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뜻밖의 인재
운후의 처소 주위는 수많은 도사로 북적북적했다.
그는 곤륜의 큰 어른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고 의지하지 않는 자가 없었기에 모든 문도가 모인 것이다.
“사부님. 이 일을 어찌합니까.”
정 자 배 젊은 도사가 눈물을 글썽거리자 사부인 허 자 배 도사도 후회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너무 무심했구나. 추궁과혈(推宮過穴)이라도 꾸준히 해드렸어야 했는데.”
다른 중년 도사가 위로했다.
“사제. 너무 걱정하지 말게. 곧 떨치고 일어나실 게야.”
“나도 그럴 거라 믿소.”
젊은 도사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지요? 사백조께서는 반드시 그러시겠지요?”
“암. 그렇고말고.”
허 자 배도 근심이 가득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정 자 배 제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운 자 배는 달랐다.
‘무량수불. 결국 가시는구나.’
‘허허. 우화등선하실 줄 알았건만 사형도 결국엔 사람이셨나 보오.’
때가 되어서 가는 것이기에 이대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운후는 단전이 깨졌기에 무공을 모르는 노인보다도 못한 몸이었다. 그런 몸으로 여태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극한 도 덕분이 아니던가.
그들도 얼마 안 가 그의 뒤를 따르게 될 것이기에 씁쓸한 얼굴로 도경을 중얼거리는데…….
“비켜주십시오! 급합니다!”
누군가의 고함이 불안과 슬픔에 잠긴 분위기를 깨버렸다.
모두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허청이 정광의 손목을 잡고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정 자 배와 허 자 배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피어났다.
정광이라면, 곤륜을 뒤바꾸고 있는 정광이라면 운후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오직 운 자 배만이 내심 고개를 저었다.
‘정광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편법으로 태극회춘신공을 쓴다 해도 사형은 단전이 파괴되어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들 사이로 내달린 허청과 정광은 운후의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작고 검소한 방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운후, 그의 손목을 잡고 진맥하는 운연, 지그시 눈을 감고 도경을 외우는 장문인이었다.
“사부님!”
허청이 소리쳤지만 운연과 장문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운후만이 미소 지을 뿐이었다.
“밤이 깊었는데 왜 왔누?”
“제자가 정광을 데려왔습니다. 정광이라면 사부님을…….”
“허허. 나는 그저 천수를 다한 게다. 순리대로 가는 것이야.”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부님께서는 곧 정정한 몸으로 일어나실 겁니다.”
“녀석. 도사가 그리도 욕심이 많아서 어쩐단…… 쿨럭. 쿨럭.”
정광은 밭은기침을 내뱉는 운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를 안고 드넓은 곤륜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풀어놓던 게 엊그제 같은데.
꿈속에서 봤던 행복한 모습과도 너무 달라서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래도 눈빛만큼은 여전하네.’
두려움이 아니라 자애로움만이 담겨 있었다.
천하에서 제일 넉살 좋은 사람이었던 정광의 아비도 마지막 순간에는 두려워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정광조차 께름칙한 마음으로 죽었었다.
그런데 운후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이토록 초연하다니.
정말 그다운 모습이었지만…….
‘안 어울려.’
그라면 우화등선쯤은 해줘야 하지 않는가.
그때 운후의 입이 열렸다.
“정광아.”
“네. 사조님.”
“때가 되어 가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아라.”
“안 슬픈데요.”
“하하하. 그래. 그래야 너답지. 크흑. 쿨럭. 쿨럭.”
웃다가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운연과 장문인이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허청과 정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형을 오래 붙잡을 순 없다.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어서 할 말을 하거라.
허청은 붉어진 눈시울로 입을 벌렸다. 제자인 정광과 관련된 일만 아니라면 침착한 그였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부님께 드릴 말씀이 많은데…… 제자가 불민하여 말이……”
“허허. 녀석, 다 큰 줄 알았더니 아직도 애 같구나. 네겐 아무런 걱정이 없다. 잘 컸고 앞으로도 잘할 게야.”
운후의 시선이 정광에게 돌려졌다. 한동안 바라보던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불편한 점은 없느냐?”
정광은 그도 모르게 웃었다.
가는 그 순간까지도 남을 생각하는 것이 정말 운후답지 않은가.
“많지는 않아요.”
“하하. 그렇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어도 좋은 점도 많으니 지낼 만하다는 말이렷다.”
“사조님은요?”
“응? 허어. 이거 한 방 맞았구나. 나는 어떻냐고?”
잠시 생각하던 그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구나. 나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하하.”
“허어. 왜 또 웃는 것이냐?”
“사조님도 결국엔 보통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요.”
“이런. 지금껏 뭐로 봤길래? 그저 늙은 도사일 뿐인 것을. 허허허.”
한동안 웃던 운후가 정광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정광이 아니라 더 먼 훗날의 정광을 보는 듯했다.
“나도 욕심이 있단다. 곤륜에서 다시 용이 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
“에이. 겨우 그거였어요? 기다리시면 제가 보여 드릴 수 있는데요.”
“헐헐. 예끼, 이놈아. 지금 나보고 몇십 년을 더 살라는 말이냐?”
“아닌데. 음. 일 년이면 될걸요.”
운후는 물론 방 안의 모든 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용이 나는 모습이란 건 개파조사가 창룡후를 터뜨리며 보였던 신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정광이라 해도 일 년 만에 그 정도 경지까지 오르는 건…….
잠깐만.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정광의 경지가 어느 정도지?
설마 일 년 뒤면 될 정도로 높은 경지란 말인가?
잠시 뒤, 정광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럴 리가 없지.”
“네?”
운후가 대표로 말했다.
“허허. 그래, 일 년 뒤가 기대되는구나.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만 항상 몸을 중히 여기거라.”
“진짜 되는데요?”
“흘흘. 그래, 그래.”
“진짜라니까요.”
“흘흘. 그래, 알고 있단다.”
정광은 어이가 없었다.
누가 봐도 어린 손주의 떼를 받아주는 모습 아닌가.
제법 도사다운 사람이 왜 사람 말을 안 믿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 일 년이면 조금 빡빡하긴 하겠지만 진짜 할 수 있다니까.
“안 믿으시는 것 같네요.”
“허어. 그렇게 보였느냐?”
혹여나 정광이 마음 상했을까 봐 염려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였지만 그의 안색이야말로 위험했다.
정광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자기 것을 뺏기는 기분이었다.
그는 빼앗는 사람이지 뺏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죠.”
“허허. 그래, 그래. 직접 눈으로…… 응?”
갑자기 정광이 운후의 아랫배에 두 손을 대었다.
“뭐 하는 게냐?”
“그래 봐야 소용없다. 편히 보내드리자꾸나.”
운연과 장문인이 나무랐지만 정광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대신 진기를 불어넣었다.
우우우우웅-
“허어…….”
운후의 표정이 조금 편해졌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아니었다.
“이럴 필요 없다. 때가 됐으면 가는 것이 순리니라.”
“제가 마음먹은 대로 하는 게 순리죠.”
“허어.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게 사조님이 바라신 대로 하는 건데요.”
“……?”
“제가 사부님의 제자가 되고 사조님의 사손이 된 날, 사조님께서 하셨던 말씀 기억 안 나세요?”
“대체 뭘 말하는…… 아!”
운후의 눈이 커졌다.
오래전, 그가 정광을 품에 안고 중얼거렸던 말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바르게 커다오.’
‘허허. 녀석, 놀라기는. 너무 무리한 부탁이더냐?’
‘그래. 욕심이 과했구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른데 바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정정하마. 네가 바르다 믿는 일은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되어다오.’
‘부탁한다.’
운후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돌도 안 됐을 때의 일인데 그걸 기억한다?
이어지는 정광의 말을 들으니 사실이었다.
“그 말씀대로 제가 바르다 믿는 일을 할게요.”
“무슨……?”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참으세요.”
“고통이라니? 대체…… 으윽!”
정광의 두 손이 빛나며 엄청난 양의 진기가 운후의 몸을 삼켜 버렸다.
동시에 정광의 전음이 운연와 장문인의 뇌리에 들려왔다.
-계속 진기를 넣어주세요.
놀라서 입을 열려던 그들은 정광의 진지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광의 이맛살이 좁혀졌다.
확인해 보니 운후의 몸 상태가 예상보다 더 안 좋았던 것이다.
단전이 깨진 거야 그렇다 쳐도 전신의 기맥까지 상해서 생기가 솔솔 빠져나가고 있었다.
정광은 재빨리 머릿속의 지식을 헤집었다.
우선 운후의 정신 줄부터 붙잡아놔야 할 터. 마령제혼술(魔靈制魂術)로 뇌를 좀 주물러서…….
아니지.
그건 사람의 이지를 흩트려 지배하는 것이라 내가 용이 되는 모습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거다.
그래. 운후는 수양이 높은 도사 중의 도사, 정신 줄이야 혼자 어떻게든 잡고 있을 것 아닌가.
그럼 빠져나가는 몸의 생기를 가둬야 하는데…….
아!
어차피 사라질 생기, 붙잡으려 하지 말고 아예 없애 버리자.
암혼강시제련대법(暗魂殭屍製鍊大法)으로 가는 거다.
혼에 때가 조금 묻겠지만 그 정도야 세상 살다 보면 당연히 묻게 되는…….
“정광아.”
“네?”
“깨끗이 가고 싶구나. 그만 놓아다오.”
“…….”
정광은 속으로 탄식했다.
무슨 주문이 이리도 까다로운지.
일단 마공은 다 제외다.
그럼 남는 건 곤륜 무공뿐인데.
정광은 천천히 진기를 운용해서 운후의 내부를 관조했다.
“옛날에 곤륜제일고수셨다더니 진짜 세셨었네요?”
“무어라? 허허허. 그래, 내가 좀 강했다.”
“단전만 안 깨지셨으면 태극검존 정도는 되실 수 있으셨겠는데요?”
“이런. 어찌 그 어르신과 나를 비교하느냐? 내가 감히 그럴 수…… 헌데 네가 그분을 어떻게?”
정광은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운후는 자질이 있었다.
깨끗이 치료만 되고 새로운 곤륜 무공을 배운다면 언젠가 태극검존만큼 강해질지도 몰랐다.
그러면 정광이 편한 마음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곤륜을 떠날 수 있을 터.
좋아. 오랫동안 곤륜을 지키게 하는 거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죽지 않는 귀신이 되어 곤륜에 들러붙으면 더 좋고.
마음을 굳힌 정광은 운후를 억지로 일으켜 앉혔다.
만류하려던 이들은 그의 확신에 찬 눈빛을 보자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정광은 확신 따위는 없었다.
‘되려나? 해보면 알겠지.’
운후가 죽을 가능성도 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일이 잘 안 되어 운후가 저세상으로 가버린다면 원시천존을 만났을 때 진천마에게 죽었다고 자랑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손으로 꾹꾹 눌러서 운후를 가부좌 튼 자세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보며 힘주어 말했다.
“정신 잃지 마세요.”
“갑자기 무엇을 하려는 게냐?”
“일단 약속해 주세요.”
운후는 정광의 뜨거운 눈빛과 무거운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허어. 그래, 그러마.”
정광의 시선이 운연과 장문인에게 향했다.
“두 분은 아까처럼 사조님께 진기를 넣어주세요.”
“아, 알았다.”
“이, 이렇게 말이냐?”
“네. 딱 좋아요.”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허청이 끼어들었다.
“제, 제자야. 나는?”
“사부님은 그냥 계세요.”
“아, 알았다.”
“자! 이제 갑니다!”
“……뭘?”
모두가 의아해하는 가운데 정광이 운후의 앞에 다리를 벌리고 섰다.
그의 꽉 움켜쥔 주먹이 천장을 향해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을 떠올렸다.
시장바닥의 약장수들이 기와를 쌓아놓고 하는 격파시범이었다.
‘허허.’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됐다.
“하아압!”
희뿌연 기에 휩싸인 정광의 주먹이 엄청난 기세로 운후의 천령개(天靈蓋)를 내리쳤다.
정확히 말하면 급소 중의 급소, 정수리 중앙에 있는 백회혈(百匯穴)이었다.
“안 돼!”
설마설마하며 지켜보던 운연, 장문인, 허청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지만,
콰아앙!
정광의 주먹이 운후의 백회혈을 때리며 터진 거대한 폭음에 가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