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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마협-33화 (33/569)

33화

오란다고 오겠냐

아군의 전력이 부족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적군의 전력을 깎거나 아군의 전력을 늘리거나.

정광이 떠올린 방법은 후자였다.

사람들을 감숙성에 보내서 몽고군과 싸우게 한다!

세상 쓸모없는 놈들을 재활용해서!

강하면 강할수록 더 좋고!

-어때요?

-좋아! 아주 좋아! 그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구나! 감숙성주에게 전령을 보내서 미리 말을 해놓으마!

성주는 즉시 승낙한 뒤, 운 자 배 도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런 연유로 정광에게 일을 부탁하려 하오. 도장들께서도 도와주셨으면 좋겠소이다.”

“악한 이들을 좋은 일에 쓴다…… 세상을 위하는 것이니 그리하지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광은 백가상단 창고에 갇혀 있는 이들을 찾았다.

“가죠. 일자리 마련해 줄게요.”

지재원과 수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가, 갑자기 어디를……?”

“청해성에 계속 있을 거예요? 좀 그럴 텐데.”

맞는 말이긴 했다.

정광에 의해 강제로 도적 은퇴, 역시 정광에 의해 표사 자리까지 잃은 그들이 청해성에서 얼굴을 들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니, 부러진 어깨가 나을 때까지는 누군가로부터 보호라도 받아야 할 판이었다.

‘곤륜파를 따라 다른 곳으로 가서 새 출발을 한다? 무척 솔깃하긴 한데…….’

제안한 이가 정광이라는 게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진옥룡께 그런 수고를 끼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하는 게 순리에 맞겠지요.”

“그래요? 난 괜찮으니까 됐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

“다리도 만져 드릴까요?”

“가야죠! 차마 염치가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지, 안 그래도 꼭 부탁드리고 싶던 참입니다!”

금방 설득을 끝낸 정광은 성주의 배웅을 받으며 출발했다.

“이쪽입니다.”

성주가 붙여준 관리가 그들을 안내했다. 한동안 걷던 그들은 시장에 인접한 한 장원 앞에 이르렀다.

“여긴 이름이 뭐예요?”

정광의 물음에 관리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독사파(毒蛇派)입니다.”

“직관적이어서 좋네요.”

“아주 흉악한 놈들이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네.”

잠시 뒤, 독사파는 무너졌다.

“여긴 또 어디에요?”

“철우파(鐵牛派)입니다.”

“오. 좀 단단하려나?”

그들은 말랑말랑했다.

“여기는?”

“암혼회(暗魂會)입니다.”

“이곳은?”

“의혈단(義血團)입니다.”

정광 일행은 관리의 안내를 받으며 서녕 흑도 사대문파를 쓸어버렸다.

그 모습을 어두운 얼굴로 지켜보던 백승무가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사형. 의로운 행동이지만 이곳의 민초들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왜?”

“곧 다른 이들이 들어와 패악질을 저지를 겁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겠지요.”

정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파는 이게 문제였다.

“사제. 잡초 캐봤어?”

“……안 해 봤습니다.”

“나도 그래. 어쨌든, 잡초는 그냥 두면 미친 듯이 자라. 자, 그럼 어떡해야 하지?”

“……주기적으로 뽑아줘야겠지요. 하지만 계속 자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아니지. 일을 왜 그렇게 해. 잡초들이 스스로 자라지 못하게 해야지.”

“네? 대체 무슨 의미인지…….”

“아. 답답하네. 기다려 봐.”

정광은 흑도 사대문파의 수장들을 데리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일다경(一茶頃) 후.

정광이 그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오줌까지 지린 상태였다.

“자. 이제 어떡하신다고요?”

“…….”

“어라? 말하기 싫어요?”

사대문파 수장들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그들이 미친 듯이 손짓 발짓을 하자 정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혈(啞穴)을 안 풀었지.”

혈도가 풀리자마자 그들은 미친 듯이 외쳤다.

“지금까지 뜯어내던 것의 오분지 일만 받겠습니다!”

“다른 나쁜 놈들이 서녕을 노리면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사채놀이, 인신매매, 앵속 거래를 하는 놈이 있으면 목숨을 걸고 처단하겠습니다!”

“지금껏 갈취한 재물들은 모두 원주인에게 돌려주겠습니다!”

-우리 몫은요?

“……네?”

-전음으로 대답해요. 우리 노잣돈이 좀 빡빡한데 시주 좀 하시죠.

-네! 네! 바로 드리겠습니다!

정광이 네 명을 노려봤다.

“지금 아저씨들이 말한 것들.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우렁차게 외쳤다.

“물론입니다!”

“몰라도 돼요. 다시 알려 드리면 되니까.”

“아닙니다!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습니다!”

정광이 백승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고 하네. 이제 됐지?”

“……대체 어떻게……?”

“진심은 통하는 법이야. 가자.”

정광은 사대문파 수장들에게 각각 열 명씩의 수하를 남겨줬다.

“사형. 이건 또 왜 그러신 겁니까?”

“최소한의 인원은 있어야 다른 놈들이 못 기어들어 오잖아.”

“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명줄은 유지하게 해줌으로써 다른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탑극랍마간의 혈사풍에게 그랬듯이 정광이 전생에 썼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건 명문정파가 할 만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백승무는 곤륜 도사들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친 그들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허청의 말에 백승무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이래도 되는가 싶어 혼란스럽습니다.”

“이래도 되냐니?”

“……저들을 핍박해서 다짐을 받은 것 아닙니까?”

“무어라? 하하하.”

백승무는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그에게 허청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정광 저 녀석의 방식이 조금 거칠지? 그래도 지금껏 무고한 이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다. 게다가 이 일은 성주께서 정광에게 부탁한 일 아니더냐? 우리도 되도록 녀석의 뜻에 따라야지.”

“아무리 악한 자들이라 하나 이런 방식은……”

“본문은 예로부터 마교와 맞서 싸워왔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게 있지.”

“……?”

“악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상대하려면 어찌해야겠느냐? 물론 불의한 방법으로 맞서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필요하단 말이야.”

“그랬다가 명문정파인 본문의 이름에 누를 끼치면 어찌합니까?”

“본문이 명성을 떨치기 위해서 마교와 싸워왔던 것 같더냐?”

“……!”

허청에게서 산악과 같이 장중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백승무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어지는 허청의 말이 그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힘 있는 자가 헛된 명성에 신경 쓰면 힘없는 이들이 불행해질 뿐이다.”

* * *

정광 일행은 감숙성으로 넘어갈 때쯤엔 근 오백여 명에 이르렀다. 흑도 문파는 물론 산적과 수적까지 남김없이 쓸어 담은 결과였다.

그만큼 곤륜파의 노잣돈은 풍족해졌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머릿수는 좀 되는데 너무 약해.’

정광의 눈으론 그랬다.

포승줄로 줄줄이 묶인 채 끌려가던 그들이 들었다면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들이 약한 게 아니라 정광이 너무 강한 것 아닌가!

‘몽고 기마대와 붙으면 화살받이 노릇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은데. 더 털어야 하나?’

정광은 백승무를 불렀다.

또 무슨 일을 벌이려나 싶어 잔뜩 긴장했던 그는 정광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어디 나쁜 놈들 없어? 되도록 강한 놈들로.”

“……있긴 있습니다만.”

“멀어?”

“조금 돌아가야 합니다.”

“흐음. 시간 까먹는 만큼 감숙성주한테 더 받아내야겠다. 어떤 애들인데?”

“기련채(祁連埰)입니다.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이름만 봐도 산적이네. 뭐 아쉬운 대로 걔들이라도 챙겨야겠다.”

“……사형. 보통 산적이 아닙니다. 녹림칠십이채(綠林七十二埰) 중 하나예요. 채주(埰主)는 악명 높은 고수지요.”

“잘됐다. 가자.”

“……녹림칠십이채와 척을 지시려는 겁니까?”

백승무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정광이 활짝 웃었다.

“혹시 근처에 더 있어? 몇 개나?”

“……없습니다. 가시지요.”

* * *

황웅은 밤송이같이 빳빳한 수염을 긁으며 혀를 찼다.

“쯧쯧. 이래서야 어디 먹고 살겠어? 어이, 군사(軍師). 대답해 봐. 그걸 누구 입에 붙이냐고. 앙?”

“죄송합니다, 채주.”

“며칠째 봇짐장수밖에 못 털었잖아. 죄송하면 다야? 그냥 그렇게 배 째면 돼?”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어쭈. 군사란 놈이 해결책은 안 내놓고 드러눕네? 너, 내가 째줄 테니까 배 내밀어봐. 어서!”

“어이쿠! 제발 살려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서도한은 잽싸게 엎드려 머리를 땅에 박았다.

쿵! 쿵! 쿵! 쿵! 그의 이마에서 피가 솟고 나서야 황웅이 손을 내저었다.

“됐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런 걸 군사라고 모시고 사는지 원.”

서도한은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속에서는 열불이 나고 있었다.

‘멍청한 채주 새끼! 수입이 떨어진 게 내 탓이냐? 백가상단 그놈들 때문이잖아!’

서역을 오가는 상단들이 청해성을 통하는 길로 상행을 바꾸고 있었다. 그걸 그보고 어쩌란 말인가?

“굶어 죽느니 칼춤이라도 춰야지. 애들 모아! 백가상단을 친다!”

황웅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엎어져 있던 서도한이 벌떡 일어섰다.

“안 됩니다! 다 죽어요!”

“내가 그깟 놈들한테 질 것 같냐!”

“걔들 뒤에는 곤륜파가 있잖습니까!”

“솔잎이나 씹으며 허허거리는 말코 도사들? 그깟 놈들과 나를 비교하지 마라!”

서도한은 열불이 치미는 와중에도 탄복했다.

‘이 미친 새끼! 네가 이 정도로 미친놈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구나!’

황웅이 대단한 고수이기는 했다.

녹림칠십이채의 말석인 기련채에 박혀 있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그래도 그렇지, 구파일방 중 하나인 곤륜과 비빈다는 게 말이나 돼?’

서도한만 이런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채주. 진정하십시오. 곤륜은 가벼이 여길 상대가 아닙니다.”

“쌍칼. 네가 그놈들한테 박살 났으니까 나도 그럴 거다, 이런 뜻이냐? 네가 죽고 싶은가 보구나.”

쌍도비호(雙刀飛虎)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청해성 당고랍산맥을 주름잡았던 그가 언제 이런 폭언을 들어봤겠는가?

잠시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곤 하나 이런 취급을 받을 무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쭈. 눈 안 깔아?”

“죄송합니다!”

황웅이 너무 강했기에 재깍 눈을 깔고 양손을 모았다.

“도대체 믿을 만한 놈이 없다니까! 그냥 다 여기 퍼질러 있어! 청해성에 가서 칼춤 좀 추고 오마!”

황웅이 거대한 구환도(九環刀)를 비껴들고 나가려 하자 서도한이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채주! 제발 진정하십시오!”

“이 새끼가 진짜! 곤륜 따위는 나 혼자 쓸어버릴 수 있어! 못 믿겠냐?”

“믿습니다! 믿고말고요! 그런데 채주께서 직접 가시는 건 격이 안 맞지 않습니까? 놈들보고 오라 하시죠!”

“……호오. 그게 맞겠는데? 좋아. 그렇게 해.”

되는대로 던진 말에 황웅이 솔깃해하자 서도한은 속으로 탄식했다.

‘오란다고 오겠냐 이 미친놈아. 챙길 거 챙겨서 빨리 떠야겠다. 그동안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벌써 몇 번이나 했던 다짐이었지만 그가 아직도 떠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황웅은 오만했고 다혈질이었으나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머리의 피가 식으면 나름대로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자였다.

“음. 생각해 보니 도사 놈들이 여럿이면 귀찮을 것 같군.”

“바로 그겁니다!”

“거참. 생각만 해도 짜증 나네. 일대일이면 어떤 놈이든 상관없는데 말이야.”

“딱 봐도 아닌데.”

“뭐? 이놈이 진짜! 내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 어?”

황웅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그의 앞에 눈부시게 잘생긴 청년 도사가 서 있었다.

“……누구냐, 넌?”

청년 도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쌍도비호를 바라봤다.

“어라? 여기 있었네. 잘됐다. 수하들도 같이 왔어요?”

“지, 지…….”

“네?”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던 쌍도비호가 비명을 질렀다.

“지, 진옥룡!”

서도한의 안색이 시커멓게 죽었다.

반대로 황웅의 얼굴에는 미소가 맺혔다.

“네가 곤륜의 그 애송이냐?”

“곤륜은 맞는데요.”

“흐흐흐.”

황웅은 구환도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의 거대한 몸이 눈부신 속도로 움직였다.

“죽어라!”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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