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347화 (346/569)

2부 76화

마음 편히 즐기십시오

정광은 황태손, 어림군 부지휘사와 함께 만수절 행사가 열릴 근신전(謹身殿)으로 향했다.

근신전은 봉천전, 화개전과 함께 자금성 삼대전(三大殿)에 속하는 곳으로 평상시 만수절 행사가 열리는 봉천전보다는 작았으나 정면 아홉 칸, 측면 다섯 칸에 높이가 십장이나 되는 거대한 전각이었다.

그 큰 전각을 금의위 무장들이 철통처럼 둘러싸고 있었는데 정광은 방비 상태를 확인하다가 지붕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까워라. 저게 다 얼마야?’

찬란한 황금색 기와로 뒤덮여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라니.

자금성에 있는 대부분의 전각들이 이랬는데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차라리 날 주지. 더 가치 있게 쓸 텐데.’

정광이 지붕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자 황태손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진옥룡.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도 있소? 내가 보기엔 훌륭하오만.”

황금색 지붕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 위에서 사방을 주시하고 있는 금의위와 어림군의 위용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정광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입을 열었다.

“아뇨.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요.”

“하하. 다행이오.”

“그보다 의외네요. 실제로 보시면 불쾌해하실 줄 알았는데.”

황태손이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아니오. 일단 살아야 하지 않소?”

예법상 그 누구도 황제의 머리 위에 설 수는 없다.

허나 그 예법은 정광에 의해 이미 깨진 상태.

황제, 황태자, 황태손을 한자리에 모아 앉히고 지키기로 했는데 지붕 위에 올라가 경계하지 못할 건 또 뭔가?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마음먹은 황태손은 정광을 비롯한 수뇌부의 제안을 받아들여 황제를 설득했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보기는 안 좋으나 마음이 놓이는구려.”

“잘됐네요. 들어가시죠, 저하.”

“그럽시다.”

내부도 외부와 비슷했다.

금의위와 어림군이 빈틈없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정광은 그들보다 바닥과 천장에 눈길이 갔다.

‘하여간 취향하고는.’

이미 봤던 것이지만 적응이 안 됐다.

바닥에 금전(金甎)을 까는 것으로도 모자라 천장에 금박을 붙여 황룡을 그려놓다니.

‘떼어서 챙길 수도 없고. 일이나 하자.’

제일 중요한 건 황제, 황태자, 황태손이 앉을 자리였다.

예법을 무시하고 셋을 한데 모으기로 했으나 아예 구분을 두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중앙에 있는 황제의 의자가 제일 높았고 그다음이 왼편의 황태자, 오른편의 황태손 순이었다.

‘깔끔하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데 금의위 지휘사가 다가와 황태손에게 예를 올린 후 정광에게 물었다.

“네가 정한 대로 모든 걸 배치했다. 어떻느냐?”

정광은 주변을 확인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네요. 군(軍)이라 그런지 아주 각을 딱딱 맞추셨어요.”

“나도 마음에 든다. 탁자나 의자나 간격이 적당하고 배치도 좋아. 어느 곳에서 문제가 생겨도 바로 무장들이 가서 막을 수 있게 됐지.”

“지휘사님. 혹시 황족분들 있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정해진 인원만 움직여야 해요.”

정광은 황제 삼대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제일 중요한 건 여기니까요.”

“명심하고 있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황태손이 손을 들어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린 시절, 자객에게 당해 흉터가 남은 곳이었다.

정광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씩 웃었다.

“저하. 긴장하셨어요?”

“조금 그렇소.”

“솔직하셔서 좋네요. 잘하실 수 있죠?”

황태손은 자신과 부친, 조부가 앉을 자리를 노려본 뒤 정광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론. 오늘뿐만이 아니라 계속 살아남을 것이오.”

대체 몇 살까지 살려고?

눈빛도 목소리도 어찌나 뜨거운지.

정광은 살짝 부담스러워 시선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마침 철저한 몸수색을 거친 황족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있었다.

“저하. 손님들이 오셨네요.”

“갑시다.”

황태손은 당당하게 걸어가 황족들을 맞이했다.

황족들은 그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네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지나갔다.

그러길 몇 차례.

영평공주와 소혜가 혜진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정광은 영평공주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잠을 얼마나 설친 거야?’

거무죽죽한 눈그늘에 핏발이 선 눈이라니.

누가 봐도 잠을 제대로 못 잔 모습 아닌가.

그런 그녀에게 황태손이 인사를 건넸다.

“영평공주께서 오셨군요. 감기는 차도가 있으십니까?”

“저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만.”

“어제 낮에 몸이 좋아져 산책을 조금 했더니 오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밤잠을 좀 설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행사가 끝나면 푹 주무십시오.”

황태손은 영평공주를 부축하고 있는 소혜에게 당부했다.

“네가 힘쓴 덕에 공주께서 좋아지셨으나 완전치는 않으시다. 조금만 더 고생하거라.”

“네, 저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태손이 다시 영평공주에게 덕담을 건네는 사이.

정광은 소혜에게 전음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소저. 맞으면 눈을 한번 깜빡이시고, 아니면 두 번 깜빡이세요. 누가 살수인지 공주께서 말씀 안 하셨죠?

깜빡.

-살수가 전음으로 명령을 내리기로 했나요?

깜빡.

-그 전음 무시하세요. 대신 누구를 지명했는지 불취검에게 알려주시고요.

정광은 한 가지 설명을 더한 뒤 아주 작게 말하면 된다고, 그녀가 자리할 곳 부근에 있는 황족들은 모두 무공을 모른다고 안심시켰다.

-제 말에 따르시면 소저와 공주님은 살 수 있어요.

“…….”

-지금처럼 풍족하게는 아니지만.

“…….”

소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

게다가 지금처럼은 못 살 것이란 얘기에 더 신뢰가 생겼다.

황궁에서의 삶은 그녀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깜빡.

-좋아요. 그럼 이따 봬요.

다음은 혜진 차례.

정광은 그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물었다.

-하실 수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단주.

-긴 얘기는 안 할게요. 우리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니까.

-…….

‘우리’라…….

며칠 전에 들었다면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네! 단주!

-깜짝이야. 왜 이리 기운이 좋으시지? 술 냄새는 안 나는데.

혜진은 희미하게 미소지은 뒤 영평공주와 소혜를 호위하며 배정받은 자리로 갔다.

황태손은 계속 황족들을 맞이했고.

한왕이 나타났다.

“으하하하. 황태손 저하를 뵈오. 그간 잘 계셨소?”

그가 두 팔을 벌리며 황태손에게 다가가자 정광과 금의위 지휘사가 황태손 앞에 섰다.

한왕의 눈썹이 역팔자(逆八字)로 휘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장난치곤 고약하군.”

정광과 금의위 지휘사에게 물었건만.

황태손이 대답했다.

“전하. 이해해 주십시오.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한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근신 처분과 철저한 감시로도 부족했는가?”

“폐하의 뜻입니다.”

“자네의 뜻을 말해주게.”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황태손의 담담한 말에 한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변했군. 부황을 닮으려는 것인가.’

이대로 당할 순 없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데!

한왕은 최대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이제야 말하네만. 나이를 먹으니 여러 생각이 들더군.”

“…….”

“과거 전장에서 겪었던 아픈 경험들 때문인 것 같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지내고 싶네.”

황태손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 입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한왕은 그곳에서 흘러나온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피곤하실 텐데 그만 들어가셔서 편히 앉으시지요.”

“…….”

한왕은 황태손을 노려보다가 작게 웃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날카로운 분노가 담긴 웃음이었다.

“하하하. 생각해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결국 이렇게 되는군.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외롭진 않겠어.”

지금 막 근신전에 들어선 조간왕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왕은 두 눈을 부릅뜨고 황태손에게 속삭였다.

“먼저 가겠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전하. 마음 편히 즐기십시오.”

“…….”

한왕은 어깨를 억지로 펴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조간왕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황태손에게 다가왔다.

황태손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조간왕 전하.”

“부황이야 원래 그런 분이시고. 자네 역시 마음을 정한 것인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조간왕은 자신과 황태손 사이에 있는 정광과 금의위 지휘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이들이 형님과 나를 이렇게 경계하고 있잖은가. 자네는 태연히 받아들이고 있고.”

황태손이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자 조간왕이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삼십여 년 전 연왕이셨던 부황께서 큰 형님을 세자로 책봉하셨을 때, 지학도 안 됐던 나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네.”

허나 시간이 흘러 연왕이 거병하여 황위에 오르게 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비의 무서운 성정을 알기 때문이었다.

“큰형님은 번왕의 후계자인 세자에서 천자의 뒤를 이어 천하를 거머쥐게 될 황태자가 되셨지. 내 처지도 완전히 바뀌었네. 언제 숙청될지 몰라 두려움에 떨었어.”

그때나 지금이나 담대한 한왕과 달리 유약했던 조간왕은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수많은 고민을 하며 마음을 졸였지만 결국 깨닫게 됐네. 걱정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주사위는 내 손에 없는 것을.”

조간왕은 무심한 눈빛으로 황태손의 눈을 쳐다봤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처분을 기다릴 테니 정해지면 말해주게나.”

황태손의 대답은 한왕에게 했던 것과 같았다.

“알겠습니다, 전하. 마음 편히 즐기십시오.”

조간왕은 정광을 힐끗 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눈이 마주친 시간은 짧았으나 정광은 알 수 있었다.

‘한왕보다 한 수 위네. 마음을 제대로 숨길 줄 알아.’

막다른 골목에 몰렸는데도 저렇게 무심함을 가장할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암왕은 어디에 있는 거야?’

아까부터 기감을 키우고 있는데도 잡히는 게 없었다.

금의위 연무장에서 느꼈듯이 모습을 드러내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두 친왕 이후로 손님을 몇 명 더 맞이한 황태손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정광이 그 뒤에 시립하자 입구에 서 있던 환관이 크게 외쳤다.

“황태자 전하 납시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맞이했다.

“황태자 전하 천세천세천천세(千歲千歲千千歲)!”

정광은 큰 가마에 실려 들어오는 중년인을 보내 내심 혀를 찼다.

‘천세는 무슨. 당장 죽을 것 같은데.’

저렇게 피골이 상접한 몸으로 어떻게 가마에 앉아 있는 걸까?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황태자는 환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의자에 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길 몇 차례. 파리한 입술이 살짝 열렸다.

그를 호위하며 들어온 진화가 자세를 바로 하며 외쳤다.

평소와 다르게 큰 목소리로.

“전하께서 이 좋은 날 왜 이렇게 분위기가 무겁냐고 하십니다! 곧 황상께서 오실 테니 밝은 얼굴로 기다리라 당부하셨습니다!”

정광은 속으로 감탄했다.

‘아비인 황제를 닮아 독종이구나.’

하지만 눈빛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잔했다.

황태손이 자리에서 일어나 황태자에게 다가갔다.

“전하. 오셨습니까.”

황태자는 얼마나 기력이 없는지 진화의 평소 목소리보다 조금 크게 답했다.

“오랜만이구나. 여전히 건강한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황태자가 깊은 병에 걸린 뒤 문안 인사를 금지시켰기에 두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었다.

황태손은 정광을 슬쩍 돌아봤다.

정광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이며 내공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황태손은 고맙다는 눈빛을 보낸 뒤, 눈길을 황태자에게 돌렸다.

그리고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거리다가 결연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가 잘 해내겠습니다.”

황태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부드럽게 휘었다.

“고얀 녀석. 이미 아비를 건너뛰려 마음먹었구나. 그래. 그래야지.”

어릴 때부터 뛰어난 인재로 꼽혔지만 철혈은 부족했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을꼬.

황태자는 작지만 힘 있게 당부했다.

“그 마음. 절대 잊지 말거라. 하늘에서 지켜볼 것이야.”

황태손은 애써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래도 목소리가 떨리는 것만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훌륭하다.”

황태자는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정광을 바라봤다.

“소문은 많이 들었네. 자네가 그 유명한 진옥룡이지?”

“음. 어떤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선입견은 버려주세요, 전하.”

황태자의 눈가에 짙은 주름이 생겼다.

“하하. 걱정하지 말게. 내 아이라 그런 게 아니라 황태손은 훌륭한 사내야. 그런 사내가 아무나 친우로 사귀겠는가? 쿨럭. 쿨럭.”

황태자가 기침하자 진화가 내공을 밀어 넣었다.

황태자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잘 부탁하네.”

“뭘요.”

“좀 속되게 말해야 설명이 되겠군. 받을 건 다 받아내며 퍼주게나. 그래야 오래갈 수 있어.”

“오오. 역시 전하시네요.”

황태자는 황태손에게도 똑같은 말을 한 뒤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천하에 진정한 벗은 하나로 족하지. 그 벗과 죽을 때까지 함께 하려면 서로 서운함이 없어야 하는 게 인간이고. 그걸 넘어서는 건 성현조차 자신할 수 없는 일이니, 우리 같은 범부는 최소한의 선이라도 지켜야 한다. 이는 군신(君臣) 간에도 마찬가지야.”

말을 마친 황태자는 다소 하얘진 얼굴로 의자에 축 늘어졌다.

황태손은 묵묵히 예를 표한 뒤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정광이 그의 뒤에 다시 시립했을 때, 황궁 밖으로 나갔던 자오가 돌아왔다.

그는 정광에게 다가오지 않고 멀찌감치 서서 전음을 보냈다.

-단주.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은 다 끝났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곧 끝날 겁니다.

-고생하셨어요. 싫은 소리 많이 들으셨을 텐데.

-아닙니다. 단주께서 알려주셨던 수를 썼더니 금방 동질감을 느끼고…… 헉! 아, 아닙니다! 실언을 했습니다!

-네. 어깨는 나중에 두드려 드릴게요.

자오는 울상을 지으며 금의위 무장들 사이에 섰다.

잠시 뒤.

환관이 다시 크게 외쳤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가 병필태감, 금의위 지휘사, 어림군 지휘사와 함께 들어왔다.

벌떡 일어선 황족들이 일제히 예를 취하며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만세만만세(萬歲萬歲萬萬歲)!”

황제는 손을 살짝 들어 보이고 옥좌에 앉았다.

정광은 황태자와 비견될 만큼 안 좋아진 황제의 안색을 보며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거 생일잔치에 줄초상 치르는 거 아니야?’

암습을 막아도 용태가 저러면 어쩔 수 있나.

만세는커녕 칠순도 못 채우고 죽기 직전인 황제가 위엄 있게 명했다.

“편히 앉거라.”

모두 명에 따르자 황제가 말을 이었다.

“이번 만수절을 간략하게 진행하기로 한 것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더구나. 시국이 뒤숭숭하나 황군은 물론 무림맹, 사마련, 장강수로연맹 같은 무림인들까지 대명을 지키기 위해 나섰으니 잘 마무리될 터. 마음 편히 즐겨라.”

이번 만수절의 절차는 간단했다.

연회를 시작하기 전, 황족들이 황제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예물을 진상해야 했다.

몸이 아픈 황태자는 건너뛰고.

황족들 중 제일 앞줄에 앉아 있던 차자(次子) 한왕이 일어섰다.

그의 당당한 체구가 왠지 왜소해 보였다.

그리고 한왕이 움직임과 동시에.

은신해 있던 암왕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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