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도사라고 멋지면 안 되나요?
정우(精羽)는 어안이 벙벙했다.
어리디어린 막내 사제 정광에게 얻어맞다니! 그것도 뻔히 아는 추운권으로!
‘아니지.’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이런 추운권은 처음이었다.
곤륜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지 않은가.
‘이건 아니야.’
그래서 지적했건만, 화려해도 잘 때릴 수 있단다.
황당하게도 녀석의 말대로 잘 맞았다.
‘말도 안 돼!’
오기가 치솟았다.
“……한 번 더 하자.”
“그러죠.”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여전히 결과는 똑같았다.
정광의 조막만 한 손이 정우의 건장한 몸을 두들겼다.
눈에 익었으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광의 추운권은 현란할 정도로 화려했다.
정우는 경악했다.
‘괴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권을 변형시킬 줄이야.’
개파조사(開派祖師)께서 창안하신 이래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선인이 다듬어온 추운권이다.
그걸 열세 살 꼬마가 멋대로 뒤바꾸다니.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이건 재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특한 길로 빠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래선 안 된다. 막내가 위험해.’
보는 이에 따라선 기사멸조(欺師滅祖)의 중죄가 될 수도 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정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사형.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볼 테니까 잘 보세요.”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정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운권(追雲拳)이다.
이제껏 알던 것과는 아주 다른, 정광의 추운권이었다.
“아…….”
정우의 입이 벌어졌다.
멀찍이 떨어져 제삼자의 눈으로 보니 또 달랐다.
어찌나 신묘하고 화려한지, 이름 그대로 구름을 쫓는 모습 아닌가.
‘분명 빠르고 굳셈을 중시하는 권법이었는데.’
사부인 허직에게 그렇게 배웠다.
사조도 그렇게 가르쳤다.
곤륜 문도 모두가 그렇게 펼쳤다.
정광 이 녀석만 빼고 말이다.
‘어서 허청 사백을 뵙고 이 사실을 말씀드려야…….’
그때 정광이 싱글거리며 물었다.
“멋지죠?”
“그래. 정말 멋지…… 엇!”
홀린 듯 대답하던 정우가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네. 속성으로 가르쳐 드릴게요.”
잠시 뒤, 정우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채 정광에게 묻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네. 딱 좋네요. 근데 부끄러움이 담겨 있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대사형이 초식을 화려하게 펼치는 걸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거죠.”
“허어. 그랬던가?”
“마음을 비우세요. 우리는 도사잖아요.”
“그래. 네 말이 옳다. 내 오늘 크게 배우는구나.”
정우는 도사답게 마음을 비우고 도사답지 않은 화려한 권법을 펼쳤다.
“좋아요. 바로 그겁니다.”
“하하! 와하하하!”
정우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몸도 시원시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정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았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지 않는가.
아직 어린 나이라 꼰대 기질이 덜한 걸까?
원래 성격에 들어맞아 그런 것일지도.
“기분이 무척 좋구나!”
정우가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으며 외치는 말에 정광이 중얼거렸다.
“그래야죠.”
그래야 더 열심히 수련하게 된다.
그래야 곤륜이 강해진다.
그래야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다.
훗날 정광이 세상에 나갈 때, 곤륜은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도사들의 머리와 몸에 진짜 곤륜의 무공을 때려 박아 넣어야 하는데…….
“쩝.”
정광은 입맛을 다셨다.
생각해 보니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정 자 배야 정우처럼 적당히 구슬려서 따라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허 자 배만 해도 앞뒤가 꽉 막힌 꼰대들인지라…….
“네 이놈! 무엇을 하는 게냐!”
마침 꼰대 중 하나가 나타났다.
정우의 사부인 허직이었다.
“헉! 사, 사부님!”
“어서 답해라! 뭘 하는 거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제, 제자는 그저 추운권을…….”
“뭐라? 그게 추운권이라고? 허어. 곤륜이 어떻게 되려고 이런 일이…….”
고개를 저으며 한탄하는 허직을 보며 정광도 내심 고개를 저었다.
곤륜이 어떻게 되긴.
대곤륜이 되기 위한 과정인데 답답한 소리를 지껄인다.
“당장 따라오너라!”
“사, 사부님…….”
“어허! 어서!”
허직은 정우의 귀라도 잡아서 끌고 갈 기세였다.
정광이 손을 번쩍 들며 나섰다.
“사숙님.”
“그래, 정광이구나. 내 지금은 마음이 급하니 나중에 얘기…….”
“대사형의 추운권. 제가 알려준 건데요.”
허직이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 * *
허청의 처소에서 허직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형! 이 일을 어쩔 것이오!”
“…….”
“어서 말해보시오! 이대로 넘어갈 일이 아니외다!”
허직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허청은 요지부동이었다.
담담한 허청과 달리 허직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이……!”
그가 더는 못 참고 폭발하려고 하는 순간, 허청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네?”
“어쩌란 말인가?”
“…….”
허직은 입만 뻐끔거렸다.
“기사멸조의 죄를 물으라고?”
“아니, 제가 언제 그렇게 일을 키우자고…….”
“그럼 그냥 넘어가지 그러나?”
“그건 또 아니지 않…….”
“그래서 묻는 걸세. 어쩌라고?”
“…….”
두 사형제의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두 사형제의 반응은 달랐다.
바짝 얼어 있는 정우와 달리 정광은 웃고 있었다.
사부의 능구렁이 같은 모습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청은 도사다운 진중한 성품을 가졌지만 세상의 때도 적당히 묻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고지식한 도사인 허직이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네 말은 이해했네.”
“……어떡하실 겁니까?”
“어떡하긴. 나도 직접 봐야 판단할 수 있지 않겠나.”
허청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광에게 말했다.
“나가서 네 추운권을 보여다오.”
“네, 사부님.”
정광이 추운권을 펼쳤다.
개파조사가 창안한 날것 그대로의 것이었다.
여유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허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허직의 말이 과장됐다 생각했거늘 오히려 부족하지 않은가!
이런 화려한 추운권이라니, 이렇게 위력 있는 추운권이라니!
역시 그의 제자는 천재였다!
‘그런데…….’
이거, 꽤 큰 문제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정광은 초식을 펼쳐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손발을 움직일수록 추운권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지금의 것은 그가 정우에게 알려줬던 것이 아니었다.
왜?
“아!”
이유를 알았다.
개파조사의 추운권을 펼치면 펼칠수록 정광의 색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이건 좀 곤란한데.
머리를 북북 긁은 그는 추운권을 다시 펼쳤다.
원래의 것으로.
“흐음.”
역시 조금 모자랐다.
그의 색을 입힌 것이 더 멋지고 위력 있었다.
그렇다면?
에라 모르겠다.
제대로 한번 입혀보자.
내가 개파조사보다 못한 게 뭐가 있어.
오히려 사람 패는 건 내가 더 잘할 게 분명한데.
“좋아!”
정광의 몸이 다시 움직였다.
새롭게 태어난 추운권의 초식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정광은 무아지경에 빠졌다.
음? 무아지경?
아니다.
개파조사와 대화하고 있었다.
-영감, 여기서 이건 어때?
-그건 아니지, 이놈아.
-아, 이놈 저놈 하지 마쇼. 나도 백 년이 훌쩍 넘게 살았구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그런가? 그럼 이건 어떻소?
-호오. 멋진데! 너 제법이구나!
-제법은 무슨. 내가 낫지.
-아, 이놈이 진짜!
“하하하.”
정광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개파조사 이 양반, 진짜 허세 쩌는 귀여운 영감 아닌가!
정광은 그의 무공을 펼치며 그것에 담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영감, 이건 미처 몰랐구나.
이렇게 하면 더 좋아하겠지.
그래. 거의 다 됐다.
내가 했지만 정말 쓸 만한데?
“후우우우.”
정광은 깊은숨을 내쉬며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허청을 바라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끝났어요, 사부님.”
“…….”
“사부님?”
“어, 어! 그, 그래! 수고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허청이 허직을 바라봤다.
안색이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사, 사제. 후, 훌륭한 추운권 아닌가?”
“……이, 이런…… 이런…….”
허직은 더듬거리기만 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아까 봤던 정우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모습 아닌가! 위력은 또 어떻고!
생각난 김에 정우를 째려보자 녀석은 황홀하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의 막내 사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받은 허직이 정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퍽!
“억!”
“네 이 녀석! 뭘 잘했다고 그러고 있느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을 왜 해!”
“죄, 죄송…… 아, 아니…….”
허직은 간신히 울화를 삼켰다.
그래, 이놈이 무슨 잘못이랴.
고개를 홱 돌려 허청에게 따졌다.
“사형! 보셨소? 사형의 제자가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어?”
허청이 없었다.
정광도 없었다.
허청은 정광을 안고 저 멀리 뛰어가고 있었다.
“사형!”
튀어버리다니!
한동안 이를 갈던 허직은 뒤를 쫓기 시작했다.
사형이 갈 곳은 뻔했다.
운후가 이 시간쯤 있는 곳, 말년에 이르러 가꾸고 있는 작은 화원이리라.
역시 그랬다.
화원에는 운후를 포함한 세 사람이 있었다.
‘저건!’
아니다.
운후와 허청, 그리고 어린 용 한 마리였다.
소룡이 화원에서 춤을 추었다.
그 바람에 이끌려 꽃잎들이 떠올라 구름이 되었다.
소룡은 그 구름을 쫓고 구름은 용을 감쌌다.
“허허허.”
운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사특한 기운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곤륜에 어울리는 것일지도.’
곤륜이 진정한 대곤륜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소룡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멋지죠?”
운후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정말 멋지구나.”
운후는 마음을 굳혔다.
이대로 지나칠 순 없는 일이다.
그가 어린 용을 지켜줘야 했다.
“너희들 모두 걱정 말거라. 이는 본문의 복이다.”
운후는 즉시 장문인에게 찾아가 장로 회의를 열 것을 요구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정광이 추운권을 펼쳤다.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허어! 저, 저런!”
“어찌 이런 일이!”
“믿을 수 없다!”
장문인마저 몸을 떨며 정광의 모습을 바라봤다.
마침내 정광이 모든 초식을 펼쳐내자 장로들은 시장통 상인들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갑론을박이었다.
“추운권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것이야!”
“그건 아니지! 정명한 기운을 오롯이 담고 있지 않나!”
“이리도 화려하면서 강맹한 건 우리 곤륜의 무공이 아닙니다!”
“케케묵은 소리! 무공은 후손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네!”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의를 버리고 형식을 부풀리다니 이건 좌시할 수 없는 일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곤륜은 곤륜다워야 합니다!”
지켜보던 운후가 나섰다.
“잠시만 조용히 있어주게.”
그는 장내의 흥분이 가라앉자 말을 이었다.
“우선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정광아. 왜 추운권을 그렇게 펼치게 되었느냐?”
운후는 정광의 대답을 끌어낸 뒤에 자신이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정광이 어디 누구 뒤에 숨었던 적이 있었던가.
노도사들에게 재깍 되물었다.
“이게 틀린 건가요?”
대답 대신 나온 당돌한 질문에 여기저기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한 소리를!”
“곤륜의 무공은 그렇지 않다!”
운후가 노호성을 터뜨려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정광이 먼저 받아쳤다.
“맞는 것 같은데요?”
“……뭐?”
황당해하는 노도사들에게 정광은 당당히 말했다.
“곤륜의 무공은 멋진 거잖아요.”
“…….”
기가 차서 대꾸도 못 하는 그들에게 정광의 말이 이어졌다.
“개파조사께서 도를 얻으셨을 때 창룡후(蒼龍吼)를 내시며 하늘을 날아오르셨다고 들었어요.”
노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광의 말에 그 움직임이 딱 멎었다.
“근데 왜 시끄럽게 창룡후를 내셨을까요?”
“…….”
정광이 눈으로 재촉하자 한 노도사가 나섰다.
“……깨달음 때문에 진기가 충만해서 그러신 게다.”
정광은 바로 부정했다.
“아뇨. 자랑하고 싶으셔서 다들 이것 좀 보라고 내신 것 같은데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깨달음 때문에 진기가 폭증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거든요.”
“…….”
그러게?
노도사들 역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었다.
깨달음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을 통해 무공이 증진되지만 진기가 폭증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는 노도사들에게 정광이 말했다.
“멋진 건 좋은 거잖아요.”
“……?”
“도사라고 멋지면 안 되나요?”
“……!”
“본문의 무공은 이름부터 초식까지 모두 우아하고 멋져요. 그걸 왜 굳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하죠?”
“그, 그거야 실전을 위해서…….”
정광이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센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