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마협-68화 (68/569)

68화

무공이 최고

구룡사봉은 현 정파무림에서 가장 주목받는 후기지수들이었다.

그중 세 명과 사천당가의 소가주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수련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두 눈을 끔뻑거리기만 했다.

당오군과 당예지가 독과 암기에 대해 강론했는데 그 뜻이 난해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정광이 끼어들었다.

“얘기했던 대로 간략하게 하시죠.”

“아우.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최대한 쉽게 풀어서 말하고 있었습니다만.”

천재라고 잘 가르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못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쉽게 익혔기에 다른 이들도 그럴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광은 천재 중의 천재였기에 어떻게 해야 효율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조심해야 하는 점과 당했을 때 응급처치법만 알려주세요.”

“그것만 해도 한참 걸릴 텐데.”

“며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정광이 씩 웃었다.

“직접 체험시키면 빠를걸요. 제일 쉬운 것들로만요.”

“아!”

잠시 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억! 혀에 감각이 없어!”

“우욱. 소, 속이…… 쿨럭!”

대단한 독은 아니고 잠시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속을 뒤집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일반 무인들에겐 그것만 해도 충분히 넘쳤고, 이름 있는 문파의 이들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음. 딱 좋네.”

정광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열심히 독을 뿌리고 암기를 날리는 당오군과, 그에게 당한 이들을 치료하는 당예지가 대견스러웠다.

독보다 더 비싼 해약을 아끼기 위해 해독은 안 했지만, 그리 강한 독이 아니니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정광은 즉시 전음을 날렸다.

-당 소협! 당 소저! 바로 지금이에요!

당 씨 남매는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독과 암기에 관해 설명했다. 간단한 주의 사항과 응급처치법이었는데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암기했다.

왜?

못 외우면 또 당해야 하니까.

짧지만 괴로웠던 수련이 끝나고 권봉 언의진과 의룡 유정풍이 나섰다.

정광은 그들을 소개한 뒤,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병기를 들고 싸우다가 부러졌다고 가정하죠. 목에 적의 칼날이 날아오고 있어. 어떡하실 거예요?”

무인들이 병기를 쓰는 이유는 적수공권(赤手空拳)보다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병기술에 매진했고, 권장지각(拳掌指脚)은 어릴 때나 익힐 뿐 약한 이들이 많았다.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죽으면 창피하겠죠?”

그걸 말이라고.

그런데 웃긴 건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거였다.

“그래서 체술(體術)이 중요합니다. 무인이라면 권장법은 기본으로 익혀야죠.”

다들 알면서도 여러 가지 사정상 외면하던 사실이었다.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다시 제대로 익혀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 여러분이 전장에 서 있어요. 근데 쓰던 병기가 망가졌어. 어떡할까요?”

모두 권장법을 떠올리는데 정광은 다른 대답을 내놨다.

“전장이면 주위에 떨어져 있는 병기가 있겠죠? 그걸 주워서 싸워야죠.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병기다? 그래서 곤술(棍術)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곤(棍)은 사람이 태초부터 써온 병기로 모든 병기가 이것에서 파생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권장법처럼 대부분의 문파가 입문과 동시에 가르쳤는데, 잠깐 스쳐 지나갈 뿐 꾸준히 익히는 곳은 없다시피 했다.

“사마련도 그렇고 천…… 마교도 그렇고, 비무를 할 건 아니잖아요. 전쟁이 될 거예요. 곤은 만병지모(萬兵之母)입니다. 무조건 익히세요.”

이런 이유로 언의진이 체술을, 유정풍이 곤술을 가르치게 되었다.

주먹질로 유명한 진주언가와 몽둥이질로 명성을 떨치는 개방이었기에 무척 훌륭한 인선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가르칠 것들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닌, 정광의 것이었다.

그것들을 전수했을 때 언의진과 유정풍은 깜짝 놀라 물었었다.

‘……이건 평범한 체술이 아니군요. 왜 이런 걸 알려주는 거죠?’

‘아우. 곤술 또한 마찬가지일세.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깊은 현기가 담겨 있어. 어디서 난 무공인가? 설마……?’

정광이 웃음으로 긍정하자 두 사람은 경악했다.

‘일단 빨리 익히세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가르치죠.’

‘……뭘 원하는 거죠?’

‘……솔직히 말해주게나.’

정광은 간단하게 대답했었다.

‘제대로 익힌 뒤 물어보시면 대답해드릴게요.’

그것들은 조금만 익혀도 쏠쏠한 성취를 얻을 수 있으나 제대로 깨우치긴 힘든 무공이었다.

구룡사봉 같은 자질을 가진 이라면 해낼 수도 있지만…….

뭔가 잡힐 듯 말 듯한 갈증에 그 뒤에 있는 것을 원하게 되어 있었다.

결국, 언의진과 유정풍은 언젠가 정광에게 목을 매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자연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 쓸까?’

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문제.

정광은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편히 앉아서 구경했다는 말이다.

‘이건 또 생각보다 못 따라오네.’

언의진과 유정풍은 열과 성을 다해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도 익히는 중이니 가르치면서 더 깨우치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광의 생각보다 조금 더 현묘하게 만들어진 두 무공은 일반 무인들에겐 무척 어려운 것이었다.

‘할 수 없지. 그걸 쓸 수밖에.’

나중에 진짜 고비가 오면 쓰려 했건만.

차라리 지금 쓰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 크게 상관없긴 했다.

정광은 내공을 모아 사자후를 토해냈다.

“본 교두와 교관들은 여러분한테 실망했습니다! 겨우 이것밖에 안 됩니까!”

“……!”

사내들은 교두인 정광은 제쳐놓고 교관들을 바라봤다.

별호에 봉(鳳)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당예지와 언의진을.

‘이런! 저 눈빛은!’

‘크윽. 우리가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까.’

그녀들은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사내들이 보기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집중! 집중하자!’

‘머리로 이해 못 하면 몸에 새기면 돼!’

사내들만 투지를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여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머! 당 공자의 얼굴이 딱딱해졌잖아!’

딱 봐도 귀공자인 당오군은 원래 아비인 당영중을 닮아 항상 나무토막 같은 표정이었다.

‘아아. 유 소협이 거친 표정을 짓고 있어. 우리에게 화가 나신 거야!’

비록 거지지만 의협심 넘치고 사내다운 외모를 지닌 유정풍.

다르게 표현하면 험악하게 생긴 얼굴이었으니 거칠어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하제일미남 정광이 있었으니.

그가 사자후까지 토하며 독려하자 여인들의 눈에 독기가 떠올랐다.

정광을 더는 실망하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에 이뤄진 일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한 건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지만…….

“하아아아압!”

“가자아아아!”

어쨌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모두 하나가 되어 열과 성을 다해 수련에 임한 것이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웠는지, 바보라 하더라도 이렇게 수련하면 얼마 안 가 십존이 될 기세였다.

그리고 수련 시간이 끝나자 그들은 바닥에 허물어졌다.

정광은 손뼉을 치며 그들의 열정을 칭찬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내일 또 봬요!”

사람들은 ‘내일 또’라는 말에 몸을 떨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정광과 교관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중 한 청년이 당 씨 남매에게 물었다.

“독과 암기를 경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그래도 괜찮으신지요?”

독이든 암기든 은밀함과 의외성이 생명인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이렇게 드러내고 이것저것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당가에 누가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있는 당오군 대신 당예지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가의 독과 암기는 보다 높은 곳에 있습니다.”

“……!”

언의진, 유정풍은 물론 팽가 무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구파일방과 칠대세가의 무공은 넓고도 깊었다.

정광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모두 수고하셨소. 별것 아니나 이걸 드시고 기운을 차리시오.”

팽수원과 팽가 무인들은 사람들에게 대접을 내밀었다.

어혈을 풀고 기력을 북돋는 탕약이었다.

‘허어. 이런 것까지 챙겨주다니.’

‘팽가의 정성이 대단하구나.’

영약은 아니었다. 돈 좀 쓰면 살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세심함에 사람들은 고마움을 느꼈다.

분위기가 잡히자 팽가의 가주 팽수관이 나타나 짧은 연설을 했다.

“모든 이가 고수가 될 수는 없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나아질 순 있을 것이오! 이 수련회는 여러분이 나아갈 땅을 다져서 걸음을 옮기기 쉽게 하려는 것! 강호를 위해, 천하를 위해 모두가 힘을 내줬으면 좋겠소이다!”

“와아아아아!”

수련회 첫날은 참여자들의 우렁찬 환호성과 함께 끝났다.

정광이 직접 가르친 건 전혀 없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며.

* * *

수련회가 끝나고 다음 날 다시 열릴 때까지.

무림맹 이것 저곳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먼저 곤륜파와 엮여 팽가를 밀기로 한 당가, 개방, 악가의 무인들도 수련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 배를 탄 상황 아닌가.

게다가 기초를 다시 다질 좋은 기회였다.

사실, 처음에는 청년들만 참여시킬 생각이었건만.

“기초는 아무리 쌓아도 부족하다. 당장은 태가 안 나겠지만 네 평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야.”

“그런데 왜 사부님께서는 안 하십니까?”

“…….”

“이왕 이렇게 된 것, 같이하시지요.”

이런 연유로 연배가 높은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은 육방칠단삼장에도 불었다.

일부 참여했던 이들이 수련회를 극찬한 것이다.

남궁세가를 대놓고 지지하는 곳들은 그럴 수 없었지만, 내심 팽가를 지지하거나 관망하던 이들은 하나둘 수련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수련회의 규모는 커졌다.

주최자인 팽가를 비롯해 한배를 탄 문파들에 대한 칭송도 높아져만 갔다.

또한 정광과 교관들은 전보다 더 친숙한 관계가 되었다.

내심 언의진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백승무도 슬며시 발을 들이밀었다.

‘자고로 여인에게 칭찬보다 좋은 고백은 없는 법.’

그는 평생의 용기를 쥐어짜서 입을 열었다.

“언 소저는 얼굴도 아름다우시고 주먹에 굳은살도 예쁘게 박히셨군요. 무공을 위해 손을 희생한 훌륭한 무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

언의진은 정광에게 말도 안 되는 칭찬을 가르쳐 준 바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흐아암. 이제 시작할까요?”

정광이 기지개를 켜며 하는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회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정광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놀라게 되었다.

정광이 중원에 들어온 지 꽤 되었기에 그에 대한 소문이 무림맹 안으로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진옥룡이 황하수로연맹 소속인 악릉채를 불태웠다더군!”

“뿐인가. 청해사흉이라는 마두들의 목을 날렸다네!”

“땅을 개간하고 산사태로 막힌 길을 뚫어 민초들을 도운 일은 또 어떻고!”

“허어. 공동파의 장로를 꺾었다고? 그건 좀 믿기 힘들구먼.”

사실 회의적으로 말한 이조차 내심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공동파 도사들이 굳은 얼굴로 외면하며 지나갔으니 사실인 게 틀림없었다.

정광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커져만 갔다.

그럴수록 남궁화인의 분노 역시 커지고 있었다.

* * *

콰앙!

남궁화인은 탁자를 산산조각 낸 뒤 고함을 질렀다.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다들 무엇을 한 것인가!”

“…….”

“멀뚱거리지 말고 방법을 내놓게! 어서!”

남궁신건과 남궁력을 비롯한 모든 이들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인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무공보다 중요할 수는 없는 법.

대체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린단 말인가.

수염을 떨며 분노하던 남궁화인이 갑자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을 뿐, 그에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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