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88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개방 하북분타주(河北分舵主) 윤우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찢어질 듯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부모를 여의고 거지로 굴렀다. 나이가 많은 거지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자신이 구걸해서 얻은 음식은 눈곱만큼도 남기지 않고 전부 삼키는 식탐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렇게 살기를 이 년.
지나가던 무림인이 그 근성을 어여삐 여겨 그를 거둬들이려 했다. 너는 협객이 될 거라고, 남아로 태어났으면 멋지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바람을 불어넣었다.
윤우는 바보가 아니었다.
남아로 태어났으면 뭐가 어째?
개방 거지에게 배워봐야 거지가 될 텐데 멋지게 살기는 개뿔.
상식적으론 그랬으나 윤우는 그를 사부로 모셨다.
협객이 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전보다 조금이나마 많은 음식을 먹고 더 안전한 곳에서 잘 수 있는 게 어딘가?
다들 기피하는 거지라는 업이 적성에 맞는 걸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대충 배우면 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거지지만 보통 거지보다는 조금 나은 개방 거지로 살 수 있어!
행인지 불행인지.
사부는 능력 있는 거지이자 무공 고수요, 협객이었다.
효율적인 동냥질은 물론 갖가지 무공을 가르쳐 줬다.
협의를 마음을 새겨주고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을 키워줬다.
진심으로 제자를 아끼며 모든 것을 베풀었다.
이렇게까지 해주는데 감화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윤우는 다시 태어났다.
그래 봐야 거지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훌륭한 거지가 되어 협명을 떨쳤다.
그리고 결국 개방 하북분타주 자리까지 올라 하북성 거지들을 대표하게 됐다.
모두 사부 덕분이었다.
‘거참. 좀 더 살다 갈 것이지.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 가셨소? 그것도 따뜻한 봄날에.’
윤우는 오랜만에 사부를 떠올리고 혀를 찼다.
‘망할 영감.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그런가. 괜히 생각나네.’
윤우는 한숨을 쉬다가 피식 웃었다.
‘나도 참 웃기는군. 역시 사부 말은 틀린 게 없다니까.’
사부는 일자무식이었지만 주워들은 건 많았기에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지.’
세상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더니 과연.
마음이 기쁘니 몸에 덮은 거적을 꿰뚫고 들어오는 차디찬 겨울바람도 따스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익히 듣긴 했지만. 그렇게 통이 클 줄이야.’
사소한 일을 한 대가로 정광에게 받은 전표의 액수는 무시무시했다.
사부처럼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윤우는 글을 아는 개방도에게 전표를 보여주고 나서야 알 수 있었는데, 너무 놀라 까무러칠 뻔할 정도였다.
그 순간을 회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윤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같은데가 아니라 그랬다.
‘켕겨서 그런가, 왜 이리 가려워?’
온몸을 벅벅 긁는 그때.
동냥 그릇으로 쓰는 반쯤 깨진 표주박에 철전이 떨어졌다.
‘어이쿠. 손님이 오셨구나.’
거지는 거지다워야 하는 법.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길가에서 구걸하던 그는 최대한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대인. 대인의 덕이 하늘에 닿아 하늘이 그만한 보답을 내려주실…… 엉?”
윤우는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그래도 그의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변하지 않았다.
“진옥룡.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정광이 정중하게 두 손을 모았다.
“안녕하세요, 분타주님. 도움을 청할 게 있어서요.”
“……!”
윤우의 머릿속에 수많은 소문이 스쳐 지나갔다.
정광의 청을 받은 자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해야 했는지 한탄했던 얘기들이었다.
윤우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꿀꺽. 자, 자네 같은 고수가 나 같은 거지에게? 높게 봐주는 건 고맙지만 너무 높게 본 것 같은데.”
“설마요. 도와주실 거죠?”
그럴 리가 있나.
윤우는 단칼에 거절했다.
허나 사부에게 세뇌당한 협의와 협을 행하며 느껴왔던 보람, 마지막으로 정광에게 살짝 미안해하던 감정이 다른 대답을 쏟아냈다.
“물론이지. 헉!”
“역시 개방이라니까. 감사합니다. 어려운 분들께 도움이 될 거예요.”
그냥 감사하지 말고 없는 일로 하면 안 되겠냐고 물으려던 윤우는 어려운 분들께 도움이 될 거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어떤 일이길래 그러는가?”
“미곡상(米穀商)을 몇 개 통째로 사서 곡식을 풀려고요.”
“으음. 뜻은 좋네만. 이미 팽가를 비롯한 대토호(大土豪)들이 많이 베풀었어.”
정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밝은 곳에 사는 분들은 정말 어두운 곳은 모르기 마련이죠. 찢어져라 가난한 분들에겐 안 찾아가셨을걸요?”
“…….”
확실히 그렇긴 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난에 찌들어 뭘 해볼 엄두조차 못 내고 배를 곯는 이들의 터전은 외딴곳에 있었다.
윤우가 그랬던 것처럼.
“이해했네. 아주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군. 허나 미곡상을 사봐야 제대로 장사할 사람이 없을 텐데. 곡식만 사게나.”
“아뇨. 곡식을 다 풀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미곡상에서 지내게 할 거예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자리가 괜찮은 곳을 몇 군데 발견했거든요.”
윤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가만. 자네 설마? 무림맹 근처에 고아원을 세웠다더니. 여기에도 만들려고?”
“네.”
“갑자기 왜?”
“하북성 북쪽에서 전쟁이 시작됐으니까요. 많은 아이가 부모를 잃고 여기까지 흘러들어 올 거예요. 그 아이들을 구해야죠.”
모든 것을 잃고 도망쳐 올 어른도 안타깝지만 고아가 처할 위험은 훨씬 더 컸다.
윤우는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겪었기에 깊이 공감했다.
“훌륭한 생각일세. 허나 시작만으론 곤란하지. 관리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팽가에 부탁하려고요.”
“팽가라. 자네가 부탁하면 절대 거절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자네 지출이 너무 클 텐데?”
정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무량수불. 목 좋은 자리라니까요.”
“……좋은 일도 하고 투자도 하겠다?”
“그렇죠.”
윤우는 정광을 응시하다가 크게 웃었다.
“으하하. 선행을 하는 게 부끄러운가? 땅값이 올라봐야 얼마나 오른다고.”
“길게 봐야죠. 저는 아주 오래 살 거예요.”
“크크. 그래, 그래야지. 나를 찾아온 건 시세를 파악하고 곡식을 뿌릴 사람이 필요해서지? 좋아. 전력으로 돕겠네.”
윤우는 깨진 표주박을 조심스레 품속에 넣고 일어섰다.
“금방 다녀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게.”
신법을 펼치려고 하는데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윤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틀째 동냥을 허탕 쳐서 난리가 났군. 뭐라도 채워야 하나.”
정광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제 전표 드렸는데. 그걸로 아무것도 안 드셨어요?”
“그건 이미 다른 곳에 썼네.”
“어디에요?”
“하북성 남쪽에 폭우가 내려 큰 산사태가 났거든. 화전을 일궈 입에 풀칠하던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어. 그쪽으로 보냈지.”
“전부요? 조금이라도 따로 빼놓고 맛있는 걸 사 드시지. 왜 그러셨어요?”
윤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지는 동냥으로 빌어먹어야 거지니까 그랬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기다리게나. 분타에 가서 얼은 밥덩이라도 먹고 금방 오겠네.”
윤우가 사라지자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자오가 감탄했다.
“진짜 거지군요.”
정광도 동의했다.
“네. 참 거지 같네요.”
“…….”
“왜요? 칭찬한 건데. 참된 거지 같다고요.”
“흠, 흠. 단주께서 사람을 잘 고르신 것 같습니다.”
“얻어걸린 건데요 뭐.”
“헌데 미곡상을 꼭 사실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도 여러 곳을 말입니다. 사부께서 알려주셨다는 그곳에 몰래 들어가 물건만 빼 오면 되잖습니까?”
“암왕께서 너무 순순히 알려주셔서요. 기관진식까지 전부 설명해 주시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아! 맞습니다. 보나 마나 심술을 부리셨겠지요. 기관진식을 파훼하다가 큰 소란이 일어날까 봐 아예 미곡상을 사려고 하시는 거군요.”
“네. 혹시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이왕 사는 거 여러 곳을 사는 거죠.”
“역시 단주십니다.”
“뭐 대단한 거라고. 그보다 밥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배고프네요. 육포라도 먹으며 기다리죠.”
혀가 황궁 요리에 길들여진 상태라 어느 곳에 가도 큰 즐거움은 못 느낄 게 뻔했기에 정광은 육포로 만족했다.
자오는 정광과 함께 육포를 씹으며 속으로 웃었다.
‘전부 맞는 말씀이긴 한데. 의심을 받을까 봐 돈을 더 쓰는 건 너무 나간 얘기지. 목적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게 습관이 되신 건가.’
이렇게 흐뭇할 수가 있나.
기분이 좋아지니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조금 전만 해도 연을 끊은 사부의 유품을 찾으러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정광이 선행을 베풀면서까지 이러려고 하자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단주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으나 내 뿌리는 영인문이야. 부정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해.’
윤우는 하북분타 거지들을 이끌고 금방 돌아왔다.
“진옥룡. 자네가 봐둔 미곡상들을 말해주게나.”
정광이 몇 개의 이름을 말하자 윤우와 거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미상회(粹米商會)?”
“하필이면 그곳이 포함돼 있다니.”
“보소. 웬만하면 거기는 빼는 게 좋을 거요.”
거지들은 정광을 생각해서 충고한 것이었으나.
정작 정광에게 필요한 건 그곳이었다.
“왜요? 분타주님, 문제가 많은 곳인가요?”
“이거야 원.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나.”
윤우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수미상회의 주인은 대단한 장사꾼일세.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돈독이 올라 틈만 나면 폭리를 취하려고 하는 위인이지. 절대 싸게 내놓지 않을 거야.”
“괜찮아요. 자리는 그곳이 제일 좋으니까.”
정광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저는 협상을 잘하는 편이거든요.”
* * *
‘천하에 이런 나쁜 놈들을 봤나! 시세를 이따위로 교란해? 성실한 상인을 주저앉게 해도 되냐고!’
수미상회의 주인인 왕구는 화를 참지 못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쟁이라고, 전쟁! 오랜만에 한몫 챙길 기회였는데 무상으로 곡식을 뿌리다니! 치솟던 값이 떨어졌잖아! 대토호면 다야?’
팽가를 포함한 대토호들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싶었지만 그에게 그런 힘이 있을 리 있나.
이를 부득부득 갈며 저주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놈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반드시 대가를 받게 될 게다! 지금 당장이라도 염왕께서 내려와 단매에 쳐 죽일 것이야!’
그때, 정문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세요? 살 게 있어서 왔는데요.”
왕구는 인상을 쓰며 밖으로 나갔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헉! 이, 이런 미남이 있다니!’
생긴 것뿐만이 아니었다.
걸치고 있는 의복이며 허리춤에 찬 검이며 하나같이 귀티가 줄줄 흘렀다.
“대인! 늦게 나와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왕구는 천하제일미남과 그의 시종인 듯한 중년인을 안으로 모셨다.
“너무 누추해서 죄송합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천하제일미남 정광은 가볍게 대답했다.
“수미상회를 사려고요.”
“하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저희 수미상회가 보유한 곡식들은 천하일품으로 유명…… 네?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말씀을…….”
“여기를 전부 사러 왔어요.”
느닷없는 제안에 놀란 왕구는 정광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탁자 위에 놓인 전표 한 장 때문이었다.
‘농이 아니구나! 정말 사러 왔어!’
놀람은 얼마 안 가 분노로 바뀌었다.
‘시세를 철저히 알아본 표가 나는군. 이렇게 적절할 수가 있나.’
많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흥. 내가 이런 거래에 응할 줄 아느냐? 그것도 부잣집 도련님에게?’
왕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인. 죄송하지만 팔 수 없습니다.”
“왜요?”
왜냐니.
주인 마음이지.
허나 왕구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세운 점포입니다. 소인에겐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추억이 쌓인 곳이지요. 부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르네요.”
“……무슨 말씀이신지?”
“예전에 염왕채(閻王債)를 굴리시다가 빼앗은 곳 아닌가요?”
“……하. 하하. 그럴 리가요. 지인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했습니다. 저를 음해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꾸며낸 이상한 소문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아. 그런 건가.”
정광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탁자 위에 전표가 한 장 더 놓였다.
“이 정도면 그 추억을 살 수 있을까요?”
“……!”
왕구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장사꾼.
얼굴 근육을 이완시킨 뒤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대인.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흐읍!”
전표가 석 장이 됐다.
왕구는 또 다른 자신과 치열하게 싸웠다.
‘팔아버리자!’
‘안 돼! 더 받아낼 수 있어!’
‘그러다 무산되면 어쩌려고?’
‘그땐 못 이기는 척 깎아주면 되지!’
욕심과 이성의 싸움은 욕심의 승리로 끝났다.
“대인.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오나 이곳을 떠나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네요. 그럼 이건 어때요?”
정광의 손이 또 움직였다.
왕구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런 호구를 봤나! 됐어! 팔아버리자!’
하지만 정광의 손은 새로운 전표를 꺼내지 않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전표들 중 한 장을 회수했다.
왕구는 입을 떡 벌렸다가 간신히 물었다.
“가, 갑자기 왜……?”
“생각해 보니 너무 많이 내서요.”
“…….”
“이래도 많은가? 한 장 더 빼죠.”
석 장이었던 전표가 한 장으로 줄어버렸다.
왕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인. 장난이 심하십니다.”
“장난 아닌데.”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내일이면 이것보다 낮은 가격으로도 못 파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대명천지에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뇨. 현실을 말씀드린 거죠.”
정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오가 서류 몇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 서류들을 훑어보던 왕구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럴 수가! 미곡상을 왜 이렇게 많이 사들인 거지? 그것도 후한 가격으로?’
정광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쪽 장사에 흥미가 생겨서요. 몰랐는데 이문이 적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산 점포와 앞으로 살 점포에선 수미상회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무조건 낮게 팔 생각이에요.”
왕구가 분노했다.
“상도를 지키십시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정광은 행동으로 답했다.
탁자 위의 전표가 사라지고 더 낮은 금액의 전표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어때요?”
“……!”
“그럼 이건?”
“당장 나가시…… 억!”
왕구는 공포에 질려 몸을 바들거렸다.
또 낮은 금액의 전표가 탁자에 놓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박히는 것 아닌가!
‘고, 고수! 무림의 고수구나!’
그의 귀에 정광의 상냥한 목소리가 꽂혔다.
“힘을 쓸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이게 마지막 제안이에요.”
“…….”
“마음에 안 드시면 내일부터 선의의 경쟁을 해보죠.”
“…….”
막대한 돈으로 덤비는데 승산이 있을 리가 있나.
왕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