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180화 (519/569)

180화

어린 새

사마련주 사지환은 높은 단에 홀로 앉아 오연한 눈빛으로 장내를 둘러봤다.

‘하여간. 쓸 만한 놈이 없어.’

좌우로 길게 시립해 있던 수하들이 흠칫 놀라 몸가짐을 바로 했다.

‘담이 큰 놈도 없고.’

그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대전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후위진의 뒤통수에 꽂혔다.

납작 엎드려 있으나 덜덜 떨지는 않는다.

괘씸하면서도 봐줄 만했다.

‘이놈은 쓸모는 없지만 담은 크니 그나마 나은 걸지도.’

그래 봐야 더러운 피를 이은 놈.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조용히 말했다.

“잘도 왔구나.”

“죄송합니다.”

“섬서성에 네 목을 두고 와서 죄송하다 했으면 이해했을 텐데. 긁힌 상처 하나 없어?”

“서신으로 말씀드렸다시피 명분을 무기로 빼앗았던 곳입니다. 그 명분을 잃게 되니 피를 흘려봤자 련(聯)에 누만 끼칠 거라 판단했습니다.”

“관리들과 결탁해 화산과 종남을 상대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거늘. 결국 이 꼴로 쫓겨났군. 할 말이 있느냐?”

“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너무 약했기 때문입니다.”

사지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지금 내가 수하들을 너무 적게 붙여줬다고 투덜대는 것이냐?”

“제자가 어찌 감히. 제자의 능력이 형편없어 사부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말장난은 잘하는구나. 고개를 들어라.”

“네, 사부님.”

후위진은 처박고 있던 고개를 망설임 없이 들었다.

드러난 얼굴은 평온했다.

눈빛마저 담담한 걸 보자 사지환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네게 좋은 경험이 됐나 보군. 성장한 게 보여.”

“그저 죄송할 뿐입니다.”

사지환은 후위진을 노려보다가 전음으로 물었다.

-자오 그놈에 대해 알아낸 건?

-진옥룡의 충복이 되었는데 그 연유는 모르겠습니다. 납치해서 토설하게 하려 했으나 도저히 틈이 나지 않아 못 했습니다.

-한심하긴. 진옥룡이라는 그놈. 마기가 느껴지진 않았고?

후위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 놀라서였다.

‘돼지가 마인에게 당했다더니. 그 마인이 그놈이라 생각하는 건가?’

사지환은 후위진의 표정을 유심히 보더니 피식 웃었다.

-놀랐나 보군.

-그렇습니다.

-왜 그렇지?

-진옥룡은 곤륜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흐음.

사지환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또 물었다.

-그놈의 무위는? 부련주를 잡을 만하더냐?

-솔직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놈이 야밤에 잠입해 독을 풀어 모두 배앓이를 하게 되었으나 그 정도 무위가 있을 거라곤…….

-운룡이라는 그 보검 말이다. 네가 철혈장에 선을 대어 만들어준 것이라던데. 왜 그랬느냐?

후위진은 긴장했다.

이런 물음을 할 거라 예상하고 대답까지 준비했으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지환은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다.

‘침착해. 사부는 몰라. 철혈장이 내 외가라 그냥 떠보는 거야.’

그 사실을 알 수도 있는 하북지부의 무인들은 모두 가균이 죽여 버린 상태.

분명 가균도 사지환에게 모른다고 말했다 들었다.

사마련의 부련주가 련주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정광은 물론 자신도 변수로 삼아서 움직여 보려는 것일 터.

‘내 가문까지 말이지.’

후위진 자신이 오래전 철혈장에 서신을 보내 함구해 달라 했었으니 사실이 새어나갔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제껏 해온 것처럼 당당하게 부정해야 했다.

-잘못된 소문을 들으신 것 같습니다. 제자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적이 없다?

-네, 사부님.

-흐음.

사지환은 후위진을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육성으로 물었다.

“반성은 하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네가 어찌해야 하는지도 알고?”

“그저 사부님의 처분에 따를 뿐입니다.”

사지환의 눈에 살기가 맺혔다.

그는 그 살기로 후위진을 쏘아보며 입을 떼었다.

“죽여 버리고 싶다만…….”

장내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사지환은 살기 어린 눈동자로 수하들을 하나하나 노려봤다.

그때마다 수하들이 몸을 떨자 사지환의 입술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나마 세운 공이 있으니 그러기도 뭐하군. 근신해라. 때가 되면 부르마.”

얼어붙었던 장내의 분위기에 숨통이 트였다.

그 숨통 사이로 후위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깊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후위진은 고개를 숙여 바닥에 찧은 후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걸음걸음마다 등에서 식은땀이 솟았다.

사지환이 언제 변덕을 부려 죽이려 들지 몰라서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다행히 대전을 벗어날 때까지 사지환은 별다른 말을 안 했다.

밖으로 나온 후위진은 대전의 문이 닫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정말 살았군.’

빈약한 전력으로 화산과 종남이 웅크리고 있는 섬서성으로 내쳐진 후위진이었다.

누가 봐도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

평소 후위진을 못마땅해하던 사마련주의 독단이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후위진은 해냈다.

사파답지는 않은 방법이었으나 화산과 종남을 견제하며 피해를 입힌 것이다.

‘바로 옆 하북성에 있는 무림맹의 신경을 긁으며 어느 정도 시간을 끌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또한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해 오지 않았다면.

막대한 뇌물을 뿌린 만큼 회수하지 못했다면.

‘……바로 목을 쳤겠지.’

아니, 그의 부모를 의식해 그렇게까진 안 했을지도 모르나 팔다리 하나쯤은 잘랐으리라.

사지환은 그러고도 남을 정도로 미친놈이었다.

‘하나는 일단 됐고. 다른 미친놈의 일을 해결해야겠군.’

정광을 말함이었다.

‘정말 미친놈이야. 아무리 그놈이라도 힘들 거라 생각했거늘.’

사마련에 막대한 피해를 준 정광이었다.

사부가 자객을 보낼 거라 예상은 했으나 창사와 부사, 그들의 제자들이 나타나자 눈을 의심했었다.

‘그런데 해치워 버렸지.’

정광이 죽었으면 벌써 소문이 파다하게 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걸 보면 역으로 다 죽여 버린 게 분명했다.

‘사부도 그들의 죽음을 알거나 짐작하고 있을 텐데.’

비밀리에 보낸 만큼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상당히 분노하고 있을 터.

‘분명 다른 조치를 취했을 텐데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후위진은 생각에 잠긴 채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걷다 보니 섬서성에서부터 그를 따라온 수하들이 정중히 맞았다.

“오셨습니까, 지부장님.”

“없어진 직책이다.”

“저희에겐 지부장님이십니다.”

후위진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이 다가왔다.

선두의 여인은 무척 아름다웠는데 후위진을 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삼사저(三師姐) 소영화였다.

“사제가 왔구나. 신수가 훤한걸. 섬서에서 잘 놀다 왔나 봐?”

후위진은 담담한 얼굴로 인사했다.

“사저.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나야 뭐 항상 그렇지. 내 안부도 묻고, 많이 어른스러워졌네?”

소영화가 곱게 눈웃음쳤다.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허나 후위진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소영화의 눈썹 끝이 살짝 올라갔다.

‘뭐야? 이 목석같은 반응은.’

후위진은 미인에게 약했다.

적의를 갖고 있어도 막상 만나면 몽롱한 얼굴로 정신없이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쓸데없이 태연한 척하는군. 본 모습을 꺼내주마.’

소영화는 공력을 끌어올려 미혼술(迷魂術)을 펼쳤다.

원래 아름답던 얼굴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후위진의 눈동자에 박혔다.

소영화의 붉은 입술이 열리며 끈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제. 이제 완연한 사내가 됐구나. 무척 기뻐.”

“그렇습니까.”

“……뭐?”

소영화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무덤덤한 반응 아닌가.

조금 약했나 싶어 공력을 더 불어넣는데…….

후위진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뭐야 이놈? 이걸 견뎌? 내 미혼술이 잘못됐나?’

혹시나 싶어 후위진의 뒤에 있는 무인들을 바라봤다.

몽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그들은 시선이 마주치자 바보처럼 입을 헤 벌렸다.

‘아니야. 미혼술은 제대로인데. 그렇다면?’

후위진이 성장한 것이리라.

그녀의 미혼술에도 흔들림 없는 부동심(不動心)을 품게 됐다는 의미!

‘……전처럼 애 취급하면 안 되겠군.’

소영화는 미혼술을 풀었다.

후위진의 수하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후위진은 여전히 담담했다.

“사저, 그만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또 보자.”

“시간이 되면 그러지요.”

후위진은 예를 표한 뒤 소영화를 지나쳐 걸었다.

아무런 미련도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후위진의 수하들이 감탄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소영화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돼지가 죽어서 좀 나아졌나 했더니. 저놈이 이렇게 커서 돌아올 줄이야.’

수하들이 저렇게 따르는 것도 의외였다.

후위진은 끈 떨어진 연과 같은 신세. 뭐 얻을 게 있다고 저러는지.

그 이유는 후위진이 돈을 써서 옥에 가는 것도 막고, 공을 탐하긴커녕 쓸데없는 싸움 없이 이곳까지 데려와 줘서였다.

사람인 이상 고마울 수밖에 없는 일.

그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나 최소한 지금은 그랬다.

더구나 소영화의 미혼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정신력이라니.

믿고 몸을 의탁할 만하지 않는가.

허나 소영화는 이런 사실들을 몰랐기에 의문만 품을 수밖에 없었다.

‘바뀌어도 단단히 바뀐 게 틀림없어. 방심하지 말고 주시해야겠군.’

실제로 후위진은 많이 변해 있었다.

모두 정광 때문이었다.

후위진은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소영화의 미모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현인인 그에게 미인계니 미혼술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 해. 녀석의 장기짝이 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지.’

먼저 칩거하고 있는 가균을 만나봐야 했다.

사마련주의 눈을 피해서.

‘가균은 내가 모르는 것들을 알고 있을 거다.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과거에 꺼렸던 삼사저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의 그는 더 크고 넓게 보는 현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군. 그놈이라면 금방 생각해 냈을 텐데.’

그보다 아주 조금 잘난 정광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이 보냈던 전음도.

-제대로 하시면 해약 드릴 테니 이 악물고 하세요.

-……있기는 하고?

-차차 만들죠 뭐.

꼭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

그리고 야망을 위해.

* * *

회의가 끝난 보현전에는 대정과 대연만 남아 있었다.

대원과 함께 들어간 정광은 그녀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대정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략 들었을 때와는 다르군. 적당한 수준이 아니야.”

“적당한데요.”

“자네에게나 그렇지.”

“에이. 아미파시면서.”

“허어…….”

대정은 어이없어하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정광이 아미파를 높이며 대충 넘어가려 해서였다.

‘안 될 건 없다만.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웬만하면 정광의 계획보다 좀 쉬운 방법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대원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문인. 진옥룡이 혜진에게 길을 열어주기로 했네.”

“혜진에게요?”

정광도 놀랐다.

“길을 열어주다뇨? 그냥 데리고 다니라고 하셨잖아요.”

“흘흘. 그게 그걸세.”

“아뇨.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정광과 대원을 번갈아 보던 대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사저.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대원은 정광과 나눴던 대화를 얘기했다.

대정과 대연은 굳은 얼굴로 듣다가 한숨을 쉬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대정이었다.

“대사저. 마음을 굳히셨습니까?”

“장문인. 장문인의 권위를 침범하려는 게 아니네. 다만 혜진을 받아들일 때부터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결정은 노납이 하기로 했잖나. 그렇게 하고 싶네.”

“…….”

다음은 대연이었다.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이리 급하게 결정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사매. 잘 생각해 보세나. 혜진이 본파에 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어. 급하긴커녕 많이 늦은 감이 있지.”

“…….”

대정과 대연은 지난 십여 년을 돌아봤다.

혜진의 사정과 성장 과정을 되짚으니 대원이 고집부리는 게 이해가 됐다.

그들도 혜진을 아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대사저의 말씀대로 하는 게 혜진 그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지도…….’

마음이 기운 대연과 달리, 대정은 아미파의 장문인으로서 정치적인 판단도 해야 했다.

‘그가 구체적인 요구는 안 했었으나 혜진의 안전을 신신당부한 터. 혹시라도 강호에 나갔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둘 수도 없지 않은가. 보다 넓은 곳에 나가기를 원하는 아이를…….’

그때, 밖에서 중년 여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청신 진인이 뵙기를 청합니다.”

“……바쁘다고 말씀드리게.”

“벌써 몇 번이나 그랬습니다만 한시라도 빨리 산을 내려가 악도들을 쳐야 한다고…….”

깊은 수양을 쌓은 대정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안 그래도 고민 중인데, 왜 자꾸 귀찮게 한단 말인가!

“이런 눈치 없는 늙은이를 봤나! 급하면 홀로 내려가서 싸우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하게!”

“아, 알겠습니다.”

중년 여승이 직접 전할 필요도 없으리라.

대정의 목소리는 멀리 있는 청신에게도 들릴 만큼 크고 높았다.

‘후우우. 빨리 내쫓든 해야지 원.’

대정이 내심 고개를 젓는데 정광이 말했다.

“무인이 스스로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기대려고만 하네요. 청성파 기풍이 그런가?”

“…….”

정광의 말대로였다.

청성파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무인이라면 스스로 걸어야 하는 것이다.

‘혜진을 위해서라도 놓아줘야 해. 문제가 생기면 본파가 대가를 치르면 되고. 이리도 간단한 것을 왜 계속 고민해 온 걸까?’

부끄럽게도 그 답 역시 알고 있었다.

어려운 길을 피하고 쉬운 길을 걷고 싶어서였다.

대정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대원에게 물었다.

“한성에게는 말씀하셨습니까?”

“혜진이 자유롭게 나는 걸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게 한성일세. 다만 걱정이 돼서 티를 안 낼 뿐이지.”

“한성과 혜진이 좋다 하면 저도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정이 긍정적으로 말하자 대연도 찬성했다.

“아미타불. 대사저의 뜻대로 하시지요.”

대원은 합장하며 두 사매를 다독였다.

“장문인,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사매, 사매도 똑같아. 진옥룡이 도울 테니 크게 잘못될 일은 없을 걸세.”

정광이 어이가 없어 끼어들었다.

“그냥 데리고 다니기만 하면 되는 거 맞아요?”

세 노승이 동시에 대답했다.

“잘 부탁하네, 진옥룡.”

* * *

정광은 세 노승에게 확실히 못 박았다.

혜진을 일행으로 받는 것일 뿐, 그녀의 안전을 장담하거나 무언가를 베풀 생각은 없다고.

‘아니. 그런데 왜 빙그레 웃으면서 너무 쑥스러워하지 말라고 헛소리만 하는 거야?’

어쨌든 확실히 말했으니 책임질 필요는 없을 터.

대정이 사람을 보내 한성을 불러들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성은 슬퍼하면서도 받아들였다.

새장에 갇힌 어린 새를 본인이 원하는 넓은 세상으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였다.

하지만 뒤이어 불려온 혜진은 달랐다.

“……진옥룡과 떠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혜진은 장문인인 대정을 똑바로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

여승들도 놀랐지만 정광이야말로 놀랐다.

싫다고?

나와 가는 게 싫어?

전생이든 현생이든 나를 거부한 여인은 네가 처음…….

정광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누웠다.

‘……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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