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반선단(半仙丹)
정광은 장문인과 함께 운후의 처소로 갔다. 잠든 운후의 상세를 지켜보던 운연이 정광을 보며 짐짓 노기 띤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무리를 해놓고 또 서고에 박히다니. 몸을 중히 여기거라.”
“네.”
“허어. 또 건성으로 대답하는구나. 이래서야 원.”
나무라는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부드럽기 그지없었기에 장문인도 미소를 지었다.
“사제, 대사형은 어떠신가?”
“여전히 하루에 한 시진만 깨어 계십니다. 대사형께서 말씀하시길 정광이 깨진 단전을 임시로 붙이고 기를 심었다더군요. 그렇게 세밀하게 진기를 운용하는 게 가능하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운연의 시선이 정광에게 향했다.
누가 봐도 질문 세례를 퍼부으려는 모습이었다.
정광은 재빨리 선수를 쳤다.
“의서들을 읽으면서 방법을 하나 찾았는데요.”
“방법? 설마…….”
“네. 사조님을 살릴 방법이요.”
“허어. 허허허.”
운연은 헛웃음을 치며 정광을 바라봤다.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장난치지 말라고 꾸짖었겠지만 정광에겐 그럴 수 없어서였다.
“……그래. 어떡하면 되느냐?”
“영약이 필요해요.”
“……영약?”
“네.”
너무 뻔한 대답이었을까.
운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림의 대환단(大還丹), 무당의 태청단(太淸丹), 화산의 자소단(紫小丹)을 말함이렷다? 하지만 그들이 사문의 보물을 내줄 리가 없지 않느냐?”
“아뇨. 그것들 말고 다른 거요.”
운연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한동안 생각하던 그가 놀라서 물었다.
“설마 마교의 것을 말하는 것이냐? 생사마의(生死魔醫)의 생사를 뒤집는 영약, 생사마환(生死魔丸)?”
정광은 어이가 없었다.
그게 생과 사를 뒤집어버리는 영약이라고?
뒤집어버리긴 하지.
죽은 자를 강시로 되살리니까.
하지만 누가 강시로 살고 싶어 하겠는가?
이어지는 장문인의 말은 더 황당한 것이었다.
“일생십사(一生十死)의 십분지일(十分之一)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마교 교주들조차 십대가 바뀌어야 하나를 얻을 수 있는 보물이라 들었는데.”
정광은 정파인들이 천마신교에 대해 터무니없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십분지일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열 명이 먹으면 하나가 간신히 살 만큼 형편없는 확률을 자랑하는 마약이었다.
역대 교주들 중 몇몇 욕심 많은 늙은이들이 먹었었는데 살아남은 건 단 두 명이었다.
그래도 두 명이나 살았으니 그게 어디냐 싶겠지만 그냥 살아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는 광인이 되어 행패를 부리다가 밑에 놈들에게 몰매 맞아 죽었다. 다른 하나 역시 미쳐서 난리를 치다가 밑에 놈들한테 쫓겨나 버렸다.
그 뒤 어떻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곱게 죽지는 못했을 터.
생사마의, 일생십사같이 대를 이어 돌팔이인 것들이 제대로 된 영약을 만들 리가 있나.
한마디로 둘 다 쓰레기였다.
생에 대한 집착이 굉장했던 정광의 아비조차 안 먹었을 정도니 말 다 한 것 아니겠는가.
정광이 고개를 젓자 운연과 장문인의 얼굴이 안도감과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그들이 줄 리가 없는데 아니라니 다행이구나.”
“그럼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뭐긴.
“직접 만들어야 하는데요.”
“……?”
정광은 입을 떡 벌린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잠들어 있는 운후를 바라봤다.
자는 와중에도 자애로운 표정이라니.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이 떠올랐다.
“일단 반선단(半仙丹)이라 하죠.”
* * *
운후와 그를 간병하는 운연을 제외한 곤륜의 전 문도가 연무장에 모였다.
곧 시작될 치열한 수련에 암담한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정광이 선언했다.
“당분간 수련은 없어요.”
정광이 곤륜에 오기 전, 그야말로 티 없이 맑고 깨끗했던 그들이었다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그마치 십칠 년 동안 정광을 겪어온 그들은 이어질 말에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나 다를까.
정광의 말은 심상치가 않았다.
“대신 다른 일을 하셔야 해요.”
“…….”
“궁금한 점 없으세요?”
그럴 리가 있나.
겁이 나서 묻지를 못할 뿐이었다.
괜히 먼저 물었다간 피똥을 싸야 할 것 같은 느낌.
사실 그들 모두가 싸야 했기에 정광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얼마 전 등선(登仙)하시려던 사조님이 깨어나신 건 아시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도사로서 생사에 연연하지 않아야 했으나 그들도 사람이었다.
정광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고마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길어봤자 일 년이에요.”
충격을 받은 도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은 장문인을 바라봤는데 그가 사실이라 하자 비탄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덕성(德聖)이라 불리실 정도로 세상을 위해 희생하셨거늘.”
“간악한 대마두 때문에 천수조차 못 누리고 가셔야 한단 말인가?”
“이건 하늘의 뜻과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여기저기서 한탄 섞인 말이 흘러나왔지만 이어지는 정광의 말에 조용해졌다.
“그래서 좀 알아봤는데, 치료할 방법을 찾았어요.”
“……!”
분명 ‘치료’라고 했다.
완전히 살린다는 말 아닌가?
아무리 정광이라 해도 그게 가능하다고?
그들의 의구심을 눈치챈 장문인은 조금 전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들처럼 믿지 못하는 운연을 정광이 어떻게 납득시켰는지.
곤륜 제일의 의술을 가진 운연이 정광의 방대한 의술 지식에 놀라다 못해 얼이 빠졌다는 것까지.
장문인의 말이 끝나자 연무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면 그렇지!”
“정광, 믿고 있었다고!”
“하하! 사백님의 미소를 계속 볼 수 있다는 말이렷다!”
“정말 수고했다!”
정 자 배와 허 자 배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늙은 생강인 운 자 배는 기뻐하면서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지금껏 겪었던바, 정광의 방법이란 것들 중에 쉬운 건 없었기에.
그들의 예상대로였다.
“지금부터 조를 나눌게요.”
“……?”
정광은 일사천리로 인원을 나눴다.
총 다섯 개의 조였다.
물론 조장도 즉시 임명됐다.
“일조는 운성 사숙조님, 이조는 운수 사숙조님, 삼조는 운비 사숙조님, 사조는 운진 사숙조님, 오조는 운향 사숙조님이 조장이에요.”
“…….”
호명된 노도사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중 막내인 운성이 사형들의 눈빛에 떠밀려 대표로 물었다.
“……조는 왜 나누는 것이냐?”
“가야 할 곳이 많아서요.”
“……가다니? 어딜?”
“일조는 시달목분지(柴達木盆地), 이조는 황하(黃河), 삼조는 청해호(青海湖), 사조는 당고랍산맥(唐古拉山脈)…… 어? 표정이 왜 그러세요?”
“……조금 멀어서 놀랐구나.”
“멀긴요. 금방이죠.”
금방이 아니었다.
갔다 오는 데만도 몇 달이 걸리는 곳들이었다.
하지만.
운후를 살릴 수 있다면야 그게 대수겠는가.
도사들의 눈에 결의의 빛이 담기기 시작했다.
호기가 치솟은 일조장 운성이 기운찬 목소리로 물었다.
“가서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이냐?”
“영약 재료를 구하셔야 해요.”
분위기가 조금 싸해졌다.
“……설마 공청석유(空淸石乳), 태양화리(太陽火鯉), 만년삼황(萬年蔘皇),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같이 전설적인 영약과 영물을 구해오란 건 아니겠지?”
“네? 하하. 설마요. 그런 걸 일 년 안에 어떻게 구해요.”
지극히 상식적인 말에 분위기가 풀렸다.
“허허.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래, 일조는 무엇을 구하면 되느냐?”
“청혈화(靑血花)랑 습암균(濕巖菌)이요. 각각 한 소쿠리 정도?”
“……청혈화? 처음 듣는구나.”
“겉은 푸르고 진액은 붉은 꽃이에요. 의서에 그려져 있는 그림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 아. 워낙 흔한 모양이라 별 도움이 안 되려나? 푸른색 꽃은 다 따서 짜보시는 게 빠를 것 같네요.”
세상에 푸른색 꽃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따서 짜보라고?
“……습암균은? 축축한 바위 버섯이라니 예사 것이 아닌 것 같은데…….”
“아. 그건 습기 많은 땅을 일장(一丈) 이상 파야 해요. 그리고 운 좋으면 나오죠.”
시달목분지에 습기 많은 바닥이 좀 많은가? 그걸 사람 키보다 더 깊게 파야 한다니.
게다가 운까지 있어야 한단다.
“……세상에 있긴 한 것들이냐?”
정광은 전생에 생사마의와 일생십사를 끌고 다니며 직접 구해본 경험이 있었다.
꽃을 따서 즙을 짜고 땅을 죽어라 판 건 그들이었지만.
“물론이죠.”
“……그래. 믿으마.”
콩을 팥이라 해도 믿고 싶은 상황이었던 데다 정광이 지금껏 보여준 것들도 있었기에 운성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광이 필요한 것들을 말할수록 그들의 입은 벌어지다 못해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이조는 용린어(龍鱗魚)를 암수 한 쌍 잡아 오시면 돼요. 산 채로요.”
“요, 용린어? 이름부터 심상치 않구나.”
“그래 봐야 물고기죠.”
“그, 그건 좀 구하기 쉬운 것이더냐?”
“십 년에 한두 마리는 잡힌다고 하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십 년?”
“아. 그거 어부들이 낚시나 그물로 잡았을 때 얘기예요. 우리는 무림인이잖아요.”
“……그 말은?”
“강에 들어가서 잡으시면 되죠.”
“……황하에?”
“이조는 호수와 강에 인접한 곳이 고향인 분들로만 뽑았으니 자맥질하시는데 별문제 없을 텐데요.”
이조장이 되어버린 운수와 조원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런 곳 출신들만 모이지 않았는가.
개개인의 고향을 전부 꿰고 있는 정광에게 감탄한 것도 잠시, 그들은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황하가 얼마나 넓고 긴데.’
‘거길 다 뒤지라고?’
‘하도 탁해서 보이지도 않을 텐데?’
어느새 정광은 삼조를 지나 사조에게 필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말이 이어질수록 안색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던 사조장 운진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떼어 물었다.
“……옥봉(玉蜂)의 꿀 백 근, 설삼(雪蔘) 백 뿌리, 그리고…… 후우. 종류가 많은 건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다 백 단위로 구해야 하는 것이냐? 너무 많고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인내심이 강한 분들로만 조를 짰으니까요.”
사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내심이 강해?
듣기만 해도 터질 지경인데?
마지막으로 남은 오조는 바짝 긴장하여 정광의 입술을 노려봤다.
“오조는 곤륜에 있으시면 돼요.”
연무장이 들썩였다.
너무나 달콤한 임무 아닌가.
하지만 오조장 운향은 노련한 검객이었다.
“……진짜냐?”
“네? 당연하죠. 제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해요.”
긴장이 탁 풀린 오조원들이 미소를 지었지만 운향은 방심하지 않았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말해다오.”
“본문을 지키셔야죠. 도우들도 맞이하시고 제(祭)도 지내시고.”
그제야 운향의 입에서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드넓은 곤륜파를 지키고 관리하기엔 부족한 인원이었으나 그래도 해볼 만했기에.
여기까지라면 정말 그랬다.
“그리고 곤륜산맥에서 찾으실 게 있어요. 우선…….”
그러면 그렇지.
곤륜산도 아니고 곤륜산맥이란다.
‘이 인원으로?’
‘우욱. 벌써 헛구역질이…….’
오조는 물론 전원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림도 있고 구할 수 있는 지역도 알려준다고 하지만…….’
‘생전 듣도 보도 못하던 것들을 찾아 헤매야 한다고?’
‘차라리 수련이 훨씬 쉬울 것 같은데.’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하기 싫은 게 아니었다.
실패할까 봐 두려웠다.
‘해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못 구하면…….’
‘아아. 운후 사백님.’
정광은 그들을 바라보며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희귀한 것들이긴 하나 죽어라 찾으면 못 구할 것들은 아니다.
그것들은 보조 재료일 뿐, 주재료는 정광이 구해야 했다.
주재료이니만큼 구하기 힘든 게 당연지사.
다행히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아 진짜.’
정광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전생에 한 번 갔다가 학을 뗐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어쩌나, 보낼 만한 인재가 없으니 직접 갈 수밖에.
‘이번 일이 끝나면 다들 입에 거품을 물 때까지 굴려야지.’
그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났다.
그것을 느낀 도사들은 다른 방향으로 이해했다.
‘저런 기세라니!’
‘그래! 막내인 정광의 각오가 저럴진대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해내리라! 반드시 해내리라!’
짙은 결의가 연무장을 뒤덮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 * *
사흘 뒤.
만반의 준비를 한 곤륜 도사들이 조를 이뤄 산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저녁.
“꼭 혼자서 가야 하느냐?”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다오.”
걱정스러운 얼굴로 만류하는 운연과 장문인에게 정광은 그래야 하는 이유를 보여줬다.
그의 몸이 허공으로 비상했다.
운연과 장문인의 찬탄이 그 뒤를 따랐다.
“허어!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이런 경지였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광은 곤륜의 절학들을 끊임없이 풀어냈다.
곤륜의 그 누구보다도 빠르고 화려한 경공술이었다.
운연와 장문인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다른 이가 함께 가봐야 짐만 되리라는 것을.
‘정광은 반드시 용이 될 것이다.’
‘곤륜이 다 품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한 용이.’
한참의 시간 뒤, 땅에 내려선 정광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안심하시죠?”
그럴 리가.
아무리 신위를 보였다 한들 그들에게 정광은 걱정스러운 사손(師孫)일 뿐이었다.
하지만.
보내줘야 했다.
“……조심하거라.”
“……무리하진 않으리라 믿으마.”
정광은 그들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저런 눈빛이라니.
마치 운후 같지 않은가?
정광은 머리를 벅벅 긁다가 짧게 인사했다.
“다녀올게요.”
재빨리 산문을 나섰다.
그들의 시선이 뒤통수를 간지럽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경공술을 펼쳤다.
그의 몸이 바람을 가르며 산 아래로 쏘아졌다.
‘후딱 다녀와서 쉬어야지.’
환생한 뒤 첫 번째 외출.
목적지는 천마신교가 자리한 신강성(新彊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