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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마협-83화 (83/569)

83화

황금빛

철혈장주는 정광에게 보름만 기다리라고 했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 사람을 보내 부른 것이다.

정광은 내심 감탄했다.

‘보름 만에 그 많은 현철을 모으고 탄성을 주는 제련 방법도 알아냈다? 대단한 야장이었군.’

철혈장의 재력도 재력이지만 철혈장주의 능력이 더 대단했다.

정광이 인정했던 유일한 야장인 역천마장조차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알아낸 제련법 아니던가.

‘철혈장, 철혈장 하더니 다 이유가 있구나.’

정광은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사제, 자오. 좀 쉬고 있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

“……!”

혼이 빠져나간 것 같았던 그들의 얼굴에 꽃송이가 피었다.

아니, 화려한 꽃들로 이루어진 꽃밭이었다.

하지만.

정광의 이어지는 말에 그 꽃밭들은 말라 죽어버렸다.

“가만. 쉴 시간이 어딨어. 체조법으로 몸 풀고 계세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

“…….”

정광은 찾아온 사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으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

곧 천하제일검을 손에 넣게 되었으니까!

예전의 그 소박한 전각에 들어가자 철혈장주와 철진기가 있었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얼굴이 피곤하다 못해 초췌해 보인다는 것.

‘그 고생을 했을 텐데 당연한 일이지.’

무려 천하제일검이다!

마혼(魔魂)을 생각하면 천하제이검이 맞지만 그게 무슨 문제인가.

정광의 손에 들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하제일검인 것을.

날밤을 새워가며 그 탄생에 매진했을 철 씨 부자를 보자 자그마한 고마움이 생겼다.

“두 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제 검 어디 있어요?”

정광이 두리번거리자 철진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현철 구하랴 시험해 보랴 돈 많이 쓰셨을 텐데 깜빡했네요. 제가 사분지 일 정도는 댈게요.”

정광으로선 정말 통 큰 제안이었건만.

철진기는 대답 없이 그의 아비를 바라봤다.

철혈장주의 고개가 극도로 미미하게 움직였다.

역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철진기는 정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적연철(赤軟鐵)과 고석(鈷石) 말고. 그 세 번째 것 말일세. 무척 알아내기 어렵더군.”

“당연하죠. 장주님과 소장주님씩이나 되시니까 찾으신 거예요.”

칭찬받은 철진기의 입술이 경련하듯 달싹거렸다.

“……그래서 말인데…… 단초를 줄 수 있나?”

“네?”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좋네. 알려주기만 하면 바로 만들어낼 것을 약조하지.”

정광이 피식 웃었다.

딱딱한 장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재밌는 면이 있지 않은가.

“하하. 농도 하실 줄 아시네요.”

“…….”

“농 맞죠?”

“…….”

철진기의 고개는 떨어지다 못해 바닥을 향해 완전히 꺾였다.

시선을 돌려 철혈장주를 보니 고개를 외로 꼬고 외면하는 것 아닌가!

정광은 어이가 없었다.

“보름이면 된다고 하시지 않았었나요?”

“……실오라기만 한 실마리라도 주면 반드시 만들…….”

아비 대신 변명을 늘어놓던 철진기는 스스로 구차함을 느꼈는지 말끝을 흐렸다.

정광은 그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이 무슨 죄야. 진짜 죄인은 따로 있지.’

정광의 시선이 다시 철혈장주에게 향했다.

매섭게 노려보자 그의 허연 수염이 살짝 떨리는 것 아닌가.

그래도 끝끝내 한마디도 안 하는 모습이라니.

‘오늘 같은 날을 대비해서 평소에도 말을 안 하는가 보군.’

뭐가 어찌 됐든 간에 텄다.

이번 생에도 좋은 병기를 일찍 얻기는 그른 것이다.

‘이십 년쯤 후에 다시 찾아오면 받을 수 있을까?’

애초에 그러려 했었지만…….

호언장담했던 이가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니 영 믿음이 안 갔다.

‘실마리를 주자. 그래도 못 만들어내면 철혈장이라도 털어야지.’

정광은 역천마장과 있었던 모든 일들을 떠올렸다.

‘음. 탈탈 털어봐도 없군.’

즉시 역천마장을 지우고 마혼을 떠올렸다.

전생에 세상을 꿰뚫어 본다고 경원당했던 정광이었지만 마혼의 재질이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는 일.

그저 생김새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실오라기보단 크네.’

정광은 철진기에게 선심 쓰듯 말했다.

“단초를 드릴게요.”

철진기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철혈장주도 움찔했고.

“고, 고맙네! 말해주게나!”

“원래 현철로만 만들면 검이 까맣게 되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적연철, 고석, 그리고 마지막 그것을 넣어서 제련하면 검붉은 색이 돼요.”

철진기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철혈장주도 조금이나마 그랬다.

“어? 왜 그러세요?”

정광을 노려보던 철진기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책망했다.

“자네, 너무하군.”

“네?”

“적연철을 넣었으니 날이 검붉은 색이 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아무리 소량을 넣어도 그렇게 되는 게 적연철인데.”

정광은 황당했다.

‘적연철(赤軟鐵)의 적이 붉을 적이었지. 그거 조금 넣었다고 붉어진 거였어?’

정광의 표정을 살피던 철진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음이 조급해서 자네 말을 잘랐군. 미안하네. 이해해 주게나.”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게 있나.

오히려 덕분에 배웠는데.

정광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고맙네. 계속 말해주게나.”

계속 말할 거리는커녕 하나밖에 안 남았다.

정광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다른 걸 찾을 수 없었다.

‘이것도 적연철처럼 색깔 얘기인데.’

그래도 그것밖에 없는 걸 어쩌나.

정광은 전생의 기억을 묘사했다.

“그걸 넣어서 제련한 검에 진기를 불어넣으면 빛이 나요. 아주 찬란한 황금빛이요.”

“황금빛이라…….”

철진기는 바로 생각에 잠겼다.

철혈장주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철진기가 아비를 바라봤다.

“내공을 주입하면 황금빛이 솟아나는 금속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은 어떠십니까?”

“…….”

“음. 역시 금시초문이시군요.”

“……!”

“아니, 아버님! 왜 그러십니까? 뭔가 떠오르셨습니까?”

“…….”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

“허어. 하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철 씨 부자를 지켜보던 정광은 감탄했다.

‘진기의 파동이 없는 걸 보면 전음을 하는 것도 아닌데. 대단하구나.’

철혈장주가 아니라 철진기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말 없는 아비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눈빛을 보고 마음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한동안 그런 이상한 대화를 하던 철진기가 무겁게 말했다.

“……아버님. 그러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그는 정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굳은 의지로 넘실거리는 진짜 사내의 것으로.

“이보게, 진옥룡.”

“네?”

“나흘…… 아니, 사흘만 기다려 주게나. 시험 삼아 비수로 만들어보겠네.”

정광은 살짝 놀랐다.

“알아내셨어요?”

“확실친 않지만 해보려 하네. 괜찮겠는가?”

어렵지도, 손해를 볼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저렇게 불타오르고 있는데 거절하면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어떤 얼굴이 될지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패하면 더 창피한 얼굴을 볼 수 있겠네.’

물론 성공하는 게 백배는 더 좋은 일이었다.

“그럴게요.”

정광은 전각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솔직히 기대되지는 않았다.

단초라 할 만한 걸 주지도 않았기에.

‘진짜 만들어내면 역천마장보다 윗줄일지도.’

숙소에 도착하자 체조법으로 몸을 풀고 있는 백승무와 자오가 보였다.

정광은 대견함을 느꼈다.

‘열심히 하는구나. 좋아, 좀 도와줄까.’

두 사람의 곡소리와 함께 사흘이 더 지났다.

철 씨 부자가 약속한 날이었다.

* * *

정광은 손에 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칙칙한 묵빛에 붉은 기가 감도는 묵직한 비수였다.

급히 만드느라 날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가죽을 둘둘 감아 손잡이로 삼은 녀석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빛깔만큼은 기억 속의 마혼과 흡사했기에.

‘그럴듯한데.’

그래도 겉만 같으면 곤란한 일.

손가락으로 날 끝부분을 강하게 튕기자…….

쩡-

맑은 소리와 함께 짧은 날이 좌우로 세차게 휘었다.

잠시 후, 그 떨림이 멈추자 정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철진기가 물었다.

“어떤가?”

“괜찮네요.”

“그럴 거라 생각했네. 이제 제대로 시험해 보게나.”

“네.”

사실 이 정도 탄성이면 시험해 볼 필요도 없었다.

탄성이 중요하지 황금빛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장검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만일을 위해 해보는 것이 맞았다.

정광은 삼청합일신공을 펼쳐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것을 배불리 먹은 비수가 부르르 떨더니 환한 빛을 내뿜었다.

매혹적일 정도로 환한 황금빛을.

“하하. 맞아요. 이겁니다.”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던 철진기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대체 내공이 얼마나 두터운 건가?”

“네? 왜요?”

“시험 삼아 먼저 해봐서 그러네. 그런 빛은커녕 황금색만 감돌더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어쨌든 고맙네. 자네 덕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어.”

정광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눈을 지그시 감고 깨달음을 곱씹고 있던 철진기는 알 수가 없었다.

“검을 제련하는 데 금(金)을 넣다니. 그것도 현철검에…… 허허허.”

“……!”

정광은 정말 놀랐다.

‘그 세 번째 것이 금이었다고?’

눈을 뜬 철진기가 정광과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르게 따뜻했다.

“돈 많은 유생이 원해서 검면에 도금을 해 본 적은 있네만. 제련할 때 넣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네. 현철, 적연철, 고석과 섞이면 금이 그런 성질을 낸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탄성에다가 빛까지 나게 되다니.”

그러게 말이다.

철진기는 정중히 두 손을 모았다.

“먼저 사과부터 해야겠군. 미안하네.”

“네?”

“하하. 모르는 척하기는. 자네가 적연철을 말했을 때 바로 깨달았어야 했는데 말일세.”

철진기는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말을 이었다.

“묵색인 현철검에 붉은기가 나는 건 적연철 때문이 아닌가. 내공을 불어넣으면 황금빛이 난다 했었지? 금을 넣으라는 의미였던 것이지.”

정광은 오랜만에 경악했다.

‘그걸 그렇게 해석해서 금을 넣었다고?’

게다가 제대로 된 건 또 뭔가.

정광은 황당해했지만 철 씨 부자가 금을 쓴 데엔 타당한 이유도 있었다.

“금은 무척 무르고 부드럽기에 얇게 펼 수 있는 금속일세. 하지만 병기에는 그리 적합한 것이 아니지.”

병기의 최대 덕목은 단단함이다. 금은 그런 성질이 없었고 그 자체가 돈이었기에 병기에 쓸 생각은 해보지도 않아 왔던 것이다.

“하지만 마찰에 강한 데다 부식도 안 되지 않는가. 금만의 장점이 있는 것이지. 아버님께선 이런 특성이 다른 금속들과 만나면 새로운 특징을 발하게 될지도 모를 거라 예상하셨네.”

“……그래서 만들어보셨군요.”

“그렇네. 적당한 비율을 몰라 꽤 많은 현철을 낭비해야 했지. 그래도 결국엔 제대로 나와 다행일세.”

계속 미소 짓고 있던 철진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혹시 몰라 강철에도 넣어봤네만 안 넣느니만 못하더군. 정말 제련의 세계는 넓고도 깊어. 나는 정말 아직도 멀었어…….”

“……힘내세요.”

“하하. 고맙군.”

빙그레 웃어 보인 철진기가 안색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시간이 갈수록 강한 힘이 실렸다.

“자네 덕분에 새로운 관점으로 금속을 바라보게 되었어. 이제 새로운 시도들을 해볼 것이야! 쌍각사룡의 비늘을 능가하는 합금을 만들고야 말 것이네!”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포부였지만, 정광은 한 귀로 흘리며 물었다.

“장검은 언제 찾으러 오면 돼요?”

“…….”

“오래 걸리나요?”

철진기가 힘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주 제대로 만들 생각일세. 그러니 보름 후에 오게나. 아버님께서 벌써 시작하셨으니 그쯤이면 충분할 게야.”

“벌써 시작하셨어요? 이제 시험해 봤는데.”

“자네가 분명히 만족할 거라 말씀하셨네. 결국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철진기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장검도 그럴 걸세.”

“기대할게요. 그럼 이만.”

정광은 몇 걸음 못 가 멈춰야 했다.

“잠깐. 비수는 왜 가져가는가?”

“어? 이게 언제 품속에 들어왔지?”

철진기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주게나. 날을 세우고 다른 부분도 손봐야 할 것 아닌가.”

“공짜로요?”

“…….”

정광은 어이없어하는 철진기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 * *

백승무는 무척 피곤하다 못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정광이 시키는 수련이 그만큼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흐흐흐.”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그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크게 웃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토록 기다리던 검을 드디어 받게 된 것이다.

‘검날은 진작에 만들었었는데…….’

철진기가 능력 있는 야장들과 함께 정광의 검에 매달려서 완성이 미뤄졌었다.

헌데 오늘 정광의 것과 함께 완성되었으니 받으러 오라고 하는 것 아닌가.

“사형, 어서 가시죠.”

“그래.”

잠시 뒤.

백승무와 정광은 작은 전각에서 철혈장주와 철진기를 만났다.

백승무는 눈을 크게 떴다.

‘사람 꼴이 아니구나…….’

그만큼 철 씨 부자의 몰골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보름 내내 정광 밑에서 구른 백승무보다 더할 정도로.

서로 인사가 오고 간 뒤 철진기가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검자루나 검집이나 차분한 검은색 일색에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검이었다.

“백 소협, 자네 것이네.”

“……!”

백승무는 떨리는 손으로 검을 받았다.

원래 쓰던 검과 형태와 무게가 거의 비슷했다.

“뽑아보게나.”

“……네!”

스르르르릉-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로 서늘한 소리와 함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백승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은은한 검은빛을 띤 검신이 장중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 날에서는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예기(銳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멋지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꽤 잘 나왔지.”

“……그 정도가 아닙니다.”

현철을 두 냥(兩)이나 넣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없앤 명검이었다.

백승무에게 맞춰 만든 세상에서 하나뿐인 검인 것이다.

‘그만큼 제련하기도 어려웠지.’

철진기는 물론 철혈장의 명장 여럿이 달라붙어야 했다.

그렇게 특별한 검이었다.

풀무질하랴 잔심부름하랴 바빴던 백승무의 땀방울도 들어가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정말 좋습니다.”

“겉보기만 좋아선 안 되지. 시험해 보게나.”

“네!”

백승무는 검초를 펼쳤다.

손에 들린 검이 그의 뜻을 따라 움직였다.

마치 평생 너의 친우가 될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하하하!”

철진기는 검을 거두고 크게 웃는 백승무를 지켜보다가 물었다.

“기분이 어떤가?”

“……글쎄요. 가슴이 벅차서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철진기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아끼되, 너무 집착하진 말게나. 그 검을 만드는 데 자네도 한몫했으니 깨달은 바가 있을 거라 믿네.”

백승무는 검을 내려놓은 뒤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그리고 철혈장주와 철진기에게 공손히 예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곤륜 제자 백승무. 두 분과 철혈장의 후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뭘 바라고 준 건 아니네만 좋군. 금권검협의 말이니 기대하겠네.”

“……네? 그, 금권검협이라니요?”

“얼마 전부터 자네 얘기가 들려오더군. 하남성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며 상당한 협행을 했다던데.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어.”

백승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광이 장난처럼 떠들어댄 그 별호가 정말로 퍼질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형!”

원망스러운 마음에 정광을 노려보던 백승무는 깜짝 놀랐다.

‘……웃고 있어?’

평소처럼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미소가 아니었다.

양쪽이 균형 있게 올라간 제대로 된 미소였다.

‘진짜 기분이 좋으시구나!’

정광과 꽤 오랫동안 부대끼면서도 몇 번 보지 못한 웃음이었다.

‘왜? 아!’

정광의 시선은 철혈장주에게 꽂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들고 있는 긴 목함(木函)에.

백승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안에 사형의 검이 들어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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