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22화
‘밖에’와 ‘나’
“너, 소교주 한번 해볼래? 나중에 운 좋으면 겸사겸사 교주도 하고.”
섬랑(閃郞)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고 별것 아니니 부담 갖지 말라는 듯 제안하는 미청년을 빤히 올려다봤다.
‘역시 미친놈이었나? 제정신은 아닌 것 같더라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었다.
헛소리를 지껄여도 정도가 있지.
소교주가 뭐?
겸사겸사 교주가 어째?
애들과 함께 반나절 동안 죽어라 함정을 파놓고도 꼽추를 간신히 잡아 아직도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판에 이따위 소리를 들을 줄이야.
기분 같아서는 이놈 옆구리에도 비수를 끝까지 쑤셔 넣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손을 쓰는 순간 자신의 팔을 통째로 뽑아 머리통을 두드리며 훈계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섬랑은 해맑게 웃었다.
“하하. 대인. 농이 너무 심하시네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런 꿈을 꾸겠어요.”
“꿈꾸는 게 어때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
그렇긴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소교주니 교주니 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수야 있나.
“네. 그럼 꾸는 거에 의의를 둘게요. 그런데 어깨 좀 놔주시면 안 돼요? 제가 이래 봬도 할 일이 무척 많거든요.”
“하하. 그래?”
“……!”
섬랑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전에도 그랬듯이 이 청년이 웃을 때마다 오싹해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자이기에…….’
섬랑은 눈을 부릅뜨며 이어지는 상념을 재빨리 끊었다.
‘그만. 위험한 놈이야. 관심을 가지면 안 돼. 어떤 식으로든 엮여서도 안 되고.’
하지만 어쩌랴.
이미 늦은 것을.
청년은 섬랑에게 관심이 많았다.
“할 일이 많다니 궁금하네. 뭘 제일 먼저 할 건데?”
“상처부터 치료해야죠.”
“응? 이거부터 처리하는 게 아니고?”
청년은 턱짓으로 바닥에 구겨져 있는 꼽추를 가리켰다.
“지금까지 그럴듯하게 해놓고 왜 이래. 마무리가 약하잖아. 이대로 둘 거야?”
섬랑은 입맛을 다시며 옆에 서 있는 상노를 힐끔거렸다.
“죽여 버리고 싶긴 한데 율법이 있는지라.”
청년이 고개를 갸웃했다.
“더 이해가 안 가네.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네? 발목을 둘 다 썰었는데 여기서 더 하라고요?”
청년이 탄식했다.
“이거 참 실망인걸. 그렇게 안 봤는데. 마음이 이렇게 여려서야 원.”
“…….”
섬랑은 뭔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독종 중의 독종이라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왔던 지난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라니.
뭐 그건 그거고.
이놈을 떨쳐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
아! 상노를 부추겨서 쫓아내면 되겠구나!
해답을 찾은 것 같아 기뻐하던 섬랑은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상노는 또 왜 이래?’
사람들을 해산시켜 멀리 보내놓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은가.
‘이럴 성격이 아닌데. 가만. 둘이 원래 아는 사이였나? 어떤 관계길래?’
너무 궁금해 저도 모르게 물어보려는 순간.
청년이 아쉬운 기색을 지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성품이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어주면 되지. 수빈이도 훌륭하게 키웠는데 이 녀석이라고 못할까.”
“……네?”
“벌써 어둑어둑해지네. 이왕 만난 거, 고차기(庫車伎)에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
섬랑은 하늘을 슬쩍 올려다봤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점심이 아니고요?”
“시간은 빠르니까. 금방 어두워지고 저녁까지 먹게 되겠지.”
“제가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 그럼 멀리서 훔쳐보고 있는 네 친구들을 데려가야겠네. 너와 함께 고생한 것 같은데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어?”
“……!”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내 애들까지 손대려 해?
섬랑의 벽안(碧眼)에 차가운 살기가 맺혔다.
“뭘 원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만 데려가시죠.”
“의리 없게 그러면 쓰나.”
“의리가 있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청년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섬랑의 눈앞에 얼굴을 바짝 대고 나직이 충고했다.
“밥은 다 같이 먹는 게 더 맛있더라. 그만 빼고 따라와.”
* * *
‘돌겠네, 진짜.’
섬랑은 머리가 깨질 만큼 생각해 봐도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야 이 미친놈의 기세에 짓눌려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있지만, 상노는 왜 애들을 직접 불러 함께 가고 있냔 말이다.
담대한 섬랑이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데 다른 아이들이 멀쩡할 리 있나.
불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 죽여 수군댔다.
“공짜로 밥을 사준다니 말이 돼? 천하에 그런 사람이 어딨다고.”
“이거 혹시 동남동녀(童男童女)의 정혈(精血)을 갈취해서 빨아먹는 미친 새끼 아니야?”
“어, 어떡하지? 대장이야 오래전에 어른이 됐으니까 정혈을 빨리지 않겠지만 우린 큰일이잖아.”
섬랑은 내심 켕겼으나 억지로 가슴을 폈다.
밑에 애들이 두려워하는데 자신까지 그래서야 쓰겠는가.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야.’
청년은 자신을 흉보는 소리를 전부 들었을 게 뻔한데도 손찌검을 안 하고 있었다.
객잔에 들어가면 바로 돌변할지도 모르지만 벌써 위축되면 될 것도 안 되리라.
섬랑은 유쾌한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었다.
“쫑알대지 말고 심호흡이나 크게 해. 배 터지게 먹으려면 숨을 미리 골라놔야 할 거 아냐.”
아이들은 불안감이 조금 옅어졌다.
대장이 이렇게 대담한 모습을 보이자 우리도 질 수 없다는 오기가 솟았다.
“후하. 후하. 내 말이. 나는 이미 하고 있어.”
“흐흐. 나는 진작에 끝냈지.”
“먹고 죽어보자!”
겁먹은 분위기는 어느새 날아가고 왁자지껄해졌다.
섬랑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다가 옆에서 걷는 사내를 힐끔힐끔 올려다보았다.
혈조(血鳥)라 했던가.
촌스러운 별호만큼 사람도 어수룩해 보였다.
‘위급해지면 이놈에게라도 한칼 먹이고 죽어야지.’
금원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떼어내는 실력은 봤지만 사람 죽이는 게 무공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인질로 삼을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아쉽지만 그건 포기할 수밖에.
치밀한 계획과 오랜 준비, 적절한 연장들 없이는 진짜 무인을 잡을 수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하면 돼. 일단 부딪혀보자.’
이렇게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건만.
‘……!’
객잔에 들어서자마자 몸이 덜덜 떨렸다.
‘뭐, 뭐야?’
객잔은 서로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이 쏟아내는 살기로 당장에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미친! 독비귀도(獨臂鬼刀)가 오랜만에 살심을 품었구나! 근데 이 흉악하게 생긴 늙다리는 또 뭐야? 처음 보는데 어디서 굴러들어 온 거지?’
뼈까지 시큰해지는 살기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눈을 빛내는 그때.
섬랑을 끌고 온 미청년이 입을 열었다.
“식사 되죠?”
순간, 객잔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서슬 퍼런 살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청년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관 숙수님, 손님이 많으니 잘 부탁드려요. 흑조(黑鳥), 관 숙수님 좀 거들어주세요. 그래야 빨리 먹을 수 있으니까. 흑조? 왜 멍하니 있어요?”
청년의 말처럼 멍하니 서 있던 흉악한 인상의 노인이 급히 대답했다.
“네! 제가 흑조였지요.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관엽도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내오겠습니다.”
집중해서 지켜보던 섬랑의 눈에 이채가 맺혔다.
‘독비귀도가 존댓말을 써? 상노한테도 그런 적이 없는데?’
처음 보는 늙다리도 수상쩍었다.
‘제가 흑조였지요’라니.
설마 치병(癡病)에 걸린 건 아닐 테고, 청년이 급조한 가명을 뒤늦게 이해하고 맞장구를 치는 것 같지 않은가.
심지어 혈조라는 중년인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대체 이자가 누구기에…….’
마침 신비한 미청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친절하신 건 좋은데 너무 깎듯이 접대하시네. 부담스러워서 또 오겠어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청년은 대답도 듣지 않고 밖에 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추운데 빨리 들어와서 앉아. 몸을 제대로 녹여야 밥도 잘 들어가지.”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다가 슬그머니 들어와 탁자 앞에 앉았다.
그다음부터는 모든 것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청년은 거부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빠르게 섬랑의 손목을 잡았다.
“흠. 나쁘지 않아. 텅텅 비어 있는 게 차라리 낫지.”
“……네?”
“치료부터 하자.”
청년은 섬랑의 몸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찔렀다.
순식간에 출혈이 멎었다.
“가만히 있어. 비싼 거 발라줄게.”
청년은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거기 들어있는 금창약(金瘡藥)을 상처마다 극도로 얇게 발랐다.
섬랑의 눈이 커졌다.
‘무슨 놈의 금창약이 이렇게 좋은 향이 나지?’
뿐이랴.
통증도 금세 가라앉았다.
최소 한 달 정도는 몸을 조심스레 움직여야 할 줄 알았는데 이런 효능이라니.
욕심이 솟을 수밖에.
“대인. 조금만 더 두껍게 발라주시죠.”
“과한 건 모자라는 것만 못해.”
“몇 배 더 두껍게 바르셔도 전혀 과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내 것이잖아.”
“……아.”
치료는 금방 끝났다.
마치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 독비귀도와 흑조라는 노인이 요리를 연달아 날랐다.
잠시 뒤.
모든 탁자가 요리로 가득 덮이자 미청년이 권했다.
“다들 드시죠.”
청년이 먼저 한 젓가락 먹자 흑조, 상노, 독비귀도, 혈조도 젓가락을 들었다.
섬랑은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이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섬랑을 주시하고 있었다.
‘악의가 아니라 호의로 데려온 것 같은데…….’
물론 공짜일 리는 없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가 어딨는가?
‘어차피 거절할 힘도 없어. 일단 배나 채우자.’
섬랑은 어서 먹으라고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젓가락질을 했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과 입을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은 하나둘 불룩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젓가락을 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녀석들이 식사를 끝마치자.
청년이 축객령을 내렸다.
“너희들 대장과 할 얘기가 있으니 그만 가서 쉬어. 입단속 잘하고.”
“……!”
“억지로 눈을 부릅뜰 필요는 없어. 나쁜 짓을 할 마음이 있었으면 진작 하지 않았을까?”
“…….”
그러게.
그래도 아이들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자신들의 대장을 응시하며 명을 기다렸다.
섬랑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집에 가 있어. 얘기가 끝나면 돌아갈게.”
아이들이 머뭇거리자 섬랑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나는 기필코 성공할 몸이야. 너희들이 걱정할 그릇이 아니라고.”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청년을 한 번씩 노려보고 객잔에서 나갔다.
그렇게 모두 떠나자 청년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나를 죽이겠다는 뜻이네. 너, 꽤 인기 있구나.”
“대인.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죠. 제게 뭘 원하세요?”
“아까 얘기했잖아. 소교주 한번 해보라고.”
섬랑의 얼굴이 굳었다.
“농인 줄 알았는데.”
“나는 너보다 더 바쁜 사람이야.”
“왜 하필 제게 그러시는 거죠?”
“눈곱만큼 싹수가 보여서.”
“……그거, 칭찬인가요?”
“응.”
섬랑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거절하면요?”
청년이 피식 웃었다.
“당장 꺼지라고 해야지. 할 마음이 없는 놈은 필요 없거든.”
섬랑은 죽이지는 않을 거란 얘기를 듣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리고 호기심이 솟았다.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청년이 인상을 찡그렸다.
“너. 멸혼생사투(滅魂生死鬪)가 애들 장난 같냐?”
“설마요.”
“잠깐. 애들끼리 싸우는 장난이긴 한데 살짝 거친 편이긴 하지.”
“…….”
“어쨌든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없는 놈은 절대로 통과 못 해. 기껏 올라가 봐야 지키기도 못하고.”
“……그러니까. 대인을 사부로 모시면 멸혼생사투에서 우승해서 소교주가 될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이죠?”
“그건 아니지.”
“네?”
“제자는 하나로 족하거든. 그래, 업무 관계라 치자. 서로 빼먹을 건 빼먹는 사이.”
“……저한테 빼 드실 만한 게 뭐가 있다고.”
“네게서 빼앗는 게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말이 너무 길어지네. 할 거야, 말 거야?”
섬랑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었다.
“하하. 진짜 그럴 능력이 있으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나는 할 수 있어. 네가 해낼 수 있느냐가 문제지.”
섬랑이 발끈했다.
“싹수가 보인다고 하셔놓곤.”
“앞에 눈곱만큼은 왜 빼?”
“저야말로 할 수 있어요!”
“말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 의지를 보여봐.”
청년의 어조에 힘이 실렸다.
“조금 전에 애들한테 기필코 성공할 몸이라고 호언장담했지? 그 성공의 기준이 이런 변방에서 뜨내기 상대로 뒤통수나 때리는 건 아닐 것 같은데. 대답해. 네가 원하는 성공은 뭐냐?”
섬랑의 눈이 파랗게 이글거렸다.
누가 좋아서 쿠차까지 굴러떨어져 사는 줄 아는 건가?
그 어떤 무공도 익히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시간 낭비하면서 말이다.
내 가문이 어떻게 박살 나고 내게 어떤 굴레가 씌워졌는지 네가 아느냐고!
“……당신은 내 사정을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네 의지만 보이라니까.”
“…….”
섬랑은 청년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씹어뱉듯 선언했다.
“나는 최고가 될 거야. 천하마도의 정점에 우뚝 서서 손바닥만 한 세상을 오연하게 굽어볼 거야.”
청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너 설마 천하통일 같은 망상을 꿈꾸는 건 아니지?”
“흥. 그깟 거 해서 뭐 해. 내가 제일 강해지면 천하가 알아서 내 밑에 엎드릴 건데.”
청년은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래. 의지는 충분히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듣기 영 괴롭거든.”
섬랑도 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지?”
“의심 많은 녀석이네. 상노, 관 숙수. 보증 좀 서주시죠.”
“……하아.”
보증이 뭐?
무슨 토지나 집을 거래하는 것도 아니고, 쿠차를 쥐락펴락하는 고수들에게 그딴 걸 해달라고?
섬랑이 하도 기가 차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묵묵히 있던 상노가 불쑥 입을 열어 쇳소리를 흘렸다.
“그의 말이 옳다. 너만 잘하면 돼.”
관엽 또한 마찬가지.
무뚝뚝한 어조로 설명했다.
“그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다.”
“…….”
섬랑은 입을 떡 벌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귀신한테 홀린 것 같네. 개나 소나 아는 토납술도 못 익히게 하다가 이제 와서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심보는 뭐야?’
연유야 어쨌든 상노와 관엽은 허튼소리를 하는 위인이 아니었다.
저렇게 장담하며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 중 하나를 풀어줄 만큼 저 청년은 능력이 있을 터.
‘아니,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아.’
그 장담의 십분지 일이라도 되는 만큼의 힘을 정말 가지고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해.’
그토록 원하던 무공을 익힐 기회 아닌가?
소모품으로 굴리려는 것이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된다.
배반을 하면 몇 배 더 크게 돌려주면 되고.
섬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을 향해 정중히 두 손을 모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응. 잘해라.”
섬랑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청년의 독특한 화법이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것이다.
“저…… 근데…….”
“뭐?”
섬랑은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저는 내공 한 톨 없어요. 멸혼생사투 첫 예선까지 이레밖에 안 남은 거로 아는데. 정말 가능할까요?”
“난 또 뭐라고.”
“네?”
“네 말은 틀렸어.”
청년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을 이었다.
“이레‘밖에’가 아니라 이레‘나’ 남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