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163화 (163/569)

163화

금강석처럼 단단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의욕 없이 대월(大鉞)을 휘두르던 철월이었거늘.

사부인 부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세가 돌변했다.

그를 바보로 만든 사문의 비전절예(秘傳絶藝)를 꺼내 든 것이다.

“으아아아아!”

비명 같은 기합과 함께 사이(邪異)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았다.

그 기운이 그의 몸을 감싸며 피부를 검게 물들였다.

바보처럼 흐리멍덩하던 눈은 더 바보처럼 죽어버렸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철월이 가까이 있던 팽강휘에게 달려들며 괴성을 질렀다.

“꾸와와와락!”

그의 엄청나게 큰 대월이 바람을 갈랐다.

부우우웅-

호기롭게 맞서려던 팽강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도(刀)로 막을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큭.”

재빨리 뒤로 물러나자 거대한 대월이 그가 있던 자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공간이 쪼개지는 듯한 엄청난 일격이었다.

‘대단한 패력(覇力)이구나!’

머리털이 곤두섰다.

스치기만 해도 어디 하나는 잘려 나갈 위력 아닌가.

‘하지만…….’

팽강휘의 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하북팽가야말로 패력의 가문.

그 진체(眞體)를 오롯이 이어가며 패(覇)를 추구하고 있는 자신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마음이 꺾일 리가 있나.

‘질쏘냐.’

허공을 가르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대월을 노려봤다.

자신을 믿으며.

동료를 믿으며.

동료들은 그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으합!”

옆에 있던 유정풍이 철월의 가슴을 향해 타구봉을 내질렀다.

동시에 언의진이 튀어나와 철월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철월은 피하지 않았다.

쿵!

“윽!”

“앗!”

공격을 적중시킨 유정풍과 언의진이 놀란 음성을 토했다.

마치 쇳덩어리를 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철월은 눈살만 살짝 찌푸린 채 그대로 팽강휘를 쪼개갔다.

“빌어먹을!”

동료들을 믿고 후속 공격을 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았던 팽강휘가 도파(刀把)를 고쳐 잡으며 욕설을 뱉었다.

그 또한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려 받아치려는 그때.

누군가 그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얼결에 끌려가는 사이 거대한 도끼가 그가 서 있던 땅에 처박혔다.

콰앙!

굉음과 함께 단단한 바닥이 갈라지며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눈이 커졌다.

‘저런 무식한 놈이 있나!’

‘무슨 힘이 저렇게 세?’

더 큰 문제는 철월의 단단한 육신이었다.

팽강휘를 잡아끌어서 구한 당오군은 철월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유 소협의 봉과 언 소저의 권에 맞았는데도 눈살만 찡그리다니.’

분명 가벼운 일격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철월의 가슴과 옆구리 부분의 옷이 터져 실오라기를 흩날리고 있었다.

‘허세가 아니구나.’

찢어진 옷 사이로 검붉은 자국이 보였다.

그저 피부에만 타격을 입은 것이다.

‘철포삼(鐵布衫) 같은 외가기공(外家氣功)은 아닌 것 같은데.’

사이한 기운이 솟으며 피부가 검게 변했었다.

특이한 심법을 바탕으로 펼치는 사술(邪術)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저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겠지. 일각? 한 식경?’

그 정도를 넘어 한 시진일지도 몰랐다.

당오군은 짐작만으로 선택을 해야 했다.

창잡이를 먼저 잡아야 할지, 철월부터 잡아야 할지.

쉬워 보이는 건 당연히 창잡이였다.

‘아까의 계산대로라면 창잡이를 잡기 위해선 최소 네 명이 필요해.’

하지만 잡아낸다 쳐도, 그때까지 남은 여섯 명이 철월의 공격을 견뎌낼지 의문이었다.

‘어쩐다…….’

의외의 사람이 당오군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바로 철월이었다.

그가 미친 듯이 휘두르던 대월에 정우와 정현을 상대하던 창잡이가 휩쓸렸다.

“꾸와아아악!”

“미, 미친!”

급작스러운 아군의 공격.

창대에 내공을 불어넣어 막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콰직!

“끄아악!”

창잡이는 형편없이 두 동강 난 창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바닥에 처박혔다.

쿠웅-

무혈단원들은 입을 떡 벌렸다.

‘도, 동료까지 날려 버려?’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찌 됐든 고마운 일.

당오군은 상황에 맞게 해야 할 일을 했다.

“수(守)! 사식(四式)!”

무혈단은 그의 명에 따라 진을 변형시켰다.

이열(二列)로 오목한 반원을 그린 채 철월의 주위를 돌았다.

철월은 괴성을 질러대며 진을 두드렸다.

슈우우웅-

거대한 도끼가 날아오자 언의진이 재빨리 물러섰다.

그 순간 반원의 양쪽 끝에 있던 정우와 팽강휘가 철월에게 검과 도를 날렸다.

동시에 당 씨 남매는 독이 묻은 암기를 던졌다.

완벽한 합공이었다.

하지만 철월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지만 본능은 살아 있었다.

“꾸와아아악!”

괴이한 외침과 함께 거대한 도끼로 전면을 가렸다.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던 암기들이 도끼에 맞고 튕겨 나갔다.

동시에 정우의 검과 팽강휘의 도가 철월의 허벅지와 어깨를 베었다.

까드득!

마치 철판을 쇠로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정우와 팽강휘가 경악한 얼굴로 재빨리 물러섰다.

그들이 있던 공간을 철월의 도끼가 분쇄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신력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오군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구나.’

철월의 찢어진 옷 사이로 가늘게 그어진 선이 보였다.

그 선에는 붉은 핏물이 맺혀 있었다.

정우와 팽강휘가 남긴 상처였다.

“크하아아아! 끄아아악!”

철월이 알 수 없는 고함을 지르며 광분했다.

무혈단은 그의 공격을 피하며 차륜전을 펼쳤다.

당오군은 기회를 노렸다.

‘몸은 내어주더라도 얼굴은 보호하는구나. 외가기공을 익힌 이들처럼 조문(罩門)이 있는 건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외가기공을 익힌 자들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육신을 가지는 대신 몸의 한 부위만큼은 어린아이보다 약해지는 것이다.

그 부위를 조문이라고 하는데, 철월이 얼굴을 보호하는 걸 보면 그의 사술에도 약점이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라. 키가 너무 커서 권장(拳掌)으로는 때리기 힘들겠어.’

거대한 체구뿐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큰 도끼도 문제였다.

아까 암기를 튕겨냈듯이 대충 세우기만 해도 안면을 완전히 가릴 수 있었다.

‘가랑비에 젖게 만든 뒤 뒤통수를 쳐야겠군.’

병기로 피부에 상처를 내며 내가중수법으로 장기를 흔든다.

그렇게 주의를 끌다가 안면에 한 방을 먹인다.

그 한 방이 효과가 있을지 확실치는 않았으나 지금으로선 최상의 수였다.

‘사술이 언제 풀릴지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순 없지.’

당오군은 자오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협. 기회를 만들어볼 테니 이때다 싶으면 저자의 안면을 공격해 주십시오.

-알았소. 사마련에 있을 때 이자의 소문을 들었었는데 정말 상식 밖의 괴물인 것 같소이다. 나 역시 최선을 다할 테니 소가주도 걱정하지 말고 할 일을…….

당오군은 자오의 수다를 귓등으로 흘리며 양손에 암기를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던지며 크게 외쳤다.

“공(攻)! 칠식(七式)!”

산발적인 공격을 가하라는 명령.

단원들은 그의 말대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철월의 분노에 찬 괴성도 커져갔다.

“콰우우우웅!”

* * *

정광은 철월의 괴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도마뱀보다 더 시끄러운 놈이네.’

탑극랍마간 사막에서 잘살고 있을 무각사룡을 말함이었다.

‘그놈 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긴 한데.’

유운보(流雲步)를 밟아 창사의 창을 흘리고, 운룡으로 찔러 부사를 물러나게 했다.

동시에 곁눈질로 무혈단과 철월의 싸움을 봤는데 아주 팽팽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부사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갈! 감히 우리를 상대하면서 한눈을 팔아?”

“아. 두 분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습관이라서요.”

습관이라니.

부사는 물론 창사까지 화가 치밀었다.

천하의 그 누가 생사결을 벌이며 한눈을 파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다니!”

“부사! 도발하는 걸세! 말려들면 안 돼!”

도발은 무슨.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을 하면서도 전황을 살펴 지시를 내려야 했던 정광의 전생을 몰라서 하는 오해였다.

“저를 너무 나쁘게 보시네.”

“시끄럽다!”

“어? 아까 지혈하신 발에서 피 철철 흘러요. 괜찮으세요? 금창약이라도 발라 드릴까요?”

“우와아아악!”

정광의 친절에 도발당한 부사가 괴성을 터뜨리며 쌍부(雙斧)를 휘둘렀다.

정광은 기다렸다는 듯 운룡을 내질렀다.

쌍부가 그려내는 수많은 선들을 비집고 들어간 운룡이 부사의 어깨에 작은 구멍을 냈다.

“크흑!”

“이런. 얕았네.”

“이놈이 진짜!”

부사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의 몸에 나 있던 작은 상처들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왔다.

모두 정광이 만든 것들이었다.

창사는 부사를 구하기 위해 정광에게 공세를 퍼부으며 탄식했다.

‘이렇게 강할 수가. 저 나이에 어찌?’

정광의 행색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찔리고 베인 상처가 가득했다.

하지만 주도권은 그의 것이었다.

내공은 팔사보다 높지 않았으나 적절한 순간에 딱 필요한 만큼만 운용하는 신기를 보이고 있었다.

초식 사용 또한 기가 찰 정도로 놀라웠다.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들이 없었고 치명적인 위험을 품고 있었다.

그것도 우아하면서 멋진 것들로!

‘하지만…….’

그래 봐야 사람이다.

창사나 부사 개개인보단 조금 강하나, 둘을 동시에 상대하며 무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었다.

정광에겐 다른 큰 강함이 있었다.

‘싸움이 무엇인지 아는 놈이야. 약관 정도의 나이에 쌓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거늘. 설마 반로환동(返老還童)한 고수?’

말도 안 되는 소리.

무림사(武林史)에 그런 경지에 이른 이가 몇이나 된다고.

진천마쯤은 돼야 가능한 일 아닌가.

‘허허. 내가 피를 많이 흘려서 정신이 나갔나 보군.’

창사는 창을 휘두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몸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사처럼 정광에게 당한 흔적들이었다.

‘이거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이대로 무릎을 꿇을 생각은 없었으나 이길 자신도 없었다.

‘정말 무서운 놈이로다.’

강호를 떨어 울리는 팔사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사람.

부실한 식사와 잠자리 때문에 생겨난 작은 불편함과 자신도 모르게 쌓인 분노와 조급함이 합쳐져 아주 작은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정광은 그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낸 뒤 싸움에 활용할 수 있는 무인이었다.

게다가…….

‘이리도 손발이 안 맞을 줄이야.’

팔사쯤 되는 이들이 언제 합공을 해봤으랴.

일과 일을 더해 이가 되긴커녕, 일에 반을 더한 정도밖에 힘을 못 쓰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죽을 순 없지.’

창사는 그리 오래지 않아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청년 도사를 노려보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진원진기(眞元眞氣)까지 조금 더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그때.

“독 때문에 그거 안 되실 텐데 어떡해요? 아. 어차피 안 되죠?”

“……이 악귀 같은 놈이 진짜!”

정광의 도발에 흥분한 부사가 전력을 다한 일격을 날렸고.

그 일격을 살갗만 베이며 피해낸 정광이 눈부신 쾌검을 펼쳤다.

금룡이 빛이 되어 부사의 목을 갈랐다.

사아악-

“끄륵.”

그의 목에서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새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머리는 몸뚱이를 땅에 남겨두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기회!’

창사는 친우의 죽음을 틈타 정광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모든 것을 건 일초가 펼쳐졌다.

‘귀혼창(鬼魂槍)!’

막대한 내공과 진원진기까지 담긴 창이 요사한 귀곡성을 내며 기이한 환영을 그려냈다.

정광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에 들린 운룡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게 뿜어내던 황금빛을 검신에 단단히 머금어 투명하게 빛났다.

정광은 검파를 강하게 움켜쥐며 속으로 툴툴거렸다.

‘도끼쟁이를 잡을 수 있는 기회라 조금 무리했는데.’

무리 한 번 더하지 뭐.

금강석처럼 단단한 빛을 머금은 운룡이 날아가 창사가 만들어낸 환영을 맞이했다.

창사의 눈이 커졌다.

‘이런 위력이라니! 아직도 이만큼이나 여력이 남아 있단 말인가!’

상청무상검도(上淸無上劍道)와 귀혼창이 격돌했다.

콰아아앙!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의 신형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크윽.”

정광이 신법을 펼쳐 몸을 가누며 내려섰다.

“쿨럭.”

창사 역시 재주를 넘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세 바퀴 구른 뒤 일어나 그대로 도주했다.

몇 걸음마다 입에서 선혈을 토하며.

정광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또 도주를 해?’

정광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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