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월광(月光)
네 척이 가라앉았으나 배신했던 네 척이 합류했다.
연화채는 정광을 상대하려고 출발했을 때와 똑같은 숫자가 되었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정광의 말에 무혈단원들이 연화로 옮겨탔다.
“네 분도요.”
눈치를 보던 네 향주는 내심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정광의 말에 따랐다.
그들까지 모이자 정광이 자오를 칭찬했다.
“수고하셨어요. 멋지게 해치우셨네요.”
“저야 그저…….”
자오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무혈단원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못하시는 게 없군요.”
“자오 대협의 사문이 파천방(破天幇)이라고 하셨지요? 그런 다양한 기예들과는 별 관계가 없이 들리는 이름이네요. 사마련에 들어가신 후 배우신 건가요?”
“……하하. 그, 그저 잡기일 뿐이지요. 별것 아닙니다.”
자오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리자 부단주인 당오군이 정광에게 물었다.
“단주. 협상을 한 것이오?”
“네.”
“연화채주가 총채주에게 안내해 주기로 했소? 단주는 더 이상 손을 안 대기로 한 것이고.”
“역시 부단주시네요.”
당오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설마했는데. 놀랍군.”
“왜요?”
당오군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단주라면 전부 베어버리고 배도 침몰시킬 거라 생각했소이다.”
“와. 저를 뭐로 보고 그런 말씀을.”
정광이 어이없어했으나 다른 이들은 더 그랬다.
“뭐로 보긴. 단주로 보니까 그렇지.”
“그러게 말이에요. 혹시 뭐 잘못 드셨나?”
유정풍과 언의진이 중얼거리자 무혈단원들과 향주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아닌 이도 있었다.
“가만. 혹시…….”
당예지의 말에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저들이 안 다치고 멀쩡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요?”
“역시 부부단주세요.”
“……그런 직책은 처음 듣는군요.”
“무림맹에서 지룡단과 겨룰 때 임시 부단주를 맡으셨잖아요. 부부단주나 다름없죠.”
“……그건 그렇다 치고. 저들이 그래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정광은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무량수불. 사람을 함부로 해하면 안 되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단원들은 일제히 생각했다.
‘노잡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러는 거겠지.’
향주들도 비슷했다.
‘악랄한 놈. 얼마나 부려먹으려고.’
자오와 백승무는 조금 달랐다.
‘그것뿐만이 아닐 텐데. 뭔지 모르겠구나.’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그들에게 정광이 지시를 내렸다.
“무혈단은 전부 이 배를 타고 가는 겁니다. 선주님들은 각자의 배를 책임지시고요.”
무혈단원들은 바로 수긍했다.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보단 집중시키는 게 낫지 않은가.
향주들은 내심 기뻐했다.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정광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고 기회를 봐서 도망칠 수도 있을 것이기에.
하지만 정광은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네 분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러니까 도주하시거나 하면 안 돼요.”
“……서, 설마 저희가 그런 마음을 품겠습니까?”
일향주가 대표로 말하자 정광이 고개를 저었다.
“품으셔도 되는데.”
“……?”
“뒷감당만 하실 수 있으면.”
“……!”
정광은 얼굴이 파랗게 질린 그들에게 충고했다.
“이미 채주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 아시죠?”
“…….”
네 향주는 선수(船首) 쪽을 슬쩍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걸까?
이맛살을 모은 채 자오를 보고 있던 화진양이 눈을 맞췄다.
‘……망할.’
‘……아주 눈에서 불을 뿜는군.’
화진양은 탐욕스럽고 철두철미한 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자였다.
자신을 배반한 수하들을 그냥 두고 볼 위인이 아닌 것이다.
‘우리를 곱게 죽일 리가 없어.’
‘산 채로 껍질을 벗겨서 소금으로 저밀까?’
‘줄에 묶어 강에 빠뜨린 뒤 몇 날 며칠을 매달고 달릴지도…….’
그 밖에도 여러 수법이 떠올랐으나 뭐가 됐든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간절한 눈빛을 뿌리며 정광에게 애원했다.
“진옥룡님. 저희의 마음은 이미 진옥룡님께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어떻게 부리시든 신명(身命)을 다해 따르겠습니다.”
정광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죠 그럼. 먼저 부탁하셨으니 책임을 지실 거라 믿을게요.”
제 놈이 협박해 놓고 무슨!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지라는 건데!
속마음은 이랬으나 감격에 겨운 어조로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진옥룡님,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마치 꿈에 그리던 주군을 만난 영웅들이 하늘에 맹세하며 천하를 질타할 기상을 드러내는 듯한 광경.
하지만 정광은 시큰둥했다.
“충성씩이나 하는 건 필요 없고요. 신호 드리면 그에 맞춰 따라주세요.”
“……네.”
“그만 각자의 배로 가시죠. 나중에 봬요.”
“……알겠습니다.”
그들이 흩어지자 질주가 시작됐다.
정광은 뱃전에 앉아 장강에 낚싯대를 드리웠다.
반각이나 지났을까?
정광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왜 이리 안 잡혀. 이거 하품(下品) 아니야?’
낚싯대를 탓했지만 그럴 리 있나.
정광이 낚시를 하겠다며 빌려달라는데 누가 감히 하품을 주겠는가?
‘낚시라는 건 역시 할 짓이 아니구나.’
하품을 하고 낚싯대를 놓으려는 순간, 화진양이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장강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화살이며 기름이며 대부분 떨어졌네. 마침 근처에 보충할 곳이 있어. 잠시 들르는 게 어떻겠나?”
“그러시죠.”
정광이 순순히 응하자 화진양이 수하에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수하가 떠나자 정광의 손에 들린 낚싯대를 주시했다.
“낚시를 잘 못하는 것 같은데. 맞는가?”
“네.”
“놀랍군. 자네가 못하는 게 있을 줄이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본 건데요.”
“왜 안 했었나?”
“아까운 시간만 버리는 것 같아서요.”
낚시꾼이 들었다면 낚시를 모욕하지 말라고 화를 냈겠지만, 전생의 정광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하루 살아남기도 바쁜데 낚시처럼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여흥을 어찌 즐기겠는가?
적들에게 쫓기다 배가 고파 물고기를 잡아야 할 때도 있었으나 낚시로 잡은 적은 없었다.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 많은데 뭐 하러?’
시간이 흘러 감히 덤벼드는 자가 없게 되었을 때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장강에 온 김에 한번 해볼까 해서 한 건데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꽤 변한 줄 알았건만, 아닌 건 역시 아니구나.’
정광이 낚싯대를 놓고 일어서려 하자 화진양이 만류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참게. 곧 입질이 올 게야.”
“조금만요?”
“그래. 조금만.”
정광은 할 일도 없겠다, 조금만 더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반각도 지나지 않아 한숨을 쉬었다.
“채주님의 조금만은 아주 긴 것 같네요.”
“그리 긴 편은 아니네.”
“어느 정도인데요?”
화진양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내가 장강에서 빌어먹기로 결심한 건 열 살 때일세. 연화채에 뛰어들며 목표를 세웠어. 채주가 되겠다고.”
“조숙하셨네요.”
“그런 편이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돼. 이런 마음으로 버텼네. 그러다 보니 삼십 년이 훌쩍 지나 버리더군.”
“그리고 결국 채주가 되신 건가요.”
화진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짧더군. 정말 조금만이었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거죠?”
“별것 아닐세.”
화진양은 장강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지. 길게 보세나. 자네가 나를 해치지 않기로 했는데, 이왕이면 좋은 관계로 지내는 게 좋지 않겠는가?”
“협박같이 들리네요.”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지 않나. 내 쓸모를 알아달란 말일세.”
정광은 화진양에게 내렸던 평가를 수정했다.
아주 눈곱만큼.
‘속으로 칼을 갈면서 줄도 대려 하네. 수완이 좋은걸.’
장강수로십팔채 중 하나를 집어삼킬 만했다.
다른 채주들을 조종해 총채주와 반목할 만도 했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더 위를 노리기엔 부족해.’
정광이 고개를 젓자 화진양이 물었다.
“자네의 견해는 다른가 보군.”
“네.”
“무엇이 문제인가? 좁힐 수 있는 것이면 그렇게 해보겠네.”
“음. 이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정광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입을 열었다.
“채주님과 저는 너무 달라요.”
“알고 있네. 자네는 정파명문 곤륜의 제자 아닌가.”
“출신이나 신분 같은 거 말고요. 사람 자체가 다르다고요.”
“……사람 자체가?”
화진양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정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뭐 이런 거죠.”
쥐고 있던 낚싯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막대한 내공이 세밀하게 조정되며 가늘디가는 낚싯줄에 담겼다.
그 상태로 강물을 들여다보며 손을 휘저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옆에서 지켜보던 화진양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가늘고 긴 낚싯줄이 마치 생을 머금은 듯 복잡하게 움직이는 것 아닌가!
강물 속을 유영하던 물고기들이 하나둘 그것에 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으쌰.”
정광이 손목을 가볍게 튕기자 낚싯줄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중간중간에는 물고기들이 묶여 있었고 고스란히 갑판에 떨어지게 되었다.
정광은 낚싯대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뭐, 정확히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됐지만.
화진양이 안 떨어지는 입술을 억지로 벌려 신음 같은 물음을 내뱉었다.
“……자네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가? 이런 수법을 쓸 능력이 있으니까?”
무겁고 긴 닻줄을 자유자재로 돌려 화살비를 막은 것보다 훨씬 놀라운 신위였다.
이렇게 가늘고 긴 낚싯줄에 막대한 내공을 면면부절(綿綿不絕)하게 불어넣는 능력이라니!
게다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요, 물고기를 잡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였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잡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정광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무공보다는 마음가짐 문제죠. 어떤 마음으로 삶과 세상을 보는가.”
“……마음가짐?”
정광이 화진양을 바라봤다.
화진양의 눈에 정광의 모습이 더 크게 박혔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내가 시간을 끌어당겨야 한다, 이런 마음이요.”
* * *
화진양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며 인상을 쓰는 모습이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았다.
‘언제까지 저러려는 거야?’
저녁이 되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그랬다.
정광은 신경을 끊고 갑판에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강물이 뱃전에 부딪혀 나는 시끄러운 소리와 달리, 까만 하늘에 박힌 별들은 고요히 빛나고 있었다.
‘제법 괜찮은데.’
흥이 난 정광은 수적에게 부탁해 술을 한 동이 받아냈다.
갑판에 주저앉아 마시고 있는데 우경이 다가와 침묵을 깼다.
“진옥룡, 앉아도 되겠나?”
“편할 대로 하세요.”
“그럼…….”
우경이 정광의 옆자리에 앉았다.
“드실래요?”
“……고맙네.”
정광이 잔에 술을 채워 내밀자 우경은 한 번에 들이켰다.
“크으. 좋군.”
“나쁘진 않더라고요.”
우경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한 뒤 조용히 물었다.
“채주를 어떻게 승복시킨 건가?”
“승복시키다뇨?”
“내가 그를 모신 지 이십 년이 넘었네. 저렇게 인상을 쓰며 생각에 잠긴 모습은 딱 두 번 봤지. 전 채주가 받아준 비무에서 패했을 때, 그리고 총채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어.”
“채주께서는 승복하고 난 뒤엔 승복시킨 상대를 죽이고 싶어 하시나 보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그럴 것 같더라고요.”
간혹 자신이 꺾인 걸 받아들일 수 없어 그 상대를 반드시 죽이려 하는 자가 있다.
정광이 봤을 땐 화진양이 그런 자였다.
‘그걸 동기로 삼아 부단히 노력했을 테고 결국엔 이뤘겠지. 다른 하나는 이루려 하는 중일 테고.’
아니나 다를까.
우경의 입에서 비슷한 말이 흘러나왔다.
“자네 짐작대로 채주는 그런 사람일세. 이번엔 자네를 죽이려 하고 있어.”
“고생 많으시네요.”
“아무렇지도 않은가? 채주는 쉬운 자가 아니야. 세상일이란 게 무공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
정광이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우경에게 물었다.
“배를 갈아타기로 하신 거예요?”
“……그렇네.”
“왜요?”
“……채주가 내 쓸모를 인정 안 하게 된 걸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니까.”
“호연대주 그분도 그러신가요?”
“그럴 거라 믿네.”
“잘됐네요.”
정광이 씩 웃자 우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
“글쎄요.”
“대답하기 불편해서 그러나?”
“아뇨. 상황 따라 달라질 거라서요.”
우경이 굳은 얼굴로 부탁했다.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 제발 살려주게.”
“최선이라…….”
정광이 중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정말 최선을 다하셔야 할 거예요.”
“물론일세. 뭘 하면 되겠나?”
우경이 애타는 얼굴로 묻자 정광이 화제를 돌렸다.
“채주님 말씀에 따르면, 총채주께서 무한(武漢)에 와 계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일세. 그쪽에 있는 월광채(月光寨)로 순시를 나온다는 정보가 있었네.”
“날이 밝으면 무한에 도착하겠죠?”
“그렇게 되겠지.”
“그분을 칠 계획이었나요?”
우경이 부정했다.
“우린 아닐세. 그는 무서운 위인이야. 하지만…….”
“다른 채주들께선 다르신가 보구나. 총채주와 적대적인 분들이요. 그 정보를 연화채만 얻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모르는 게 없군. 사실…….”
우경이 침을 꿀꺽 삼킨 뒤 말을 이었다.
“채주가 그들을 부추기긴 했네.”
“연화채는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다 대세를 따른다. 만약 박빙이라면 입맛에 맞는 쪽을 골라 일을 마무리 짓고 발언권을 키운다. 이런 거겠네요. 그래서 화살과 기름을 보충한 거고.”
우경이 놀라 입을 떡 벌렸다.
“그런데 그분들이 정말 실행할지는 확실치 않죠? 그럴 담이 있었으면 진작 그랬을 것 같은데.”
“……자네, 설마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가?”
정광이 피식 웃었다.
“설마요.”
“……대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
정광이 술잔을 들어 올려 밝게 빛나는 달 밑에 댔다.
“먹음직스럽네. 일단 드시죠.”
그리고 잔을 내려 입속에 털어 넣었다.
* * *
“크흐! 좋구나!”
주먹코 노인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놨다.
술잔을 잡은 그의 손에는 손가락이 세 개밖에 없었다.
“뭣들 하시오? 안 드시고. 내가 다 마시리까?”
주먹코 노인이 호탕하게 말하자 외팔이 노인이 차갑게 맞받아쳤다.
“지금이 그럴 때인가? 항상 느꼈지만 제정신이 아니군.”
“무어라? 이 외팔이가 감히!”
주먹코 노인의 양손 중지에서 분수자(分水刺)가 하나씩 빙글빙글 돌았다.
“감히? 네놈이 그간 많이 컸구나!”
외팔이 노인의 손이 번뜩이더니 작살 한 자루가 들렸다.
“죽어!”
“네놈이야말로!”
두 노인이 서로를 향해 병기를 내지르려는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덩치 큰 노인이 어느새 일어나 등에 메고 있던 도끼를 내려쳤다.
콰직! 쩌저저적- 쿠쿵!
스무 명이 둘러앉아도 남을 거대한 탁자가 반으로 쪼개지며 쓰러졌다.
덩치 큰 노인은 두 노인에게 도끼를 내밀며 으르렁거렸다.
“장난하러 왔나?”
“……그, 그건 아니지.”
“……아니오.”
“그럼 닥치고 앉아서 들어.”
“…….”
“…….”
당장이라도 피를 뿌릴 기세였던 두 노인이 조용히 앉았다.
덩치 큰 노인이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래서. 할 거냐, 말 거냐?”
“…….”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여섯 명의 노인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어이가 없군. 여기까지 와서 빼?”
덩치 큰 노인이 이죽거리자 주먹코 노인이 변명했다.
“연화채의 능구렁이가 부추기기만 하고 빠졌잖아. 꺼림칙하지 않아?”
“그놈은 원래 그런 놈이다.”
“그러니까 좀 더 생각해 보자는 거잖아.”
“언제까지? 총채주가 떠난 뒤에도 계속?”
“…….”
덩치 큰 노인이 다른 이들을 쓸어보며 경고했다.
“오늘 발을 빼면 영원히 총채주를 못 잡을 거다. 능구렁이가 바람만 불어넣고 빠졌으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다른 노인들은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모이기도 힘들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언제 또 이럴 수 있겠는가.
“……젠장. 하자.”
주먹코 노인이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후우. 해봅시다.”
외팔이도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네놈들은?”
덩치 큰 노인이 살기를 발하자 나머지 네 노인도 일어섰다.
“좋소! 우리의 장강을 되찾아봅시다!”
“무한이 코앞일세! 어서 가자고!”
“흐흐. 진작 이랬어야지.”
덩치 큰 노인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주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연화채가 오고 있습니다!”
“무어라?”
덩치 큰 노인이 선실 문을 열고 나가자 다른 노인들도 뒤따랐다.
“저건!”
“정말이잖아?”
“간이나 볼 줄 알았는데, 저 능구렁이가 왜 온 거지?”
화진양의 배, 연화가 스무 척이 넘는 배를 이끌고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연화의 선수에는 두 인영이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화진양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야?’
다른 이가 묻기 전에 덩치 큰 노인이 내공을 끌어 올려 외쳤다.
“능구렁이! 네놈이 웬일이냐!”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 연화에서 익숙한 화진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내용은 너무 낯설었다.
“천지신명께 맹세하노니, 나 화진양은 장강을 어지럽히는 악적들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도다! 네놈들이 적절한 죗값을 치르게 될 때까지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할 것이요, 내 모든 걸 바쳐 장강을 원래대로 되돌릴 것임을 알린다!”
노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저 새끼가!’
‘뭐가 어쩌고 저째?’
한편, 노인들의 살기를 한몸에 받게 된 화진양도 눈을 찢어져라 뜨고 있었다.
‘이런 간악한 놈 같으니! 아혈과 마혈을 짚고 이따위 장난질을 쳐?’
살다 살다 이런 악귀를 봤나.
그의 옆에 선 악귀 정광이 목을 또 한 번 가다듬고 외쳤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영락없이 화진양의 것이었다.
“이 늙어 죽지 않는 노물(老物)들아! 간 보지 말고 빨리 덤벼! 수왕의 충성스러운 심복 화진양 나으리께서 상대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