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193화 (192/569)

193화

움직일 때

무림인은 본래 제멋대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파 무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는 힘을 숭상하여 본인의 무위를 높이는 데 매진하는 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습성이었고, 여러 가문과 문파는 엄격한 가법(家法)과 문규(門規)로 그들을 통제했다.

그럼으로써 개개인이 사고 치는 것을 방지하고 조직을 보호하며 발전을 꾀했는데…….

무림맹처럼 여러 조직이 모인 연합체는 그 정도가 덜했다.

조금 두루뭉술하다 할까?

어느 정도의 맹규(盟規)만 정해놓고 세세한 부분은 각 가문과 문파의 자율과 협의에 맡겼다.

협(俠)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모이긴 했으나 명성과 이권을 다투는 경쟁 상대였기에 서로의 신경을 안 건드리는 선에서 뭉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무혈단은 특별한 조직이었다.

정광의 지론대로 평소에는 활발하게 토의를 하나, 외부와의 마찰이 있을 경우엔 철저히 상명하복의 규칙을 따랐다.

지금처럼 단주인 정광이 한 발 빠졌을 땐 부단주가 명을 내리고 단원들은 복종하는 조직.

무혈단원들의 시선이 당오군에게 모였다.

그들의 눈빛은 당장 저 건방진 꼬마를 두들겨 패게 해달라 말하고 있었다.

물론 당오군도 그러고 싶었으나 부단주답게 행동했다.

그는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위진홍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바보천치로 보이는가?”

“말이라고.”

“자네는 말버릇부터 고쳐야겠어.”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왜?”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을까.”

위진홍이 턱을 치켜들었다.

“내 가치를 증명해서 승복시켰다. 대답이 됐나?”

“사뇌(邪腦)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머리를 인정받았다, 이 말인가.”

“그렇다. 말귀를 알아듣는 걸 보니 아주 멍청하지는 않구나.”

무혈단원들의 관자놀이에 불거졌던 핏줄이 더 두꺼워졌으나 당오군의 눈은 여전히 차가웠다.

“스스로를 과신해 타인을 우습게 본다…… 재밌군. 재밌어.”

“무슨 뜻이지?”

“못난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니 어찌 재밌지 않을까.”

“무어라?”

위진홍이 버럭 화를 내려고 했으나 당오군이 더 빨랐다.

“자네가 단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

“절대 그럴 리 없지. 바보천치도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

“…….”

“고금제일 천재라고까지 칭송받는 단주도 모든 이에게 경어(敬語)를 쓰네. 헌데 자네는 뭔가?”

“나는…….”

“자네의 지론대로라면 단주는 자네와 말도 안 섞으려고 해야 하지 않겠나. 왜? 너무 멍청하니까.”

“…….”

“하지만 단주는 자네에게도 경어를 쓰지. 진정 뛰어난 자는 자신을 높이더라도 남을 깔아뭉개지는 않는 법. 단주처럼 겸손…… 해지라고 말하진 않겠네. 다만 자네보다 못한 이를 무시하더라도 표는 적당히 내줬으면 좋겠군.”

“…….”

위진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인정한 정광을 예로 드니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놈이 감히. 나를 무엇으로 보고…….’

상처받은 자존심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내가 계속 진옥룡보다 모자란 경지에 머무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글쎄. 솔직히 못 믿겠네.”

“……내 반드시 보여주지.”

“좋을 대로. 그 순간이 올 때까진 제대로 된 말투로 말하게. 지금은 너무 없어 보이거든.”

“이익…….”

당오군은 위진홍을 노려보다가 정광에게 시선을 돌렸다.

“단주. 사뇌를 단원으로 받으려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무혈단은 단주의 결정에 따를 것이오.”

다른 단원들도 입을 모아 동의했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긴 하나, 정광이 결정한 일이기에 믿기로 한 것이다.

정광은 만족한 얼굴로 당오군을 칭찬했다.

“역시 부단주를 잘 뽑았네요. 짧은 인사만으로 친해지고. 분위기 좋은데요.”

“…….”

친해지긴 무슨.

분위기도 좋긴커녕 냉랭했다.

허나 그렇게 말한 이가 정광이었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하는데…….

“자. 자. 입단 환영은 이걸로 끝내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환영?

이게?

다들 황당해했지만 정광은 아니었다.

“위진홍 공자의 직책은 군사로 하고. 호칭을 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대로 부르긴 너무 길고, 계속 사뇌라 부를 수도 없잖아요. 뭐가 좋을까.”

정광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손뼉을 쳤다.

“아. 무혈단(無血團)의 군사니까 무뇌(無腦) 어때요?”

“……!”

당사자인 위진홍은 물론, 다들 어이가 없어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단 한 명만큼은 달랐다.

“철월은 찬성한다!”

“닥쳐라, 철두!”

위진홍이 발끈하자 철월이 받아쳤다.

“무뇌! 나는 철두가 아니라 철월이다!”

“무뇌라니! 이게 진짜!”

위진홍은 너무 화가 나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갖가지 욕을 엄청나게 먹으며 살아왔으나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그를 싫어하다 못해 저주했던 이들도 놀라운 머리만큼은 인정했건만, 무뇌라니!

하지만, 억울해하는 건 그 혼자였다.

먼저 당오군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 무혈단의 군사에게 딱 맞는 별호야. 정현, 자네는 어떤가?”

“큭큭. 동감일세. 도가 지극히 높으면 없는 것과 같다 하지 않나. 지략 또한 마찬가지라 위진홍 공자쯤 되면 뇌가 없는 수준이겠지. 아. 사제는 그런 섭리를 초월할 정도로 뛰어난 천재니까 예외고.”

“어쨌든 위진홍은 무뇌다! 위진홍은 무뇌가 맞다!”

철월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단원들도 일제히 동의했다.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아니라고!”

분노한 위진홍이 길길이 날뛰었으나 소용없었다.

무혈단원들은 그의 시끄러운 고함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축하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무뇌.”

“무뇌, 그대만 믿겠소.”

“……으아아!”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루(疎而不漏)라.

하늘의 그물은 성기지만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했던가.

악을 행하면 언젠가 그 대가를 받게 되는 법.

위진홍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벌로 무뇌라는 별호를 갖게 되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소리를 지르며 항변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너무 억울해서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그걸 눈치챈 정광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 울어요?”

“우, 울기는 누가 운단 말이오!”

“무뇌요.”

“…….”

참고 참았던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한번 물꼬를 트니 계속 나왔다.

정광은 위진홍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봐요. 동료가 생겼다고 이렇게 기뻐하고.”

위진홍은 소리 없이 울며 정광을 노려봤다.

“네. 네. 이해해요. 한 시진만 맘껏 기뻐하며 울고 수련에 참여하세요. 좀 힘들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요.”

“수, 수련? 나, 나는 무공을 전혀 못…….”

의아해하던 위진홍은 이어진 정광의 말에 눈물을 뚝 그치게 되었다.

“그거야 알죠. 그래도 뜀박질 정도는 제대로 해야 난전 중에 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겠어요? 살고 싶으면 열심히 하세요. 알았죠?”

“히, 히끅.”

“어라? 이번엔 딸꾹질? 거참. 몸이 너무 허하시네.”

정광은 위진홍의 등을 팡팡 후려쳐 딸꾹질이 멈추게 했다.

위진홍은 딸꾹질이 문제가 아니라 위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고통스러웠으나, 너무 아파 항의할 겨를도 없었다.

정광은 그 모습을 보며 엉뚱한 오해를 했다.

‘생각보다 참을성이 강하네. 역시 거두길 잘했어.’

무혈단이라는 조직을 만들며 단원들과 적지 않은 연을 맺었다.

그들이 개죽음당하는 상상을 하면 무척 꺼림칙할 정도였다.

‘죽더라도 단을 해체한 뒤에 죽어야지.’

지금처럼 함께 있으면 문제없지만.

정광 홀로 움직여야 할 때도 있었기에 똑똑한 책사가 필요했다.

이제 위진홍이 합류했으니 정광이 부재 시에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터.

기도 한번 꺾어줬으니 단원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리라.

‘사마련과의 싸움이 끝나면 상인이 되어 돈을 벌게 시킬까? 사제는 무공에 전념시키고. 생각 좀 해봐야겠네.’

어쨌든 제대로 키워야 편하게 될 터.

정광은 위진홍에게 가르침을 주기로 했다.

“경어 쓰는 거. 그리 어렵지 않아요.”

“크윽…….”

“저도 원래는 써본 적 없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양손을 뒤로 돌려 등을 부여잡고 있던 위진홍이 간신히 물었다.

“……으으. 언제까지 안 썼었단 말이오?”

“음. 이번에 태어나기 전까지?”

“…….”

정광은 진실을 말했으나 듣는 사람은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위진홍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단원들의 눈가엔 주름이 잡혔다.

정광은 그런 단원들에게 명했다.

“무뇌에게 무혈진과 단원 개개인의 무공을 보여주세요. 아군을 알아야 계략을 짤 수 있으니까요. 중간중간 체력단련 좀 시키시고요.”

정우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사제는? 할 일이 따로 있느냐?”

“네. 만나기로 약조한 사람이 있어서요.”

정광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다.

사마련 사천 지부가 있는 방향이었다.

* * *

사파무림의 명문 귀주원가(貴州元家)의 가주.

팔사(八邪)의 뒤를 이을 것이라 기대받는 십이웅(十二雄)의 일원, 투웅(鬪雄) 원자형.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주위를 둘러봤다.

수없이 다양한 감정이 담긴 말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뭐야 이게! 사뇌가 사라졌어! 아무도 모르게 없어졌다고!”

“소란 피우지 말게!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설마 도주한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비록 성품은 엉망이나 그렇게 비겁한 이는 아닐세!”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잖아! 우릴 버린 거야! 버린 거라고!”

처음에는 팽팽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위진홍을 원망하는 말들이 더 많아졌다.

믿고 의지하던 구심점이 사라지자 그 구심점을 비난하게 된 것이다.

“절대 패하지 않겠다더니! 한 번만 더 믿어달라더니 개뿔!”

“반드시 살려주겠다던 말은 본인에게 했던 말인가 보구나!”

“썩을! 우리야 여기서 다 뒈진다고 쳐! 본가는? 본문은? 안 그래도 약해빠졌는데 더 약해졌다고 늑대들이 달려들어 전부 물어뜯을 거 아니야!”

자신이 죽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본거지에 남은 이들은 어쩐단 말인가.

감정이 과열되어 욕설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 갔다.

‘슬슬 움직일 때인가.’

투웅은 내공을 끌어모아 크게 외쳤다.

“그만!”

“……!”

그의 웅혼한 외침에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계속 사뇌를 탓하시오? 당혹스러운 감정은 이해하나, 그가 진정 그대들을 버리고 도주했으리라 믿소이까? 내 그와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으나 그 정도의 자존심을 가진 자로는 보이지 않았소.”

“그야 아무도 모를 일…… 흡.”

한 사내가 중얼거리다가 투웅의 시선을 받고 돌처럼 굳었다.

투웅은 사내를 노려보며 끊어지는 어조로 말했다.

“사뇌는 천재요.”

“…….”

“나 원자형이 이번 사천성 공략에서 그의 지휘를 받기로 했을 만큼.”

사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반박하지 않았다.

위진홍이 천재라는 사실을 그들 역시 잘 알아서였다.

“그는 본래 여러 성으로 찢겨져 화살받이로 쓰일 그대들을 하나로 모았소.”

사람들의 눈에 분노와 고마움이 떠올랐다.

“련주와 담판을 지어 천요문(天妖門)까지 지원받았지. 비록 그들은 사라졌으나…….”

투웅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내가 있잖소! 그에게 설득돼 자존심을 버리고 협력한 나와 내 가솔들이! 우리는 약하지 않단 말이오! 헌데 왜 자꾸 엉뚱한 이만 탓하며 좌절하냔 말이외다!”

그때,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 가주. 침주사로(郴州四老) 그분들은 왜 아직도 안 오신 겁니까. 혹시……?”

“일단 없는 이들로 생각합시다.”

“그, 그 말씀은…….”

“오면 다행이고 안 오면 어쩔 수 없는 일. 어느 경우가 됐든 우리는 싸워야 하오. 그래야 먼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도 살 수 있지 않겠소.”

“…….”

사내와 무인들의 눈에 불씨가 생겼다.

정신을 차리자 삶에 대한 의지가 솟구친 것이다.

투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 말했다.

“다들 이해한 것으로 알고 내 생각을 밝히겠소이다.”

“……?”

“사뇌는 진옥룡에게 납치된 것이 분명하오.”

“……!”

“어떤 방법을 썼는진 모르나 그밖에 없소. 청성산에서도 홀연히 나타나 사뇌를 잡았었는데 또 한 번 못할 것은 무엇이오?”

“진옥룡 그 악적이 감히!”

사람들이 분노하자 투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소란은 금세 진정됐다.

투웅은 이미 그들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전에 말했다시피 진옥룡이 창사 선배와 부사 선배를 죽였소. 련주가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사뇌가 진옥룡의 진정한 무위를 알았다면…….”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사뇌는 결코 진옥룡에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오. 우리 사정은 훨씬 나아졌을 거고. 나나 그대들이나 련주의 눈 밖에 났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

사람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파 놈들만 해도 벅찬데 사마련주는 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투웅이 가슴을 두드리며 외쳤다.

“허나! 자신하오!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 내 가문을 지킬 것이오! 련주와 갈라서는 한이 있더라도! 설령 싸우게 되더라도 두렵지 않소이다!”

투웅의 낮고 강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들은 미리 약조한 것처럼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나도 그렇소!”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겠다!”

“련주가 뭔데! 나는 무섭지 않아!”

“가주! 그대를 따르겠소! 우리를 이끌어주시겠소?”

모두 열망에 찬 눈으로 투웅을 바라봤다.

투웅은 두 손을 힘차게 맞잡으며 짧고 강하게 외쳤다.

“기꺼이! 최선을 다하겠소! 그대들도 그럴 것이라 믿소이다!”

“와아아아!”

거대한 장원이 투기로 넘실거렸다.

투웅은 아예 잔치를 벌였다.

술도 없고 교대로 번을 서며 하는 잔치였으나 열기만은 뜨거웠다.

투웅은 밤이 될 때까지 수하가 된 이들과 결의를 다진 뒤 집무실로 들어갔다.

‘후우우. 여기까진 됐군.’

의자에 걸터앉자 피로감이 엄습했다.

위진홍의 의자에서 투웅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련주가 어떤 의중으로 일이 이 지경이 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구나. 다른 길이 없어 진옥룡과 손을 잡았는데 그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해내셨네요. 저도 잘할게요.”

투웅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광이 빙긋 웃으며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왔는가?”

“기관진식을 피하거나 통과해서요. 앉아도 되죠?”

“……다음엔 들어와도 되냐고도 물어주게나.”

“하하. 농이 느셨네요.”

정광은 투웅의 맞은편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설명했다.

“무뇌의 수하들을 장악하셨으니 추이를 지켜보며 대기하세요. 당가, 청성, 아미를 근처까지 오게 해서 대치하는 척하게 할게요.”

“……무뇌는 또 누군가?”

“아. 사뇌 위진홍 공자요.”

“……그가 들으면 난리가 나겠군.”

“아뇨. 시간이 지나니까 이해하던데요.”

투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물었다.

“애초에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 따르겠네. 하지만 길게는 안 돼. 련주가 변덕을 부려서 본가에 있는 식솔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어.”

“그렇긴 하죠. 근데 련주요. 의외로 인내심이 깊은가 봐요.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은데.”

산서성에서 패하고 섬서성에서도 쫓겨났다.

창사와 부사까지 죽었고 사천성의 상황도 좋지 않다.

전세를 뒤집진 못하더라도 분위기 반전이라도 하려면 무슨 수라도 써야 하는데…….

그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가주! 총단에서 전서구가 왔습니다!”

투웅은 곁눈질로 정광이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수하에게 물었다.

“무슨 내용이냐?”

“그것이…….”

수하가 창백해진 얼굴로 서신을 내밀었다.

“지,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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