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살계(殺戒)
소림 최고의 학승(學僧)이 남긴 유품이 춘화(春畵)라…….
정말 현오답다고 할까.
춘화는 전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생생했다.
정광은 그 솜씨에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길을 잘못 들었다니까.’
안타까웠다.
속세에서 화공(畵工)으로 일했으면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부를 거머쥐었을 것을.
되지도 않는 중노릇을 한다고 산에 처박혀 풀만 씹으며 살다가 가버리다니.
‘아미타불. 내 그대의 유지를 잇지는 못하나 이 역작만큼은 길이 전하리다.’
안 그래도 수왕과의 수중전에서 엉망이 되어버린 춘화 때문에 안타까워하던 참이었다.
정광은 그것보다 더 훌륭해진 그림에 놀라며 현오를 축원했다.
‘이번엔 기름종이를 얻어서 단단히 감싸야지. 그만 갈…… 잠깐.’
여기서 서책을 덮는 건 현오에 대한 예가 아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끝까지 봐야 했다.
어차피 눈을 떼지도 못하고 있었고.
‘으음. 역시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상상력이 대단해. 이런 기묘한 초식을 또 창안했구나.’
이 서책이 무공서였다면 가당치도 않은 헛짓거리를 그려놨다고 욕했겠지만…….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설령 안 된다 해도 어떠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을.
정광은 현오의 심득을 가슴에 새기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응? 뭐야 이건?’
춘화가 아니라 단정한 필체의 글이 주르륵 쓰여 있는 것 아닌가!
신묘한 초식을 쉽게 풀이한 주석(註釋)이나 주해(註解)면 괜찮지만, 전혀 상관없는 내용의 글이었다.
‘아. 깨네.’
책장을 연달아 넘겨보니 춘화, 글, 춘화, 춘화, 글, 이런 식으로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글만 있으면 안 읽을지도 몰라 춘화를 섞어 억지로라도 읽게 하려는 심산인가.’
소중한 종이에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 읽어봤다.
‘흐음.’
그리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
불경의 고사(故事)들을 가볍게 풀어놓은 것이었는데, 사람이 사람을 대하고 그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얘기들로 가득했다.
‘왜 이런 걸 넣은 거야?’
전생에서만 해도 백 년 넘게 구른 정광이 볼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아직 때가 덜 묻은 수빈이에게나 맞으려나.
‘가만. 이거, 쓸 만할지도.’
팽수빈을 제자로 거뒀으나 잘 가르치고 있는 건지 감이 잘 안 잡히던 참이다.
강하고 올곧게 키워야 자신의 노후가 더 안락해지거늘.
무공은 그렇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었지만 심성 교육은 영…….
전생의 아비가 정광을 엉망으로 키웠는데, 정광이 제자를 잘 키우는 방법을 어찌 알까.
그런 아비와 달리 자신을 엄청나게 잘 키운 허청의 조언이 생각났다.
‘벽을 없애라 했었지.’
정광이 무기명제자(無記名弟子)를 거뒀다고 하자 그것부터 말했다.
너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을 거라고. 네게 어린아이를 살갑게 대할 재주가 없다는 건 하늘도 알고 나도 아니까 하는 소리라고.
그러니 재밌는 얘기를…… 누구의 목을 통쾌하게 치고, 어떤 수작을 부려 산적을 관(官)에 팔았으며, 술 한잔 걸치자는 등의 헛소리 말고. 수빈이의 나이에 어울리는 얘기를 들려주라 했다.
‘이거로 하면 되겠네.’
직접 읽으라고 하는 게 편하지만, 그러려면 서책을 훼손해야 했다.
민망한 그림까지 같이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외웠다가 간간이 들려주자.’
이번 싸움이 끝나면 팽가에 들러 무공을 봐줄 생각이었다.
수련 중간마다 이 얘기들을 들려줘서 사부 노릇을 제대로 해보는 거다.
‘어디, 제대로 한번 볼까.’
아까처럼 흘깃 보지 않았다.
책장이 차르륵 넘어가며 여러 고사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좀…… 아니, 많이 유치한데. 별로 와닿지도 않고.’
뭐 수빈이 나이엔 딱 맞겠지.
애가 은근히 늙은이 같은 면이 있어 조금 걱정됐으나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
그런데.
마지막에 진짜가 나왔다.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했다. 머리를 싸매고 정리한 것이니 심심할 때마다 읽어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정광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천축에서 중원으로 건너와 백마사(白馬寺)를 세운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라는 고승들은, 이후 산서성으로 이동해 현통사(顯通寺)를 지었다.
그곳에서 악을 정화(淨化)하기 위해 법보(法寶)를 만들었는데, 정광은 그것이 항마주(降魔珠)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고.
‘거기에서 단서가 끊겼었는데…….’
현오가 다른 단서들을 알아내 적어놨다.
‘그러면 그렇지. 믿고 있었다니까!’
사실 믿지는 않았으나 좋은 게 좋은 것 아닌가.
‘수고했소. 잘 쓰리다.’
정광은 현오에게 극존칭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암자 내부를 한번 둘러본 뒤 문을 열고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원굉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벌써 찾았나?”
“네.”
원굉의 얼굴에 예의 괴상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이군. 가세.”
그들은 다시 방장의 거처로 향했다.
방장이 돌아온 정광에게 물었다.
“그래, 사제의 유품은 얻었는가.”
“네.”
“잘됐군. 사제도 기뻐할 걸세.”
“뭔지 안 궁금하세요?”
“자네 것인데 뭐 하러?”
방장이 의아한 얼굴로 묻자 정광이 피식 웃었다.
“그러게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그래도 하나는 알고 있지. 궁금하지 않나?”
이번엔 정광이 의아해했다.
“아뇨. 어차피 제 건데 왜요?”
“허허. 이번엔 내가 당했구먼.”
방장은 나직이 웃으며 현오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을 알고 작은 일탈을 즐기던 현오는 정광을 만나 한 가지 화두를 얻었다.
세속의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는 것은 거기에 빠져 마음을 놓치는 걸 막기 위함이나, 그것들을 가까이하면서도 자신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
결국 마음을 얼마나 다스릴 수 있느냐, 거기에 달렸다는 것을 정광이 몸소 보여준 것이다.
정광이 하는데 자신이 왜 못하랴.
현오가 치열히 궁리하며 정진하는 와중에 또 다른 화두가 비집고 들어왔다.
정광에게 하늘이 내려준 네 쓰임을 알고 미리 마음을 정해놓으라 했거늘, 자신의 쓰임은 무엇이었을까?
현오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나이에 맞지 않는 깨달음과 자유분방함을 지닌 정광을 위해, 행여나 삿된 길에 빠지지 않게 마음을 바로 할 수 있는 글귀를 전하겠다고.
항마주에 대한 것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말을 못 했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사제. 자네의 뜻이 이어졌으니 편히 쉬게나.’
방장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진옥룡, 이제 말해보게. 무슨 일로 왔나?”
“수련 좀 할까 해서요.”
“갑자기 왜?”
정광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려줬다.
숨길 건 숨겼으나 방장의 혜안은 대단했다.
“창천일검(蒼天一劍)이 저물고 새로운 가주가 올랐다니. 태상가주인 천오검(天傲劍)이 그걸 용인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아마도…….”
“홀로 상상하세요. 제가 뭔가 말씀드린 것 같잖아요.”
“자네는 곧 정사대전이 벌어질 거라 믿는 겐가?”
“방장께서도 그러시면서.”
“아미타불. 많은 피가 흐르겠구나.”
눈을 지그시 감고 염주를 돌리던 방장이 중얼거렸다.
“본사에서 수련을 하겠다는 건, 현강 사형과 비무를 원한다는 말이군.”
현강은 십존 중 불존(佛尊)이라 불리는 고수.
엄청난 무명을 떨치고 있는 정광이 찾아올 법도 했다.
헌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불존 어르신도 그렇지만 소림이 제일 강하거든요. 십팔나한 분들과도 몇 번 더 겨뤄보고 싶어요.”
“…….”
방장의 부리부리한 눈에 자부심이 맺혔다.
선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그였으나 다른 사람도 아닌 정광이 소림을 칭찬하자 자부심이 솟은 것이다.
하지만 정광이 말한 ‘제일 강하거든요’는 정파무림에서 그렇다는 말.
그 속뜻을 알아채지 못한 방장은 그저 기꺼울 뿐이었다.
“사형은 잠시 밖에 나가셨네. 밤이 되면 돌아오실 테니 내일 낮에 뵙게나.”
“네. 그리고 방장께도 부탁드려요.”
“노납을? 허어. 뼈마디도 제대로 못 가누는 실정인데.”
“불존 어르신만큼 고수시잖아요.”
“…….”
방장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정광이 강하다는 거야 익히 알았으나 자신의 경지까지 손쉽게 들여다볼 줄이야.
잊고 있던 호승심이 솟구쳤다.
“그렇게까지 금칠을 해주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한 번 해보세. 내일 보세나.”
“아. 그리고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는데.”
“무언가?”
정광은 비무를 부탁할 때보다 더 진지한 얼굴로, 서책을 넣은 도복의 가슴 부분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질 좋은 기름종이 좀 부탁드려요. 많이요.”
* * *
정광은 식사를 하며 또 느꼈다.
‘확실히 바뀌긴 바뀌었다니까.’
물론 풀과 콩밖에 없는 건 여전했다.
한줄기의 나물에도 부처님의 마음이 녹아 있고, 한 알의 콩에도 농부의 피땀이 담겨 있다는 마음으로 발우(鉢盂)를 전부 비워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허나 삼보(三寶), 사중(四重), 삼도(三途) 같은 듣기만 해도 어지러워지는 개념을 떠들어대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진옥룡 자네는 손님이니 마음 편히 들게나.”
맛이 있어야 마음 편히 즐기지.
이따위 것들을 주면서 무슨.
그래도 견딜 만했다.
숭산에 오르기 전, 고기와 술을 열심히 삼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얼마 못 가. 최대한 빨리 끝내고 내려간다.’
그러기 위해선 푹 자야 하건만.
여전히 손바닥만 한 승방(僧房)이라니.
다른 건 바뀌었는데 왜 이건 그대로냐고!
빨리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다음 날 아침, 정광은 뻑적지근한 몸을 체조법으로 푼 뒤 식사 같지도 않은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불존에게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바로 시작할까요? 방장께선 어디 계시죠? 십팔나한 분들은…….”
“곧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따라오너라.”
불존은 정광을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그 중앙에 버티고 서서 정광을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방장 사제에게 듣긴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전보다 더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걸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
불존은 전신의 근육을 이완시켰다가 조였다.
불끈불끈. 투두둑-
안 그래도 엄청났던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승복이 비명을 질렀다.
정광은 어이없는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나직이 물었다.
“진짜 고기 안 드시는 거 맞아요?”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섭식보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야.”
“말도 안 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법. 내 오늘 너를 위해 깨달아 온 것을 알려주고 싶구나.”
“그냥 싸우죠.”
검붉은 운룡이 금빛을 토하며 날고, 솥뚜껑 같은 주먹이 허공을 부쉈다.
‘오. 생각 이상인데.’
정광은 바쁘게 몸을 놀리며 감탄했다.
‘내공 한번 심후하네. 달마역근경(達魔易筋經)인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악스러운 외모와 다르게 무척이나 다양한 무공을 섬세하게 펼치는 것 아닌가.
‘소림에는 칠십이종절예(七十二種絶藝)가 있다고 했지. 몇 개나 익혔을까?’
불존은 정광이 부리는 금룡을 상대로 소림의 진산절예(眞山絶藝)를 풀어냈다.
왼팔을 들어 금룡의 검면을 철비공(鐵臂功)으로 밀어내고, 오른손으로는 나한권(羅漢拳)을 내지른다.
정광이 옆으로 돌며 측면에서 베자, 불영선하보(佛影仙霞步)를 밟아 같이 돌며 사자모니인(獅子牟尼引)으로 반격한다.
‘좋은데.’
그 하나하나의 이름은 몰랐으나 종류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하나하나 특색이 있고 묘용도 다른 것이,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 아니, 중원공부출소림(中原工夫出少林)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정광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깔끔하네요.”
“마찬가지다.”
“이제 좀 지저분하게 가볼까요?”
“아미타불. 좋을 대로.”
정광은 마공을 섞어서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 바로 접었다.
항마주(降魔珠)가 가릴 수 있는 마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그래서 정공을 펼치는 한편 사이사이에 갖가지 암수를 섞었다.
우아하고 멋진 운룡십삼검(雲龍十三劍)이 불쑥불쑥 음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강맹하고 정대한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이 흉악한 기세를 떨쳤다.
“……!”
불존의 눈썹과 수염이 꼿꼿이 섰다.
“갈!”
그는 사자후를 터뜨리며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연달아 뻗었다.
그 기세에 금룡이 몸을 뒤틀자 일노박룡수(一怒博龍手)로 부수려 했다.
정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산에만 박혀 있었다더니 당황하지 않네. 소싯적에 싸움 좀 한 솜씨인걸.’
정광은 훌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허나 그가 했던 칭찬처럼 불존은 실전 감각이 있는 무인.
내공을 순식간에 끌어올려 백보신권(百步神拳)을 내질렀다.
막대한 권력이 정광을 분쇄하려 했다.
정광은 재빨리 옆으로 굴러 아슬아슬하게 피했고.
“…….”
불존이 정광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느새 일어선 정광이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며 물었다.
“왜 연계기를 안 쓰세요? 말로만 듣던 백보신권 같은데. 내공 소모가 많아서 그런가요?”
“그것보다는, 네가 나려타곤(懶驢打滾)을 써서 그렇다.”
“하하. 이게 뭐 대단한 절초라고.”
불존의 눈이 깊어졌다.
“왜 그런 수를 썼느냐? 네 실력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제일 쉽고 편했으니까요.”
불존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정광이 어떤 이인지 아직도 종잡을 수 없어서였다.
‘정말 녀석답군.’
놀랍게도 정광은 한술 더 떴다.
“어르신, 근데 이렇게 대충 하실 거예요?”
“그렇게 보였더냐? 나름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는데.”
“저를 정말 죽일 기세로 하셔야죠.”
이번에는 불존도 살짝 놀랐다.
“생사투(生死鬪)라. 해본 지 오래되어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그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죽이셔도 돼요. 안 되겠지만.”
“…….”
잠시 고민하던 불존이 고개를 저었다.
“너를 안 다치게 할 자신이 없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만.”
“그건 아니죠. 뭔가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세상 이치인데. 그깟 피가 대수인가요?”
불존이 살짝 망설이자 정광의 말이 빨라졌다.
“합장이 아니라 반장(半掌)을 하시는 게 소림과 선종(禪宗)의 이조(二祖) 되시는 혜가(慧可) 그분 때문이죠?”
“그렇다.”
“그분께서 소림에 몸담으시기 전, 달마대사(達磨大師)를 찾아가 자신을 제자로 삼아주기를 청하셨죠.”
달마는 펑펑 내리는 눈을 가리키며 흰 눈이 붉게 변하면 제자로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혜가는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랐고, 터져 나온 핏줄기가 바닥에 쌓인 눈을 붉게 물들였다.
“달마대사께서는 그제야 그분을 제자로 거두셨죠.”
“…….”
“저도 그런 마음이에요. 물론 안 다칠 거지만.”
“…….”
침묵하던 불존이 입을 열었다.
“정녕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냐?”
“물론이죠.”
정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불존의 기세가 달라졌다.
부처에서 아수라(阿修羅)로.
그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계(殺戒)를 여는 건 정말 오랜만이구나.”
“…….”
“오너라.”
오랜만이라는 말이 정말인지 의심될 정도로 즉각적인 변화라니.
‘역시 오길 잘했어.’
기대 이상의 반응에 정광이 웃었다.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