 얼마나 좋아.”

귀곡자가 담담히 나무랐다.

“네 마음에 드는 사람과만 부대끼며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네 꿈을 이루려면 수많은 이들을 접하고 거둬야 한다. 그때도 입맛에 맞는 이들만 받아들일 생각이라면 지금 포기하는 게 나을 게다.”

“네, 네. 제 생각이 짧았다는 걸 인정할 테니 그만 패세요.”

섬랑은 두 손을 들어 항복한 시늉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민현유 아저씨가 객잔에 남은 거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왜죠?”

“겁을 먹었구나.”

섬랑이 정색했다.

“겁이라뇨. 저는 그런 거 몰라요.”

“싸울 때는 그렇지만 머리를 쓸 때는 아니야.”

귀곡자는 엄하게 꾸짖었다.

“아까부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린 결론이 있지? 혹시 틀렸을까 걱정돼 아예 답을 물은 것 아니냐?”

“그게 어때서요.”

“스스로 생각한 바를 솔직히 말하고 질문하는 것과 숨기고 그러는 것은 천지 차이다. 네 모자란 부분을 확실히 드러내야 가르치는 이가 제대로 도울 수 있어.”

섬랑은 미간을 찡그리고 묵묵히 걷다가 사과했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네요. 죄송해요, 현로.”

귀곡자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 보인 모습은 네가 지닌 장점 중 하나지. 칭찬할 만해.”

“병 주고 약 주고 아주 능수능란하시네요.”

섬랑은 한숨을 내쉬고 주변을 둘러봤다.

임가 무인들이 여러 무리로 나뉘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민현유 아저씨가 남은 거요. 저 사람들이 객잔에 와서 수색할까 봐 그런 거죠?”

“맞다.”

“근데 아리송한 게 있어요. 켕기는 게 없으니 다른 점소이 아저씨들에게 맡기고 나오면 되는데 왜 굳이 남은 건가요? 이래저래 귀찮기만 할 텐데요.”

“틀렸다.”

“네?”

“칠대가문조차 향리객잔을 꺼림칙해하는 건 알지?”

“물론이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칠대가문과 비견할 순 없어.”

귀곡자는 찬찬히 설명했다.

“임가가 객잔에 들이닥치면 수색을 허락할 수밖에 없다. 허나 처음부터 그러는 것과 버티다가 그러는 건 엄연히 다르지. 향리객잔 이녕 책임자와 민현유 중에서 누가 임가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야 민현유 아저씨겠죠. 하지만 이곳 책임자는 따로 있잖아요. 이런 일이 있을 때 알아서 대응하라고 임명한 거 아닌가요?”

“가벼운 사안이 아니야. 선례를 세우는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기면 이번처럼 적용될 터. 민현유가 이녕에 없었으면 모를까, 당연히 나서야 해. 그게 제대로 된 상관이다. 그러고 보니 너도 참 많이 변했구나.”

섬랑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변하다뇨?”

“네가 쿠차에서 아이들을 이끌었을 때를 떠올려라. 누군가를 칠 때 제일 앞장서고 도망칠 땐 마지막까지 남은 게 누구였지?”

“당연히 저…… 망할.”

섬랑의 얼굴이 핏물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목소리도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넓은 곳으로 나와서 지내다 보니 간이 부었네요. 아니지. 완전히 썩은 건가.”

섬랑은 너무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쿠차에서 아무것도 없이 구를 때는 위에서 빈둥대며 거드름 피우는 자들을 욕했었는데 그사이 조금 강해졌다고 그게 당연한 처사라 생각한 것 아닌가?

“아. 진짜 구역질나네.”

섬랑이 자책하자 귀곡자가 위로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잘못을 금방 깨닫고 후회하는 건 큰 장점이다. 게다가 너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 고치려고 하지 않느냐?”

귀곡자는 섬랑의 축 늘어진 작은 어깨를 토닥였다.

“네 이런 모습이 나를 안심하게 한다. 장차 너를 보필할 민이도 그럴 것이야.”

섬랑은 곁눈질로 나민의 눈치를 살폈다.

나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귀곡자가 던졌던 화두에 다시 빠져들었다.

섬랑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야차보다 더 무서운 잔소리꾼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자신감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섬랑은 허리를 곧게 펴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현로, 고마워요. 꼭 오래 사셔야 해요.”

“허허. 이유를 듣고 싶구나.”

“전대 교주님처럼 완전무결한 지존이 된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요.”

“……완전…… 뭐?”

귀곡자는 입을 떡 벌렸다가 급히 얼버무렸다.

“그, 그래. 완전무결한 분이셨지. 불가능하겠지만 응원하마. 오래 살지는 못할 테니 구천에서.”

“아 진짜. 대인이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 왜 안 된다고 하세요? 반드시 해낼 거예요.”

섬랑은 시선을 정광에게 돌렸다.

“대인, 내공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셨죠?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하셔도 돼요.”

정광은 씩 웃으며 내공을 거뒀다.

“영악한 녀석. 감히 나를 부려먹어?”

“좀 봐주세요. 덕분에 제가 한 단계 성장했잖아요.”

“그래. 이 정도면 많이 남는 장사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임가 대장원이 보였다.

여전히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새벽부터 이어진 소란을 얘기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임가 사람들이 이녕에 쫙 깔렸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간밤에 수상한 자들이 침입했다는 말 못 들었나? 그자들을 찾고 있다던데.”

“누가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 광명좌사자가 도올대와 함께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하긴. 임가 일에 그들이 나설 리 없지. 이해가 안 가는군.”

그때, 임가 대장원의 정문이 열리고 사람이 나왔다.

전과 다르게 가주 임종호 단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항상 거들먹거리며 나오던 광명좌사자가 없어.”

“도올대도. 아직도 수색하고 있나 봐.”

“궁금해서 미치겠네. 미친 척하고 가주에게 물어볼까?”

천막으로 향하던 임종호가 눈썹을 꿈틀거리는데.

정광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자! 자! 오늘이 마지막 판이에요! 다 함께 화려하게 장식해 보죠!”

사람들의 이목이 정광에게 쏠리고.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그래! 궁금한 건 나중에 생각하고 가자!”

“오늘이 바로 이 어르신께서 도신이 되는 날이다!”

정광은 양 손바닥을 위로 몇 차례 들어 올려 호응을 유도하고 전주들을 돌아봤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네요.”

전주들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독두, 표정이 왜 그래요?”

“하하. 아쉬워서 말입니다.”

“솔직히 걱정돼서 그러죠? 광명좌사자님요.”

독두 패거리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정광은 그들 하나, 하나와 눈을 마주치며 안심시켰다.

“꽤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

전주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빈말을 안 하는 진혼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하다니!

아니,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게 어딘가!

무간지옥에 떨어졌는데 하늘에서 굵은 동아줄이 내려온 걸 본 것 같은 심정이었다.

독두가 대머리를 번쩍이며 소리쳤다.

“대인을 믿고 달리겠습니다! 뭣들 하는가? 어서 준비하세!”

전주들은 수하들과 함께 부지런히 움직였다.

자연히 장내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임종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광을 주시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군.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꾸었어.’

어제도 그랬다.

정광이 제시한 방안을 놓고 단가 소가주 단영과 깊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결국 전장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는가?

‘허나…….’

섬랑을 밀어달라는 부탁은 아니었다.

자신은 솔깃하지만 아비인 임철환이 극렬하게 반대하는데 어쩔 수 있나.

거절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였다.

‘섬랑 그 아이가 정말 소교주가 되고 본가에 받은 만큼 보답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할 만한 일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섬랑이 싸울 차례가 됐다.

임종호는 비무대에 올라 당당히 선 섬랑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까.’

섬랑과 상대가 마주 서서 병기를 뽑았다.

그리고 격돌하는 순간.

화아아아악-

임가 대장원에서 시뻘건 불길과 함께 엄청난 연기가 치솟았다.

그걸 본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불이야! 임가에 불이 났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새벽에 침입했다던 놈들이 저지른 짓인가?”

그럴 리 있나.

임종호는 천천히 일어나 식솔들에게 명했다.

“내가 확인해 볼 테니 당황하지 말고 사람들을 안심시켜라.”

“네, 가주!”

“소란을 틈타 사특한 짓을 하는 놈이 있으면 즉결처분하고. 생사투도 계속 진행해.”

“존명!”

임종호는 대장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걸으면 걸을수록 무덤덤했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그러다가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가 내부를 확인하자.

‘……!’

임종호의 얼굴에 있는 화상들이 잔뜩 일그러졌다.

화마에 휩싸인 전각 앞에서 어미와 아비가 대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 년 전.

그때 봤던 광경이 아련하게 떠올라 겹쳐졌다.

‘이렇게 비슷할 수가…….’

하지만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한평생 쇠를 두드리며 치열하게 단련해온 마음에 금이 간 걸까?

태상가주 임철환이 온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함을 빽 질렀다.

그것도 반말로!

“이 여편네가 미쳤나! 또 불을 질러? 그것도 이 시국에 내 집무실을?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모서형의 얼굴에 싸늘한 서리가 덮였다.

허나 그녀의 눈은 전각을 집어삼킨 불길보다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없는 게 나으니까 그랬지. 불만이 있으면 내 목을 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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