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멋진 승부
무혈단의 임시 부단주를 맡은 당예지는 냉정한 마음속에 투혼을 품고 있는 무인이었다.
이번 비무의 운용 방식이 정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압도적인 승리로 끝낼 심산이었다.
‘그러려면…….’
그녀가 단원들에게 내린 첫 번째 명(命)은 공격이었다.
“돌진!”
“하!”
단원들은 일제히 외치며 지룡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지룡단에서도 지봉(知鳳) 제갈린이 명을 내렸다.
“수(守)!”
“봉명(奉命)!”
지룡단원들은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디디며 무혈단을 맞이했다.
제일 먼저 격돌한 건 팽강휘와 청룡(靑龍) 도진이었다.
쾅!
목도와 목검이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도진은 손아귀가 찌르르 울리는 걸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팽가 아니랄까 봐. 무식한 놈 같으니.’
그래도 문제없었다.
그가 아는 팽강휘는 그것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팽강휘가 격돌 후 튕겨 나갔던 목도를 신력을 이용해 다시 우악스럽게 휘두르는 것 아닌가!
‘더 무식해졌잖아!’
그렇다면 그에 맞는 방식으로 상대하면 될 터.
즉시 세류표(細柳飄)를 밟아 옆으로 돌아가며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을 펼쳤다.
부드럽고 섬세한 보법과 장엄한 기세의 검법이 어우러진 기가 막힌 수였다.
순식간에 빈틈을 허용한 팽강휘는 당황하긴커녕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구나.’
청성파의 무공은 빠름과 날카로움을 중시한다.
물론 아닌 무공도 있었는데 도진이 펼치고 있는 것들이 대표적인 예였다.
‘네 비뚤어진 성품과 어울리는 걸 써야지.’
안 펼치면 펼치게 하면 된다.
목도를 움켜쥔 팽강휘의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 손은 엄청난 힘을 발휘해 목도를 사선으로 그었다.
내공에 신력까지 더해진 쾌도.
목도가 도진의 목검을 부러뜨릴 기세로 부딪혀 갔다.
“훅!”
그 위력에 놀란 도진이 비류보(飛流步)를 밟아 물러났다.
물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세찬 움직임이었다.
연무장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지만 팽강휘는 아니었다.
그대로 성큼 내디디며 강맹한 도격(刀擊)을 뿌렸다.
도진이 또 물러나며 피했으나 계속 따라붙으며 뿌렸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도격!
하북팽가의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가 엄청난 위력의 연환격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도진의 눈이 번들거렸다.
‘이놈이 많이 컸구나!’
구룡사봉은 하나로 묶여 불리지만 엄연한 격차가 있었다.
팽강휘는 나이가 어린 축에 속했고 실력 또한 하위권으로 평가되고 있었건만 이런 실력을 보이다니!
도진의 번들거리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봤자다.’
이십 년이 넘게 옥로현진공(玉露玄眞功)으로 쌓아온 내력이 솟구쳤다.
그 내력은 그가 쥔 목검에 담겨 날카로운 검식을 피워냈다.
청성이 자랑하는 절기 자전칠십이파검(紫電七十二波劍)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팽강휘는 눈부신 속도로 다가오는 목검을 노려봤다.
목검에 담긴 날카로운 기세에 피부가 저릿저릿해졌다.
그 감각을 기분 좋게 느끼며 속으로 외쳤다.
‘부순다!’
그의 목도가 허공을 반으로 갈랐다.
허공의 한 선일 뿐인 도진의 목검도 양단될 위기!
도진은 손목을 뒤집으며 팔꿈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시 손목을 비틀며 팔꿈치를 펼쳤다.
뒤로 당겨져 목도를 피해낸 목검이 급격한 호선을 그리며 팽강휘의 어깨를 베었다.
‘끝이다!’
순간 팽강휘의 거대한 신형이 아래로 꺼졌다.
‘어?’
땅에 주저앉듯 낮은 자세로 웅크린 팽강휘가 목도를 역으로 그어 올렸다.
상체의 근력만을 이용한 무식한 일격!
가슴이 활짝 열려 있던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콰직!
“크헉!”
도진이 억눌린 신음을 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목검이야 내공을 불어넣어 간신히 지켰지만 몸은 아니었다.
네 걸음이나 물러나서야 신형을 안정시킨 그가 두 눈을 치켜떴다.
‘이놈이 이렇게 강했던가!’
이 순간 상대의 실력에 놀라고 있는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혈단의 공세에 맞서던 지룡단원들 모두가 그랬다.
그중에서도 지룡단을 지휘하고 있던 제갈린은 무척이나 놀란 상태였다.
‘단순한 돌진이 아니잖아!’
팽강휘는 하북팽가의 무인답게 도진 하나만 바라보며 돌격했지만 나머지는 아니었다.
무혈단원들은 둘씩 짝지어 지룡단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 선두는 유정풍과 언의진이었다.
“차핫!”
유정풍이 타구봉으로 강맹한 일격을 떨쳐낸다.
놀란 지룡단원들이 급급히 피하자 언의진이 그 틈을 노린다.
쿵!
강력한 진각을 밟아 전진하며 내지르는 무림일절 언가권!
뽀각!
“크헉!”
팔뼈가 부러진 지룡단원이 비명을 토하며 뒷걸음질 친다.
거기서 끝나면 그나마 나으련만.
빠바바바박!
“아아아아악!”
유정풍의 타구봉에 개 맞듯 처맞다가 쓰러진다.
‘합이 착착 맞는군.’
그 두 사람보다 더 합이 잘 맞는 이들도 있었다.
자오가 흐릿한 잔영을 남기며 작은 공간을 누볐다.
그의 양손에 들린 쌍단봉은 혀와는 달리 짧고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주변을 후려쳤다.
타앙!
“이런!”
목도를 놓친 지룡단원이 놀란 음성을 토했다.
병기를 놓쳐서도 그렇지만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목검 때문이었다.
백승무의 목검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지룡단원의 머리를 강타했다.
빠각!
“끄억!”
눈이 풀린 지룡단원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오가 그의 어깨를 밟고 뛰며 뒤에 있던 지룡단원을 덮쳤다.
“얕은수를!”
지룡단원은 자오의 명치를 향해 목봉을 찔렀다.
허공에 떠 있는 자오로서는 피하기 힘든 한 수였다.
분명 그렇게 보였는데…….
자오가 허공에서 신형을 뒤틀었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목봉을 겨드랑이에 낀 뒤 단봉을 내지른다.
뻑!
“크흑!”
어깨를 맞은 지룡단원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데.
반대편 어깨를 향해 백승무의 목검이 날아왔다.
빠악!
“끄아악!”
양어깨에 강한 타격을 받은 지룡단원은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
자오와 백승무는 다음 사냥감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린은 미간을 좁혔다.
‘다들 강하구나.’
양측 개개인의 무위가 확연히 차이 났다.
무혈단원들이 사방에서 날뛰고 있었다.
공우가 강맹한 소림권을 펼치고 당오군이 나한전(羅漢錢)을 던진다.
정우, 정현 사형제가 멋지고 우아한 곤륜검법을 동시에 그려낸다.
‘역시 실전은 달라.’
머리가 뛰어난 이가 많기로 유명한 제갈세가에서도 천재라 불리는 제갈린이었다.
하지만 그건 평상시에만 적용될 뿐, 실전 경험이 일천한 그녀는 빠른 대응을 못 하고 있었다.
아비인 제갈문형은 그녀의 자질을 인정하며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했지만…….
그녀는 기다리기 싫었다.
그래서 이번 비무에 반대를 안 한 것이었다.
‘질로 안 되면 양으로 밀어붙이면 될 일!’
그녀는 곧 냉정을 되찾고 부르짖었다.
“사방진을 펼쳐 차륜전으로 갑니다!”
“봉명(奉命)!”
지룡단원들이 화답했다.
그들도 정파무림의 인재들이었다.
즉시 사방진을 펼쳐서 방비를 굳건히 했다.
무혈단은 그들의 방비를 쉬이 깰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당예지가 날카롭게 외쳤다.
“탈각(脫却)!”
“하!”
제갈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탈각? 뭘 벗는다는 거야?’
바로 알게 되었다.
무혈단이 정파의 기치(旗幟)를 벗어던지고 갖가지 비열한 수를 펼치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 도진을 몰아붙이고 있던 팽강휘가 목도를 역으로 그어 올렸다.
사타구니가 섬뜩해진 도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신형을 뒤집었다.
부우웅-
“허억!”
간발의 차이로 중심을 지킨 그가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런 비열한!”
“어차피 쓸데도 없지 않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명가의 자손이 이런 수를 펼쳐도 되는가!”
팽강휘는 계속 도진의 사타구니를 노리며 대꾸했다.
“아까 본단의 단주와 맹주께서 하시는 말씀을 못 들었소? 상대가 사마련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사마련이라 생각하라 했소. 대체 사파와의 실전을 뭐라 생각하는 것이오?”
“……이익!”
여기저기서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고, 고룡! 고고한 그대가 이런 더러운 수를 쓰다니!”
“아미타불…….”
공우는 겸연쩍은 얼굴로 불호를 읊으며 암수를 펼쳤다.
“미친! 사마련 출신답구나!”
“꼭 그런 건 아니오. 이 수법에 대해 말하자면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그래도 설명해야 할 것 같소이다. 사실은…….”
“시끄럽다! 이런 비열한…… 으아악!”
자오는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하게 전직 사파다운 재주를 뽐냈다.
“대체 이놈들 뭐야!”
지룡단원들이 절규하며 하나씩 쓰러져 갔다.
숫자가 많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경험이 부족한 그들이 막아낼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주변을 둘러보던 제갈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면…….’
후방에서 전황을 살피며 간간이 암기를 던지는 당예지가 보였다.
장이라는 일반 무인이 옆에 있지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보호받고 있는 것일 터.
‘……머리인 당 언니부터 잡는다!’
그녀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오행진(五行陣)으로 전환해요!”
“봉명!”
팽강휘에게 잡혀 손발이 바쁜 도진과 이미 쓰러진 이들을 제외한 모든 지룡단원들이 제갈린을 중심으로 모였다.
“원진(圓陣)!”
그들은 즉각 원을 그렸다.
어느 곳에서 적이 들이치든 균일한 숫자로 대응할 수 있는 진이었다.
그 모습을 본 무혈단이 이곳저곳에서 원진을 두드렸다.
“곡진(曲陣)!
제갈린이 바로 반응했다.
공격받은 지룡단원들이 후퇴하며 원진이 일그러졌다.
적이 들어온 만큼 물러나며 좌우에서는 조여드는 형태.
“응?”
무혈단은 당황했다.
순식간에 삼면에서 에워싼 지룡단원들이 공격을 가하는 것 아닌가.
생각할 것도 없었다.
무혈단은 신법을 펼쳐 바로 후퇴해야 했다.
‘깨기가 쉽지 않겠구나!’
다들 감탄하는 그때.
제갈린이 명을 내렸다.
“삼조! 독봉을 잡아요!”
“봉명!”
지룡단원 넷이 오행진에서 튀어나와 당예지를 향해 달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놀란 무혈단이 재빨리 쫓으려 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
‘나도 미숙하구나.’
당예지는 짧게 자책하며 양손의 손가락 사이에 나한전을 끼웠다.
아무리 기재라 해도 경험 부족을 메울 수는 없는 법.
후회는 앞날을 위한 양분으로 삼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그녀가 양손을 떨치자 여덟 개의 나한전이 지룡단원들에게 날아갔다.
뻑!
“으윽!”
한 명이 나한전에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나머지 셋은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며 지척까지 들이치고 있었다.
당예지는 당황하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양손에는 목재로 만든 비수가 들려 있었다.
“하앗!”
그녀는 영활하게 보법을 밟으며 세 명의 무인 사이에서 움직였다.
양손에 들린 비수도 춤을 추었는데 그 기세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지룡단원들이 주춤거릴 정도였다.
그때, 장이가 이를 악물며 한 청년에게 뛰어들었다.
청년이 분노했다.
“내가 만만해 보이는가!”
일반 무인 주제에 어딜 감히!
쓴맛을 보여주마!
청년의 목검이 으스스한 파공음을 내며 장이의 가슴을 찔렀다.
장이의 눈이 빛났다.
‘간다!’
정광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해온 살명절초(殺命絶招)가 펼쳐졌다.
‘역류이상(逆流而上)!’
허리를 급격히 틀었다.
지룡단 청년의 목검이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장이는 틀었던 허리를 되돌리며 손에 쥔 곤(棍)을 내질렀다.
과거 석가장의 망나니 석용천을 해치웠을 때처럼 근력도 내공도 전부 쏟아붓는 일초가 아니었다.
딱 맞는 순간에 딱 맞는 힘만 실은 일격이었다.
콰직!
“아악!”
갈비뼈가 부러진 청년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다.
얼마 안 가 나머지 두 청년도 당예지에 의해 쓰러졌다.
“임시 부단주. 괜찮습니까?”
장이의 물음에 당예지가 미소 지었다.
“네, 장 소협 덕분이에요.”
순간 장이는 아찔함을 느꼈다.
당예지의 아름다운 미소 때문이 아니었다.
미력한 자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였다.
당예지는 장이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낸 뒤 전황을 살폈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무혈단이 지룡단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아무리 후기지수들이 상대라 해도 그간 연마한 합격술로만 이런 성과를 보일 줄이야.’
무혈진(無血陣)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무혈단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했다.
제갈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오행진을 운용하고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당예지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압승을 거둔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며 짧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첨(尖)!”
“하!”
원진 이곳저곳을 치던 무혈단원들이 하나로 뭉쳤다.
유정풍과 언의진을 선두로 한 그들은 쏜살같은 기세로 원진 한 곳을 뚫어냈다.
“안 돼!”
제갈린이 놀란 음성을 토했으나 이미 늦은 상태였다.
선두에서 날뛰던 언의진이 어느새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안녕?”
언의진이 살벌한 미소로 인사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어머. 무례해라.”
제갈린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목검을 휘둘렀다.
후웅! 휘이잉!
주먹과 목검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부수고 난자했다.
원래의 언의진을 알고 있던 제갈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어라? 좀 하네?”
“너는 여전히 그대로구나.”
“뭐가 어째?”
“목소리 높이지 마. 창피하지도 않니?”
그녀들의 주변에서 싸우던 이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주먹과 목검도 무서웠지만 날카로운 혀가 더 무서워서였다.
덕분에 그녀들은 진신절기(眞身絶技)를 전부 꺼내며 싸울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호각인 승부!
하지만 언의진에겐 비장의 수가 있었다.
“이얍!”
몸을 낮춰 연무장 바닥을 훑은 그녀의 손이 흙덩이를 던졌다.
제갈린은 코웃음 치며 피했다.
“아주 사파 다 됐구나?”
“아직이야.”
“뭐?”
“이얍!”
“꺄아악!”
언의진의 양손이 바닥의 흙을 쓸어담아 제갈린에게 쏘아냈다.
양팔의 소매를 휘둘러 겨우 막아내던 제갈린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더 안 던져?’
얼굴을 보호하던 양팔을 다급히 내렸다.
언의진이 안 보였다.
‘어디 간 거야?’
그 순간 그녀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아아악!”
어느새 그녀의 뒤로 돌아간 언의진이 머리채를 휘어잡고 당긴 것이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더러운 수에 제갈린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비열한 년!”
“사마련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니?”
언의진은 친절히 충고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은 제갈린의 왼쪽 눈두덩이에 꽂혔다.
빠악!
* * *
대연무장은 죽음 같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래도 무림맹주라 다른 걸까?
빠르게 정신을 차린 팽수관은 입을 떡 벌린 채 장내를 둘러봤다.
‘……이게 대체 무슨…….’
그의 자랑스러운 차남 팽강휘가 보였다.
녀석은 부러진 목도를 든 채 숨을 헐떡이며 이죽거리고 있었다.
“헉. 헉. 청룡답지 않게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일어나서 또 놀아봅시다.”
그가 알던 둘째가 맞나 싶은 모습이었다.
“……비, 비열한 새끼…… 끄르르륵…….”
청룡 도진은 바닥에 쓰러진 채 가늘게 경련했다.
사타구니를 향한 일격을 끝내 허용한 것이다.
“어머. 얘. 품위 없게 뭐 하는 거니?”
“…….”
“빨리 일어나. 부끄럽지도 않아?”
“…….”
언의진은 기절한 제갈린을 놀리느라 신이 나 있었다.
팽수관은 자신도 모르게 군사인 제갈문형의 눈치를 살폈다.
청수했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허허…… 이런 일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내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꼬…….’
팽수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눌렀다.
흘깃 보니 원로들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분노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
그때, 맑은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우와! 멋진 승부였네요!”
정광이었다.
그는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까지 치며 감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