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445화 (444/569)

2부 174화

풍기는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천마신교에서 좌우광명사자(左右光明使者)는 교주를 제일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지위였다.

그만큼 권한도 막강했는데 광명좌사자는 인사, 재정, 외교를 담당했고 광명우사자는 군무, 사법, 산업을 책임졌다.

천마신교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직위인 만큼 훌륭한 위인들이 맡을 수밖에.

뛰어난 머리와 깊은 학문은 기본이고 무공도 강해야 했다.

그래야 말을 안 듣는 놈은 패서 일을 시킬 것 아닌가?

하지만 정광이 천마신교를 평정하고 다스렸을 땐 달랐다.

문무겸전(文武兼全)한 인재?

그런 애들이 얼마나 있다고.

있어 봐야 이것도 저것도 어중간한 놈들뿐이지.

‘하나만이라도 똑바로 해라, 좀. 응?’

정광은 머리가 되는 인재 두 명을 그 자리에 박기로 했다.

무공이 영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아랫것들이 그 둘을 우습게 보고 말을 안 들으면 정광이 쓱 나서서 놀이 삼아 손봐주면 되는데 뭐가 문제라고.

‘가만. 그렇다고 허구한 날 그럴 수는 없잖아.’

그 짓도 하루 이틀 해야 놀이가 되지 언제까지 할까.

이왕 하기로 한 거, 제대로 했다.

조직 체계를 아예 바꿔 버렸다.

좌우광명쌍뇌(左右光明雙腦)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직속 수하로 두고 좌우광명사자가 하던 일들을 맡겼다.

‘귀곡자와 마뇌라면 그럭저럭 해내겠지.’

기존의 좌우광명사자는 은퇴시켜 주고 새롭게 뽑아 쌍뇌를 무력으로 보필하게 했다.

‘마도칠대가문 핏줄이 아닌 녀석들 중에서 제법 싸우는 놈들로. 멍청하지 않고 욕심이 없는 성품이어야 해.’

그런데 이게 어려웠다.

출신이 맞으면 무공이 안 되고, 무공이 되면 출신이 걸렸다.

어찌어찌해서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교도를 찾았더니 야망이 줄줄 넘치는 놈이 나와 버리는 등 아주 개판이었다.

‘미치겠네. 사람이 이렇게 없나?’

이렇게 복잡한 요소들을 아우르는 인재가 흔할 리 있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정광도 사람이었기에 결국 타협해야 했다.

‘무인이 싸움만 잘하면 됐지. 살짝 멍청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더니 과연.

마음을 바꾸니 인재들이 나타났다.

정광은 칠대가문 소속이 아니고 나름 싸우는 데다 욕심도 없지만 머리가 조금 모자란 녀석들을 좌우광명사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그들이 늙어 죽자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이들을 다시 뽑았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조금 전에 민현유가 언급한 광명좌사자 은호정이었다.

정광은 옛 생각을 떠올리다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유.”

“네, 대인.”

“그 광명좌사자라는 양반, 머리가 흐릿하다고 들었는데 맞아?”

“대인의 기준으론 그렇겠지만 세간의 눈으로 봤을 땐 바보는 아닙니다.”

“나이도 꽤 먹었을 텐데?”

“맞습니다. 칠대가문 태상가주 연배지요.”

“광명우사자는?”

“얼마 전에 죽어 새로운 이가 임명됐습니다.”

“역시 멍청해?”

“그도 대인의 기준으론 그렇겠지만…….”

아까 했던 얘기처럼 세간의 눈으로 봤을 땐 바보는 아니라는 말이 이어졌다.

정광은 내심 탄복했다.

‘마뇌 이 새끼. 권력을 눈곱만큼도 나눠주기 싫어서 부리기 쉬운 놈들만 쓰는구나.’

이렇게 한결같을 수가.

그것도 나쁜 쪽으로 그러니 정말 마뇌다웠다.

‘그래도 세월이 흘렀으니 어느 정도는 변했겠지.’

마뇌도 그렇고 광명좌사자 은호정도 그럴 것이다.

얼마 뒤 이루어질 은호정과의 만남이 기대됐다.

“혼자 오진 않았을 테고. 누구와 왔어?”

민현유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도올대(檮杌隊)에서 일부가 함께 왔습니다.”

정광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가지가지 하네. 힘 좀 줬어.”

도올대라니.

천마신교 최정예 무력대인 사흉대(四凶隊) 중 하나 아닌가?

광명좌사자도 그렇지만 멸혼생사투 최종 예선을 축하하러 보내기엔 과한 자들이었다.

굳이 내려보내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유가 있을 터.

민현유도 동의했다.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겠지요.”

“보고 느껴라, 이거지.”

“칠대가문의 적자가 아닌 녀석들은 예선을 통과하면 본선을 포기하고 사흉대의 일원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라, 이런 뜻을 전하기 위해서란 말씀입니까?”

“뻔하지. 꼬마들이 보기엔 무서우면서도 멋있을 것 아냐.”

도올대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을 좌우명으로 삼는 꼴통들.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데에는 그보다 나은 녀석들이 없으리라.

민현유도 인정했다.

“정예 중의 정예이니만큼 위용이 대단하긴 하지요. 대인의 말씀이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닐걸.”

정광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교주와 마뇌는 최종 예선이 열릴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위엄을 보이려고 할 거야. 도올대를 병풍처럼 세우고 광명좌사자가 그 앞에 서서 떠들게 하겠지.”

“그동안 얼마나 교를 잘 이끌었고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 선전하게 할 거란 말씀이군요.”

“가기 싫어지네. 짜증 나서 그걸 어떻게 들어.”

그래도 갈 수밖에 없다는 건 정광도 알고 민현유도 알았다.

정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탄하는데 민현유가 개의치 않고 마지막 보고를 했다.

“대인, 말씀드리기 죄송하오나 광명좌사자가 이끌고 온 무리 중에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두 명 있습니다.”

“네가? 별일이네.”

정광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민현유가 한숨을 쉬었다.

“소인을 너무 높게 보시는 것 같습니다. 제발 기대치를 낮춰주십시오.”

“그럴 만하니 그러지. 어떤 놈들이길래 그래?”

“방립(方笠)을 깊이 눌러써서 용모를 알아볼 수 없고 들리는 소문도 없습니다. 계속 알아보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뭔가 있는 놈들이겠네. 그럼 그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정광은 가볍게 덧붙였다.

“소문 하나만 퍼뜨려 줘.”

* * *

사라졌던 해가 다시 떠올라 어둠의 끄트머리를 불살랐다.

정광은 푹 자고 일어나 일 층으로 내려가 식사를 했다.

귀곡자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상태였기에 음식을 얼굴에 묻히거나 탁자에 흘리는 일 없이 깨끗하게 먹었다.

이렇게 평소보다 훨씬 보기 좋은 모습이었는데.

섬랑에겐 아니었다.

깨끗한 천을 손에 꼭 쥐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귀곡자를 힐끔거렸다.

반면 나민은 흰자위가 거의 없는 새카만 눈을 빛내며 귀곡자의 식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자신이 밤새 궁리해서 내린 결론이 맞는 것인지 빨리 묻고 가르침을 얻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귀곡자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차로 입가심을 하고 있던 정광이 손뼉을 쳤다.

“자. 자. 이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죠.”

“…….”

실망도 잠시.

나민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정광의 입을 주시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이 되면 멸혼생사투 마지막 예선이 시작될 터.

이번만 통과하면 총단에서 열리는 본선에 참가하게 된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대체 어떤 임무를 내릴까?

정광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기대 이상이었다.

“건의하실 게 있는 분은 기탄없이 말씀하세요.”

“……!”

정광이 남의 의견을 물어?

그것도 이 중요한 시기에?

모두 놀라 눈만 끔벅거리는데 정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없으시면 제가 말하죠. 이번에도 다들 바빠지실 거예요.”

자오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면 됩니까?”

“사실 아직 안 정했어요.”

“……네?”

“상황 봐서 차차 정하죠. 그럼 오늘도 수고하세요.”

“……네.”

수고하라니 해야지.

다들 할 일을 하러 흩어졌다.

“활기찬 아침! 오늘도 가죠!”

섬랑은 관엽, 자오와 함께 후원으로 나가 수련에 매진했다.

“어르신, 잘 부탁드립니다.”

나민은 귀곡자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열변을 토했다.

민현유는 정광의 명을 수행하러 나갔고 정광은 술을 홀짝였다.

아침부터 술이라니.

남들이 보기엔 노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실상은 달랐다.

‘이번엔 변수가 많아.’

정광은 술잔을 손바닥 위에서 빙그르르 돌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녕임가도 그렇고 총단에서 내려온 애들도 그렇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움직여야 해.’

물론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민현유가 알아온 멸혼생사투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를 분석하고 후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섬랑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알려줬다.

“이해했지?”

섬랑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꾸했다.

“사람이 그걸 어떻게 한 번에 알아들어요?”

“그래? 그럼 한 번만 더 말해줄게. 잘 들어.”

“자, 잠깐만요. 종이에 적어도 되죠?”

“그건 자유지만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왜요?”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섬랑은 낌새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더 좋은 방도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있을 리가. 머리뿐만 아니라 몸에도 새겨줄게.”

“자, 잠깐…… 어억!”

정광은 참가자들의 신상과 장단점을 읊으며 그들처럼 공격했다.

그리고 섬랑의 머리와 몸은 물론이오, 혼에도 단단히 새겨주게 되었다.

“역시 이 방법이 정답이었어.”

정광이 만족스러워하자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섬랑이 울분을 토했다.

“끄으으. 내일이 되면 정답인 게 드러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오답이네요! 아파 죽겠단 말이에요!”

“아픔은 순간이지. 네 토양과 네가 가꿔온 나무가 능히 받아들일 만하니까 이렇게 한 거야.”

정광은 섬랑의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넌 많이 성장했어. 자부심을 품어도 좋아.”

잔뜩 일그러져 있던 섬랑의 얼굴이 빳빳하게 펴졌다.

“저, 정말요?”

“응. 아직 갈 길이 까마득해도 최종 예선은 어떻게든 될걸.”

섬랑의 눈이 의욕으로 빛났다.

“어떻게든이 아니라 반드시 해내고야 말 거예요.”

“그러려면 이렇게 누워 있을 시간이 없지.”

“물론이죠! 하압!”

섬랑은 기합을 지르며 일어나 정광을 향해 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대인! 오시죠! 아악!”

정광은 섬랑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고 관엽과 자오에게 당부했다.

“아까 제가 펼친 수법들 보셨죠? 진의를 담아서 하실 필요는 없고 형(形)과 기세만 흉내 내서 섬랑을 상대해 주세요.”

“…….”

관엽과 자오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의를 펼치라 했으면 두 손 들었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그들은 섬랑을 번갈아 상대했다.

섬랑은 이를 악물고 맞서다가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빌어먹을 망치질 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되네.”

정광 일행이 그랬듯이 아침을 먹고 힘을 쓰기 시작한 걸까?

사방에 널린 대장간에서 거슬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어? 대인,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핑계가 너무 구차해서.”

“핑계라뇨. 안 시끄러우세요?”

정광은 일침을 날렸다.

“훗날 전장에서 싸울 때도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럽고 사람들의 비명이 신경 쓰여 못 싸우겠다고 할 거야?”

“그, 그건…….”

섬랑은 변명을 하려다가 포기하고 어깨를 늘어뜨렸다.

“죄송해요. 정신 차릴게요.”

“명심해. 모든 건 마음에 달린 거야.”

“네!”

“그럼 수고해. 점심 먹을 때 보자.”

투지를 불태우던 섬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나가세요?”

“아니. 너무 시끄러워서 자려고.”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요?”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했잖아. 내공으로 소음을 차단하고 자면 돼.”

“……아.”

“그만 간다.”

정광은 객잔에 들어갔다.

귀곡자가 말로 나민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구경하다가 이 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침상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역시 애들은 맞으면서 커야 한다니까. 한계는 있겠지만 그때까진 쑥쑥 자라겠지.’

섬랑과 나민의 얼굴에 한 노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광명좌사자 은호정이었다.

‘얘는 내가 죽은 뒤에 패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공이 상당히 정체됐을 텐데…….’

이렇게 안타까운 일이 있나.

‘아직 안 늦었어.’

정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돼.’

* * *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가 환하게 깨어났다.

정광 일행은 황금 마차들을 끌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멸혼생사투 최종 예선이 열리는 이녕임가 장원.

마지막 예선이라 그런 걸까?

지금껏 치렀던 예선보다 훨씬 더 많은 군중이 운집해 있었다.

정광을 제일 먼저 맞이한 건 독두(禿頭)를 비롯한 전주들이었다.

과할 정도로 격하게 환영하고 은밀히 제안했다.

“대인, 이제 함께 어울려 놀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저희와 술 한잔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멸혼생사투는 교의 후계를 정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였으나 승패를 맞추는 도박이 허용된 즐거운 잔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본선은 달랐다.

권위를 세우려면 분위기를 엄숙하게 해야 하거늘. 나는 저놈, 돈은 얼마 하며 마지막까지, 그것도 총단에서 떠들어대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정광도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흔쾌히 응했다.

“그래요, 그럼.”

전주들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대인.”

“뭘요. 마차는 놓고 갈게요.”

“맡겨주십시오. 오늘도 대인의 무운을 빕니다.”

정광은 일행과 함께 멸혼생사투 출전 등록을 마치고 배정받은 천막으로 갔다.

정광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이도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따갑게 주시하고 있었으나 당사자는 신경 쓰지 않고 할 일을 했다.

‘저기 있네.’

다른 천막에 있는 단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태상가주 놈과 얘기해 봤어?

단영이 담담히 답했다.

허나 그의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지존. 명하셨던 대로 지존에 대해 최대한 좋게 말해봤는데 반응이 영…….

-뭐?

-……아마 태상가주가 너무 나이를 먹어 귀도 먹었나 봅니다. 오늘은 훨씬 더 크게, 미사여구를 잔뜩 넣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정광은 어이가 없어 단영을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도 참 애쓴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해봐.

-존명!

단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광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물론 실망하지도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민현유에게 명을 내리지 않았는가?

정광은 바로 옆에 있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문, 잘 퍼뜨렸어?”

“네, 대인. 오늘 중으로 태상가주 귀에도 들어갈 겁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황금 마차에서 제하면 될까요?”

“흥미로운 얘기네.”

정광이 민현유의 수명을 얼마나 제해줄까 고민하는데.

이녕임가 대장원의 정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하던 정광은 두 눈을 둥글게 휘었다.

‘도올대는 여전하고.’

전장으로 출전하는 것도 아닌데 살기를 줄기줄기 흘리는 꼴이라니. 역시 미친놈들다웠다.

‘은호정 이놈, 그간 잘 먹고 잘살았나? 얼굴에 개기름이 번드르르하네.’

살집도 두툼해진 걸 보니 굴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응? 이건?’

그리고 광명좌사자 은호정의 좌우에서 걷고 있는 방립을 쓴 사내들을 보자…….

정광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새 교주 놈과 마뇌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귀곡자에게 듣긴 했지만.

그 결과가 눈앞에 나타나자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풍기는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두 사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광이 전생에 폐기했으나 새 교주 놈과 마뇌가 복원하려 한다고 귀곡자가 알려준 그것.

마령강시(魔靈僵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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