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386화 (385/569)

2부 115화

가호와 권능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연하게 느껴지는 으스스한 마기.

꿀꺽.

불회당 군사 서도한은 저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가 그 소리가 너무 커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 내가 이런 추태를 부리다니.’

전황을 냉정히 파악하여 당주 황웅이 적절한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조언하는 막중한 직책을 맡고 있거늘, 적과 대면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긴장해서야 무엇에 쓰겠는가?

‘다들 들었을까?’

서도한은 주위 사람들을 슬그머니 훑어보다가 내심 비명을 질렀다.

‘이런!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황웅은 물론이오, 다른 당원들도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 서도한처럼 침을 삼켰기에 그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렸던 것이다.

‘전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사기가 바닥을 치다니. 빨리 무슨 수라도 써야…….’

서도한이 다급히 머리를 굴리는 그때, 황웅이 이를 부드득 갈며 가슴을 활짝 폈다.

“쫄지 마, 새끼들아! 마교가 뭐? 마인은 화살이 꽂혀도 안 아프고 칼날이 들어가도 안 죽냐? 쟤들도 사람이야!”

불회당원들도 욕설을 내뱉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빌어먹을! 내 말이!”

“쪽팔리게 뭐 하는 짓이야?”

강호 밑바닥에서 구르며 산전수전 다 겪고 천하 최강 기마민족 중 하나인 오이라트와도 수많은 전투를 벌였던 불회당이었다.

무엇보다 정광의 변덕스러운 성품과 무시무시한 폭력까지 뼈저리게 경험해 본 이들 아닌가?

주눅이 들었던 것도 잠시, 금세 정신을 차렸다.

끝없이 추락했던 사기도 올라왔으나 독존은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황웅을 노려봤다.

서도한은 그 이유를 깨닫고 재빨리 첨언했다.

“당주의 말대로다! 겁을 먹지는 말되 독존 어르신께서 충고해 주셨던 것처럼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쏘고 또 쏘고, 휘두르고 또 찌르는 거다! 정면으로 맞서는 게 아니라 치고 빠지면서 말이다! 그걸 위해 격이목에서 구르고 이곳에 와서 혈사풍을 해치우지 않았느냐?”

황웅도 서도한의 의중을 눈치채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이번 싸움의 목적은 섬멸이 아니라 치고 빠지는 거다! 눈 뒤집혀서 무리하지 마! 독존 어르신의 말씀을 되새기며 조심스럽게 싸워라!”

독존은 그제야 황웅에게서 시선을 떼며 코웃음 쳤다.

“완전 바보는 아니고 보필할 줄 아는 놈이 하나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군.”

검후가 옅게 웃었다.

“당 시주가 있어 더 다행이지요.”

“흥. 화 매가 나를 칭찬할 때도 있었나? 설마 겁먹은 건 아니겠지?”

검후의 눈가에 잡혔던 주름이 더 짙어졌다.

“비록 속가이긴 하나 불제자를 도발하시다니요. 부처를 대신해 자비를 베풀려고 하니 손속이 다소 거칠어도 모르는 척해 주십시오.”

독존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히죽 웃었다.

“흐흐흐. 좋아! 왕년의 남해나찰(南海羅刹)이 돌아왔군. 오랜만에 그 악독했던 살검을 견식…….”

스르릉-

“잠깐! 그, 그 뭐냐. 그렇지, 화 매의 활검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감개무량하다는 말이었거든. 검 좀 치우지 그래?”

“그런 의미인 줄 알았습니다.”

검후는 독존을 겨눴던 애검을 거둬 가슴 앞에 세웠다.

그리고 황웅에게 말했다.

“당주. 나는 준비가 되었네.”

“크흠.”

독존도 양손의 손가락들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좀이 쑤셔 죽겠군. 나도 되었다.”

불회당원들은 두 노고수를 고마운 눈으로 바라봤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덕분에 긴장이 적당히 풀렸어.’

‘십존 중 둘이 우리와 함께한다. 밀릴 이유가 없어.’

황웅 또한 감사한 건 마찬가지.

불회당원들을 대표해 노고수들에게 예를 표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할 말일세.”

“해왔던 것만큼만 해. 고수는 우리가 해치운다. 아, 맞다. 제자야. 정말 구경만 할 셈이냐?”

독존의 물음에 모두 정광을 바라보다가 감탄했다.

‘역시 은공이시구나. 우리 같은 범부와는 뭐가 달라도 달라.’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눈빛으로 마인들을 보고 있었을 줄이야.’

정광이 진짜 고향 사람들을 만났다는 걸 그들이 어찌 알까.

허나 마기가 반가웠을 뿐, 만나고 싶던 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정광은 진천마라고 경배받았을 정도로 지고했던 존재.

신분이 신분인지라 지위가 낮은 교도를 많이 알지는 못했고 말년엔 모든 게 귀찮아져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더욱더 그랬다.

더구나 지금은 모두 모래바람 때문에 얼굴을 천으로 꽁꽁 싸매고 있는 상황.

아는 자가 있으면 용모가 안 보이더라도 기운으로 파악했겠지만 그것도 옛날얘기지. 마지막으로 마교도를 본 게 일이 년도 아니고 이십 년이 훌쩍 넘었거늘, 어느 무인이 그때의 기운을 그대로 지니고 있겠는가?

그런데 딱 세 명, 들고 있는 기문병기(奇門兵器) 때문에 알아볼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거야 원. 하고많은 놈들 중에서 하필이면 저놈들이라니.’

오래전, 은근히 짜증 나게 굴어서 죽일까 했는데 아랫놈들이 알아서 치워 버렸던 삼 형제였다.

‘무공이 높아지기는 했네. 정치질도 늘었는지 총단(總團)으로 돌아와 한자리하고 있고.’

놈들 머리 위에서 ‘청양당(靑羊堂)’이라 쓰인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무력대가 아닌 지원당이었으나 교주 직속의 조직.

저것을 이끌고 있으면 출세한 게 맞지.

그게 독이 되어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지만.

‘제 놈들 팔자가 그런 걸 어쩌겠어.’

정광은 먼저 독존의 물음에 답했다.

“저와 수응 어르신, 자오는 곧 떠날 테니 구경만 해야죠. 원래 계획대로 하시면 돼요.”

그래도 경각심은 심어줘야 했다.

저 삼 형제를 싫어했던 건 성품 때문이지 자질이 엉망이어서가 아니었다.

“적사님. 말씀하셨던 대로 청양당이라는 분들이 오셨는데 다시 한번 소개 좀 해주시죠.”

혈사풍 대주 적사가 바들바들 떨며 입을 놀렸다.

“처, 청양당은 천마신교의 무력대들을 보조하는 지원당 중 하나입니다. 먼저 저들이 보급품을 가져와 여러 촌락에 내려놓고, 무력대들이 그곳들을 지나며 청해성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청양당 무리에는 짐을 바리바리 실은 낙타들이 보였다.

“확실히 그렇네요. 저 앞에 서 계신 세 분이 우두머리 같고요. 날카로운 가시가 박힌 도리깨를 들고 있는 분들요.”

“전에 본 적은 없으나 셋이니 그럴 겁니다. 청양삼웅(靑羊三雄)이라 불리는 대단한 고수들 말입니다.”

정광은 다시 들어도 적응이 안 됐다.

삼설(三舌)이었던 놈들이 삼웅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청양당을 손에 넣으며 제 놈들이 직접 지은 별호겠지. 웃기지도 않네.’

정광은 비룡으로 화살을 쏴 삼 형제의 머리를 꿰뚫을까 하다가 해야 할 일을 마저 했다.

“저분들이 둘이면 십존 중 한 분과 호각이고, 셋이면 필승이라는 그분들이란 말이죠?”

못마땅한 기색으로 듣고 있던 독존이 버럭 화를 냈다.

“저깟 놈들이 무슨!”

“어르신. 꽤 멀리 있는데 기가 제대로 느껴지세요?”

“저따위 근본 없는 병기를 쓰는 것만 봐도 알지. 별것 아닌 놈들이야.”

그때, 청양삼웅 중 중앙에 있던 사내가 소리쳤다.

“혈사풍 놈들은 어디 가고 중원 버러지들이 왔구나! 여긴 웬일이냐?”

독존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말이 건방져서도 그랬지만 목소리에 실린 내공이 범상치 않아서였다.

‘한가락 할 줄 아는 놈이 맞긴 하군. 허나 그래 봤자지.’

가뿐하게 비웃어주려고 하는데 정광이 막았다.

“어르신. 괜히 정보를 줄 필요는 없잖아요.”

“……끄응.”

맞는 말이라 항변할 수 없었다.

저놈들뿐만 아니라 연이어 탑극랍마간으로 오게 될 마교도들과 싸워야 하는데 굳이 이쪽을 드러낼 필요가 무엇인가?

“황가야. 언제 시작할 것이냐?”

황웅이 바로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길은 이것뿐이었다.

“돌격 준비!”

“하아!”

“돌격!”

“와아아아!”

수많은 낙타들이 마교도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청양삼웅의 대웅도 음산하게 소리쳤다.

“삼대는 보급품을 지켜라! 일대와 이대는 나를 따르고!”

“존명!”

그들도 낙타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양측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활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불회당주 황웅이 명했다.

“일제사(一齊射)!”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불회당원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수많은 화살이 허공을 빼곡히 채우며 청양당에게 날아갔다.

청양당은 저마다 병기를 휘둘러 화살들을 쳐냈다.

활을 다루지 않는 그들은 더 짙은 마기를 뿜어내며 불회당을 분쇄할 기세로 달려왔다.

허나 불회당은 그들과 부딪힐 생각이 없었다.

“우측으로 선회!”

황웅의 명에 따라 일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연사(連射)!”

적들의 배후로 돌며 연이어 화살을 쏘았다.

청양당의 대응은 간결했다.

“죽여!”

대웅이 외치자마자 많은 교도들이 낙타에서 뛰어내렸다.

낙타가 방향을 바꾸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교도들이 직접 신법을 펼쳐 불회당에게 쇄도한 것이다.

황웅과 불회당원들의 눈이 커졌다.

‘미친!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파격적이지만 무모하구나! 지금 우리를 잡지 못하면 거리가 점점 벌어질 것인데!’

고수는 낙타보다 빠르다.

허나 그것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달릴 때 얘기지, 발이 푹푹 빠지는 드넓은 사막에서 언제까지 쫓아올 수 있겠는가?

군사 서도한이 황웅을 다급히 불렀다.

“당주!”

“알고 있어!”

청양당에서 낙타를 탄 자들은 기수가 뛰어내린 낙타들을 잡아끌며 이제 막 선회를 시작한 상태.

그사이 신법을 펼쳐 달려오는 마교도들을 최대한 쓰러뜨려야 했다.

황웅은 적절한 지시를 했다.

“두 발로 뛰는 놈들만 노려! 이대로 달리며 연사한다!”

아까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시차를 두고 화살이 연달아 쏘아졌다.

적들을 죽이진 못하더라도 발걸음을 늦추기엔 충분한 전술.

불회당원들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활시위에 다음 화살을 메기는데.

“억!”

“저, 저런 미친놈들을 봤나!”

청양당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화살을 피하느라 시간을 버리지 않고 병기로 쳐내거나 몸으로 받아내며 계속 달려왔다.

가슴이나 배에 화살이 꽂혔는데도 무표정이거나 입맛을 다시며 뛰는 모습이라니.

“쯧. 안 되겠군.”

불회당 선두 무리에서 달리던 독존이 후미로 쳐지려 했다.

독과 암기를 쓰려는 것이었다.

허나 군사 서도한이 막았다.

“어르신! 아직 아닙니다!”

“무어라?”

“이제 겨우 이합을 어울렸을 뿐인데, 구명절초를 벌써 쓰는 무인이 어디 있습니까? 저희를 조금만 더 믿어주십시오!”

옆에서 편하게 달리던 정광도 거들었다.

“그러시죠. 이제 시작이잖아요.”

자신을 높여주고 정광까지 이러는데 어쩔 도리가 있나.

독존은 날카롭게 경고했다.

“이놈! 나를 실망시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서도한은 당당하게 대꾸하고 황웅에게 조언했다.

“당주! 화살을 집중해야 합니다!”

“알았다! 초월(初月)!”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선두가 속도를 늦추고 쐐기꼴로 달리던 진형이 좌우로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 달리는 방향으로 볼록하게 반원을 그리는 초승달 형태로 굳어졌다.

쫓아오는 마교도들에게 최대한 많은 화살을 쏘아낼 수 있는 진형!

황웅이 악을 썼다.

“내키는 대로 쏴!”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화살들이 허공을 갈랐다.

화살이 빼곡히 박힌 마인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계속 쏴라! 앞에 구릉이 있으니까 주의하고!”

불회당은 화살을 쉼 없이 날리며 모래 구릉을 넘자마자 철질려를 뿌렸다.

신형을 솟구쳐 구릉을 훨훨 뛰어넘었던 몇몇 마인들이 모랫바닥에 박혀있던 철질려를 밟고 고꾸라졌다.

그런 그들을 뒤따라온 마인들이 짓밟고 도약했다.

허공에서 화살비를 맞고 추락하는 자도 있었으나 아닌 이도 있었다.

얼마나 다쳤든 간에 숨이 붙어 있는 마인은 불회당원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뒈져라!”

“지랄!”

“던져!”

불회당원들은 활만 쏠 줄 아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단창들이 마인들에게 뿌려졌다.

퍽! 콰직!

단창에 꿰인 마인들이 우수수 떨어졌으나 일부는 온몸에 구멍이 났으면서도 끝끝내 날아와 피로 물든 이를 드러냈다.

“간지럽다! 이 새…… 커억!”

불회당원들은 다시 단창을 던져 마인들의 숨통을 끊었음에도 두려움을 느꼈다.

끝까지 덤볐던 놈들도 대단했지만 모랫바닥에 쓰러졌던 마인들 중 상당수가 다시 일어나 달려오고 있었다.

‘괜히 마인이 아니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허나 더 이상 의구심을 느낄 틈이 없었다.

좌측 구릉에서 아까 떨쳐냈던 마교도들이 낙타를 타고 날듯이 내려오고 있었다.

지휘를 하는 청양삼웅이 포악하기만 한 마두는 아니라는 의미!

독존은 물론 검후도 안색이 변했다.

‘너무 가깝잖아!’

‘이번엔 나서야 해!’

허나 불회당에는 불회당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격이목에서 탑극랍마간까지, 홀로 낙타들과 생활하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던 동방장이 나섰다.

삐이익- 휘익- 휙-

그가 휘파람을 불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교도들이 탄 낙타들이 우측으로 급격히 방향을 튼 것이다!

불회당원들은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열광적으로 외쳤다.

“동방장! 동방장!”

낙타를 부리는 놀라운 기예로 옆구리를 찔러오던 적들을 뿌리치다니!

그동안 따돌렸던 게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미안해지는 대단한 전공 아닌가!

허나 동방장은 냉정했다.

“아직 아니야! 앞쪽 구릉에서 또 온다!”

대웅과 이웅이 선두에 있는 무리가 낙타를 몰아 달려오고 있었다.

동방장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황 당주! 이대로 가다간 포위된다! 저놈들은 속도를 급하게 늦춰서 고꾸라지게 할 테니 좌측으로 틀어!”

“……!”

황웅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실력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윗줄에 있는 동방장이 자신을 인정하며 직책을 붙여 부르다니.

‘그간 미안했소. 다시는 가볍게 대하지 않으리다.’

동방장의 각성으로 불회당은 완전해졌다.

그 고마움을 담아 무겁게 답했다.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평상시라면 ‘말 좀 더 길게 하면 하늘이 무너지냐, 이놈아!’라며 시비를 걸었을 동방장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바로 입술을 기묘하게 오므려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삐이이이이-

황웅도 동시에 외쳤다.

“왼쪽으로!”

그리고 곧 후회했다.

적들의 속도를 급하게 늦춰서 고꾸라지게 하긴 개뿔!

놈들도 불회당과 같은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

황웅이 대노했다.

“야 이 황구(黃狗) 새끼야! 우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동귀어진을 노려?”

동방장이 당황했다.

“어? 왜, 왜 이러지? 이건 아직 제대로 안 되나?”

“닥쳐! 내가 잠깐 미쳤지! 방향을 바꾸긴 늦었다! 화살을 쏘아내며 속도를 올려!”

그때, 음침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급속도로 가까워진 대웅이었다.

“늦었다!”

이웅이 연달아 외쳤다.

“천마신교의 전사들아! 모두 속도를 높여라! 천하마도(天下魔道)의 종주(宗主)이자 만마(萬魔)의 지존(至尊)이신 진천마께서 우리를 가호하신…… 커헉!”

유성처럼 날아온 화살이 이웅의 입으로 들어가 뒤통수를 꿰뚫고 지나갔다.

“둘째야!”

대웅이 놀라 고개를 돌렸을 때, 낙타에서 떨어진 이웅은 뒤따라오던 낙타들에게 짓밟혀 부서지고 있었다.

콰직! 콰지직!

반대 측의 독존도 깜짝 놀라 정광에게 물었다.

“구경만 한다더니? 전력으로 쏜 것 같은데? 왜 마음이 바뀐 것이냐?”

“뭐 대단한 건 아니고요.”

정광은 비룡을 다시 등에 메며 어깨를 으쓱했다.

“좀 시끄러워서요.”

동시에 대웅의 비통한 목소리가 천하를 울렸다.

“화살을 쏜 새끼는 들어라! 진천마의 권능을 빌어서라도 기필코 죽여주마! 진천마여! 당신의 종께 힘을 내려주소서!”

“…….”

정광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저놈도 그냥 죽여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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