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79화
용호상박(龍虎相搏)
대명(大明)의 심장부인 자금성에 난리가 났다.
다행히 역도나 외적이 침입한 건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컹컹!
왈왈왈!
와르르르!
숫자도 많지만 황구, 백구, 점박이를 비롯하여 어찌나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질주하는지.
무장, 문관, 궁녀, 환관 등의 자금성 사람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몰려오는 개떼를 바라봤다.
‘자금성에 개들을 데려오다니!’
‘저 많은 놈들을 어디에서 모아온 거야?’
‘대체 뭘 하려는 거지?’
‘가만. 갑자기 멈췄네?’
기세 좋게 달려오던 개들이 저마다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끼잉. 끼잉.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다가 다리 사이에 감추고 빙빙 도는 놈.
으르르-
근처에 있는 전각 기둥에 다가가 한쪽 다리를 치켜들고 오줌을 싸는 녀석.
왕. 왕.
좀 으슥하거나 구석진 곳에 가서 할 것이지, 중인환시(衆人環視) 속에 열정적으로 교미하는 놈들까지.
‘……미친.’
‘……이건 꿈이다. 꿈이어야 해.’
안타깝지만 현실이었다.
‘진옥룡이라 했나?’
‘황상께서 권한을 내려주셨어도 그렇지!’
‘이건 황상을, 대명을 모독하는 짓이야!’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너무 어처구니없어 수습할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던 사람들의 귀에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정광의 것이었다.
“정말 개판이네.”
그렇다. 진정한 개판이었다.
어림군 부지휘사도 정광의 완벽한 감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의 입에서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옥룡.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어찌 수습하려고 이런 만행을…….”
정광 역시 동감했다.
바로 시선을 돌려 동방장에게 따졌다.
“찾으실 수 있다더니 이게 뭐죠? 어떻게 수습하시려고 이런 만행을.”
동방장이 펄쩍 뛰며 항변했다.
“시간이 없었잖아, 시간이! 이만큼 모으는 것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훈련시킬 시간이 부족하셨다는 핑계인가요?”
“핑계라니! 엄연한 사실이다!”
살심을 억누르며 정론으로 반박했건만.
정광의 얼굴은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십리추종향(十里追從香)을 다 쓴 데다 만들 여건도 안 돼서 개의 손이라도…… 손이 없지. 코라도 빌리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뇌리를 가득 채운 짙은 실망감이 입에서 절로 새어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개방에 부탁할걸.”
“……뭐?”
“개방도 개를 잘 다루잖아요. 타구봉법(打狗棒法) 모르세요? 말 안 듣는 나쁜 개들을 패서 착하게 만드는 절기요.”
대견할 정도로 잘 참고 있던 동방장이 폭발했다.
“네가 아무리 내 주군이어도 할 말 못 할 말이 있지! 그 거지새끼들과 나를 비교해?”
분노한 건 이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감히 개를 욕할 줄이야.
네가 개의 반만 닮았어도 내가 이 고생을 하겠냐?
“게다가 나쁜 개라니! 천하에 나쁜 개는 없어!”
“그럼요?”
“나쁜 주인…… 흠흠. 아니, 나쁜 세상이 있을 뿐이지.”
지금은 자신이 주인이니 세상 탓으로 돌린 동방장이었다.
이렇게 살짝 켕기는 짓을 하자 흥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주군 놈한테 말리면 안 돼. 화내 봐야 나만 손해야.’
분명 참으려 했거늘, 머리는 다르게 반응했다.
정광이 쏜 화살을 입으로 받아내다가 어금니 두 개를 날려 버리는 걸 시작으로 계속해서 겪었던 수많은 고난이 떠올랐다.
‘이런! 또 평정이 흔들리다니!’
바로 정신을 차린 덕분에 또 입을 열어 속을 박박 긁으려던 정광보다 빠르게 말할 수 있었다.
“개들이 많이 당황했다. 진정시켜야 해.”
“왜 당황했는데요?”
“낯선 곳에 끌려온 데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는데 당당하랴? 갑주를 입은 무장들도 있잖아.”
“아.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은 축생인가 보네요.”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라.”
동방장은 입술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었다.
삐익- 휘이이익-
각각 다른 짓을 하고 있던 개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빠르게 달려와 동방장 앞에 앉은 뒤 꼬리를 살짝 세워 살랑거렸다.
동방장의 표정이 변했다.
대자대비한 부처가 이런 모습일까.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푸근해지는 미소를 지으며 개들에게 간식을 나눠줬다.
“괜찮다. 맛있게 먹고 전정해라.”
간식의 힘은 놀라웠다.
개들은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당당하게 섰다.
동방장은 정병들을 사열하는 장군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둘러보다가 정광에게 청했다.
“주군. 여덟 무리로 나눌 테니 금의위 무장들을 붙여줘.”
그들이 개들을 따라다니며 녀석들 때문에 놀랄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게 하란 얘기였다.
정광은 무장들에게 그 점을 설명하고 개들이 자객을 발견하면 금의수호팔진을 조이라고 명했다.
“알겠소, 진옥룡.”
“잘 부탁드려요.”
모든 준비가 끝났다.
동방장은 나직하지만 힘 있는 음성으로 개들에게 명했다.
“냄새를 쫓아라.”
“멍!”
개떼가 팔방으로 흩어지고 금의위 무장들이 그 뒤를 따랐다.
동방장은 팔짱을 끼고 녀석들이 가져올 승전보를 기다렸다.
이제껏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혜진이 감탄을 토했다.
“볼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군요. 짐승들을 이렇게 다루시는 분은 천하에 동방장님밖에 없으실 겁니다.”
극찬을 받은 당사자의 어깨가 근신전 너비만큼 넓게 펼쳐졌다.
정광도 동의했다.
“무림에서 여태껏 과소평가 받으신 감이 있죠. 왕의 반열에 오르실 만한 분인데.”
‘왕’이라는 말에 어림군 부지휘사의 눈썹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황제도 손을 놔버린 정광에게 뭘 바라겠는가?
근엄하게 서 있던 동방장은 다르게 반응했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리며 담담하게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 실력으론 어림도 없지.”
“그렇게 따지면 안 되죠.”
정광이 설명했다.
“무력을 어떻게 무공 수위만으로 평가해요. 잔재주도 포함해야지.”
“……칭찬 맞냐?”
“그럼요. 동방장께선 견왕(犬王)이라 불릴 만하세요.”
“…….”
개들의 왕이라.
능력에 걸맞는 말이긴 한데,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한편, 자오는 정광의 말에서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단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무력이란 무공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포함되는 것이라 하셨잖습니까? 다른 재주가 뛰어나면 무공 격차를 메꿀 수 있다는 의미로 말입니다.
-그렇죠.
-사부의 경우엔 좀 다릅니다. 암왕이란 별호 때문에 암습(暗襲)에만 특화돼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데 사실이 아닙니다.
-살수로서의 재주뿐만 아니라 무공 역시 강하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사부는 오만하지만 아무 근거 없이 그러는 분은 아닙니다. 암습 없이 정면 대결을 벌여도 강하다고 자부하시곤 했으니 조심하십시오.
-물론이죠.
정광도 인정했다.
근신전에서 잠시 겨뤘을 때 눈치챈 사실이어서였다.
‘얕지만 상처를 입었고. 무리한 수를 써서 내공을 꽤 소모했을 테니 빨리 찾으면 그나마 쉽게 상대할 수 있을 텐데.’
하늘이 도운 걸까.
멀리서 개들이 용맹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동방장이 계속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눈을 번뜩였다.
“주군. 찾았다.”
“수고하셨어요. 가죠.”
모두 신법을 펼쳐 달렸다.
정광은 주변 풍경과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비교하여 암왕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냈다.
‘영평공주의 거처인 만안궁(萬安宮)이 있는 자금성 서육궁(西六宮) 쪽이네.’
흑서에게 받았던 황궁 지도가 머릿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왜 이쪽을 선택한 걸까. 인질로 삼을 만한 인물이라도 있나?’
관(官) 입장에서 황제보다 존귀한 존재는 없다.
황제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그런데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자객을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풀어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질 따위 아무 소용없지. 그렇다면…….’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암왕은 소혜에게 진화를 공격하라 하여 정광을 교란하려 했다.
정광이 영평공주가 역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그 역시 안다는 얘기였다.
‘내가 의심할 만한 곳에 숨어 역(逆)을 찌르려 했나 보네.’
역을 노리고. 또는 역의 역을 노리고.
결국엔 결과로 평가받게 되는 수법이지만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어딘가 했더니.’
정광은 개들과 금의위 무장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곳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락궁(長樂宮)이잖아.’
만안궁 바로 밑에 붙어 있는 궁이었다.
그곳을 향해 크게 뛰어오른 정광은 금의위 무장들을 지휘하고 있는 천호(千戶) 옆에 내려섰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일전에 연무장에서 자오와 함께 정광을 험담하던 자였다.
“강 천호님. 살수요, 포위당한 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나요?”
“그렇소.”
강 천호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소인배가 아니었다.
신중한 눈빛으로 장락궁을 주시하며 설명했다.
“내 무공이 약하여 자객의 기척은 못 느끼고 있지만, 그대의 명대로 진을 바로 좁혔으니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것이오.”
기감을 끌어올려 장락궁을 확인한 정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고하셨어요. 아직 있네요.”
“역시 그대는 다르군.”
“자책하지 마세요. 저도 정말 미약하게 느껴지니까. 자객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 다행이에요.”
마침 소식을 듣고 달려온 부지휘사들이 다가왔다.
“진옥룡. 어찌할 생각이오?”
정광이 신중한 얼굴로 제안했다.
“이대로 포위한 채 화시(火矢)를 쏴서 불을 지르고 무너뜨리죠. 아. 화포 몇 대 끌고 오실 수 있죠?”
부지휘사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황궁에 방화를 하고 화포를 쏴?’
‘설마 반란을 일으키려는 건 아니겠지?’
정광과 꽤 연이 깊은 어림군 부지휘사가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진심이오?”
“물론이죠.”
“그대가 직접 황상께 불을 지르거나 무너뜨리진 않을 거라 말씀드렸지 않소?”
정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기억하시네.”
“…….”
“황상께서도 기억하시겠죠?”
그걸 말이라고.
“진옥룡. 농은 그만하시오.”
“이미 개판인데 불에 화포 좀 더한다고 무슨 큰 문제라고 그러세요.”
무장들은 장락궁을 포위한 채 늠름하게 짖고 있는 개들을 둘러봤다.
정광의 말대로 완전히 개판인 상황 아닌가?
그렇다고 이대로 홀랑 넘어갈 수야 있나.
어림군 부지휘사가 거부했다.
“차라리 우리가 들어가겠소. 차륜전(車輪戰)으로 힘을 빼놓을 테니 마무리를 부탁하오.”
“그럴 바엔 제가 가는 게 낫죠. 네 분께선 사방의 각 방위를 지키시며 금의수호팔진을 이끌어주세요.”
부지휘사들의 안색이 변했다.
‘홀로 들어가겠다고?’
‘적에겐 아수라처럼 굴지만 아군의 목숨은 아낀다더니, 과연.’
착각이었다.
그들을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암왕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였다.
정광은 근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저들이 들어가 봐야 시체만 늘어날 뿐이지.’
실내에 은신한 살수는 강하다.
‘만약 그 기묘한 은영술을 펼쳐서 도주하면 잡기 힘들어. 부지휘사들은 여기에 남아 금의수호팔진을 지휘해야 해.’
암왕이 지금은 여유가 없어 장락궁에 숨어 있겠지만 만일을 대비해야 했다.
정광은 자오에게 시선을 돌리며 전음을 보냈다.
-혹시 몰라 미리 말씀드리는데. 암왕 어르신, 귀천시켜 드릴 수밖에 없어요.
자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알고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자오는 지난 삶을 가만히 떠올려 봤다.
어린 시절 그를 지배했었고, 도망친 후에도 내내 정신을 옭아매던 사부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자오가 자세를 바로 했다.
-생의 끝을 맺어주는 상대가 단주라면 사부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럼 다녀올게요.
정광은 태연한 얼굴로 장락궁에 들어갔다.
희미한 기가 느껴지는 곳은 후전(後殿)에 있는 동배전(東配殿)이었다.
그 앞에 서서 운룡을 뽑았다.
운기조식으로 회복했던 내공을 끌어 올려 녀석의 검신에 담았다.
검신이 눈부신 황금빛을 토해내며 부르르 떨었다.
정광은 잔뜩 날뛸 준비를 끝낸 금룡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가 사선으로 그었다.
곤륜 비전 검법 중 강맹하기로 따지면 수위에 꼽히는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
금룡이 황금색 꼬리를 늘어뜨리며 동배전을 갈랐다!
서걱-
지켜보던 금의위 무장들이 눈을 부릅떴다.
작지 않은 전각인 동배전이 깨끗하게 두 동강 나다니!
끼기기긱-
잘린 윗부분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미끄러지다가…….
쿠웅!
땅바닥에 처박혔다.
어림군 부지휘사가 참지 못하고 외쳤다.
“진옥룡! 무너뜨리진 않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미끄러뜨렸는데요.”
살수의 왕인 암왕을 상대로 실내에서 드잡이할 생각 따윈 없었다.
정광은 간단히 대꾸한 뒤 환하게 드러난 동배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바닥에 내려서기 전에 금룡이 먼저 허공의 한 지점에 내리꽂혔다.
콰직!
“어라?”
정광은 의아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칙칙한 검은색을 띤 두 개의 철괴(鐵拐)가 열십자(十字)로 엇갈려 금룡을 꽉 물고 있었다.
‘재질이 그렇게까지 좋아 보이는 병기는 아닌데. 십분지 일 정도밖에 못 파고들었네.’
병기를 맞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두 개의 철괴엔 막대한 내공이 담겨 있었다.
“내공을 다 회복하셨는데 저를 끌어들이려고 그러고 계셨던 거예요?”
복면을 쓴 암왕이 서늘하게 웃었다.
“마침 다 회복한 순간에 네놈이 온 것이지. 감히 다 된 밥에 재를 뿌렸겠다? 네놈에게 그에 맞는 대가를…….”
그간 자오와 함께하며 말 많은 자의 수다를 어떻게 끊는지, 그 맥을 확실하게 파악한 정광이었다.
“주세요. 잘 받을게요.”
“……!”
몇 마디 하지도 못하고 말을 끊긴 암왕이 분노로 불타올랐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구나!”
정광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르신께선 관에 들어가실 연세가 이미 지나신 것 같은데요?”
“아직 멀고도 멀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마가 삶을 아느냐?”
“무량수불. 살수인 어르신보다는 도사인 제가 낫겠죠.”
“도사는 개뿔! 아수라보다 악랄한 녀석이 개소리를!”
“개들이 어르신을 포위하고 계속 짖었더니 귀가 망가지셨나 보네요.”
“이, 이익!”
두 사람의 말다툼은 실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다.
암왕은 그럴 거라 되뇌며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무공으로 펼치는 싸움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