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19화
패기 좋으시네
아침이 밝았다.
정광은 푹 자고 일어나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자오가 반갑게 맞이했다.
“단주, 푹 주무셨습니까?”
“네. 혈조(血鳥)는요?”
자오가 미소 지었다.
“사막에서 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잠을 잤습니다.”
정광도 그랬다.
침상이 조금 삐걱거렸던 건 별로였지만,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모래바람을 맞지 않고 따뜻한 실내에서 아늑하게 잔 게 어딘가?
“잘 잔 만큼 먹는 것도 잘 먹어야죠.”
바로 고개를 돌려 주문했다.
“여기요! 아침 식사 두 명이요!”
관 숙수가 주방에서 걸어 나와 정광 앞에 우뚝 섰다.
“식사만 할 것이오?”
“하루 더 묵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제만큼 드리면 되죠?”
“지금 한 끼만 먹을 생각이라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얼마예요?”
관 숙수는 태연하게 두 배를 불렀고 정광은 어이없어하는 자오를 제지하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잘 부탁해요.”
자오가 셈을 치르자 관 숙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주방으로 들어가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정광은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칼 소리를 들으며 탁자를 손등으로 두드렸다.
“나쁘지 않네. 오늘 아침도 먹을 만하겠는데요.”
자오가 궁금해했다.
“단주,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어제야 그랬다 쳐도, 지금 뭘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정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톡톡 쳤다.
“소리를 들으면 알죠. 저런 칼솜씨로 재료를 다루는데 요리가 맛없을 리 있나요.”
자오는 자신이 놓친 게 있나 싶어 소리에 집중했다.
일정한 박자와 똑같은 크기로 들리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점은 없는 것 같았다.
“무척 능숙한 것 같긴 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인식하지 못한 게 무엇입니까?”
“과하게 힘을 줘서 짓뭉개거나 약하게 해서 덜 잘리는 것 없이 딱 필요한 힘만 써서 깔끔하게 썰고 있어요. 저러면 재료가 안 좋아도 맛이 살죠.”
자오가 감탄했다.
“소리만 듣고도 그런 것까지 아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제 수준에 오르지 못해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건데. 관 숙수님 용모를 떠올려 보세요. 어떻죠?”
자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뚝뚝한 얼굴을 말씀하시는 건 아닐 테고…… 아! 독비(獨臂)! 저자는 외팔이였지!’
식재료가 움직이지 않게 잡을 손이 없는데도 능숙하게 칼질을 하다니. 정말 놀라운 기예 아닌가?
“뻔한 사실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대단한 솜씨군요.”
“나쁘지 않은 편이죠. 저 실력으로 사람을 썰면 당사자는 한동안 어디가 잘렸는지도 모를걸요? 채소나 고기보다 사람을 써는 데 더 적절한 기술이라 할 수 있죠.”
순간, 칼 소리가 멎었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반각쯤 지나자 관 숙수가 어제처럼 큰 솥을 가져와 탁자 위에 내려놨다.
그는 정광을 슬쩍 본 뒤, 주방으로 사라졌다.
정광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자오에게 권했다.
“드시죠. 괜찮아 보이네요.”
각종 채소와 닭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독특한 향이 나는 향료를 뿌린 쌀밥이었는데, 정말 괜찮은 맛이었다.
덕분에 정광과 자오는 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객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휘이잉-
망할 놈의 겨울 같으니.
잠시 잊고 있었던 매서운 추위가 그들을 반겼다.
자오는 눈살을 찌푸리며 옷깃을 여몄다.
“단주.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어제 낙타를 거래했던 상노라는 분을 만나보려고요.”
“사거나 파실 게 있으신가 보군요.”
“여기 구경도 할 겸 겸사겸사 가는 거죠.”
자오는 정광 옆에서 걸으며 주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
“수응 어르신이 계속 안 보이셔서 걱정입니다. 근처에는 없으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정광은 내심 중얼거렸다.
‘있기야 하지. 아주 지루한 일이.’
누군가를 밤새도록 감시하는 건 무척 따분한 짓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가 하긴 싫으니 흑서 그놈이라도 해야지.
“그 실력에 험한 일을 겪을 리는 없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그도 그렇군요. 제가 걱정할 만한 분이 아니지요.”
두 사람은 어제 걸었던 길을 되짚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자오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하루도 안 지났건만, 또…….”
복색만 봐도 중원에서 온 게 분명한 사내 셋이 걷고 있었는데, 섬랑과 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치며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단주. 저자들, 표식이 없습니다. 섬랑이 단주께 저질렀던 짓을 되풀이하려나 봅니다.”
“그러게요. 이번엔 성공해야 할 텐데.”
“……네?”
“문제 있나요? 저분들을 자세히 보세요. 행색이며 불안한 눈빛이며 딱 봐도 뒤가 구린 분들이잖아요. 호위하던 상인을 죽이고 재물을 강탈해서 도망친 느낌?”
“솔직히 그래 보이긴…… 아니지, 내가 무슨 말을. 그걸 떠나 섬랑이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정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제 실패했다고 오늘도 주저앉으면 쓰나요.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면 저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죠.”
자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섬랑이 아이들의 대장인 것 같긴 한데 책임감이라니요?”
정광은 하늘에 떠오른 지 얼마 안 된 해를 가리켰다.
“제대로 된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면 이런 이른 시간부터 저렇게 떼로 몰려다니진 않겠죠. 고아거나 부모가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애들일 거예요.”
“아! 저 아이들이 뜨내기들을 습격해서 먹고산다는 말씀입니까?”
“여기 분들이 그다지 친절해 보이진 않잖아요. 알아서 해야겠죠.”
정광의 말대로였다.
어른들은 어제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뭘 하든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자오가 못마땅한 어조로 그들을 비판했다.
“정말 너무하군요. 어린아이들이 저렇게 위험한 짓을 하는데 방관만 하다니.”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닐걸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떻게 될지 한번 보죠.”
마치 정광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섬랑이 아이들과 장난을 치다가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걷는 세 사내 중 우측에 있는 자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응? 이 꼬마가…… 크윽!”
섬랑은 사내와 부딪히자마자 번개처럼 뒤로 물러났다.
녀석의 조막만 한 손에 들린 비수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좋은 비수라고 그렇게 떠들더니 날이 제법 잘 드네요. 하품(下品)이지만 독도 발랐고. 어제 하나 분질렀었는데 여러 개 있는 건가? 준비성이 꽤 좋은데요.”
“다, 단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암습을 당한 사내가 고꾸라지자 다른 두 사내가 고성을 지르며 병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악독한 꼬마를 봤나!”
“빌어먹을! 괜히 들렀잖아! 이게 무슨 꼴이야!”
“헉! 뭐지? 갑자기 다 왜 이래?”
사내들의 눈이 커졌다.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제 할 일만 하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 소름 끼치는 마기를 흘리며 자신들을 조여오고 있는 것 아닌가!
은밀히 숨기고 있던 각양각색의 병기를 꺼내 들고!
사내들은 악을 썼다.
“오지 마! 저리 가라고!”
“이 미친 새끼들아!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
뜻밖에 사내들을 거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동료를 해치운 흉수, 섬랑이었다.
녀석은 짧은 손가락들을 빠르게 움직여 비수를 휘돌리며 어른들에게 경고했다.
“다들 뭐 하는 짓이야!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사람들 중 허리가 잔뜩 굽은 한 노인이 짚고 있던 지팡이에서 긴 쇠꼬챙이를 뽑아 들며 허리를 꼿꼿이 폈다.
우득- 우드득-
“이상한 얘기를 하는구나.”
“뭐가 이상한데? 항상 그랬듯이 내가 먼저 간을 봤고 별것 아닌 사냥감이란 걸 확인했어. 그럼 다 내 것 아니야?”
“너는 남은 둘을 이기지 못해. 실패한 게야.”
섬랑이 이죽거렸다.
“실패라는 건 어제처럼 상대가 진짜 강한 경우지. 당신들, 내 덕에 고수에게 안 덤벼들었잖아. 개죽음을 모면하게 해줬건만 혀가 왜 이리 길어?”
노인이 듬성듬성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서슬 퍼런 살기가 담긴 조소였다.
“흘흘. 보자 보자 하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군. 당장 죽여주랴?”
“해보시든지.”
섬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달려와 섬랑 뒤에 섰다.
이런저런 흉기를 꼭 움켜쥐고 노인을 향해 살기를 발산하는 모습이 꽤 당차 보였다.
노인의 살기도 짙어졌다.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섬랑의 손에서 비수가 더 세차게 휘돌았다.
“환장은 네가 했지. 억지로 허리 펴지 말고 덤벼, 망할 꼽추야. 최소한 손가락 하나는 가지고 떠나주마. 이왕이면 젓가락도 못 쥐게 오른손 엄지로.”
“이 애새끼가 진짜!”
“이 늙은이가 진짜!”
“갈! 안 그래도 갈증이 나던 참이었는데 네놈들의 피를 몽땅 뽑아서 마셔주마!”
노인이 두 눈을 까뒤집으며 손을 쓰려는 그때!
쇳소리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그만.”
노인은 욕설을 내뱉으며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또 어떤 새끼가 뒈지려고…… 크흡! 사, 상노!”
상노가 노인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노인은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몸을 더 거세게 떨었다.
그리고 상노가 코앞까지 다가와 물끄러미 바라보자 노인은 떠는 걸 멈추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 오해요. 오해외다.”
상노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엄지를 접었다.
“하나. 쿠차 사람들끼리는 살인을 금한다.”
“주, 죽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소.”
다음은 검지였다.
“둘. 남의 일을 침범하지 않는다.”
“나, 나는 단지 섬랑 저 녀석이 실패할 게 빤히 보여서…….”
그다음은 중지.
“셋. 하나나 둘이 불만이면 당장 고차기(庫車伎)로 가서 독비귀도(獨臂鬼刀)를 꺾고 자격을 증명해라. 그러면 넘어가 주마. 아니면 그냥 내게 덤비든지.”
노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도, 독비귀도도 못 이기는데 상노를 어떻게 감히…….”
상노는 들어 올렸던 오른손을 노인 눈앞에 들이댔다.
“넷째와 다섯째는 무엇이지?”
쭈글쭈글한 주름과 수없이 많은 상처로 채워진 손.
거기에는 넷째와 다섯째인 약지와 소지가 없었다.
“어, 없소. 쿠차에는 세 가지 율법만이 있을 뿐이오.”
“그럼 침묵해.”
“…….”
노인은 입을 꾹 다물고 뒷걸음질 쳐서 군중 속에 묻혔다.
상노는 사람들을 한차례 훑어보며 딱딱 끊어지는 말투로 덧붙였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하려는 순간.
“크아악!”
“커억! 이, 이 새끼가 진짜…….”
뜨내기 둘이 비명을 토하며 엎어졌다.
상노에게 이목이 쏠린 사이, 슬그머니 뒤로 돌아간 섬랑이 그들의 등에 비수를 연달아 박은 것이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우와아아!”
“역시 대장!”
“해낼 줄 알았다니까!”
섬랑은 가슴을 활짝 펴며 점잖게 지시했다.
“아부는 적당히 하고 어서 챙기기나 해, 이것들아.”
“하하. 속으론 좋으면서. 알았어, 그렇게 할게.”
신난 아이들이 죽은 사내들의 짐을 챙기는 동안, 섬랑은 어른들을 둘러보며 정중하게 포권했다.
“오늘은 다행히 이렇게 끝났지만, 힘든 상대를 만나는 날이 또 오겠죠. 그때 잘 부탁드릴게요.”
섬랑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
“언제나처럼 깨끗하게 제 몫만 챙길 거니까 믿어주세요.”
“…….”
사람들은 섬랑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졌다.
섬랑은 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제야 생각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상노를 찾는 것이었다.
“이런. 벌써 사라졌잖아. 고차기에서 한잔 사려고 했는데.”
땀방울을 흘리며 짐을 나르던 아이들이 웃었다.
“큭큭. 돈 굳고 좋으면서.”
“내 말이. 대장, 그런 말을 할 땐 웃지 말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섬랑이 눈을 치켜뜨며 두 손을 매만졌다.
“이것들이 진짜. 오늘 한따까리 할까? 앙?”
“대장 또 화났다! 어서 튀어! 와하하하.”
“술부터 사자! 오랜만에 벌었는데 제대로 달려봐야지!”
짐을 전부 챙긴 아이들과 섬랑이 왁자하게 떠들며 멀어져갔다.
정광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장래가 꽤 기대되는 녀석이네.”
“…….”
자오는 할 말이 없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마두가 될 놈을 칭찬하다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단주가 그러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구나.’
자오가 혼란스러워하는데 정광이 명했다.
“반나절만 쟤를 몰래 지켜봐 주실래요?”
“섬랑 말입니까?”
“네. 어떤 아이인지 좀 더 알고 싶어서요.”
“…….”
흉악하고 음험한 성품만 더 잘 알게 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있나.
다른 이도 아닌 정광의 명인데 따라야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점심에 객잔에서 봐요.”
“네, 단주.”
자오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홀몸이 된 정광은 길게 기지개를 켠 뒤 상노가 떠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오는 일단 보냈고.’
섬랑이 전생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쓸 만해 보여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홀로 상노를 만나기 위함이 더 컸다.
‘갑자기 나타나 꼬리를 흔드는데 가줘야지.’
상노가 사람들을 훑어보며 너희들도 마찬가지라고 경고했을 때, 정광과도 시선이 마주쳤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꽤 멀리 가네. 어디까지 가려는 거야?’
상노는 기를 숨기지 않고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아예 밖으로 나가려는 건가?’
정광의 예상이 맞았다.
상노는 도시 밖으로 나가 한참이나 더 걸은 뒤에야 멈춰 섰다.
정광은 유람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그의 오 장 앞에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은밀하게 쫓아온 관 숙수가 굳은 얼굴로 도신 폭이 좁은 기형도를 꺼내 들었다.
“관 숙수님. 설마 여기에서도 요리해 주시려고요?”
“…….”
“상노께선 여기 웬일이세요? 사고팔 만한 건 보이지 않는데.”
침묵하는 관 숙수와 달리, 상노는 무겁게 답했다.
“네 목숨을 사고팔 것이다.”
“어떻게요?”
“내 질문에 답해라. 마음에 들면 살려주고 아니면 죽인다.”
정광은 손뼉을 짝 쳤다.
“와. 패기 좋으시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상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예전? 나를 아느냐? 너는 대체 누구지?”
정광은 상노의 그림자에 은신해 있는 흑서에게 뒤통수를 후려갈기라고 명하려다가 말았다.
대신 헛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갔다.
겉을 부드럽게 덮고 있는 선기(仙氣)를 밀어내고 속에 묻혀 있던 마혼(魔魂)을 열었다.
천하마도(天下魔道)의 종주(宗主)임을 자부할 만한 압도적인 마기(魔氣)가 솟구쳐 나와 정광의 온몸을 마(魔)로 물들였다.
상노와 관 숙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정광은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직이 한탄했다.
“내 땅에서 내 종에게 그딴 소리를 듣다니. 기억을 되새겨 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