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수왕(水王) 신계수
상대의 신분이나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똑같이 대한다.
누구나 원하는 삶이지만 그럴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는 그렇노라며 큰소리치는 이들도 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설령 그런 이가 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
압도적으로 높은 상대에게는 남들과 다르게 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데…….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왕팔은 가슴이 검에 꿰인 듯한 기분이었다.
정광의 말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상대를 보고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건 무척 서글픈 일이라니.
제가 뭘 안다고.
‘곱상하니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입만 살아 떠드는구나.’
반발심이 솟았다.
그것은 그의 목을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할 말은 해? 웃기는 소리! 누구도 그렇게 살 수 없다!”
왕팔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않았지만 백기돈도 동조했다.
“진옥룡. 그대는 다르다는 말인데. 정말 그렇소?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소?”
백기돈도 반발심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삶에 크게 부끄러운 점은 없다 믿었으나 정광이 말한 삶은 살고 있지 못했기에.
천하에 진정으로 그렇게 사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못 사는 삶을 살아가는 이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어떨까?’
백기돈은 묘한 기대감을 품고 정광의 입을 응시했다.
‘내가 믿게 해봐라. 어서.’
정광의 입이 열렸다.
“누가 믿어달래요?”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상관없으니까.”
백기돈은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부질없는 일이었다.
‘하긴. 남이 믿든 말든 무슨 상관이랴.’
소문도 그랬으나 직접 겪은 정광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길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걷는 강자인가.’
그만큼 위험한 자일 수밖에 없다.
백기돈은 치밀어오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대가 걷는 길이 잘못된 길이라면 어떡할 것이오?”
“잘못된 길이란 건 누가 판단하나요?”
“그야 천하가…….”
“천하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도 입장도 저마다 다 달라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소. 허나 너무 위험한 생각이오. 독단에 빠지기 쉽소이다. 최대한 많은 지지를 받아야 제대로 된 길 아니겠소?”
정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끝이 없는 얘기인 거 아시죠?”
“무슨 의미요?”
정광은 자신을 가리켰다가 백기돈을 가리켰다.
“단둘인데도 생각이 다르잖아요. 서로의 생각을 좁히지도 못하고.”
“…….”
“그런데 천하를 어느 세월에 설득시켜요? 걷기도 바쁜데.”
“…….”
정광의 말대로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일 터.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천하제일고수라 해도 그렇게 살다간 죽소.”
“사람은 어차피 죽죠.”
“무척 빨리 죽게 될 거란 뜻이오.”
“힘들걸요.”
정광이 남은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뒤 씩 웃었다.
“제가 원하지 않는 이상은요.”
* * *
장강쌍위(長江雙衛)는 싸움을 막지도, 영화채주의 목을 베지도 못했다.
이렇게 총채주의 명을 수행하지 못했으니 모든 일의 원흉인 정광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했으나…….
‘우리가 어찌할 만한 자가 아니다.’
‘망할. 어디서 이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그들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정광이 총채주가 있는 월광채(月光寨)로 가는 것 역시 못 막을 수밖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였다.
빨리 총채주에게 가서 일의 경위와 정광의 무위를 알리는 것!
백기돈이 정중하게 포권했다.
“그대의 말대로 서로의 뜻을 좁히진 못했구려. 먼저 가겠소. 이따 봅시다.”
정광이 이대로 보내줄 리가 있나.
빙긋 웃으며 잡았다.
“이렇게 가시면 섭섭하죠. 제대로 대접도 못 해드렸는데.”
“괜찮…….”
“배 타고 편히 가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서로에게요.”
까득. 까드득-
정광이 철전을 한 움큼 쥔 채 비비자, 수틀리면 강물에 뛰어들려던 장강쌍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수공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저 많은 철전을 어찌 막아내겠는가.
“……그럽시다. 신세 좀 지겠소.”
“뭘요.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세요.”
“…….”
제 배도 아니면서 무슨.
정광이 시범을 보이듯 제집처럼 편히 앉아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제정신인가?’
‘……우리 앞에서 운기조식을 해?’
장강쌍위의 놀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실례하겠소이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무혈단이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정광 주변에 둘러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 아닌가.
“단주.”
당오군이 부르자 정광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네.”
“단주 곁에서 운기조식을 해도 되겠소? 안전한 곳이 없어서 말이오.”
“물론이죠. 내 집처럼 편하게 하세요.”
“고맙소이다.”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무혈단원들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기 시작했다.
‘……정말 하잖아!’
장강쌍위는 물론 모든 수적들의 시선이 모였다.
‘……칠까?’
동시에 떠올랐던 생각이 동시에 사라졌다.
‘아니야. 저 악귀가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지.’
모두의 목을 치려고 도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광이라면, 그가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신위라면 강호의 상식을 깨고 언제라도 운기조식을 멈춘 뒤 검무를 출 것만 같았다.
‘그냥 할 일이나 하자.’
수적들은 배를 수선하고 사람을 치료하는 등 우경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이 품고 있던 두려움이 그들의 목숨을 살린 셈이었다.
‘운이 좋네.’
정광은 삼청합일신공(三淸合一神功)을 운공하며 피식 웃었다.
본보기로 몇십 명쯤 목을 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편하게 넘어간 것이다.
‘그럼 더 집중해야지.’
운기조식에 몰두했다.
장강수로연맹의 총채주인 수왕은 강자 중의 강자.
기나긴 생에 비해 지닌바 무위가 상세히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런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이기 마련.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하거나, 싸운 상대는 모두 죽였거나.’
아니면 둘 다일지도.
무엇보다 수공(水功)이 제일 까다로웠다.
수공으로는 천하제일인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굳이 물에서 투덕거릴 생각은 없지만…….’
상황이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그때까지 몸도 마음도 최상의 상태로 끌어 올려야 했다.
우우웅-
정광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머리 위에 세 개의 꽃을 띄운 채.
매일 같이 띄웠던 꽃들보다 더 뚜렷하고 화려한 꽃들이었다.
* * *
“삼화취정(三花聚頂)!”
경악해서 외쳤던 수적이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아, 안 돼! 운기조식을 방해했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정광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다.
저 나이에 삼화취정이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모든 수적들이 하던 일을 멈춘 채 정광을 멍하니 바라봤다.
‘꽃들이 점점 뚜렷해지잖아.’
‘저러다 향기까지 뿜어내는 거 아니야?’
두려움 대신 다른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바로 경외감.
수적들은 일제히 결심했다.
‘대항할 생각 따윈 버려야 해.’
목숨과 관계된 일인지라 뼈에 사무칠 정도로 절실하게 느껴졌다.
‘도망칠 생각도 버리자.’
정광이라면 세상 끝까지 쫓아와 단죄하고도 남으리라.
‘후우우…….’
우경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배를 갈아타길 잘했군.’
마혈과 아혈이 제압된 연화채주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눈동자만 세차게 떨었다.
‘저, 저런 경지에까지 올라 있었는가? 어떻게?’
장강쌍위는 정광에게 감탄하는 한편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걸을 자격이 있을지도. 이를 어찌해야 하나?’
‘망할. 뭐 이런 괴물이 다 있어? 설마……?’
저 괴물이 곧 수왕에게 갈 것이다.
수왕을 맹목적으로 믿는 그들로서도 수왕이 정광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무혈단원들이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광의 머리 위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간 수많은 싸움을 겪으며 몇 번이나 봐왔는데 새삼스럽게 무슨.
‘그래도 더 진하고 예뻐졌네.’
‘한 걸음 더 나아간 건가.’
이렇게 다들 정광의 무공에 대해 감탄하는데.
백승무는 아니었다.
그는 정광이 장강쌍위와 나눴던 대화를 되뇌며 작은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그래. 남이 어찌 보든 무슨 상관인가.’
전에도 느꼈던 것이었으나 또 다르게 다가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자. 그러기에도 바빠.’
혹시라도 잘못된 길이면 어쩔까.
항상 해왔던 고민이 조금이나마 옅어졌다.
‘실수할 수도 있어. 그릇된 길을 걸을 수도 있지.’
그러면 고치면 된다.
죗값을 치르고 다시 제대로 된 길로 걸으면 되리라.
‘천하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고 단죄할 이가 없을까.’
바로 옆에 사형인 정광도 있었다.
‘……잠깐. 사형은 좀…….’
그래. 사부가 있지.
사형, 사숙, 사조, 사숙조. 곤륜에만 해도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중원에 나와 은원을 맺은 이들에 앞으로 만날 이들까지.
‘오히려 사람이 너무 많아 탈이군.’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와중에도 귀를 기울여 최선의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 했다.
‘할 일이 무척 많구나.’
걱정도 들었지만 마음이 후련했다.
백승무가 고마운 눈길로 정광을 바라보는데.
마침 정광이 눈을 떴다.
날카로운 빛도,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지도 않는, 항상 그랬듯이 맑디맑은 눈이었다.
정광은 그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사제, 왜 그래?”
“그냥 감사해서…… 사형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아. 뭘 또 새삼스럽게. 죽어라 갚으면 되지.”
정광은 백승무의 어깨를 토닥인 뒤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뭐 하세요? 일 안 하세요?”
“……!”
넋 놓고 정광을 바라보던 수적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아, 아닙니다! 지금 합니다!”
“뭣들 하느냐? 어서 갑판의 피를 닦아!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많이 아픈가? 조금만 참게! 곧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 주지!”
갑판을 아무리 닦아봐야 얼굴이 비치겠는가. 화타가 와도 다리가 부러진 이를 당장 일으킬 순 없다.
그래도 수적들은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얼마 안 가 백여 척이 훌쩍 넘는 거대한 선단이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군사님, 이제 가도 되나요?”
“물론입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우경이 지금까지의 말투와는 다르게 공손히 말하자 정광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색하게 왜 그러세요?”
우경은 머리가 좋은 인물.
정광의 성품을 조금이나마 눈치챈 상태였기에 원래의 말투로 답했다.
“자네에게 너무 감탄해서 말일세.”
“뭘 그런 걸 가지고. 가죠.”
“알겠네.”
우경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지금까지와 달리 연화채주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명을 내렸다.
“선단, 전진! 목적지는 월광채(月光寨)다!”
“존명!”
대선단이 출발했다.
얼마 안 가 월광채의 본거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섬이었는데, 목책으로 빼곡히 덮인 것이 방비가 꽤 잘돼 있는 것 같았다.
정광의 대선단과 섬 사이를 삼십여 척의 배가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 배 위에 있는 것들이 정광의 시선을 끌었다.
‘저건 또 뭐야?’
거대한 연노(連弩)들이 갑판에 늘어서 있었다.
‘화살이 거의 사람 키만 하네. 수적이 저런 걸 쓴다고?’
무슨 수군(水軍)도 아니고.
수적 주제에 과하지 않은가.
아주 오래전에 수왕과 천자(天子)가 맺었다던 약조에 관한 소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저런 거대한 연노는 공성 병기나 마찬가지다.
역모의 뜻을 품고 있다고 의심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천자가 그 정도로 수왕을 신임하는 걸지도.’
아니면 수왕이 노망이 났든가.
둘 중 뭐가 됐든 까다롭긴 마찬가지였다.
‘좋게 끝나긴 힘들겠네.’
저걸 믿고 일곱 수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보통 활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긴 사정거리와 강한 위력.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선단이 만신창이가 되리라.
‘다른 배들을 앞장세워서 화살을 소모시킬까.’
방법을 궁리하는데 월광채의 배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강쌍위! 거기 있소?”
정광을 슬쩍 보는 백기돈과 달리, 왕팔은 주저 없이 외쳤다.
“그렇소, 채주!”
“진옥룡이 소문보다 더한가 보구려! 나 월광채주 원우양이 총채주의 말씀을 전하겠소!”
잠시 말을 끊은 월광채주가 내공을 배가하여 소리쳤다.
“진옥룡의 방문을 환영한다!”
정광이 씩 웃었다.
‘예측하고 기다리고 있었나?’
그렇다면 수왕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만나줘야 할 터.
정광도 외쳤다.
“실례합니다! 잠시 지나갈게요! 길 좀 열어주시겠어요?”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걸까.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월광채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총채주께서 환영하는 건 진옥룡 그대뿐일세!”
“저 혼자 들어가라고요?”
“그럴 리가 있겠나!”
월광채주의 선단이 좌측으로 조금 움직였다.
“자네가 탄 배 빼고 나머지 배들은 우리와 함께 옆으로 가야 하네! 장강 위에서 대치하자는 것이지! 이러면 서로 공평하지 않겠나?”
그러면 정광과 무혈단은 월광채에 편하게 들어갈 수 있으나, 그곳에 얼마나 많은 수적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른 이였다면 단칼에 거절했겠지만 정광의 생각은 달랐다.
‘힘을 보존한 채 뭍에 갈 수 있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정광은 우경을 돌아봤다.
“갈게요. 군사께선 다른 배로 가셔서 선단을 지휘해 주세요.”
“진심인가? 위험할 것 같은데.”
“군사께서 더 위험하실걸요.”
눈짓으로 월광채의 연노들을 가리키자 우경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우. 자네도 우리도 모두 무사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군.”
일이 어긋나면 월광채가 바로 연노를 쏘아댈 것이다.
정광이 수왕을 꺾는다 해도 우경이 이끄는 선단이 잘못되면 월광채를 벗어나기 힘들리라.
어찌 보면 운명 공동체가 된 셈이었다.
“조심하게.”
“군사님이야말로요.”
우경이 다른 배로 옮겨 타 명을 내렸다.
“선단! 좌측으로 전진!”
북소리가 울리고 깃발이 휘날렸다.
선단이 좌측으로 가자 월광채의 선단 역시 거리를 유지한 채 좌측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충분히 멀어지자 정광이 남은 수적들의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월광채로 가죠.”
“존명!”
얼마 안 가 그들은 뭍에 발을 디디게 됐다.
월광채의 수적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는데 병기를 뽑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정광의 근처에 있던 백기돈이 그들 중 한 중년 사내를 보며 물었다.
“수룡대주(水龍隊主). 총채주께서는 어디에 계시오?”
수룡대주라 불린 중년인은 말없이 손을 들어 저었다.
수적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뒤에 있던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주름이 덮인 얼굴.
그 얼굴에 박힌 두 개의 눈이 날카로운 빛을 뿌리며 정광에게 꽂혔다.
“네가 진옥룡이냐?”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묻자 정광이 대답했다.
“그런데요. 어르신께서는 수왕이세요?”
“듣던 대로 버릇이 없구나.”
노인은 오만한 눈빛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수왕 신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