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50화
예뻐해 줄게
정광 일행은 마차를 끌고 객잔으로 돌아왔다.
마차에 실린 금은보화들을 안으로 옮기니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정광은 수고한 점소이들에게 은자를 나눠주고 혀를 찼다.
‘이런 성가신 짓을 계속해야 한다니.’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
고이륵단가의 전장 사업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일 층 탁자에 앉았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
항상 그랬듯이 민현유의 지휘 아래 점소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요리와 술을 날랐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민현유가 허리를 공손히 숙이고 물러나려 하는데 평상시와 달리 정광이 잡았다.
“같이 먹자.”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대인.”
“나는 안 괜찮거든.”
“권유가 아니셨군요. 잘 먹겠습니다.”
민현유는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몇 젓가락이나 먹었을까?
정광이 술을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
“오로나가 가주 옆에 묘령의 여인이 앉아 있던데. 누구지?”
민현유의 눈이 빛났다.
“이제야 대인의 취향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그랬나?”
“의외로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많지요.”
“너도 모르면 공평해지겠네.”
정광이 주먹을 쥐자 민현유가 정중하게 사양했다.
“제가 어찌 대인과 나란히 서겠습니까? 성명은 나민. 가주 나익승의 막내딸로 올해 스물한 살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재녀로 명성을 떨쳤는데 오라비인 소가주만은 못하다는 평입니다.”
“소가주라면 그 옆에 있던 껑충한 놈이겠지. 나쁘진 않지만 좋지도 않던데.”
“그녀가 오라비보다 나아 보이셨습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 나민에 대해 더 말해봐.”
“바깥출입이 많지 않아 자세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하나만 더 알면 돼. 어떤 재주로 유명했어?”
“학문입니다.”
“무공이 아니라?”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흐음.”
정광은 술을 한 잔 마시고 팔짱을 꼈다.
나민의 흰자위가 거의 없는 새카만 눈과 자신을 희미하게나마 들여다보는 듯했던 더러운 느낌이 떠올랐다.
‘모양만 그런 게 아니라 느낌도 그랬어. 그런데 무공이 아니라 글을 익혔다고?’
안 될 건 없지만 그 쓸 만한 재주를 그렇게 쓰다니.
‘둘 중 하나겠네.’
아직 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거나 숨기고 있거나.
어느 쪽이 됐든 간에 흥미로운 일이었으나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죽일까, 말까.’
변수가 될 수도 있는 아이였다.
현재의 자신을 위해서도, 훗날의 섬랑을 위해서도 죽이는 게 나았다.
‘그럼 꽤 시끄러워질 것이 뻔하다는 게 문제란 말이야.’
딸이 외부인에게 죽었는데 자존심 강한 나익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혹시라도 꼬리를 밟히면 총력을 다해 덤빌 터.
총단까지 가기도 전에 정체를 드러내야 할지도 몰랐다.
‘써먹기 좋은 놈이 아니야. 그렇게 되면 무조건 싸워야 해.’
그런 귀찮은 일을 겪고 기껏 그려놨던 그림을 새로 그리느니 그전에 편하게 가는 게 나을지도.
자오가 장기인 방화를 하고, 흑서가 쭉정이들의 주의를 끄는 사이 나씨 부녀의 목을 벤다.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은 되는 수였다.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멸혼생사투가 끝나고 우루무치를 떠났다가 몰래 돌아와서…….’
정광은 생각을 멈추고 객잔 문을 바라봤다.
낯익은 사람이 들어와 쭈뼛대고 있었다.
대머리 장한, 전주(錢主)였다.
“웬일이세요? 식사하시게요?”
“…….”
그럴 리가.
이 껄끄러운 객잔에서 뭘 먹는단 말인가?
전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간절하게 청했다.
“대인,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우리 사이에 뭘 그리 어려워하세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잔뜩 긴장하고 있던 전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긴한 일로 대인을 뵙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싫은데요.”
“정말 감사합…… 네?”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이해하시죠?”
하긴 개뿔.
얼굴이 두껍기론 천하제일을 다툴 것 같은 위인이 그런 말을 해?
전주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핥고 입을 열었다.
“대인, 재고해 주십시오. 사업에 관한 일입니다.”
“그럼 오시라고 하세요. 먹으면서 논의해 보죠.”
전주는 곤란한 얼굴로 민현유를 곁눈질하고 전음을 보냈다.
-다들 이곳을 좀 불편해해서 말입니다. 좋은 주루를 잡아놨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대인께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정광은 대충 짐작이 갔다.
전주의 말대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나 움직이기 귀찮아 거절할까 하는데…….
‘이것 봐라?’
창밖을 힐끔 보고 수락했다.
“그래요, 그럼.”
“가, 감사합니다! 소인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걱정되는 게 있네요.”
정광은 빈 탁자들에 쌓여 있는 금은보화를 가리켰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쁜 분들이 오셔서 저것들을 강탈하면 어쩌죠?”
“여긴 모두가 꺼리는…… 아니, 우대하는 곳 아닙니까?”
“똑같은 향리객잔인데도 쿠얼러에선 몇 분 오셨었잖아요. 그때 소문 못 들으셨어요?”
“으음. 혈조와 독비귀도가 있으니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버는 것만큼 지키는 것도 중요한데 실망이네요.”
전주가 다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안심하셔도 좋지만 더 안심하게 만들어 드리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정광은 전주가 신법을 펼쳐 사라지자 일행 한 명, 한 명을 둘러보며 주의를 줬다.
“섬랑, 오늘은 후원에서 땀 흘릴 필요 없어. 올라가서 운기조식하고 푹 자.”
“내일 생사투는 어쩌고요?”
“일찍 일어나서 오늘 손웅을 쓰러뜨렸던 초식을 연마해. 진기 운용 경로는 머릿속에 새겨졌지?”
섬랑이 신형을 부르르 떨었다.
“머릿속이 아니라 몸에 새겨졌죠.”
“그게 더 좋은 거야. 묵영보로 피하다가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돌진해서 일격필살을 노린다. 네 자질과 성품에 딱 맞는 전술이니까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해.”
“네, 대인. 명심할게요.”
정광은 작은 가슴을 활짝 펴는 섬랑에게서 시선을 돌려 관엽을 봤다.
“관 숙수는 섬랑을 추궁과혈하고 보호해 주세요.”
“알겠네.”
“혈조는 섬랑을 해치려는 자가 있으면 관 숙수와 함께 막아주시고요.”
“네, 단주. 누군가 재물을 털려고 하면 어떡할까요?”
“현유가 있잖아요.”
민현유는 한숨을 쉬고 정광은 말을 이었다.
“만일을 위해 말씀드리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도 방심하지도 마세요. 마지막으로 현유.”
“최선을 다해 막아보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하나만 갖다 줘.”
“뭘 말입니까?”
정광이 필요한 것을 말했다.
현유는 그 용도를 물으려다가 고개를 젓고 준비해 왔다.
정광은 그것을 챙기며 칭찬했다.
“현유는 입이 무거워서 좋아.”
“알아봐야 득 될 게 없을 것 같아 그럽니다.”
“그걸 아는 게 좋은 거지.”
전주가 시간을 딱 맞춰 왔다.
“대인. 애들을 데려왔습니다. 크게 쓸모는 없는 녀석들이나 객잔 밖에서 지키다가 소리 정도는 질러 사람들이 모이게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정광은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둘러봤다.
“수하분들이시네요. 다른 분들 밑에 계시던 분들도 있고요. 공평히 나누셨나 봐요.”
“역시 눈치채셨군요. 다들 최대한 성의를 보이기로 했습니다.”
“거미줄처럼 가늘었던 신뢰가 무명실만큼 굵어졌어요.”
“영광입니다.”
“하하. 우리 사이에 뭘요. 가죠.”
정광은 전주를 따라 걷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존함이? 아니면 별호라도.”
“금두(金頭)라고 불러주십시오.”
“네? 독두(禿頭)신데 금두요?”
생긴 건 대머리인데 왜 금 머리냐는 의미.
다른 이가 이딴 망발을 내뱉었으면 당장 혀부터 뽑았겠지만, 정광이 이러니 금두는 공손히 답했다.
“오늘부터 독두로 바꾸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미안한데.”
“아닙니다. 대인을 뵙고 새로 태어났으니 별호도 바꾸는 게 맞습니다.”
“뭐 그러시다면야.”
두 사람은 그리 오래지 않아 화려한 주루에 도착했다.
향리객잔에 왔던 사내들과 비슷한 머릿수의 무인들이 주위를 지키고 있다가 예를 표했다.
정광은 독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삼 층에 올라가 큰 방문을 열자 앉아 있던 자들이 급히 일어섰다.
독두와 같은 전주들이었다.
“오셨습니까, 대인.”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광은 주위를 둘러보고 피식 웃었다.
“향리객잔보다 나은데요, 뭐. 일 얘기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오른쪽 손목에 손 대신 갈고리를 끼고 있는 노인이 조심스레 권유했다.
“네, 대인. 일단 앉으시지요. 무엇들 하느냐? 어서 대인을 모시지 않고.”
시립해 있던 기녀들이 일제히 정광에게 다가갔으나 정광이 눈살을 찌푸리자 삽시간에 얼어버렸다.
갈고리 노인이 재빨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대인. 금욕적인 삶을 사시는지 미처 몰라…….”
“일 얘기를 할 때는 귀와 눈이 최대한 적어야죠.”
“아! 그러면 귀가 먹었으나 비파(琵琶)를 기가 막히게 타는 아이가 있으니 편안하게 음률이라도 들으시면서…….”
“돈 얘기를 하는데 정신 사납게 그런 걸 왜 들어요?”
정광은 혀를 차며 기녀들에게 은자를 주고 내보냈다.
물론 은자는 독두의 것이었다.
난데없이 손해를 본 독두가 정광 몰래 인상을 쓰며 눈을 부라리자 안절부절못하던 전주들이 일제히 엎드렸다.
갈고리 노인이 모두를 대표해 간청했다.
“대인!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러다가 모두 입에 거미줄을 치게 생겼습니다. 야차 같은 마누라와 사갈 같은 자식들이 저희만 바라보며 쫄쫄 굶고 있는데…….”
“야차와 사갈이라. 그럼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지 않나요?”
“……네? 그 정도면 참하고 순한 것 아닙니까?”
“아. 그게 여기 기준이었지.”
정광은 자리에 앉아 술을 한 잔 따라 마시고 말을 이었다.
“좋아요. 판을 하나로 합치죠.”
“……!”
“왜 눈을 크게 뜨세요? 그걸 원하신 거 아니었어요?”
“…….”
맞긴 맞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그나마 정광을 많이 겪어본 독두가 정광의 빈 잔에 술을 가득 채우며 칭송했다.
“역시 대인이십니다.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시는군요. 혼자 너무 많이 먹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미안했는데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협박받으셨어요?”
독두가 아니라 갈고리 노인이 갈고리를 미친 듯이 젓다가 자신의 콧잔등을 베었다.
“설마요. 아닙니다. 그저…….”
“지혈부터 하시죠. 피가 철철 흐르네요.”
“가, 감사합니다.”
정광은 전주들과 독두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계속 얼굴 보고 살 사이에 혼자 튀면 여러모로 안 좋겠죠.”
독두가 씁쓸하게 웃었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소인도 그랬을 겁니다.”
“솔직하셔서 좋네요. 판을 하나로 합치되 독두는 두 명 몫을 드시는 거로 하죠. 이의 있으신 분?”
끼워주는 것도 감지덕지한데 이의가 있으면 그게 사람 새끼인가?
마인에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전주들인지라 사람 새끼보다 못한 이가 수두룩했으나 정광 앞에선 도덕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없습니다, 대인.”
“좋아요. 그럼 방식을 논의하죠. 합치는 건 좋은데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것 아시죠?”
왜 모를까.
정광은 거의 불패의 도박사.
지금까지처럼 홀로 전부 따다시피 하면 열기가 식을 게 분명했다.
독두가 눈치를 보다가 작게 대답했다.
“저희도 그게 걱정이긴 합니다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없긴요. 제가 간간이 잃으면 되잖아요.”
“……!”
전주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차마 그래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어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는데 먼저 말을 꺼내다니!
‘과연 불패도수(不敗賭手), 아니. 도신(賭神)이로다!’
‘대승적 견지에서 조금이라도 잃어주려고 하는 거야!’
‘성품은 더러워도 배포는 두둑하다니까!’
갈고리 노인은 얼마나 놀라고 감탄했는지 지혈했던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다시 터졌다.
“그, 그래주시겠습니까?”
“아뇨.”
“정말 감사합…… 네?”
“저는 잃기 싫은데요.”
“……아. 그, 그러시겠지요.”
사람인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내심 크게 실망하던 전주들은 정광의 이어지는 말에 입을 살짝 벌렸다.
“판마다 제일 마지막에 걸게요. 그럼 오히려 재밌어질걸요?”
전주들은 그 광경을 상상했다.
도박꾼들이 양측에 돈을 걸고 정광이 마지막에 한쪽을 택한다.
지금껏 정광이 이뤄온 업적이 있기에 다들 결과를 미리 알게 되어 김이 빠지는 감은 있겠지만 정광과 같은 쪽을 선택한 이는 환호하고 아닌 자는 이를 갈며 다음 판을 준비할 것 아닌가?
‘나쁘지 않아.’
‘판이 계속될수록 열기가 더 달아오르겠지.’
‘혹시라도 오늘처럼 한 번이라도 틀리면 모두 미친 듯이 열광할 거야.’
정광은 기뻐하는 전주들을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갈게요.”
전주들이 우르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밤이 깊었으니 소인들이 수하들과 함께 모시겠습니다.”
“아뇨. 혼자 갈게요. 향리객잔을 지키고 계신 분들은 내일 동이 트면 데려가시는 거로 하죠. 괜찮죠?”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 내일 봬요.”
“안녕히 가십시오, 대인!”
정광은 주루에서 나와 객잔으로 향했다.
그렇게 깜깜한 밤거리를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도를 뽑았다.
“살기가 너무 노골적이네. 어디서 오신 분들일까. 설마 손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창이 찔러왔다.
“나가인가?”
정광은 신형을 틀어 창을 피하며 도를 휘둘렀다.
쩡!
허공에서 검이 불쑥 튀어나와 도를 막았으나 도는 검을 절단하고 창을 내질렀던 자의 목을 잘랐다.
서걱-
창수(槍手)는 목이 반쯤 잘린 채 뒷걸음질 쳤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잘린 목을 태워서 이어 붙였다.
하지만 정광은 그걸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검수(劍手)가 잘린 검을 옆구리에 쑤시며 또 다른 검을 뽑고 있었다.
정광은 눈살을 찌푸리며 도를 그었다.
핏물이 튀어 오르며 검수의 두 손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정광은 어느새 목이 완전히 붙은 창수와 양손이 절단된 검수를 번갈아 보며 조소했다.
“나가는 아닌데. 저런. 완전히 잘린 건 못 붙이는구나.”
그때, 허공에서 떨어지던 두 손이 폭발했고 그 파편들이 정광에게 쏘아졌다.
“망할.”
정광은 도로 큰 원을 그렸다.
그 원에 부딪힌 뼈와 살점이 사방으로 튕겼다.
그 사이 창수는 정광의 등을 향해 창을 찔렀고 검수는 퇴법(腿法)으로 사타구니를 노렸다.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정광은 간결하게 해결했다.
뒤로 비스듬히 걸음을 내디뎌 창을 겨드랑이 사이로 흘렸다. 왼손으로 창대를 밀어 방향을 살짝 틀었다. 동시에 도를 역수로 쥐고 뒤로 내질렀다.
창이 검수의 심장을 꿰뚫고 도는 창수의 배에 꽂혔다.
“으쌰.”
정광은 그 상태로 신형을 회전시켰다.
창과 도에 꿰인 두 복면인이 정광을 중심으로 세차게 돌다가 한쪽에 있는 담벼락으로 날아갔다.
콰쾅!
담벼락이 허물어지며 두 사람을 덮쳤으나 정광이 더 빨랐다. 그 전에 달려가 그들의 목을 완전히 벤 뒤 머리통들을 걷어차 새까만 하늘로 쏘아 올렸다.
“말 그대로 귀천이네.”
정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피식 웃다가 급히 신형을 틀었다.
땅바닥이 솟아나며 곡도(曲刀)를 그어 올린 것이다.
“윽.”
어깨가 베이며 핏물이 쏟아졌다.
그 대가로 도수(刀手)도 목이 잘렸으나 정광은 만족하지 않았다.
“손가? 아닌데. 이것들이 진짜! 어디 놈들이야?”
그때, 멀리 떨어져 있는 전각 지붕 위에서 지켜보던 복면인이 비조처럼 은밀히 날아 사라졌다.
정광은 그쪽을 힐끔 본 뒤 베인 어깨에서 피가 든 돼지 창자를 꺼내 버렸다.
객잔에서 현유에게 요구해 받은 것이었다.
‘애 좀 썼네. 꽤 비싸 보이는 자객들을 보냈어.’
손재등의 짓이었다.
향리객잔 밖에서 감시하던 놈도 지금 도망간 놈도 손가 특유의 기운을 지니고 있으니 뻔한 일 아닌가?
우루무치를 떠나기 전에 원수의 실력을 파악하려고 그랬으리라.
‘그래, 빨리 총단으로 가서 딱 이 정도라고 보고해.’
그사이 힘을 더 드러내야 할 수도 있지만 소식이 닿으려면 꽤 오래 걸릴 터.
그때 교주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해 보니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너무 화내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빨리 가서 예뻐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