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363화 (362/569)

2부 92화

각골명심(刻骨銘心)

도사가 제(祭)를 지내는 게 적성에 안 맞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황제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정광은 제뿐만 아니라 도사라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존재 아닌가?

그래도 이대로 보낼 수야 있나.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짐 곁에 있어주게.”

“가끔 들를게요.”

“좋아. 매해 이맘때쯤 보는 것으로 하지.”

“그건 가끔이 아니라 자주인데. 오랜만에 만나야 우의가 더 깊어지지 않을까요.”

“우의라…….”

황제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그래. 진옥룡 자네는 짐의 벗이었지.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돈도 대신 써주는 벗.”

“바로 그거죠.”

“다 좋은데 가끔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드는군. 천하의 소요를 가라앉히는 대로 상선감(尙膳監)을 확충해야겠어. 자네가 지금껏 맛본 것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요리와 명주를 준비해 두지.”

“황제 폐하 만세만세만만세.”

“이번 것엔 진심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는가?”

“그럼요.”

황제는 정광을 물끄러미 보다가 씩 웃었다.

“무운을 빌겠네.”

“폐하도요.”

“짐도? 무슨 의미인가?”

“외적도 문제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잖아요. 고생 많이 하실 것 같아서요.”

“하하. 짐의 사람을 요직에 심고 끌어 올려 기존의 자들을 견제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군. 각오하고 있네.”

“내부 사람은 정해두셨을 것 같고. 외부 사람은요?”

내부는 대소신료, 외부는 관과 연관된 사업을 하는 자를 이르는 것이었다.

황제는 바로 알아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안보다 바깥이 힘들어. 관직에 있는 자 중에 청렴한 이가 얼마나 될까. 각종 이권에 한 발씩 담그고 있는지라 사업체를 바꾸면 극렬히 들고 일어날 걸세.”

“그렇겠죠. 돈이 뭐가 그리 좋다고 그러는지 원.”

“…….”

“저기요, 폐하.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기분 탓일세.”

“아닌 것 같은데요.”

“가만. 자네가 괜히 그런 말을 꺼냈을 리는 없고. 좋은 방안이라도 있는가?”

정광이 어깨를 으쓱했다.

“욕심 앞엔 장사 없죠. 신료들이 반대하지 않을 만한 작은 곳에 적당한 일을 주고 천천히 키우실 수밖에요.”

“아무리 조심스럽게 해봐야 언젠간 핍박을 받을 걸세. 그걸 이겨내고 클 만큼 출중한 자가 있는 곳이어야겠군. 추천할 만한 인재가 있는가?”

정광은 부드러운 인상에 또렷한 눈동자를 지닌 장년인을 떠올렸다.

“대륙전장(大陸錢莊) 아시죠?”

“천하제일전장을 어찌 모를까. 헌데 그곳은 왜? 조건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데.”

“거기 사총관(四摠管) 강소산이 인물이라 할 만해요. 지금쯤이면 독립했을 텐데 사람을 시켜 알아보시고 쓸 만하다 싶으시면 거두시죠.”

“흐음.”

황제는 턱을 쓰다듬으며 빙그레 웃었다.

“자네가 인물이라 할 정도면 정말 뛰어난 자겠군. 고맙네. 한번 알아보지.”

“뭘요. 저한테도 좋은 일인데요.”

“음? 설마 짐과 이어주고 대가라도 받기로 했나?”

“원래는 황태손 저하를 알현하게 해주고 지분을 받기로 했는데 황상이 되셨으니 더 받게 되겠죠.”

황제가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짐도 일조를 했다는 얘기군. 좋아. 늘어난 지분은 공평하게 나누세나.”

“천하제일부자시면서 벼룩의 간을 빼 드시려고 하시네요.”

정광이 황당한 얼굴로 항변하자 황제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비가 워낙 많이 들어서 어쩔 수 없네. 외적을 모두 물리쳐도 한동안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할 것인데 짐이 무슨 체면을 따지겠는가?”

북방의 몽고, 운남성의 야만족, 해안가의 해적, 감숙성의 오이라트까지.

무림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엄청난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다.

훗날 피해를 복구하고 민심을 다독이려면 막대한 비용을 지급해야 할 터. 더구나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노라 결심하지 않았던가.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은 재물이 필요했다.

정광은 황제가 토로하는 고충을 듣다가 싱긋 웃었다.

“어디에 투자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황상께 드리는 게 낫겠네요. 천하에 대명의 천자보다 신용 있는 분은 없으니까요.”

“투자라니? 얼마나 있길래?”

“팽가에 전표와 보석이 가득 실린 수레가 있거든요. 전부 쓰세요.”

수레 한 대 분량의 전표와 보석이라는 말을 듣자 황제의 눈썹이 꿈틀했다.

천하의 주인인 천자가 놀랄 금액은 아니었으나 마른 땅에 단비가 조금이나마 내리는 격 아닌가.

황제는 정광을 뚫어져라 보며 다짐했다.

“요긴하게 쓰고 크게 불려서 돌려주겠네. 이번 것은 물론이오, 장차 모용세가와 벌일 사치품 교역의 이문까지 말일세.”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그럼 이만 갈게요. 한왕 전하와 조간왕 전하는 떠날 준비가 되셨나요?”

“한왕이야 원래 괜찮았고. 계속 의식을 잃고 있었던 조간왕과 영평공주가 깨어났네. 태의가 말하길 별다른 이상은 없다더군.”

전처럼 소혜가 심공을 써서 의식을 잃게 한 게 아니라 정광이 수혈을 짚어놨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청해성으로 보낼 거라고 이미 말해뒀네. 곤륜산으로 급히 가야 하지? 호위할 무장은 최소한으로 붙여야겠군.”

“네. 그게 편해요.”

“내일 아침에 와서 한왕과 조간왕만 먼저 데려가게나. 왕부의 식솔들과 자산은 차차 정리해서 보내겠네. 그런데…….”

황제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영평공주가 황궁을 떠나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네. 두 친왕을 따라 머나먼 청해성으로 가겠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소혜 소저도 따라가겠네요.”

“물론일세.”

“아픈 기억이 있으신 분인데 이번에 험한 꼴도 겪으셨으니 이해는 가네요. 그냥 허락하시죠.”

“마교가 서녕(西寧)을 치지는 못하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천하에 안전한 곳이 어딨나요. 자금성에도 자객이 숨어드는 판국인데요.”

“……자네의 말이 옳아. 심적으론 이곳이 더 위험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하겠네.”

황제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림인처럼 포권했다.

“내일 또 보면 미련이 생길 것 같으니 오늘 작별하는 것으로 하세. 벗이여. 잘 가게나.”

정광도 정중히 예를 취했다.

“건강히 잘 계세요, 폐하.”

“하하. 만세보다 훨씬 듣기 좋군. 자네도 건강하게.”

정광은 방에서 물러나며 은신해 있는 응삼에게 전음을 보냈다.

-응삼아. 황제 잘 지키고. 흑서는 팽가로 보내.

-조, 존명!

-너도 건강해라.

-……네?

-잘 있으라고.

-헉! 자,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주!

정광은 자오와 혜진의 방으로 가,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개들과 함께 번을 서고 있던 동방장은 정광과 시선이 마주치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

정광이 손짓했다.

“동방장님. 가시죠.”

“망할. 어디를?”

“황궁을 떠나려고요.”

동방장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니까 어디로 갈 거냐고. 설마 몽고 놈들 땅에 쳐들어가 싸우고 그럴 건 아니지?”

“제가 미쳤어요?”

“원래 그렇잖아.”

“진짜 미친 거 보여 드리고 싶네요. 하하.”

정광이 이를 드러내며 웃자 동방장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아니. 지금이 딱 적당한데 쓸데없이 뭐 하러. 어서 가자고, 주군. 그 어디라도 말이야.”

정광 일행은 팽가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팽수빈이 뛰어나왔으나 어른의 일이 먼저였다.

소가주 팽강웅, 태상가주 팽만소, 안주인 양희인이 모였다.

정광은 먼저 양희인에게 물었다.

“고아원을 만들려고 미곡상을 몇 개 사놨는데. 말씀 들으셨죠?”

“그렇습니다.”

“관리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양희인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이지요. 본가에도 도움이 되는 일인데요.”

이번에 다른 대토호들과 함께 재물과 곡식을 풀어 인망을 얻은 팽가였다.

팽가의 명성이 높아지자 불편해하는 이들이 생긴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양희인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단발성 구제 사업으로 목에 힘을 준다고 시기하는 자들의 입을 닫게 하려면 고아원 운영 같은 장기적인 선행이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화끈하시네요.”

다음 차례는 팽만소였다.

“태상가주님. 황상께서 조만간 사람을 보내셔서 제 수레를 가져가실 거예요. 그때 황궁에 같이 들어가셔서 황상의 힘을 북돋아주세요.”

“자네의 수레라 함은 전표가 실린 그것을 말하는 겐가?”

“네.”

팽만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금 사정이 그렇게 안 좋으실 줄이야…….”

“그 정도는 아닌데.”

“방금 황상의 힘을 북돋아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요.”

정광은 황제의 포부에 대해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팽만소는 정광의 말이 끝나자마자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피가 아닌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시겠다고?”

“네. 이래저래 힘드실 텐데 사부인 태상가주님이 도우셔야지 누가 돕겠어요.”

“……그렇지.”

“자주 입궐하셔서 한담이라도 나누세요. 고깝게 보는 자들이 있겠지만 그냥 무시하시고요.”

팽만소의 물기 어린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소인배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두렵지 않아. 황상께 누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겠네.”

“황상께서 기뻐하시겠네요.”

마지막은 팽강웅이었다.

“소가주님. 내일 아침에 본문으로 떠날 건데 팽가에선 어떤 분들이 가실 계획이죠?”

“원로 열 분과 벽력이십팔도(霹靂二十八刀), 그리고…….”

팽강웅의 말이 이어질수록 정광의 입이 벌어졌다.

“잠깐만요. 팽가의 명운을 걸고 싸우시려는 거예요?”

“자네에게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걸세.”

“맹주님이 아시면 뒷목을 잡고 쓰러지시겠네요.”

“이미 동의하셨으니 그럴 일은 없네. 오히려 맹주의 가문에서 모범을 보여야 다른 곳들도 제대로 동참할 거라며 칭찬하셨지.”

“저야 좋죠. 그런데 어느 분이 수장이세요? 미리 인사라도 드리려고요.”

“하게나.”

“네?”

“지금 자네와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소가주님이요?”

“나보다 배분이 높은 분들이 많으니 실제 지휘는 다른 분이 하시겠지만 명목상으론 내가 수장일세.”

“아니, 그게 아니라 싸우다가 귀천하시면 어쩌려고요? 이공자는 가주보다 싸움꾼이 어울리잖아요.”

“난 절대로 죽지 않아.”

“공청석유(空淸石乳)라도 한 바가지 들이켜셨어요?”

팽강웅이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허나 그의 음성에는 강한 확신이 실려 있었다.

“자네와 함께 싸우니까.”

“…….”

“표정이 왜 그런가?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기분 탓이시겠죠.”

“농을 한 게 아닐세. 그만큼 자네를 믿는다는 얘기야.”

“…….”

“또한 본가의 의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지. 곤륜만 피를 흘려선 안 돼. 무림맹이 모두 나서야 해. 이게 새로운 무림맹이 나아가야 할 길일세.”

정광은 뺨을 살살 긁다가 피식 웃었다.

“나중에 원망하시면 안 돼요.”

“그러지 않게 자네가 더 힘써주게. 그리고…….”

팽강웅이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수빈이도 가고 싶다고 떼를 쓰고 있네.”

“왜요?”

“마교와의 싸움이 끝나면 자네가 영영 떠나 버릴 것 같다더군. 그럴 셈인가?”

“영영은 과하죠.”

“그럼 수십 년? 십 년?”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수빈이가 나보다 똑똑하군. 자네, 너무 무심해.”

정광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가?”

“그렇네. 수빈이가 곤륜산까지라도 함께 가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한 게 이해가 가는군.”

“왜 하필 곤륜산까지라도예요?”

“자네, 곤륜과 무림맹이 곤륜산을 방어하게 한 뒤 소수 인원만 이끌고 신강(新疆)에 뛰어들 생각 아닌가?”

“어? 그건 또 어떻게 아셨죠?”

“사마련과의 싸움에서 그랬고 모용세가와의 싸움에서도 그랬으니까. 자네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스스로 피를 흘리지.”

효율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지만 팽강웅은 다른 방향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겠네. 곤륜이 안전할 거라 믿지만 수빈이가 너무 어려서 걱정을 지울 수 없어. 자네가 정하게나.”

정광은 황당한 눈으로 팽만소와 양희인을 번갈아 봤다.

“지금 들으셨죠?”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가만히 계세요?”

“자네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진옥룡을 믿어서지요.”

정광이 어처구니없어하자 두 사람이 덧붙였다.

“짐을 지우려는 건 아닐세.”

“수빈이에게 어떤 쪽이 좋은지 몰라서 그럽니다. 아니다 싶으시면 거절하세요.”

“흐음. 전장에 데리고 다니며 실전을 경험시킬 만한 나이이긴 한데…….”

팽씨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광은 그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방문을 향해 말했다.

“수빈아. 들어와 봐.”

“네! 사부님!”

엿듣고 있던 팽수빈이 재빨리 들어와 정광 앞에 섰다.

“나와 곤륜에 가고 싶어?”

“네! 사부님! 제자를 내치지 마시고 허락해 주십시오!”

“그럼 그렇게 하자.”

“사부님! 제자는…… 네?”

재고해 달라고 사정하려던 팽수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광은 그녀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곤륜의 제자는 아니지만 내 제자이니 곤륜산에 올라 풀도 씹고 골방에서 자고 칼바람도 맞아봐야지.”

“…….”

고작 그런 이유로?

황당해하던 팽수빈은 정광의 이어지는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좋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야. 좋은 산양도 있고. 말 나온 김에 가자. 가는 내내 기초를 다질 테니 단단히 각오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알겠으니까 좀 떨어질래?”

정광은 자신을 안으려는 팽수빈을 슬슬 밀어내다가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곤륜은 약하지 않아요. 무림맹에도 괜찮은 분들이 제법 있고요.”

“…….”

“그리고 제가 있죠. 수빈이는 잘 지내다가 올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잘 계세요.”

* * *

다음 날 아침.

정광은 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는 팽강휘와 모용수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두 분, 어디서 주무시고 오시는 거예요?”

“……!”

팽강휘가 얼굴을 붉혔다.

“어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소이다. 어려운 이들을 돕다가 늦었거늘, 무슨 말을 그리하오?”

정광은 신중한 눈빛으로 모용수수를 바라봤다.

모용수수는 눈살만 찌푸릴 뿐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았다.

정광이 손뼉을 치며 중얼거렸다.

“기분은 별로지만 어쨌든 됐네.”

“되, 되다니!”

“쌀이 익어 밥이 됐다고요. 그럼 밥 많이 지으세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정광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자금성으로 향했다.

그 속엔 흑서도 있었다.

새벽에 찾아온 그는 정광이 탄 말의 그림자에 은신한 채 움직이며 장탄식을 했다.

‘설마설마했거늘. 결국엔 이렇게 되는구나. 말년에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마치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정광이 전음을 보냈다.

-어때? 상이 마음에 들어?

-제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주!

-그래. 그 마음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 하해와 같은 은총! 각골명심(刻骨銘心)으로 아로새겨 누대에 남기겠습니다!

-오냐.

정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을 몰았다.

그리고 자금성에 도착해 함께 떠날 인원들을 둘러봤다.

‘다 왔네. 빨리 가자.’

그들을 이끌고 그리 많이 가지도 못했는데.

자금성에서 희미한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런. 태상황이든 상황이든 누군가 죽었나 보네.’

일단 명복 정도는 빌어주고.

제를 지내자며 오기 전에 빨리 가야 했다.

정광은 일행을 재촉하며 말고삐를 내려쳤다.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네요. 빨리 가죠.”

동이 튼 지 얼마 안 된 시간.

말과 마차가 질주했다.

청해성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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