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7화
곤륜에 부는 바람
곤륜산의 매서운 칼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훈훈하게 웃은 것도 잠시.
정광은 의아함을 느끼고 운후와 허청을 번갈아 봤다.
“제가 올 걸 아시고 나와 계셨던 거예요?”
운후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괜히 나와보고 싶더구나. 네가 이렇게 온 것을 보면, 태상노군께서 너를 반기라 하신 것이겠지.”
“…….”
정광은 내심 감탄했다.
반선단(半仙丹)을 복용하고 수양에 힘써서 그런 걸까?
원래 신선 같은 풍모를 지닌 양반이 진짜 신선처럼 느껴지는 것 아닌가?
“사조님. 아직 할 일이 많으신데 우화등선하시면 안 돼요.”
“이 늙은이를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무슨 그런 참람한 말씀을. 자발적으로 하셔야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정광과 함께 산을 오른 이들이 일주문(一柱門)에 이르렀다.
정광이 그들을 소개하자 운후는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무량수불. 운후가 본문을 돕기 위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와 주신 강호동도들께 감사드리오. 이 은혜, 가슴 깊이 새기겠소이다.”
“……!”
정광이 과할 정도로 친근하게 대하길래 누군가 했더니…….
사람들은 그제야 신선 같은 노도사의 신분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덕성(德聖) 운후!’
‘너무나 뛰어난 성품으로 중원까지 명성을 떨쳤던 진인(眞人) 아닌가!’
‘과거 서장(西藏)의 대마두와 싸우다가 단전이 파괴되어 보통 노인과 별다를 게 없는 몸이 되었다더니 헛소문이었어.’
신선처럼 허허로운 분위기와 경지를 추측할 수 없는 무공.
여기에 예의 바른 언행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은 크게 감복하게 되었다.
‘진옥룡의 사조답구나.’
‘헌데 진옥룡에게 성품은 전수해 주시지 않은 건가?’
분명 협의를 품고 있으나 성품이 극과 극을 오락가락한다는 평을 받는 정광이 팽수빈에게 손짓했다.
“뭐 해? 태사조님과 사조님께 인사드리지 않고.”
팽수빈이 당황했다.
“제, 제자는 사부님의 무기명제자(無記名弟子)일 뿐인데 어찌 감히 곤륜의 진인들을 태사조님과 사조님으로 받들 수 있겠습니까?”
정광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라니? 무기명제자가 되면 나 개인의 제자지 곤륜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던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강호의 법도가 원래 그렇…….”
“법도가 무슨 대수라고. 그땐 귀찮아서 거절하려고 그랬던 거고, 내 제자면 곤륜과 한 식구야. 사조님, 사부님, 그렇죠?”
지켜보던 사람들이 대경실색했다.
적전제자(嫡傳弟子)와 무기명제자의 구분을 가뿐히 무시하다니.
문파의 근본을 뒤흔드는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중죄 아닌가!
허나 허청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정광 네가 오랜만에 옳은 얘기를 하는구나. 수빈아, 네 사부의 말대로다.”
“……네?”
“곤륜은 도사들이 모여 도를 닦는 도문(道門)일 뿐인데 무슨 권리로 사람을 가리겠느냐?”
“……!”
“소문으로만 들었거늘, 듣던 것보다 더 바르고 영민해 보이는구나. 곤륜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운후도 빙그레 웃었다.
“운학 사제가 말하길 정광이 제자 하나는 아주 잘 골랐다더니 사실이군. 정광과 완전히 달라. 네 집처럼 생각하고 편히 지내거라.”
“사조님. 저를 욕하시는 것처럼 들리네요.”
정광이 불만을 표하자 운후가 다독였다.
“네 머리가 그리 생각하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저 도우들이 승무의 부친과 모친이시냐?”
백진환과 허여민을 말하는 것이었다.
“네.”
“귀한 분들이 오셨구나.”
운후는 그들을 극진하게 반겼다.
“본문을 믿고 승무를 맡겨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본문을 위해 가산까지 정리해 보내셔서 놀랐소이다. 이 먼 곳까지 고생하며 왔기에 차마 거절하진 못했으나 이번 일이 끝나면 마음만 받고 돌려 드릴 테니 백가의 발전과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 써주시면 고맙겠소.”
백진환과 허여민은 물론이오, 다른 이들도 감탄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도가 느껴지는구나.’
‘덕성, 덕성 하더니 명불허전이군. 곤륜의 큰 어른이 배분도 낮은 일개 상단주 부부를 저리도 예의 있게 대할 줄이야.’
백진환과 허여민은 감탄을 넘어 감동한 상태.
운후에게 정중히 답례한 그들은 허청이 웃으며 하는 말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하. 허직 사제가 무척 기뻐하겠습니다.”
“…….”
“빨리 소식을 전해 만나게 해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 도장. 그렇게 수고를 하실 것까지는…….”
“하하하. 별일 아니니 불편해하지 마십시오. 우선 지내실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가시지요.”
허청이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정광이 잡았다.
“사부님. 잠시만요.”
“왜 그러느냐?”
“드릴 게 있어서요.”
정광은 등에 메고 있던 길쭉한 물건을 내밀었다.
허청은 천으로 칭칭 감긴 그것을 얼결에 받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엇이길래?”
“풀어보시면 알죠.”
그렇지.
허청은 피식 웃으며 천을 풀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검파(劍把)가 두 눈 가득 들어오는 것 아닌가!
“……검?”
“네. 한번 뽑아보세요.”
“그, 그러마.”
스르릉-
담담한 빛을 발하는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광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잘 어울리시네. 그걸 드시니까 진짜 도사처럼 보이시는데요.”
그다지 좋은 평은 아니었으나 허청은 감격했다.
“……지, 지금 내게 선물을 한 것이냐?”
“네. 마음에 드세요?”
들다마다!
정광이 시장바닥에 널린 녹슨 철검을 줬어도 감동했을 텐데 이런 보기 드문 명검이라니!
“원시천존이시여. 정광이 제게 선물을 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습…… 자, 잠깐. 이거, 상당히 오래된 고검인데 어디에서 난 것이지?”
“황궁무고에서 빼 왔는데요.”
“……!”
허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설마했거늘.
다른 곳에서 강탈한 것도 아니고 황궁무고에서 훔쳐 왔다고?
크게 호통을 치려고 하는데 운후가 막았다.
“침착하거라. 네 제자가 설마 도둑질을 했겠느냐?”
“…….”
사부님 눈도 떨리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망설이는데.
천만다행하게도 정광이 부정했다.
“태상황께 얻은 거예요. 장물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쓰세요.”
“그럼 그렇지! 이 사부는 너를 믿었느니라!”
“아니신 것 같은데.”
“어허. 맞다니까. 사부님, 손님들을 안내해 드리고 오겠습니다. 날도 추운데 그만 들어가시지요.”
허청은 운후에게 허락을 구한 뒤 사람들을 이끌고 떠났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검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운후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정광아. 정말 훌륭한 일을 했다. 네 사부가 저만큼 기뻐하는 걸 언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구나.”
“신기하네요.”
“무엇이 말이냐?”
“전표와 보석을 드렸을 때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 정도로 대단한 검은 아닌데.”
운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의 가치가 아니라 네 마음에 감동해서야. 이해가 안 가더라도 가끔 궁리해 보거라.”
“그야 어렵지 않죠. 사조님은 영약이라도 지어드릴까 했는데 아직 정정하시니 다음으로 미룰게요.”
“허허. 허허허. 나도 잊지 않고 마음을 써주는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만 들어가자꾸나.”
“일주문을 이렇게 비우고요?”
“네가 왔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
운후는 발걸음을 옮기다가 나직이 충고했다.
“네가 지금까지 맺은 인연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수빈이 그 아이처럼 모두 네 복이 될 것이야.”
“반대가 아니고요?”
“네 말도 옳다. 연(緣)이 이어지면 서로의 것을 주고받게 되지. 수빈이를 비롯한 다른 인연들이 네가 변하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들을 잘 대해줬으면 좋겠구나.”
전생과 비교하면 이미 말도 안 되게 잘해주고 있는 상황.
정광은 가볍게 승낙했다.
“그럴게요.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보거라.”
정광은 주위 풍경을 다시 확인하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각들이고 뭐고 간에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아니, 오히려 더 낡아진 것 같은데요.”
운후도 인정했다.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야 그렇지만 돈을 꽤 보내 드렸잖아요. 다 어디에 쓰셨길래 이렇죠?”
운후가 왜 그런 뻔한 걸 묻냐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하하.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웃음을 되찾았는지 아느냐? 네가 아주 큰일을 했어.”
“…….”
어째 오는 길에 본 사람들마다 때깔이 좋아 보이더라니.
말들을 맡긴 마을도 전보다 훨씬 윤택해 보였고.
“……곤륜을 위해 쓰신 건 없나요?”
“허허. 물론 있지. 산길을 깨끗하게 정비했단다.”
확실히 오면서 보긴 했지만…….
“……도우들이 산에 편히 오를 수 있도록 그러신 건 아니고요?”
“그들을 돕는 게 본문을 위하는 것 아니냐?”
정광은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역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네. 아예 마음을 비우는 게 낫겠어.’
정광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운후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수레바퀴를 고치거나 농기구를 새것으로 바꾸고 우마를 빌리는 것처럼 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나눠주고 있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자들에게 퍼주는 건 아니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야.”
“후우. 그나마 좀 낫네요.”
“허허. 이해해 줘서 고맙다.”
“뭘요. 먼저 장문인을 뵙고 인사드려야겠죠?”
“운 자 배와 허 자 배는 곧 본문을 도우러 온 이들과 삼청전(三清殿)에 모여 회의를 할 것이다. 네가 지금 가면 다들 마음이 들떠 집중을 못 하겠지. 장문인에겐 귀띔해 놓을 테니 네 사형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있거라. 회의가 끝나면 부르마.”
“네. 그럼 이따 봬요.”
정 자 배 제자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저 멀리 있는 대연무장에서 우렁찬 기합 소리가 계속 터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가만. 어린애들 목소리도 들리잖아.’
짚이는 게 있었다.
정광은 신법을 펼쳐 달려가 높은 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바닥에 내려서서 보니, 정 자 배 제자들이 어린 소년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얘들이 성(成) 자 배인가?’
곤륜은 정광이 새로 정립한 무공을 익히느라 정 자 배가 제자를 받는 시기를 놓쳐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에 여유가 돼서 거뒀다더니. 꽤 볼만하네.’
사부인 정 자 배는 더 훌륭하게 개량된 곤륜 무공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었고, 제자인 성 자 배는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자질도 나쁘지 않아.’
청해성은 손에 꼽힐 만큼 큰 성이지만 사람이 너무 적어 만성적인 인재난에 허덕이는 곳.
정광의 엄청난 명성과 곤륜의 높아진 위상 때문에 괜찮은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 천하 각지에서 몰려든 게 분명했다.
‘소림의 성세를 보고 곤륜과 비교했었던 게 떠오르네.’
정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곤륜 도사들이 돈을 헤프게 썼으나 정광의 수중엔 아직도 엄청난 재산이 남아 있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질 만한 똘똘한 녀석들도 모았고.
보나 마나 운 자 배가 심성을 따지며 많은 아이들을 떨어뜨렸겠지만 이만큼이라도 건진 게 어딘가?
바탕이 깨끗한 저 꼬마들이 처음부터 개량된 곤륜 무공을 익히면 꽤 재밌는 일이 벌어지리라.
게다가 곤륜만큼 주변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 문파나 가문은 천하 그 어디에도 없을 터.
‘황제가 과거 무당에 내렸던 혜택에 준하는 지원을 하고 청해성도 좀 더 키워주기로 약조했겠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정광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곤륜이 최고가 될 거야.’
물론 천마신교에겐 안 될 것이다.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지.’
한참 생각을 정리하는데.
정 자 배 대사형 정우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봤다가 눈을 크게 떴다.
“사제! 드디어 왔구나!”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어? 너 이 녀석!”
“중원이 그리도 좋더냐? 왜 이리 늦게 온 것이냐!”
“이 사형이 혼쭐을 내주마!”
정 자 배 제자들이 하던 수련을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정 자 배에서 신법만큼은 정현이 제일!
운해비영(雲海飛影)으로 훨훨 날아와 정광을 부둥켜안았다.
“이 나쁜 놈아! 이 사형이 보고 싶지도 않았냐?”
“뭐 별로…….”
“그래! 애타게 그리워서 이렇게 온 것이겠지! 하하하!”
“그건 아니고요. 천마신교 때문에 왔는데요.”
“거 좀 대충 넘어가자고. 어디 보자. 여전하구나. 아주 잘생겼어. 또 더 강해졌겠지?”
“당연하죠.”
“으하하하! 역시 내 사제라니까. 그 정도는 돼야지.”
정 자 배가 모두 달려와 정광을 둘러싸고 웃음꽃을 피웠다.
긴장한 얼굴로 머뭇거리던 성 자 배 소년들도 조심스레 다가와 정광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음?”
정광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고 있던 정우는 아이들을 슬쩍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뭣들 하느냐? 사숙에게 인사드리지 않고. 본문의 자랑, 진옥룡이다.”
“……!”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얼굴을 보고 그럴 거라 짐작했지만 살아 있는 전설인 진옥룡을 보게 되다니!
“사숙! 성연이 인사드립니다!”
“흐흐흑. 드디어 뵙는군요. 영광입니다!”
“소질은 사숙처럼 되고 싶어 곤륜에 입문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정광은 자신을 닮고 싶다는 아이에게 충고했다.
“사질.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네?”
“차라리 다른 직업을…….”
정우가 재빨리 끼어들어 근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네 사숙이 조금 전에 지켜본 바로는 그 정도 열의로 수련하면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다. 더욱 진지하게, 열심히 임하거라.”
“아! 알겠습니다, 사백!”
“그래. 인사는 이쯤 하면 됐고. 다들 그만 가서 수련을 해야지. 정광이었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야.”
“네! 사백!”
소년들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정우의 말에 따랐다.
정우는 멈췄던 수련을 다시 시작하는 소년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정말 바른 아이들이야.”
“대사형 말은 잘 듣네요.”
“네가 장담하면 눈에 불을 켜고 무엇이든 해낼 거다. 부정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못 하게 될 테고. 아직 어린아이들이다.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을 조금만 가려다오.”
“음. 또 그러면 천하제삼고수를 노려보라고 할게요.”
“……제이고수는 네 제자고?”
“당연하죠.”
“……소문대로군. 천하의 진옥룡도 제자 사랑은 어쩔 수 없는 건가. 같이 왔으면 한번 보고 싶구나.”
“마침 함께 왔으니 저녁때쯤 보시죠. 그러고 보니 막내 사제는요? 먼저 왔을 텐데.”
“본문을 돕기 위해 와주신 분들이 묵는 곳에 잠시 갔지. 셈에 밝다 보니 이래저래 많이 바쁜 편이야. 나중에 칭찬 한마디라도 해주면 기뻐할 것이다. 네 유모도 함께 갔으니 꼭 챙기고.”
“네. 그럴게요.”
계속 웃던 정우가 표정을 굳혔다.
“너는 그간 어떻게 지냈느냐? 정사대전이 끝나자마자 사라져서 모두 얼마나 놀란 줄 아느냐?”
“뭐 대단한 건 없고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정광은 드러낼 수 있는 얘기들만 풀었다.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정 자 배는 사제의 파란만장한 행보를 들으며 분개하다가 환호하고 울적해 하다가 기뻐했다.
정광은 ‘자오를 데려와 대신 말하게 할걸’ 하며 후회하다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응? 갑자기 어디를 가려고?”
의아해하는 정우에게 정광이 답했다.
“삼청전에서 열린 회의가 끝났나 봐요. 사숙이 이쪽으로 오시네요.”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인물이 연무장에 들어섰다.
꼬장꼬장하기론 천하제일을 다투는 허직이었다.
“……오랜만이구나.”
“네, 사숙. 잘 계셨어요?”
감개무량한 얼굴로 정광을 바라보던 허직이 정신을 차렸다.
그의 표정이 원래의 것으로 돌아갔다.
“그래. 잘 있었다.”
“다행이네요.”
“……크흠. 실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장문인께서 찾으신다. 어서 가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