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388화 (387/569)

2부 117화

고차(庫車)

치고 빠지는 게 아니라 섬멸전을 벌였기에 천마신교의 사망자는 엄청나게 많았다.

검후가 그들의 다음 삶이 평안하기를 축원하는데 독존이 인상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이거야 원. 저것들을 이대로 놓고 갈 수도 없고.”

불회당의 존재는 늦게 드러날수록 좋았다.

청양당이 실종된 것처럼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모래 속에 묻어 숨기는 게 최선이었다.

“전부 파묻으려면 허리가 휘겠어.”

뿐이랴. 시신들이 한곳에 가지런히 모인 게 아니라 드넓은 사막 곳곳에 흩어져 있기에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할 상황.

물론 독존은 그런 고생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황 당주. 뭐 하냐? 어서 치우지 않고.”

불회당원들 사이를 바쁘게 돌아다니며 상태를 점검하고 조치를 취한 뒤 잠시 쉬고 있던 황웅은 한숨을 내쉬었다.

독존의 말투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저 성질머리에 직책을 붙여 불러줬다는 건 자신을 인정하고 상당한 예우를 하는 것.

이 정도면 감읍해야지. 그저 온종일 삽질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앞이 캄캄해져서였다.

“후우우. 생각만 해도 아득해지는군요.”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지. 어쩌겠어. 빨리 끝내고 가자.”

“……어르신께서 도와주시면 훨씬 쉬워질 것 같습니다만.”

황웅이 조금 퉁명스레 대꾸하자 독존이 가슴을 폈다.

“내가 그럴 것 같냐?”

전혀.

황웅이 내심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정광이 제지했다.

“그냥 쉬세요. 아직 피곤이 풀리지 않으셨잖아요.”

“은공. 하지만 독존 어르신 말씀대로 흔적을 빨리 지우고 이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어디서 누가 나타날지 모르기에 더 안전한 곳으로 가서 쉬는 게 맞았다.

정광도 그건 동의했다.

“그래서 말씀드린 건데요.”

“……네?”

“바닥 파는 전문가가 따로 있는데 왜 헛심을 써요.”

정광은 무각사룡을 불렀다.

크롸롸롸뢋!

“시끄러워, 인마.”

찰싹!

…….

“저쪽으로 가자.”

……크라라.

정광은 무각사룡 위에 올라타 전투가 벌어졌던 곳마다 들렸다.

그리고 시신들을 묻게 했다.

“그렇지. 역시 잘하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이쪽으로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

무각사룡의 눈에 핏발이 섰다.

탑극랍마간의 사신이자 제 놈의 날카로운 비수라고 감언이설을 늘어놓더니만, 뭐가 어째?

조금만 참으면 싸울 수 있게 해준다더니 싸움은 개뿔, 이딴 잡일이나 시킬 줄이야!

이걸 그냥 확!

열심히 할 수밖에!

무각사룡은 죽어라 땅을 파고 시신들을 묻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모든 걸 끝마치자, 정광은 무각사룡의 머리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

“수고했어. 이제 가서 얘기하자.”

……?

대체 뭘 얘기하자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무각사룡은 정광을 태우고 일행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갔다.

정광은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모은 뒤 무각사룡의 공로를 알렸다.

“얘가 전부 묻었어요. 격려 좀 해주시죠. 뭐 하세요? 저만 손뼉 치잖아요.”

사람들은 얼결에 손뼉을 쳤다.

짝짝짝.

정광은 무각사룡을 등진 채 손바닥을 살짝살짝 올렸다.

더 환호하라는 의미였다.

‘아!’

불회당원들의 눈이 커졌다.

함께해 온 시간이 얼마인데, 자신들도 당했던 수법인데 왜 눈치채지 못할까.

‘같이 죽자!’

모두의 입에서 거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쌍각…… 무각사룡, 정말 대단한데!”

“내 말이! 그 많은 시체들을 어떻게 전부 해치운 거지?”

“어떻게긴? 무각사룡이니까 가능했던 일이지!”

“명불허전이군! 역시 탑극랍마간의 지배자라니까!”

…….

하늘도 버린 땅이라는 삭막한 탑극랍마간에서 장구한 세월 동안 홀로 외로이 살며 괴물 취급을 받아온 무각사룡이 언제 이런 환대를 받아봤겠는가?

난데없이 쏟아지는 칭찬에 어쩔 줄을 몰라 혀만 날름거리다가 생애 처음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기분을 맛봤다.

그 감상이 거대한 입에서 새어 나왔다.

……크, 크라라…….

거의 동시에 정광이 손바닥을 슬쩍 올렸다.

엄청난 환호성이 탑극랍마간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정광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신형을 돌렸다.

무각사룡이 젖은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밥이 거의 다 됐네.’

이제 뜸을 들여야 할 시간.

눈을 빛내며 힘주어 말했다.

“잘 들어. 네 동료들이야.”

무각사룡이 잠시 침묵하다가 나직이 답했다.

……크르르.

“긴 싸움이 될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크르륵.

“그래. 믿고 잘해봐. 좋은 추억이 될 거야.”

무각사룡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뜸 들이기까지 끝난 것이다.

정광은 녀석의 머리를 두드려 준 뒤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오늘은 섬멸전을 벌였지만 앞으로는 그러면 안 돼요. 청양당이 지원당이라 이렇게 끝났지, 무력대였으면 피해가 막심했을걸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전멸했을지도 모르고요.”

불회당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그럴 것 같아서였다.

‘지원당이 그 정도면 무력대는 얼마나 강한 거야?’

‘최정예 무력대라는 사흉(四凶) 중 하나라도 만났으면 화살을 몇 발이나 쏘고 죽었을까?’

검후는 물론이오, 심지어 독존의 눈조차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정광은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단단히 주의를 줬다.

“강한 적은 독존 어르신과 검후 어르신이 일찍 눈치채실 테니 욕심부리지 말고 최대한 피하세요. 만만한 상대만 터시며 전력을 아끼셔야 해요. 정리하시던 게 있으면 마저 끝내시고 바로 떠나죠.”

“알겠습니다, 은공.”

불회당은 군사 서도한의 지휘하에 청양당의 보급품을 분류했다.

거둘 건 거두고 묻을 건 묻었다.

그 양이 너무 많아 묻을 게 더 많았는데 무각사룡이 기꺼이 나서준 덕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무각사룡의 엄청난 힘에 경악하던 한 당원이 마땅한 호칭을 떠올리지 못해 당황하다가 간신히 쥐어짜 냈다.

“고, 고맙소. 무각공(無角公).”

무각사룡은 ‘무각’은 싫었으나 ‘공(公)’이라는 존칭은 마음에 들었다.

자연히 울음도 부드럽게 나올 수밖에.

크라라.

“이, 이것도 부탁드려도 되겠소이까?”

말이라고.

파파파팟-

불회당원들은 강호 밑바닥에서 구르고 기었던 이들이라 눈치가 빨랐다.

무각사룡이 새로운 호칭을 마음에 들어 하는 걸 알고 너 나 할 것 없이 ‘무각공’을 연호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준비가 끝나자.

누런 모래 위에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정광, 흑서, 자오가 그들과 마주 섰다.

세 사람은 청양당의 보급품에서 신강(新疆) 무인들이 즐겨 입는 붉은색 경장(輕裝)을 꺼내 환복한 상태.

정광은 먼저 황웅을 비롯한 불회당 수뇌부에게 다가갔다.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불회진(不悔陣)을 쓰세요. 돌파하시든 방어하시든 피해를 최소화하고 바로 도주하시라는 뜻이에요.”

“명심하겠습니다.”

“검후 어르신과 독존 어르신을 믿으시고요. 그리고 군사님.”

“네, 은공.”

정광은 백가상단주 백진환이 줬던 서책을 서도한에게 건넸다.

“한번 훑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책장을 넘기던 서도한이 낮게 신음했다.

탑극랍마간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한 것 아닌가?

“이, 이건…….”

“그거, 백가상단이 이곳을 개척하며 만든 보물이에요. 사본이니까 중요한 건 외우시고 태우세요.”

“감사합니다, 은공.”

“뭘요. 그 내용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아시죠?”

모르지만 서도한은 절대 알고 싶지 않았다.

“미, 믿어주십시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네. 그럴 것 같네요.”

다음은 황웅이었다.

“당주님. 수고하세요.”

“은공.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복수라도 하시게요?”

“…….”

황웅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정광은 원수이자 은인.

그래도 받은 은혜가 훨씬 더 큰데 복수는 무슨.

전음으로 진심을 토로했다.

-그럴 힘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습니다. 빨리 돌아오셔서 제 무공을 봐주십시오.

정광도 편하게 답했다.

-네가 살아 있으면. 내친김에 앞으로 무엇을 업으로 삼을지도 정해줄게.

-헉! 그, 그런 수고까지는…….

-괜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정광은 두 부당주와 혈사풍 두령이었던 적사에게도 덕담을 해줬다.

‘어디 보자. 불회당은 됐고. 동방장을 챙겨야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낙타 부리는 기술을 더 열심히 익히시고 확실한 것만 쓰세요. 그럼 신뢰는 자연히 따라올 거예요.”

동방장이 투지를 불태웠다.

“주군. 내가 한번 실수했다고 또 그럴 것 같냐? 감을 잡았으니 이제 일사천리야.”

“약조했던 계약 기간은 일 년 반, 아직 꽤 남았으니까 도주하시면 안 돼요.”

“이, 이거 왜 이래? 나, 낭인은 신용 그 자체인데!”

“그럼 됐고요.”

다음은 십존 차례.

정광은 독존을 지나쳐 검후 앞에 섰다.

독존의 눈썹이 하늘로 솟았다.

“제자야. 설마 내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겠지?”

“어르신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텐데 뭐 하러요?”

독존의 어깨가 올라갔다.

“크흠. 그야 그렇지만 사제 간의 애틋한 석별의 정을 나눠야 할 것 아니냐?”

“죄송요. 제가 그런 성품이 아닌지라.”

검후는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정광을 맞이했다.

“나는 못 미더운 사람이니 마음껏 말하렴.”

“겸손하시기는. 독존 어르신을 잘 부탁드려요.”

입맛을 다시고 있던 독존이 소리를 빽 질렀다.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거라며!”

“혹시 몰라서 그러죠.”

검후의 눈주름이 더 깊어졌다.

“하하. 사람을 제대로 찾았구나. 그래, 나만 믿거라.”

“그리고 도마…… 아니지. 무각공, 이리 잠깐 와 볼래?”

……!

무각사룡은 두 눈을 부릅떴다.

항상 ‘도마뱀’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부르던 정광이 새로 얻은 별호로 자신을 찾을 줄이야!

크롸롸!

눈부신 속도로 기어가 정광 앞에 머리를 박았다.

정광은 무각사룡 때문에 일어난 엄청난 모래 먼지를 장력으로 날려 버리며 말을 이었다.

“검후 어르신께서 무각공을 돌봐주시면 좋겠어요. 필요하실 땐 도와달라고 하시고요.”

검후가 대자대비한 눈빛으로 무각사룡을 응시했다.

“이런 영물과 벗하며 지낼 기회가 생기다니. 부처께서 도우셨구나.”

“사람 못 먹게 하시고요. 무각공, 검후 어르신도 육식을 안 하시니 잘 지내봐. 그래도 너는 죽은 낙타라도 먹을 수 있지, 검후께선 그것도 못 드시잖아. 잘 해드려야 해. 어? 너와 안 맞을 것 같아? 그럼 독존 어르신께 부탁드리고.”

…….

무각사룡은 검후와 독존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죽은 낙타만 먹어야 하는 건 그렇다 치고.

그야말로 난형난제, 막상막하라 할까.

성질이 고약하기 짝이 없는 땅꾼이나 자비를 부르짖으며 살검을 휘두르는 사이비 불자나 그게 그거…….

아니지.

잘 생각해 보니 먼 친척뻘 되는 꼬마들의 독 냄새를 풀풀 풍기는 땅꾼보다는 살벌한 여인이 나았다.

크르르-

무각사룡은 검후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고, 오만한 눈으로 지켜보던 독존은 펄펄 뛰었다.

“이놈의 뱀이 감히! 나를 거부해?”

크릉.

“어억! 이, 이젠 콧방귀까지!”

독존이 길길이 날뛰려 하자 검후가 막았다.

정광은 검후에게 감사를 표한 뒤 무각사룡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있어야 해.”

무각사룡의 눈이 커졌다.

이놈이 왜 이러지?

또 뭘 시키려고?

저도 모르게 경계심이 솟는 순간!

정광이 무각사룡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툭툭 두들기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쓰윽, 쓰윽.

“무탈하기를 빌게. 다녀와서 보자.”

…….

부드러운 손길과 따스한 말에 경계심이 훨훨 날아갔다.

무각사룡은 저도 모르게 정광의 손에 머리를 비비며 낮게 울었다.

그르릉-

정광은 잠시 그러고 있다가 손을 거둬 바지에 꼼꼼히 문질렀다.

‘정말 잘 있어야 하는데…….’

철월의 머리를 고치기 위한 영단을 만들려면 무각사룡의 피 한 말이 필요했다.

지금 뽑자니 보관할 방법도 마땅찮을뿐더러 마음잡고 열심히 하려는 애를 기죽이는 꼴 아닌가?

‘뭐 튼튼한 놈이니까 죽을 일은 없겠지.’

철월도 튼튼하니 피가 모자라거나 없어도 어떻게든 될지도 몰랐다.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미래의 일은 미래의 것.

지금은 가야 할 시간이었다.

정광은 많은 사람들과 무각사룡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흑서와 자오가 예비용 낙타들을 이끌고 정광을 따랐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그들의 발자국이 새겨졌다가 사라져 갔다.

* * *

“후와아아아. 드디어 넘었군요!”

자오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느껴졌던 사막이 끝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얼굴에 감고 있던 천을 푸니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미친놈. 그게 시원하냐? 춥지.”

먼저 천을 벗은 흑서가 핀잔을 줬으나 상관없었다.

자오는 세상 모든 것들이 마냥 좋게 느껴졌다.

“하하하. 어르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헉!”

순간 흑서의 신형이 사라졌다.

은신술을 펼친 것이다.

자오는 어이없는 눈으로 빈 안장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내공을 바짝 끌어 올리고 정신을 집중하면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보다 저 앞에 있는 도시가 더 궁금해서였다.

‘아니지. 사막보단 훨씬 낫지만 척박해 보이니 큰 기대는 말자.’

정광이 마치 그 마음을 읽은 것처럼 얼굴의 천을 풀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평범하게 만들어보려고 했는데도 원판의 한계를 넘지 못해 눈에 띄게 잘생긴 미남으로 하락한 얼굴이 드러났다.

자오와 흑서 역시 정광이 역용해 줬으나 여전히 평범하고 못생긴 얼굴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괜찮을걸요.”

“오오. 다행이군요. 헌데 단주께서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서역과 통하는 교역로 근처에 있는 도시니까요. 이름은 고차(庫車). 여기 발음으로는 쿠차라는 곳이죠.”

정말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니 있을 만한 것은 다 있고 사람도 많았다.

자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무척 해맑구나.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야.’

그때,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 중 하나가 친구들에게 장난을 치고 도망가다가 정광과 부딪혔다.

“아야!”

자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조심하지 않고…… 헉!’

동정도 잠시.

자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비수를 정광이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것 아닌가!

‘뭐, 뭐야 대체!’

경악하는 자오와 달리 정광은 태연했다.

비수를 두 손가락으로 분질러버리고 아이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콰앙!

엄청난 소리가 터졌으나 아이가 죽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아악! 엉엉. 흐윽. 비수를 사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던 건데…….”

아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그러면서도 정광을 힐끔거리며 빈틈을 노리는 모습이라니.

저 변명도 거짓이 분명했다.

자오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직접 배를 쑤셔서 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여주려고 했다는 거야 뭐야?’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 뭐가 저렇게 빨라? 순식간에 흩어지잖아!’

애초에 공범이었는지, 아이의 친구들은 거사가 실패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이 인간들은 또 뭐고?’

일상다반사였던 걸까?

이런 난리가 벌어졌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제각기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는 암습을 당한 당사자인 정광 역시 마찬가지.

우는 아이를 내버려 두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흐으으읍…….”

그리웠던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깊이 음미했다.

포악하면서도 음침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 밀려 들어와 천하마도의 주인이었던 진천마의 귀환을 반겼다.

‘나쁘지 않네.’

이제야 고향 부근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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