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355화 (354/569)

2부 84화

개소리

명교주라는 자가 이 일을 교주께 어떻게 보고해야 하냐며 걱정하다니.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일인가?

둘 중 하나였다.

이놈이 가짜 명교주거나, 다른 교(敎)의 교주 밑에 있다는 것.

‘전자면 별 상관이 없지만 후자 쪽이면 얘기가 다르지.’

정광은 두 발이 절단된 명교주를 똑바로 눕히고 내려다봤다.

극심한 출혈 때문에 창백하게 변해가는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기대되지? 꼭 부응해 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

손을 쓰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여러 개의 기운이 움막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은신해서 번을 서고 있던 녀석들이었다.

‘귀찮게 쫓아갈 수고를 덜었어.’

쾅!

문을 부수고 나갔다.

운룡이 찬란한 금빛을 토하며 주변을 휩쓸었다.

허공이 갈가리 찢기며 몸을 숨긴 채 다가오던 사내들이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은신술을 이렇게 쉽게 간파당하다니!’

‘조금 전의 금빛은 뭐지? 설마 이놈이 진옥룡인가?’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스스슥-

그들의 몸에 거미줄처럼 새겨져 있던 희미한 선이 또렷해졌다.

그 선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그들은 곧 핏물과 육편(肉片)으로 화해 땅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정광은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흔적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사방으로 철전을 던졌다.

눈부신 속도로 날아간 철전들이 나무둥치, 움막 그림자, 허공에 박혔다.

“커헉!”

“으악!”

시체가 늘어났다.

정광은 기감을 퍼뜨려 주위를 한 번 더 훑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움막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피를 철철 쏟아내고 있는 명교주가 보였다.

그의 머리맡에 앉아 거친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을 건네는 목소리도 따스했다.

“오래 기다렸지?”

명교주가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의 의지로 그런 게 아니었다.

부드러운 손길과 따스한 목소리와는 달리, 정광의 눈은 소름 끼칠 만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사과는 안 할게. 네 멍청한 수하들 때문에 그런 거니까. 결국 네 탓인 거지.”

정광은 조곤조곤 설명하며 손가락으로 명교주의 발목 부근 혈도들을 짚었다.

순식간에 출혈이 멎었다.

그래도 너무 많은 피를 흘린 걸까?

창백했던 명교주의 안색은 어느새 파랗게 질려 있었다.

하지만 정광은 만족했다.

“좋아. 핏물은 적당히 빠졌네.”

이제 육질을 부드럽게 만들 차례였다.

눈앞의 고기를 천천히, 세심하게 다뤘다.

명교주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까무러쳤다가 깨어나길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한동안 열중하던 정광은 고문을 멈추고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적당히 연해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텅 비었던 명교주의 눈에서 독기의 불씨가 다시 피어올랐다.

정광은 자신의 성급함을 인정했다.

“아직 질기네. 더 다져야겠어.”

“……!”

시간이 흘렀다.

명교주의 의지는 점점 옅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광이라는 훌륭한 숙수 앞에서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그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정광의 고개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때가 왔음을 느낀 것이다.

조금 전 명교주는 흥미로운 사실을 늘어놓아 호도의 집중력을 키우며 술수를 부렸었다.

섭혼술(攝魂術)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녀석이란 얘기.

그런 놈이 더 다루기 쉬웠다.

걸리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걸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폐기하지 않고 더 써먹기 위해 마령제혼술(魔靈制魂術)이 아닌 섭혼마안공(攝魂魔眼功)을 펼쳤다.

정광의 두 눈이 유리알처럼 빛났다.

“내 눈을 봐.”

“……!”

명교주의 눈이 흐려지고 근육이 이완됐다.

“일단 아혈만 풀어줄게. 버티느라 힘들었지? 고생했어.”

정광의 따뜻한 말에 명교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진작 포기했으면 편하잖아. 왜 그리 미련한 짓을 했어?”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 네가 진짜 명교주야?”

“그렇습니다.”

“전 명교주였던 한림아의 아들 한서원. 그자가 갔다는 변경이 신강(新疆)이지?”

“맞습니다.”

정광의 미간에 골이 생겼다.

“네가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던 교주는?”

명교주가 대답하려고 하는데.

우우우우웅-

오랫동안 죽은 듯 지내던 역천경이 울었다.

요녕에서 모용회를 고문할 때와 똑같은 상황!

혹시 몰라 대비하고 있던 정광이 바로 움직였다.

운룡이 검집에서 나와 금룡으로 화했다.

화아아악-

움막 벽을 투과해서 들어오던 짙은 어둠이 하얗게 불탔다.

화르륵-

끼야악-

그게 시작이었다.

마기(魔氣)와 사기(邪氣)가 뒤섞인 불순한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또 당할 것 같냐?’

정광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발했다.

그 살기는 황금빛 검기와 함께 정광과 명교주의 주위를 산산이 분쇄했다.

파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악!

움막과 더러운 기운이 소멸했다.

사방이 탁 트이며 주변 풍경이 드러났다.

정광은 눈이 아닌 기감으로 적을 발견했다.

전에 놓쳤던 혼탁한 기운이 멀어져가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정광은 명교주를 둘러매고 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검을 내려쳤다.

놈이 또 더러운 기운을 쏟아냈지만 소용없었다.

상청무상검도(上淸無上劍道).

곤륜 비전 무공의 묘리에 따라 운룡이 금빛을 토해내며 우아하면서도 깨끗한 선들을 그렸다.

그 선들은 적의 육신과 기운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정광은 눈살을 찌푸렸다.

걸리는 느낌이 없어서였다.

그때.

우우우우웅-

역천경이 한쪽을 향해 울었다.

-나도 알아, 인마!

정광은 착지하자마자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운룡을 힘차게 휘둘렀다.

흐릿하게 허공으로 올라가던 검은 연기에 수많은 금빛 검기가 쏟아졌다.

촤아아악-

연기가 흩어지며 놈의 육신이 조각조각 났다.

정광은 놈의 파편이 닿기 전에 운룡대팔식을 펼쳐 멀찌감치 물러났다.

잔해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요녕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 놓칠 수는 없지.’

전력을 다해 죽였다.

진실을 토설할 입은 하나로 족했다.

명교주를 바닥에 내려놓고 몸을 살폈다.

“괜찮지?”

“그렇습니다.”

정광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고 이를 드러냈다.

“좋아. 대화를 다시 시작하자. 저기 널린 핏덩이의 정체는?”

“교주의 수신호위 중 하나입니다.”

“또 교주 얘기네. 그 교주가 누군데?”

“천마신교주입니다.”

“……확실해?”

“그렇습니다.”

정광의 눈에 분노가 떠올랐다.

설마설마했거늘, 이런 미친놈을 봤나.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이따위 만행을 저지르다니!

그래. 야망이 있는 건 좋은 거다.

그래도 때와 장소는 가려야지!

‘감히 천하의 평안과 내 행복을 방해해?’

정광이 환생한 걸 모르고 이랬겠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해줄 의무는 없었다.

‘제대로 알아봐야 해.’

그리고 손을 봐줘야 했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누구지?”

명교주가 입을 열자.

정광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진천마입니다.”

“……뭐?”

“진천마입니다.”

“……장난하냐?”

“아닙니다.”

“……진천마라며?”

“맞습니다.”

“……전 교주 말고 지금 교주.”

“진천마입니다.”

정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라고?

그랬던 기억은 없는데?

‘섭혼마안공이 약해서 그럴지도.’

이걸 쓰면 망가지겠지만 어쩔 수 있나.

마령제혼술(魔靈制魂術)을 펼쳐 명교주의 눈을 들여다봤다.

정광의 의념(意念)이 명교주의 눈을 통해 뇌리로 파고들었다.

그의 뇌를 의념으로 움켜쥐고 혼을 울렸다.

-다시 물을 테니까 똑바로 말해.

명교주는 넋이 나간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천마신교의 당대 교주가 누구지?

명교주의 입에서 건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천마입니다.”

-…….

정광은 하도 어이가 없어 명교주를 후려칠 생각도 못 했다.

마령제혼술을 썼는데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대답을 또 하다니.

‘가만. 어떤 금제(禁制)에 걸려 있는 건가?’

한번 돌아가 보기로 했다.

-한서원의 아들이 큰 도시로 나가서 명교 물건들을 팔려고 했을 때, 천마신교에서 그것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빼앗은 것이지?

“그렇습니다.”

-그것들 중에 네가 소혜에게 알려줬다던 심공도 있었던 거야?

“맞습니다.”

-너는 안 익힌 것 같은데?

명교주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이론은 그럴듯하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시험 삼아 알려줬을 뿐인데 소혜가 바로 익혀서 저도 놀랐었습니다.”

그럴듯하나 익힐 수 없는 것이라?

‘역시 심공에 관한 것은 소혜에게 물어봐야겠네.’

정광은 생각을 빨리 정리하고 질문을 이었다.

-조간왕도 명교도야?

“그렇습니다.”

-어미인 인효황후가 그렇게 만들었어?

“맞습니다.”

-밀약의 주체는 천마신교인 것 같은데. 맞아?

“그렇습니다.”

-왜 번거롭게 명교를 이용해서 일을 꾸몄지?

예상했던 대답이 나왔다.

“그래야 모용세가와 오이라트를 끌어들일 수 있어서입니다. 천마신교는 너무 크고 강하기에 숨겨야 했습니다.”

-모용회와 오이라트의 태사(太師) 토곤은 밀약이 자신들과 명교로 이루어져 있다고 알고 있는 거네.

“정확합니다.”

모용회는 대명의 황제와 협상해 왕으로 봉해지기 위해 밀약에 들어갔다.

토곤은 황금 씨족인 대칸을 밀어내고 자신이 대칸이 되기를 원했고.

두 사람의 최종 목표는 대명을 멸하고 황제가 되는 것.

헌데 천마신교와 손을 잡는다?

그 미친놈들이 중원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려고?

그에 비해 명교는 만만했다.

대계가 성공하고 조간왕이 황제가 된다 치자.

그가 명교도인 게 밝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뻔하지.’

명교는 오래전부터 사교로 규정된 집단.

대소신료(大小臣僚)도 백성들도 등을 돌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모용회도 토곤도 중원을 먹기 쉬워질 수밖에.

‘교주가 된 놈이 머리를 잘 썼네. 아주 귀여워.’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

정광은 질문의 흐름을 깨지 않고 연이어 물었다.

명교주가 금제에 걸렸다 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돌려 물어보면 허점을 보일지도 몰랐다.

-천마신교주는 중원 정복을 꿈꾸는 거야?

-그렇습니다.

-황제가 된 조간왕을 이용하든, 혼란을 일으킨 뒤 밀고 들어오려고?

-맞습니다.

-피해가 클 텐데?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 교주가?

-그렇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할 터.

‘가자!’

정광은 회심의 한 수를 던졌다.

-그래서. 교주가 누구지?

명교주가 즉시 대답했다.

“진천마입니다.”

“죽어! 이 새꺄!”

부처였어도 참지 못했으리라.

정광은 명교주를 패고 패고 또 팼다.

죽기 직전까지 맞다 보니 머릿속이 좀 깨끗해진 걸까?

명교주의 입에서 조금 다른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헉! 새, 새로운 진천마입니다!”

“……뭐?”

“지, 진천마를 계승한 새로운 진천마란 말입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내가 애가 있었나?

제자를 남겨두지도 않았고, 귀찮아서 심득 같은 것도 서책으로 정리하지도 않았으니 계승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을 테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정광은 살기를 흩뿌리며 또박또박 말했다.

“자세히 말해봐. 아주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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