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59화
틈새가 있으면 더 벌려야지
정광은 씩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 대원로께서 하시죠.
자. 이제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해서 던져봤더니 대원로의 눈동자가 급속하게 커졌다.
정광은 그 모습을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기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건가.
하긴, 그래야 말이 되지.
어느 정도 늙었고 꽤 강한데도 기억에 없는 놈이었다.
그 말인즉슨 탐욕이 적고 나대지 않는 성품이라 우루무치에만 박혀 있어 전생에 못 봤다는 것.
나쁘지 않은 심성이라 할 수 있으나 욕심이 너무 없으면 곤란한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대원로님,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고 하셨죠?”
“…….”
“합의점을 찾아야죠. 찬찬히 논의해 보면 그럴듯한 길이 열릴 거예요.”
“…….”
대원로는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고 정광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소가주님.
반신반의하고 있었거늘, 일이 원래 계획과는 조금 다르지만 너무 빠르게 잘 풀려 경악하고 있는 나문욱에게 전음을 보냈다.
-뭐 하세요? 은퇴시켜 드렸으니 소가주님도 역할을 하셔야죠.
-아, 알겠다.
나문욱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정광의 무위에 두려움을 느꼈으나 한가하게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됐으니 물릴 순 없어.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성공해야 해.’
정광에게 다가가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를 갈았다.
“반드시 복수해 주마.”
“정당한 비무였는데요?”
“정당하게 갚아주겠다는 말이다.”
“뭐 그렇다면야. 기대하고 있을게요.”
나문욱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노해서가 아니라 두려워서였다.
기대하고 있겠다니. 정말 복수하려 들면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런 말을?
그래도 억지로 울분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대원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정광을 죽일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대원로님. 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죄는 나중에 따지고 급한 일부터 수습해야 합니다.”
나문욱의 전신에서 위엄이 일어났다.
“아버님이 저렇게 되셨으니 지금부터는 제가 소가주로서 명을 내리겠습니다.”
먼저 가문의 큰 어른에게 양해를 구하고 폐인이 되어버린 나익승을 응급처치하고 있는 원로들에게 물었다.
“상태가 어떠십니까?”
의술에 조예가 깊은 한 원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많이 안 좋네. 더 나빠지지 않게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좋아지긴 힘들 걸세.”
원로는 나문욱이 그냥 소가주가 아니라 가주를 대리하는 소가주가 된 상황이었기에 말을 어느 정도 높여줬다.
나문욱으로선 무척 기뻐해야 할 일이었으나 더 좋은 일이 있었기에 담담히 받아들였다.
폐인이 된 아비가 앞으로도 폐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란 얘기 아닌가!
저도 모르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내렸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요. 아버님을 은밀한 곳으로 모셔서 치료해야 합니다.”
“어디로 말인가?”
나문욱의 목소리가 침중해졌다.
“완치를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니…… 아버님 집무실 지하에 있는 비밀 연무장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내부에도 외부에도 아버님이 진혼과의 비무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셔서 폐관수련에 들어가셨다고 알리는 게 좋겠지요.”
비무하기 전, 원로들을 제외한 식솔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에 나익승이 이 꼴이 된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은 상황.
가문의 체면과 식솔들의 사기를 고려하면 가주의 현 상태는 함구하는 게 옳았다.
원로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정광과 단영을 힐끔 보고 전음을 보냈다.
-우리야 그렇다 치고. 흉수와 손님은 어쩔 셈인가?
정광과 단영의 입은 어떻게 막을 건지 묻는 것이었다.
나문욱은 미간을 좁혔다.
정광이 아편굴에서 알려준 방도가 있었지만 고민하는 척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으음. 떠오르는 게 하나 있습니다. 아버님을 비밀 연무장에 모시고 집무실에서 원로님들께 말씀드릴 테니 적절한 수인지 판별해 주십시오.
원로는 내심 크게 기꺼워했다.
고압적이었던 아비와 확연히 다르게 나오니 그럴 수밖에.
-그러시게.
-그럼 아버님을 부탁드립니다.
나문욱은 단영에게 다가가 나직이 물었다.
“아우,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는가?”
“말씀하시오, 나 형.”
“우형을 믿고 잠시만 따라와 주게나. 원로님들과 논의한 후 자네에게 좋은 제안을 하려고 하네.”
단영 또한 정광에게 미리 지시를 받은 상태였기에 격렬히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리 어려울 건 없소만. 살인멸구를 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라 믿겠소.”
“안심해도 돼. 그런 일은 없을 걸세.”
나문욱은 고개를 돌려 정광을 쏘아봤다.
“진혼, 합의점을 찾자고 했지? 따라와라.”
“저도 단 소가주님처럼 믿어도 돼요?”
“정당하게 갚아줄 거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 ‘정당’의 기준이 제각각이라 곤란한데. 까짓것 가죠.”
나문욱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가 나민을 바라봤다.
그녀는 정광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놀랐나 보군.’
자신도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처소로 가 기다리라고 명한 뒤 대원로를 채근했다.
“날이 어두워진 지 오래입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들은 가주 집무실이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정광은 태연하게 가다가 옆에서 감시하듯 걷는 대원로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까처럼 대답 안 하셔도 좋으니 들어만 주세요.
-…….
-소가주께서 대원로님과 원로님들께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미리 말씀드리죠. 일단 저한테는 손대지 말자고 할 거예요.
장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비무가 화기애애하게 끝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정광을 해치면 나가의 명성이 땅에 떨어질 터.
이 점을 무시하고 싸운다 쳐도 가문의 전력을 다하면 이기겠지만 피해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안 가는데 뭐 하러 그러겠는가?
-내실을 다지고 훗날 복수하자고 말할 건데 원래는 말만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속이 시커먼 분이니 다른 수법을 입에 올릴지도 모르겠네요.
묵묵히 듣고만 있던 대원로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원래는 그렇게 하기로 했지만? 네가 미리 소가주와 말을 맞췄다는 뜻이냐?
정광은 말을 돌렸다.
-이제 남은 건 손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인데. 단가에서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전장 사업 있죠? 그걸 지지하자고 하실 거예요. 입을 닫게 하는 건 둘째고 그들과 연대해야 하기 때문이죠.
오로나가는 이번에 가주를 잃었고 명성도 다소 깎였다.
나익승이 폐인이 된 걸 언제까지 숨길 순 없으리라. 그때 다른 칠대가문의 압박을 버티려면 역시 힘든 상황인 고이륵단가와 손을 잡아야 했다.
-이제 드릴 말씀은 다 드렸고. 대원로님,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요?
대원로가 무섭게 노려봤으나 정광은 담담히 전음을 이었다.
-가주께서 왜 이렇게 됐는지 돌이켜 보세요. 제 탓인가요? 그분이 과욕을 부리고 저를 겁박해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
본질을 따지면 사실이었기에 대원로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소가주님은 더 아니라니까요. 그분이 권력을 쥐면 나가가 어떻게 굴러갈지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대원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서 나보고 소가주의 목을 베고 가주가 되라는 말이냐?
그렇다고 말하면 한바탕 쏘아붙이려고 했건만.
정광의 대답은 의외였다.
-설마요. 뭐 하러 피를 묻혀요. 다른 가문들이 신이 나서 몰려올지도 모르는데.
-속 시원히 얘기해라.
-오늘 같은 일이 또 생기는 걸 막으려면 대원로께서 중심을 잡으시라는 거죠.
-아니다 싶으면 제동을 걸어라?
-네.
-웃기는군. 소가주가 내 말을 들을 것 같으냐?
정광이 피식 웃었다.
-가주님이 독선적이었다고 소가주님도 그래도 된다는 법은 없죠. 왜 홀로 외롭게 막으려고 하세요? 다른 원로분들도 계시잖아요.
대원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정광의 음성은 밝아졌다.
-이제야 흥미가 생기시나 보네.
정광은 어느덧 가까워진 가주 집무실을 보고 전음을 이었다.
-들어가셔서 소가주님이 뭐라 말씀하시는지 들어보세요.
전음이 끝나자마자 나문욱이 옆에 있는 전각을 가리켰다.
“단 아우, 진혼. 아버님을 안에 모시고 논의를 좀 하다가 나올 테니 저기서 쉬고 계시게.”
정광이 답했다.
“밥은 넣어주실 거죠?”
“…….”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날이 어두워진 지 오래잖아요. 배고파 죽겠네.”
“……그러마. 대신 얌전히 기다려라.”
“그야 물론이죠. 이따 봬요.”
정광은 단영과 함께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정광이 의자에 편히 앉자 단영이 머리를 조아렸다.
“지존,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게. 근데 싸우는 것보다 기다리는 게 더 어렵다니까. 벌써 지루해지네.”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살짝 수정했는데 봐야지.”
“수정이라니요?”
“원래는 나문욱을 밀어주려고 했는데 대원로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말이야.”
“아! 그 둘을 반목시키시려는 것이군요.”
“틈새가 있으면 당연히 더 벌려야지. 분란의 씨앗은 던졌으니까 알아서 꽃을 피울 거야.”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로 입가심을 하는데 나문욱과 대원로가 찾아왔다.
나문욱은 단영부터 바라봤다.
“아우, 본가는 전장 사업을 지지하고 기회가 되면 한발 담가보기로 했네.”
“정말이오?”
“물론이지. 아우도 알다시피 본가도 단가도 힘든 상황 아닌가? 이런 때일수록 끈끈히 뭉쳐서 서로 도와야지.”
“감사하오.”
대략적인 얘기가 오가고 지필묵이 준비됐다.
그사이 정광은 얼굴이 굳어 있는 대원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반신반의하시더니. 제 말대로 됐네요.
-…….
대원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광을 내려다봤다.
“양가의 중요한 일을 정하는 자리이니 잠시 피해주거라.”
“어려운 일은 아닌데. 대원로님도 따라 나오셔서 저를 감시하시려고요?”
“잘 아는구나.”
정광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쩔 수 없죠.”
밖으로 나가니 대원로가 따라오며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전각으로 가자.”
“네.”
두 사람은 비어 있는 전각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대원로의 표정이 더 딱딱해졌다.
“오늘 일, 네가 소가주와 꾸민 것이냐?”
“말씀드리기 곤란하네요.”
“왜?”
“그렇다 하면 소가주님이 패륜을 저질렀다는 걸 토설하는 거고, 아니라 하면 대원로님이 믿지 않으실 것 같아서요.”
“……역시 그랬군.”
“이런. 물증도 없으면서 확정하지 마세요. 저는 그렇다고 한 적 없어요.”
“너는 누구고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너무 많이 들은 질문이라 대답할 기분이 안 드네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죠.”
“그러지 못하겠다면?”
정광은 한숨을 쉬고 대원로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혼(魔魂)의 일부를 꺼냈다. 막대한 마기가 대원로의 눈을 타고 들어가 뇌리에 속삭였다.
-알려고 하지 마.
“크흑.”
대원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나는 나니까.
“끄으윽…….”
대원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천하에 이런 정순한 마기를 지닌 자가 있을 줄이야! 직접 대해본 적은 없지만 전대 진천마의 재림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마기를 일으켜 밀어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선기를 빼앗겨 몰린 상황.
마치 두부를 침으로 찌르듯 나름대로 정제했다고 자부하고 있던 혼탁한 마기를 순수한 마(魔) 그 자체가 깊숙이 뚫고 들어왔다.
‘제, 제발 그만!’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여력이 없어 속으로 간신히 외치는데.
간절한 바람에 화답하듯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광이 씩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저에 대한 논의도 잘하셨어요? 무슨 수법으로 암습하기로 했죠?”
대원로는 두려운 눈으로 정광을 보다가 시선을 피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단번에 잡아먹힐 뻔했는데 무슨 담력으로 계속 마주 볼까.
‘묵영권가의 무공뿐만 아니라 그분의 진전까지 이은 건가?’
현 교주에 의해 쫓겨나 쿠차에 흘러 들어갔던 묵영권가의 후인 권오.
그가 그분의 심득을 지니고 있다가 이자에게 전해준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그분을 진정으로 계승한 건 교주가 아니라 이자일지도.’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결론은 같았다.
벌써 이런데 얼마나 더 대단해질까?
‘절대로 척을 져선 안 돼.’
자신이 가주에게 했던 조언을 역으로 뼈저리게 되새기는데 눈앞의 괴물이 투덜거렸다.
“말 안 할 거예요? 아까처럼 눈으로 대화해야 하나?”
“……!”
대원로는 급히 부탁했다.
“소가주를 제어해서 너만큼은 건드리지 않으마. 너 역시 본가에 손을 대지 말아다오.”
“아니, 진짜 사람을 뭐로 보고. 제가 망나니인 줄 아세요? 가만히 계시면 왜 건드려요?”
정광은 어이없어하다가 다른 건으로 넘어갔다.
“나 소저는 데려가도 되죠?”
“그렇게 결정됐다.”
“잘됐네요.”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느냐?”
“딱 하나만요.”
“왜 민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냐?”
“섬랑의 글공부를 위해 그러는 거라고 설명했었는데 또 물으시네. 많이 아끼시는 건가?”
“…….”
“맞나 보네. 이건 대원로님께서 아셔야 좋은 거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섬랑이 소교주가 되고 나민이 섬랑을 보필해 장차 천마신교를 이끌어 나갈 거라 했다.
“가능하냐고는 묻지 마세요.”
“……네가 손을 쓰면 가능할지도.”
“아. 설명 안 해도 잘 아시네. 어쨌든 나가 사람이 총단에서 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좋은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많이 밀어주세요. 그 이상으로 돌려받으실 날이 올 거예요. 그만 갈까요?”
정광은 두 소가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원로가 가만히 따라오다가 나직이 맹세했다.
“너에 대해 모든 걸 함구하고 절대 나쁜 마음을 품지 않으마.”
“했던 말 자꾸 반복하면 믿음이 더 옅어지는데.”
대원로는 즉시 입을 다물었고 정광은 편하게 전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문서를 작성하고 수결까지 둔 나문욱이 정광을 돌아봤다.
“오늘 일은 함구해야 한다.”
“네.”
“어떤 일이 있어도.”
“저한테도 그러는 게 나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주목도 적당히 받고 명성도 웬만큼 높아야지, 정도가 넘어서면 이래저래 피곤해진다.
“이제 나 소저와 가도 되죠?”
“멸혼생사투는 내일 끝나는데 벌써?”
“섬랑이 워낙 무식해서 하루라도 빨리 가르쳐야 해요.”
나문욱은 정광을 응시하며 매섭게 경고했다.
“네 욕망을 채우는 용도로 데려가는 것이면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제 와서 위하는 척하시네. 그럼 나 소저에게 노잣돈도 두둑이 챙겨주실 거죠?”
“…….”
“내일 데려갈 테니 많이 준비해 주세요.”
“……알아서 하마.”
“오로나가의 위엄을 믿을게요.”
“…….”
정광은 정중하게 포권한 뒤 시선을 단영에게 돌렸다.
“오늘도 여기에서 묵으실 거예요?”
“그래야겠지.”
“아까 작성하신 문서, 혹시 모르니 한 부는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여기 있네.”
“그럼 갈게요. 모두 안녕히 계세요.”
정광은 문서를 받아 단영의 안전을 확보하고 장원 밖으로 나갔다.
화톳불을 피우고 기다리고 있던 마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했다.
정광은 우아하게 답례를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혀를 찼다.
“거하게 싸우셨네. 좀 늦게 시작하시지 그랬어요. 그럼 판을 벌였을 텐데.”
마인들이 받아쳤다.
“우리가 할 말이야. 이렇게 큰 대목을 놓치다니 아쉬워 죽겠군.”
“이보게 진혼. 지금 한 번 더 할까?”
정광은 바로 거절했다.
“내일 생사투에서 걸죠.”
다음 날 아침.
정광 일행은 황금 마차를 끌고 오로나가로 향했다.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돈을 걸고 전부 땄다.
섬랑도 생사투에서 이겼다.
사람들이 감탄했다.
“일자무식인 주제에 잔머리 하나는 기막히게 쓰면서 싸우는구나!”
“그 머리의 반만 써서 진작 공부 좀 할 것이지. 괜히 나 소저만 고생하게 됐잖아.”
섬랑은 영문을 알 수 없어 황당해했지만 이차 예선을 통과한 기쁨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나민은.
간편한 경장 차림에 봇짐을 메고 나와 정광에게 인사했다.
“진혼,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요.”
정광은 빙그레 웃으며 전음으로 경고했다.
-똑바로 해야 해. 날 실망시키면 네가 떠나길 원하기 전에 쫓아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