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182화 (181/569)

182화

추격

정광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달렸다.

길목을 막고 있는 사마련 무인들에게!

“뭐, 뭐야!”

“기습이다! 막아!”

안타깝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달리는 정광은 마치 무신(武神) 같았다.

그의 손에 들린 운룡은 눈부신 황금빛을 줄기줄기 뻗어냈고, 그 빛은 금룡으로 화해 사마련 무인들을 물어뜯었다.

그것도 그냥 펼친 게 아니라 말 위에서 쏟아낸 검격!

정광 본연의 힘과 내공에 말의 속도와 무게까지 더해졌으니 결과는 자명했다.

서걱-

“으아악!”

사람이든 병기든 닿는 대로 잘려 나갔다.

그 무엇도 정광을 막을 수 없었다.

분명 그래 보였는데.

예외가 있었다.

네 명의 노인이 날카로운 살기를 뿜으며 정광에게 떨어져 내렸다.

‘오. 제법이네.’

정광은 내공을 끌어 올려 그들을 향해 검격을 떨쳤다.

노인들은 운룡의 예리함을 아는 듯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피하며 각자의 병기를 내질렀다.

무척 절묘한 합공이었는지라 정광은 검면을 세우고 눕혀가며 네 개의 병기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쩌엉-

까드득-

귀를 때리는 소음과 함께 정광을 실은 말이 울부짖었다.

히히히힝!

정광과 네 노인이 부딪힌 충격을 전달받아 고통스러워서였다.

달리던 기세를 순식간에 잃고 멈춰선 상태.

순간, 정광이 두 다리로 말의 옆구리를 바짝 조였다.

그리고 상체를 살짝 숙였다가 튕기듯 펴며 기합을 질렀다.

“하!”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정광이 탄 말의 몸이 살짝 뜨더니 뒤로 일장이나 물러나는 것 아닌가!

말이 받은 충격을 경감시키기 위해 말을 두 다리로 잡고 뒤로 뛰다니.

그것도 허리의 탄력만으로.

실로 놀라운 신기였다.

정광과 격돌한 뒤 튕겨 나갔던 노인들은 신형을 뒤집어 내려서다가 눈을 크게 떴다.

‘저런 기마술이!’

‘마치 달자(韃子) 놈들 같구나!’

아니, 놀라운 기마술로 유명한 몽고의 기수(騎手)들도 저런 말도 안 되는 묘기를 펼치지는 못할 터.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정광은 말이 착지하자마자 고삐를 당겼다.

말은 자연스럽게 몇 걸음 더 물러나며 충격을 완전히 떨쳐냈다.

정광은 말이 괜찮아 보이자 갈기를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노인들을 나무랐다.

“얘가 다치면 어쩌려고 그렇게 흉악하게 덤비세요?”

노인들은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

‘흉악하다고?’

‘네가 아니고 우리가?’

정광은 노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를 따라 내려온 아미파 제자들이 사마련 무인들에게 막혀 싸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대응이 빠르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피해가 커질 터.

정광은 쓸모 있는 조력자들을 헛되이 죽게 할 생각이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가로막은 네 노인들을 노려봤다.

노인들은 움찔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놈들, 수준이 꽤 높단 말이야. 바로 다음으로 가자.’

정광은 아미파 제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철월을 향해 외쳤다.

“철월! 마혼…… 아니, 사혼철신신공(邪魂鐵身神功)이요!”

철월은 아미파 제자들이 얼굴을 찌푸릴 만큼 큰 기합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사이(邪異)한 기운이 솟아 그의 몸을 감쌌다.

순식간에 검게 물든 철월이 죽어버린 눈으로 괴성을 지르려는 순간!

“사제!”

“알고 있습니다!”

철월의 곁에 있던 백승무가 흑우를 도끼질하듯 휘둘렀다.

검날이 아니라 검면으로.

흑우는 기세 좋게 날아가 철월의 이마를 강타했다.

따앙!

“으아악!”

맑은 소리와 함께 철월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비명이 어찌나 구슬픈지 싸우던 이들도 흠칫 놀라 곁눈질할 정도였다.

철월의 죽었던 눈동자가 눈을 끔뻑일 때마다 조금씩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완전히 돌아오자 철월은 백승무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철월은 아프다! 너는 자장이가 아니다! 때리면 화낸다!”

백승무는 아미파 제자들 사이로 도망치며 대꾸했다.

“이미 얘기된 것 아니오! 그보다 옆을 보시오!”

“응?”

날카로운 못이 삐죽삐죽 박혀 있는 낭아봉(狼牙棒)이 철월의 어깨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원래 얼굴을 노리고 싶었겠지만 철월이 너무 커서 어깨로 바꾼 것이리라.

철월의 눈이 분노로 물들었다.

그는 애병인 대월을 크게 휘둘렀다.

후우웅-

도끼가 아니라 폭풍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폭풍에 휩싸인 사마련 무인은 낭아봉과 함께 깨끗이 양단됐다.

콰직!

“끄악!”

동강 난 상체가 허공을 날며 피를 흩뿌렸다.

철월은 그 피를 뒤집어쓰며 고함쳤다.

“철월은 아픈 게 싫다!”

그 놀라운 광경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저, 저건!”

엄청난 체구와 검게 변한 피부.

황당할 정도로 거대한 도끼와 믿기 힘든 신력.

사마련 무인들이 놀라 외쳤다.

“철두대월(鐵頭大鉞)!”

“철두다!”

“철두가 련을 배반했다!”

철월도 놀랐다.

듣기 싫은 별호를 저렇게 크게 소리치다니.

아미파 여인들이 오해할 것 아닌가!

당황은 분노로 바뀌었다.

철월은 도끼를 휘두르며 부르짖었다.

“나는 철월이다!”

사마련 무인들도 분노했다.

병기를 꼬나쥐고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저 배신자 새끼를 죽여!”

하지만 철월은 죽이기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몸은 강철과 같이 단단했고 거대한 도끼는 스치기만 해도 육신과 병기를 분쇄했다.

그래도 인간이기에 한계는 존재하는 법.

적이 몰려들자 손발이 바빠졌다.

몸 여기저기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철월은 아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으나 꾹 참았다.

그는 사내 중의 사내였으니까.

수많은 여인들 앞에서만큼은!

“나는 철월이다아아아!”

그는 무식하게 밀고 들어가며 대월로 찍고 쪼갰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마치 성난 곰 같았다.

사마련 무인들은 당황했다.

도검이 먹히지 않는 데다 앞뒤 없이 달려드니 상대할 만한 방도가 없어서였다.

철월의 분전 덕분에 아미파 제자들은 숨통이 트였다.

장문인 대정은 한 명의 목을 자른 뒤 검을 높이 치켜들며 외쳤다.

“아미타불! 살생을 줄이려면 더 힘을 내라!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리! 제자들은 살계(殺戒)를 열어라!”

“네! 장문인!”

열심히 살계를 열고 있던 아미파 제자들은 더 열심히 병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정말 엄청난 기세였다.

사마련 무인들이 한쪽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까진 됐고.’

정광은 노인들에게 포위당한 채 싸우면서도 전황을 똑똑히 파악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가볼까.’

네 노인에게 강한 검격을 날려 물러나게 한 뒤 외쳤다.

“무혈단!”

“네! 단주!”

아미산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우, 언의진, 혜진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철월과 아미파의 활약 덕분에 빈 길을 따라 그대로 달릴 수 있었다.

정광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 씩 웃었다.

그와 달리 네 노인의 얼굴에는 분노가 떠올랐다.

“이대로 달아나려는 것이냐!”

“절대 보내주지 않는다!”

그들의 임무는 정광의 발을 묶어놓는 것.

신출귀몰한 정광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놈을 치세!”

“빨리 잡아야 하네!”

그때, 금룡이 날아올랐다.

노인들은 그 예리함을 감당할 수 없어 급급히 물러났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저놈의 검만 아니면!’

‘이래서야 어찌 싸운단 말인가!’

정광은 병기의 예리함에만 기대는 얼치기 무인이 아니었다.

그 예리함을 뛰어넘는 무위를 가진 진짜 무인이었다.

꼼수도 잘 썼고.

“용돈 하세요!”

그의 손에서 철전(鐵錢)들이 쏘아졌다.

노인들은 급작스러운 암수에 놀라 정신없이 병기를 휘둘러야 했다.

쩡! 쩌정!

“크윽.”

가까스로 쳐내긴 했으나 병기를 쥔 손이 찌르르 울렸다.

게다가 금룡이 또 날자 노인들은 허겁지겁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이!’

‘구멍을 내려고 하는구나!’

노인들은 다시 포위망을 좁히려 했으나.

철전들이 또 쏟아졌다.

금룡도 날아왔다.

결국, 틈이 생기고야 말았다.

두두두두-

정광을 믿고 일직선으로 달려오던 무혈단원들이 그 틈을 지나쳐 달렸다.

정광도 말고삐를 내려쳤다.

“가자!”

히히힝!

그를 태운 말이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무혈단원들의 뒤를 금세 따라잡았다.

바로 앞에서 달리는 혜진의 뒷모습이 크게 확대됐다.

‘그럭저럭 자세는 잡혔네.’

평생 말을 타본 적이 없다기에 며칠이나마 익히게 했는데 곧잘 달리고 있었다.

‘그럼 또 다음으로 가야지.’

정광은 뒤를 돌아보며 대정에게 외쳤다.

“장문인! 수고하셨습니다! 그만 들어가셔서 쉬세요! 사제! 죽지 말고 철월도 잘 챙겨!”

그리고 네 노인에게 충고했다.

“많이 버셨다고 헤프게 쓰시면 안 돼요! 아껴야 잘살죠!”

대정은 즉시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본산으로 돌아간다! 대열을 갖춰서!”

아미파 제자들은 상대하던 사마련 무인들을 밀어낸 뒤 물러나기 시작했다.

사마련 무인들이 어찌 대응해야 하나 망설이는데.

분노한 네 노인이 중구난방으로 외쳤다.

“돌중들은 그냥 둬!”

“말을 준비해라!”

“진옥룡 저놈을 쫓아!”

“시간이 없다! 어서!”

정광이 가려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벌어질지 몰랐다.

최대한 많은 수하를 이끌고 추격해야 했다.

한 노인이 분노한 목소리로 수하들을 다그쳤다.

“서두르라니까!”

정광 일행은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말의 체력을 고려해서인지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으나 조금만 지체하면 시야에서 사라질 것 같았다.

사마련 무인들은 아미산까지 타고 왔던 말에 재빨리 올라탔다.

먼저 말에 오른 노인들이 고삐를 움켜쥐며 명령했다.

“달려라!”

“가자!”

그들은 빠른 속도로 말달렸다.

정광 일행을 따라잡아 난자해 버릴 기세로!

‘음?’

그런데 뒤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비명이 들려왔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그대로 산에 올라 돌아갈 줄 알았던 아미파가 다시 내려와 있었다.

아니, 내려온 것에 그치지 않고 말이 없어 남겨진 사마련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바로 철월이다아아아!”

더러운 배신자의 목소리도 들렸으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런 악랄한 것들이 있나!’

‘중 주제에 이런 더러운 수법을 써?’

아미파는 악랄하지도 더럽지도 않았다.

그저 정광의 계획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노인들은 고민에 휩싸였다.

‘계속 진옥룡을 쫓아야 하는가?’

‘말머리를 돌려 수하들을 구해?’

‘전력을 반으로 나누는 게 나을지도.’

우두머리 노인이 결론을 내렸다.

“이미 늦었네! 계속 쫓아야 해!”

“…….”

그의 말이 맞았다.

노인들은 이를 악물고 정광을 추격했다.

‘따라잡기만 하면!’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를 써서라도 저놈을!’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정광 일행이 말달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아닌가.

전력 질주는 아니었으나 말이 반 시진도 못 달려 입에 거품을 물 수준이었다.

노인들은 눈을 번뜩였다.

‘뒤를 쫓기니 초조한가 보군.’

‘말이 지쳐 죽더라도 반 시진 안에 따라잡는다.’

그리고 죽인다.

죽이진 못하더라도 시간만큼은 확실히 끌고야 말리라.

그러면 사천성은 사마련의 것이 될 터!

결의에 찬 그들과 달리 정광은 느긋했다.

저 멀리 떠 있던 녹색 연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백리연화의 연기였다.

마침내 백리연화가 피어오른 곳에 도착하자 연기를 보고 온 근처의 사마련 무인들이 주위를 수색하고 있었다.

‘사파 주제에 무척 부지런하네.’

정광과 무혈단원들은 그들을 편히 쉬게 해줬다.

그리고 그곳에서 북동쪽으로 일리쯤 더 달렸다.

원래 계획대로 상인처럼 꾸민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시오! 여기 있소!”

당가 무인들은 한곳에 메어져 있는 말들을 가리켰다.

정광 일행은 지쳐 쓰러지려 하는 말에서 뛰어 내려 당가의 말로 갈아탔다.

“또 봬요!”

“진옥룡! 무혈단! 무운을 비오!”

당가 무인들은 포권을 한 뒤 말을 타고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정광 일행도 다시 말달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피어오르고 있는 또 다른 녹색 연기가 보였다.

전력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또 말을 갈아탈 수 있으리라.

정광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금방 가겠네. 늦지는 않겠어.’

한편, 정광 일행을 쫓던 네 노인과 수하들은 길바닥에 있는 동료들의 시신을 보고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쪽입니다!”

추종술(追從術)에 능한 수하가 정광 일행의 흔적을 찾았다.

북동쪽으로 일리쯤 갔을까.

지쳐 쓰러져 있는 말들이 보였다.

한곳에 있는 말똥 등을 보아하니 다른 말로 갈아타고 떠난 것이 분명했다.

‘당했다!’

‘관(官)에서 쓰는 역참(驛站)을 흉내 낼 줄이야!’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

“……말에서 내려라.”

“……조금 쉬게 한 뒤 다시 쫓는다.”

모두 이를 갈며 말에서 내렸다.

분노도 분노거니와 엄청난 허탈감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 * *

정광 일행은 백리연화의 연기가 피어오른 곳을 한 번 더 지나쳤다.

다시 갈아탄 말은 마지막 녹색 연기가 있는 곳까지 한 번에 달리고도 남을 만큼 힘이 넘쳤다.

‘거의 다 왔네.’

정광은 느긋했으나 무혈단원들은 아니었다.

정광의 뒤를 바짝 따르던 공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단주! 저 백리연화는 독존께서 터뜨리신 겁니까?”

정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답했다.

“그럴걸요.”

“독존께서는 무사하시겠지요?”

“글쎄요.”

“……네?”

정광은 별것 아니란 투로 말을 이었다.

“당가의 우애가 생각보다 좋으면 살아 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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