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0화
안목
정광 일행은 멸혼생사투 삼차 예선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우루무치에서 그곳까지는 대략 팔백리(八百里).
정광은 언제나 그랬듯이 최대한 빨리 가기를 원했고, 최소한의 휴식만 취한 채 말을 재촉해 달리고 또 달렸다.
이미 익숙해진 이들은 그러려니 한다 해도 처음 접하는 사람은 힘에 부칠 수밖에.
일행에 합류해 첫 여정을 시작한 나민은 말달리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으나 얼마 안 가 많은 의문을 품게 됐다.
지금도 그랬다.
“잠깐 쉬었다 가죠.”
정광의 말 한마디에 일행이 동시에 멈췄다.
한쪽 소매가 세찬 바람에 어지러이 휘날리는 중늙은이가 정광에게 말머리를 붙이며 무뚝뚝하게 물었다.
“얼마나 쉴 셈인가?”
“반 시진요.”
“그렇군. 섬랑을 수련시키겠네.”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일세.”
중늙은이 뒤에 타고 있던 섬랑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낯빛만 봐도 피곤한 게 틀림없었지만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보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중늙은이는 잠시 바라보다가 퉁명스레 질책했다.
“느려. 단순하고.”
섬랑의 얼굴이 구겨졌다.
“오늘따라 혀가 기시네. 말로만 하실 거예요?”
“그럴 리가.”
중늙은이는 도신 폭이 좁은 기형도를 꺼내 들고 섬랑을 살벌하게 몰아쳤다.
섬랑은 곧 궁지에 몰렸다.
보법을 죽어라 펼치다가 발이 꼬여 발라당 넘어졌다.
기형도가 세차게 떨어져 내려 목을 치려는 순간.
섬랑이 옆으로 굴렀다.
간발의 차이로 기형도를 피하고 벌떡 일어났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쌍단봉을 뽑아 찌르고 휘둘렀다. 방어가 아닌 공격. 그것도 중늙은이의 급소를 은밀하게 노리는 악랄한 초식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평범한 중년인이 그 초식보다 빠르게 입을 놀렸다.
“그렇지. 잘하고 있다, 섬랑. 병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닌 걸 잘 이해하고 있어.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게 있구나. 짧게나마 얘기해 보자면…….”
절대 짧지 않았다.
중년인은 숨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사이 정광을 쫓아온 마인들이 재빨리 말에서 뛰어내려 판을 벌였다.
대머리 장한이 크게 외쳤다.
“섬랑의 상대는 사람 백정으로 유명한 독비귀도! 승패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요! 독비귀도가 이 수준으로 상대해 주면 섬랑이 앞으로 몇 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맞히는 것으로…….”
그때, 독비귀도가 섬랑의 배를 걷어차 날려 버렸다.
대머리 장한이 입맛을 다시며 다른 제안을 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구려. 허나 놀이가 이것뿐이겠소? 투전(投錢), 검패(劒牌), 쌍륙(雙六) 등 무엇이든 가능하오. 즐겨보실 분은 이쪽으로 모이시오.”
김이 빠져 허탈해하던 마인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도박판이 벌어졌고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나민은 멍하니 지켜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기묘하구나.’
혼란스러운 마음을 알아챈 걸까?
고이륵단가 소가주 단영이 다가와 미소 지었다.
“적응이 안 되는가 보오.”
“솔직히 그렇습니다.”
“무엇이 그렇소?”
나민은 너무 많아 생각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
“독비귀도는 죽었으면 죽었지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위인이라고 들었습니다. 헌데 진혼의 뜻을 먼저 알아채고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군요.”
“마치 수하처럼 보인다는 의미요?”
“그렇습니다.”
“깊이 감복하면 그럴 수도 있지 않소?”
“진혼의 인품에 말입니까?”
“하하. 농도 하실 줄 아는군. 무공을 말한 것이오.”
나민의 생각은 달랐다.
진혼이 어떻게 아비를 설득하는지 직접 봤고 그 엄청난 무위에 탄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비귀도는 여느 사람과 결이 다른 위인이었다.
독비귀도도 힘으로 꺾었을 텐데 아까 말했듯이 그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것으로 명성을 떨친 자 아닌가?
“혈조라는 중년인도 이상합니다.”
단영도 동의했다.
“말이 너무 많긴 하지.”
“그것도 그렇지만 정체가 궁금합니다. 중원 사파무림에서 구르다가 쿠차로 흘러들어 왔다고 들었는데 진혼을 이상할 정도로 떠받들더군요. 그리고…….”
나민은 손가락으로 민현유를 가리켰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천막을 치고 있었다.
“저자, 향리객잔 사람 아닙니까? 민 씨 성을 쓰는 걸 보면 그 일족이 분명한데 왜 가까이 두는 겁니까?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총단에 보고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서일 것이오.”
“상관없다니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어서…… 이런. 나도 농을 한번 했을 뿐인데 왜 그리 노려보시오?”
나민은 흑조에 대해서도 물어보려다가 포기했다.
뭘 말해도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더 해봐야 뭐할까.
대신 단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단영이 희미하게 웃으며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이젠 나에 대해 묻고 싶소?”
“그렇긴 하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바로 맞혔소.”
“힘이 빠지는군요.”
“하하.”
단영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눈이 요사하게 빛났다.
“소저가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지만 결국엔 진혼이 어떤 사람인지로 귀결되는구려.”
나민은 당황하지 않고 응수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내 반응을 떠보려고 이런 건 아오. 허나 어떤 일이 있어도 소저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순 없을 것이오.”
단영은 마지막으로 충고했다.
“알려고 하지 말고 맡은 일을 행하시오. 진혼은 무능력한 자를 싫어하지만 할 일을 안 하는 이는 더욱더 싫어하오.”
“……!”
나민의 눈이 살짝 커졌다.
우루무치에서 떠나기 전 정광이 보냈던 전음이 떠올라서였다.
-똑바로 해야 해. 날 실망시키면 네가 떠나길 원하기 전에 쫓아낼 거야.
왜 갑자기 반말로 그러는지 의아했었는데 단영의 충고를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경고했던 거구나!’
아비를 거역하고 가문에서 나왔다.
쫓겨나면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
한동안 진혼과 일행을 살펴보려 했는데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민은 단영에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나민은 신형을 돌려 섬랑에게 다가갔다.
배를 강하게 얻어맞아 토한 뒤 관엽에게 추궁과혈을 받고 일어서던 섬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예요? 왜 갑자기 그렇게 성큼성큼…….”
“시간이 없다. 가르침을 줄 테니 따라와라.”
나민은 민현유가 쳐놓은 천막 중 한 곳으로 들어가다가 섬랑이 쭈뼛대며 따라오지 않자 뚫어져라 노려봤다.
“무엇 하는 것이냐?”
섬랑은 장탄식했다.
‘망할. 꺼림칙하니까 그러지.’
흰자위가 거의 없는 새카만 눈, 저 눈이 무서웠다.
우루무치에서 떠나기 전, 정광이 나민을 데려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에게 어떤 헛소문을 퍼뜨렸는지 듣고 길길이 날뛰었을 때도 저 눈을 보고 겁을 먹지 않았던가?
‘차라리 관 숙수에게 한 판 더 붙자고 할까?’
어림도 없지.
관엽이 등을 떠밀었다.
“어서 가서 배워.”
“하아아. 네.”
섬랑은 터벅터벅 걸어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나민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짓했다.
“우선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혀라.”
“잠깐 운기조식해도 돼요?”
“평정만 되찾을 수 있다면 좋을 대로 해.”
섬랑은 가부좌를 틀고 숨을 몇 번 쉬다가 포기했다.
“너무 빤히 쳐다보셔서 주화입마에 빠지겠네요. 그냥 말씀하시죠. 뭘 가르쳐 주실 거예요?”
“보기보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구나.”
“……무아지경에 빠질 거니까 건드리지 말아요.”
발끈해서 선언했지만 무아지경이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쿠얼러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묵영보를 수련하다가 비슷한 것을 맛보긴 했으나 이번까지 그런 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섬랑은 소주천을 마치고 당당히 가슴을 폈다.
“시간은 소중한 거니까 여기까지만 하죠. 마음 가라앉혔어요.”
나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세가 심하구나.”
“아닌데.”
“빤히 보여.”
“아 진짜. 사람을 판별한다는 그 능력으로 들여다본 거예요?”
“이번엔 그럴 필요도 없었지.”
섬랑이 받아치려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나민이 천막 한 면을 걷어 올리자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도박하다가 시비가 붙었는지 몇 사람이 흉흉하게 싸우고 있었다.
나민은 그들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대감도(大砍刀)를 휘두르는 노인과 협봉검(狹鋒劍)을 쓰는 중년인을 봐라.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으냐?”
섬랑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씩 웃었다.
“협봉검 아저씨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점점 몰아붙이고 있잖아요. 대감도 노인, 얼마 못 버티겠는데요?”
“그 반대야.”
“네?”
섬랑이 어리둥절해 하자 나민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노인이 밀리고 있는 것 같지만 펼치는 보법은 거의 흐트러지지 않았어.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얘기지. 그런데 왜 수세에 몰렸을까?”
“아! 함정?”
나민의 말대로였다.
상대가 맞을 듯 안 맞을 듯 계속 간신히 피하자 잔뜩 성질난 중년인이 협봉검을 전력으로 내질렀다.
그러자 노인이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보법으로 피하며 대감도를 휘둘렀다. 핏물이 솟구치며 중년인의 머리통이 허공에 떴다.
노인은 그 머리통을 잡아 바닥에 내려쳐 으깨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흥이 나는구나! 또 덤빌 놈은 없느냐?”
“시끄러! 이 영감아!”
돈을 꽤 잃었는지 잔뜩 성이 난 청년이 달려들었다.
노인의 대감도와 청년의 귀두도(鬼頭刀)가 부딪혔다.
나민은 또 승패를 물었고 섬랑은 노인을 택했다.
“내공부터 상대가 안 되네. 아까는 실수했지만 이번엔 맞혔죠?”
“아니. 청년이 이길 거다.”
“미치겠네. 왜요?”
“도법 수준은 비슷한데 내공이 더 깊어. 충격을 받고 물러나는 것처럼 보여도 눈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아니, 도법이야 그렇다 쳐도 내공이 어떻게…….”
그 순간, 청년이 기합을 지르며 귀두도를 내려쳤다. 노인이 대감도로 쳐내고 반격하려 했으나 대감도는 귀두도에 담긴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노인이 두 눈을 부릅떴고, 그 눈들 사이를 칼날이 가르며 지나갔다.
청년의 승리였다.
“후우우.”
섬랑은 긴 한숨을 내쉬고 투덜거렸다.
“영약이라도 먹었나. 그걸 숨기고 있다가 막판에 쓰네.”
“영리한 거지. 너도 잘 쓰는 수법 아니냐?”
“그렇긴 하죠. 근데 다른 사람이 저러는 걸 보면 기분이 영 안 좋네요.”
섬랑은 몸을 부르르 떨다가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진짜 다 맞히시네. 그것도 그 능력도 안 쓰시고. 눈썰미가 얼마나 좋아야 그렇게 되는 거죠?”
“크게 뛰어나진 않아.”
“대인과 엇비슷한 수준일 것 같은데요?”
나민이 손을 내저었다.
“그와 비교하면 안 되지. 그는 괴물이다.”
“그래도 부럽네요.”
“넌 뛰어난 승부사야. 감각이 남다르다는 얘기지. 지금은 구경해서 그렇지, 저들과 직접 맞섰으면 어느 정도 눈치챘을 거다.”
“역시 그렇죠?”
“너는 칭찬을 해선 안 되겠구나.”
“에이. 솔직히 말하세요 그냥.”
“다른 걸 솔직히 말해주마. 아까 승패를 맞힌 것, 사실 능력을 써서 알아낸 거다.”
“……!”
섬랑이 입을 떡 벌렸다가 간신히 닫았다.
“뭐야. 순 사기였잖아.”
“꼭 그런 건 아니야. 네게 가르쳐주려는 것과 연관이 있어서 그런 거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거요? 자, 잠깐!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니까요.”
나민은 섬랑을 쏘아보며 무겁게 설명했다.
“난 아직 내 능력을 완전히 쓰지 못해. 상대가 강하면 알아볼 수 없다는 뜻이지. 그리고 언제나 네 옆에 있을 순 없어. 설령 가능하다 해도 네게 독이 될 거다.”
섬랑도 진지해졌다.
“으음. 제가 그 능력에 의지하는 팔푼이가 될 거란 얘기군요. 그럴 것 같긴 해요.”
“조금 전엔 싸우는 자들을 들여다보고 나온 결과에 과정을 끼워 맞춘 거다. 그런데 내가 말했던 과정이 틀린 것이었을까?”
“그럴듯했던 것 같은데 꼭 맞는 것 같지는 않고…….”
섬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모르겠어요. 헷갈리네요.”
“단언하마. 거의 맞아.”
“뭘 근거로 그렇게 자신하시죠?”
“나는 능력을 함부로 쓸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능력이 언젠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더구나.”
나민의 눈이 깊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안목을 키우려 노력했다. 사람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내린 결론을 능력으로 확인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들어맞더구나.”
나민은 새카만 눈으로 섬랑의 벽안을 응시했다.
“나는 널 도울 거다. 그러니 너는 네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있게 안목을 길러라.”
섬랑의 벽안이 빛났다.
“그러다간 소저의 쓸모가 없어질 텐데. 아야!”
나민은 섬랑의 머리를 쥐어박고 희미하게 웃었다.
“건방지기는. 내 능력은 이것뿐만이 아니야. 어서 커라. 내가 널 버리기 전에.”
섬랑이 이를 갈며 오늘 일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강해진다면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지.’
천막에서 나와 걷다가 슬쩍 뒤돌아보니 섬랑이 두 눈에 힘을 주고 싸움판을 주시하고 있었다.
‘의욕 하나는 대단하군.’
나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기다가 엉켜 싸우고 있는 마인들을 둘러봤다.
‘안목을 키울 기회가 많아 다행이야.’
몇 걸음 더 내딛던 그녀의 발이 우뚝 멈췄다.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진혼이 전주들의 동행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쫓아내지 않고 있는 게 그 이유 때문이었구나!’
실로 대단한 자였다.
섬랑을 나무랐지만 자신도 이럴 때가 아니었다.
‘빨리 능력을 키우고 경험을 쌓아야 해.’
당장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기에 그거라도 해야 했다.
그가 있는 천막으로 가 당당하게 요구했다.
“진혼. 앞으로의 여정은 제가 담당하고 싶습니다. 경로를 선택하고 보급하는 것까지 전부 말입니다.”
“패기 있어서 좋네요. 현유와 상담하며 진행하세요.”
“저 홀로 하고 싶습니다.”
“의욕은 좋은데 과욕은 안 좋죠. 현유와 함께 일하시다 보면 배우는 게 많을 거예요. 해보시고 없으면 제게 말씀하시고요. 그땐 홀로 하게 해드리죠.”
나민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승복했다.
“아직 신뢰를 얻지 못했으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떠나려는 나민을 정광이 잡았다.
“잠깐만요. 긴히 할 말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어떤 밀명을 내리려는가 싶어 바짝 긴장하는데.
정광이 나직이 속삭였다.
“제가 소가주님께 특별히 부탁드렸거든요. 노잣돈 많이 받으셨죠? 자기 돈을 써봐야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마련인데 이번 경비, 그걸로 쓰는 게 어떨까요?”
* * *
정광 일행은 계속 말달렸다.
나민은 철두철미하게 여정을 짰고 그녀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섬랑은 하루하루 말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도칠대가문 중 극랍염가(克拉閻家)가 똬리를 틀고 있는 커라마이였다.
‘염가 이놈들도 거둘 만한 놈들이 아니지.’
정광은 옛 생각을 하며 하품을 했다.
‘섬랑이 이기는 데 집중하고 빨리 뜨자.’
그렇게 마음을 굳히는데.
느닷없이 민현유의 전음이 들려왔다.
-대인. 여기에 오니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뭔데 전음으로 그래?
-조금 무거운 건이어서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집안은 신강 전역에서 객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밀한 소문도 듣곤 하지요.
-혀가 기네. 은밀하게 묻어줄까?
-지금부터 본론입니다. 전대 진천마께서 아끼셨던 쌍뇌(雙腦) 말입니다. 마뇌(魔腦)는 현 교주를 지지해 교주 자리에 올렸지만 귀곡자(鬼谷子)는 마음에 안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마뇌는 호의호식하게 됐고 귀곡자는 숙청당했지요.
정광이 주먹을 쥐자 민현유의 전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귀곡자가 살아 있답니다.
-……뭐?
-바로 여기, 극랍염가에 갇혀 있다더군요.
정광의 눈에서 마기가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