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세상이 바뀌어도 곤륜은 변하지 않는다.
천 년 전 강호.
세력이 아닌 개인이 행세하던 마지막 시절. 현세에 비하면 질그릇 같은 순박함이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당대의 위세 당당한 구대문파와 칠대세가의 흔적조차 찾기 힘들었던 시절, 청성도 없고 점창도 없으며 무림세가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태산북두의 자리를 차지하는 소림이나 화산 그리고 무당 역시 문파로서의 의미보다는 수도자들의 작은 도량(愼場)으로써 각자의 터전에서 연약한 뿌리를 겨우 내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순박했던 그 시절에는 무공이나 이술(異術)이 권력과 금력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수신지도(修身之道)와 의협지도(義使過)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었다 선배는 될성부른 후배에게 가진 것을 사심 없이 전수했고 그것으로써 평생의 인연으로 강요하지도, 이득을 취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세력보다는 개인의 힘이 우선시되던 그 친 년 전, 처음으로 한 지역을 웅패할만 한 거대 세력이 등장했다. 호남의 혈룡사(血龍史)와 호북의 귀면방(鬼函努).
비록 도적들의 집단이었지만 그 두 조직이야말로 사실상 강호 유사 이래 최초의 거대방파라고 할만 했다. 실제로 그 두 방파로 인하여 강호무인들은 집단의 힘을 실감했고, 그들로 인하여 또 다른 거대방파들이 서서히 태동하기 시작했다. 한가로운 노사들이 강호사(江湖史)를 입에 올릴 때면 그 시기를 전후하여 개인이 횡행하던 강호와 집단의 힘이 우선시되는 강호로 대별하곤 했다.
최초의 거대 조직으로 꼽히는 혈룡사는 그래서 그 의미가 컸다 그들로 인하여 의와 협을 추구하던 무인들을 하나로 물어 정파라고 부르게 되었다.
혈룡사는 원래 도적 떼들의 집단이었다. 관군에게 쫓기고 작은 마을의 자경단에도 쫓기던 도적들이 힘을 합해 거대한 방파를 이루니 그 기세가 피에 미친 용과 같다 하여 혈룡사였다.
일단 기세를 탄 혈룡사는 관군의 뒤를 쫓고 각처의 자경단들을 몰살시키는 힘을 키웠다. 산에서 몸을 숨기던 그들이 마침내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와 자리 잡으니 그 수가 무려 이천이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혈룡사가 호남 전역에서 피바람을 일으키자 결국 전국의 각처에서 모여든 협사들이 최초로 한시적인 방파를 만드니, 이름하여 복룡회(伏龍會)였다. 기록에 의하면 이백칠십이 명의 협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하는데, 당시 절정에 달했던 혈룡사의 머릿수를 생각해 보면 수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적 열세는 의미가 없었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복룡회를 구성하는 협사들은 당대의 대협들과 그들을 존경하여 따르던 열혈의 청년고수들이었다.
반 년 동안 계속되었던 쫓고 쫓기는 실랑이 끝에 복룡회는 마침내 혈룡사를 잠재웠다. 그사이에 목숨을 잃은 협사들의 수가 무려 이백사십칠명. 살아남은 이들은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같이 의혈을 흘리고도 목적을 이루는 순간 오로지 양민들의 존경만을 가슴에 품고 조용히 흩어졌다.
복룡회가 그렇게 괴멸되다시피 해산되고 십여 년이 흐른 후 호북에서 새로운 도적 메들이 나타났으니 그들이 바로 귀면방이었다.
귀면방은 혈룡사의 실패를 간과하지 않았다. 일천이 넘는 도적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과신하여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귀면탈을 쓴 채 수십여 개의 소조직으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같은 모습으로 사방 각처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고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교활한 토끼처럼 수십 군데에 숨을 곳을 마련하여 때로 뭉치고 때로 흩어지며 때로는 양민들 속에 몸을 숨겨 그 종적을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귀면방이 힘을 가지고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니 그 세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결국 복룡회의 생존자들과 후인들이 다시 뭉쳤다. 거기에 무당에서 수도하던 도사들까지 합세하여 제이의 복룡회라 할 수 있는 멸귀회(減鬼會)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멸귀회는 그 이름과 달리 귀면방의 신출귀몰한 기습과 암습으로 지리멸렬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호북은 귀면방의 세상이 되었고 무당은 꽃봉오리를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버릴 위기에 처했다.
그때 등장한 이가 바로 강호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거대방파를 세웠던 백의천사(白衣天師) 백정휴(白淨?)였다.
백정휴는 원래 청성산에서 홀로 신선지도를 추구하던 기인이었다. 삼십 년의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었으나 그가 얻은 것은 홀로 승천하는 신선지도가 아니라, 민중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현생에서는 소박한 복을 나누고 죽음 뒤에는 영원한 신선의 복락을 함께 누린다는 민선지도(民仙道之)였으니, 그는 즉시 청성산을 박차고 세상에 나선 것이었다.
귀면방으로 인하여 난세나 다름없는 시절을 견뎌야 했던 호북 사람들 가운데 백의도포를 입은 초로의 도인에게 관심을 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일수에 귀면방의 일각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힘겹게 버티던 멸귀회의 사람들이 먼저 그를 찾았다. 백정휴는 스스로를 천사(天師)라 칭하고 멸귀회 사람들을 좌우 천위(天衛)와 천병(天兵)들로 삼아 귀면방 소탕에 나섰다.
백정휴의 진두지휘로 귀면방의 소단위 조직들이 하나둘씩 제거되자 귀면방도들은 백정휴와 오십여 멸귀회 사람들을 무산 끝자락으로 유인하였다.
무산 반월곡. 뒤가 막혀 퇴로를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 몰려 버린 멸귀회 사람들은 절망하지 많을 수 없었다.
오십 대 팔백.
귀면방도들이 쇄도하고 멸귀회 사람들이 공멸을 목표로 마지막 전의를 불태울 때, 백정휴의 손에서 거대한 백룡이 꿈틀거렸다. 백룡이 반월을 가로지르는 그 순간 팔백의 귀면방도들과 멸귀회 사람들의 자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백정휴의 왼손에서 또다시 한 마리의 백룡이 튀어나오는 순간 반월곡은 귀면방도들의 피로 노을 졌다. 백정휴가 세상에 나선 지 세 달 만에 이룬 쾌거였다.
백정휴는 무산에 사당을 세우고 귀면방도들을 위해 천도제를 지냈다. 그리고 언제 칼날 같은 손속을 내뻗었느냐는 듯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세상을 향해 민선지도를 설파했다. 이미 이름을 얻은 사람에게서 덕 높은 설법이 흘러나오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는 이적을 보였다. 죄를 청하는 이들에게 하늘을 대신하여 면죄부를 주었고 법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건강을 주었다. 귀신을 퇴치했고 치수에도 능했으며 수리에도 밝았다. 그는 진정한 기인이었다.
호북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천위와 천병으로 삼았던 이들의 재능에 맞춰 깨달은 바를 나누어주고 그들로 하여금 민선지도를 퍼뜨리게 하였다.
그들 또한 이적을 행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쌀 한 되를 받기도 하고 마포 한 필을 받기도 하고 형편에 따라 은 한 냥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재물들이 또다시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니 세상 사람들은 백정휴를 천인으로 받들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무림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거대방파 승천도(昇天道)였다.
승천도는 단순한 무림방파가 아니었다. 곧 종교였고 또한 거대 국가였다.
당시는 천하가 여러 국가들로 쪼개어져 패권을 다투던 시절. 끊이지 않는 전란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던 백성들은 앞을 다주어 승천도에 귀의했다. 순식간에 나라 안의 국가요 나라 밖의 국가가 되어버린 승천도는 지배자들의 눈 밖에 나고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죽음이란 순간의 고통 그리고 뒤에 누리는 것이 진정한 신선의 복락이라 여기는 자들을 건드릴 담량은 누구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종교 국가를 이루고 그 수장이 된 천인 백정휴는 금욕적인 삶을 요구하는 민선지도를 주창한 이답게 희생적이고 담백한 삶을 살았다.
그의 치세 이십여 년 동안 그는 늘 백의도포만을 입고 다였으며 그 도포에 흙 묻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만든 국가를 두루 돌아다니며 농부가 되기도 했고 어부가 되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세상에 나선 지 이십일 년 만에 다시 세상을 등졌다. 천사의 자리를 제자에게 내어주고 홀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측근들조차도 그가 우화등선했다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백정휴가 사라진 후에도 승천도는 한동안 그의 들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삼대천사 백교봉(函詠奉)이 천사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 승천도는 몰락의 결을 걷기 시작했다. 천사와 친위가 먼저 향락을 추구하니 세상 각지에 퍼져 있던 천병들 역시 본연의 임무를 저버렸다.
마음에서 우러나서 바쳤던 쌀 한 되가 강제적연 한 섬이 되고, 성의껏 짜서 바쳤던 마포 한 필이 피눈물로 짜낸 비단으로 바뀌었다. 천사가 향락에 중독 되고 천병들이 제 배만을 불리니 교도들이 승천도를 등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을 읽는 데 태만했던 천병들은 세속적민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여 결국 파를 가르고 끝내 싸움을 벌였다.
안에서부터 깨어졌으니 수습은 불가능했다. 향락에 찌들어 버린 삼대천사는 갓 늘인 사대에게 머리 속에 든 비전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독살당하여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삼대친사의 죽음으로 승천도는 결국 전국 시대를 맞이했다. 암투를 벌이던 천병들이 저마다 어린 천사의 보호자임을 자청하며 세력을 모으고 힘을 겨뤘다.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참상을 보다 못한 협사들과 기회를 기다리던 지배자들이 합심하여 밖에서 치니, 천 년을 갈 것 같던 승천도는 결국 오십 년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무림사의 전무후무한 거대방파 승천도가 사라진 후 강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무공과 이술을 바탕으로 한 방파들이 생겨나고 무림 안에서도 귀족과 같은 가문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천 년 전 강호에 그런 일이 있었다.
사천무림련이 금사강의 치(恥)를 당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청성과 아미 그리고 운가와 당가가 있음으로 해서 악인들은 사천에 아예 발을 들이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위세 당당했던 이대문파와 이대세가가 모두 몸을 움츠리고 터전마저 비윤 채 천북으로 옮겨갔으니 사천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정파라 부르던 세력들이 패퇴하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이들은 당연히 사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력을 기다렸고 어떤 이들은 아예 이삿짐을 싸기도 했다.
그러나 새로 사천에 등장한 이들은 사람들의 짐작과는 많이 달랐다.
백의도포를 입은 도사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백의도사들은 천북을 제외한 사천 전역을 돌며 선행을 쌓아갔다. 사람들의 복을 빌고 축귀의식(違鬼儀犬)을 행하여 잡귀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을 구원해 주었다. 걱정을 들어주고 병을 고쳐주고 부적을 써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대하던 사람들도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감사의 뜻으로 돈을 내어놓아도 백의도사들은 하나같이 거절하고 쌀 한 되 혹은 마포 한 필을 받아갈 따름이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시간이 걸렸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마을에 백의도사들이 찾아오기를 기대했다.
아이들이 노래했다.
백의도사 세상에 나오셨네.
천하 만민의 고통이 사라지네.
뒤이어 오시는 분, 천의를 행하시니
천하 만민은 신선의 복락을 누리리라.
아이들이 천군강림가(天君降諒歌)를 부르기 시작하자 세간에 이름 하나가 회자되다가 곧 화두가 되었다.
천군 백천휘(白天輝).
백의도사들로 하여금 세상으로 나아가 만민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라 명했다는 인물, 천군강림가에서 뒤이어 오시는 분이라 언급되는 바로 그 천인이라 했다.
사람들은 두 파로 갈라져 설전을 벌였다.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은 희대의 효웅이 나타났다 하고, 민초들은 발 그대로 천인의 출세라 했다. 그러나 천군을 보고자 하는 마음은 양자가 모두 같았다.
세상에 처음 그 이름을 드러낸 천군 백천휘가 손을 들었다. 지붕이 없는 팔인교가 멈추고 백무극과 좌상 백문정 그리고 우상 백무강을 비롯한 백라천궁의 모든 수뇌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뒤로 열을 지은 채 따라가던 수천의 백의인들도 차례로 멈춰 섰다.
백천휘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팔인교에서 내려섰다.
“대도우위(大道然爲)! 다시 보니 반갑군."
수뇌진들이 모두 백천휘의 시선을 따라갔다. 산을 향해 뻗은 계단 우측의 거대한 석비에 용사비등한 필체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백천휘가 좌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성산은 참 묘한 산이야."
좌상 백문정이 웃으며 물었다.
“무슨 뜻이온지?"
백천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녹음으로 짙게 물든 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산은 이리 작고 볼품이 없는데 산 전체에 선향을 피워놓은 듯 참으로 청량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작지만 속이 꽉 찬 사람을 보는 것 같아. "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산세를 훑어보았다.
백천휘의 말처럼, 청성산의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아서 점창산 마룡봉의 사 분의 일에도 못 미쳤고, 곤륜의 옆에 붙인다면 동산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커도 실속 없는 이가 있고 작아도 웅골찬 이가 있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어서, 청성산의 품은 기운은 백천휘의 말과 같았다.
도를 깨친 사람의 밝고 청정한 눈빛과 같이 푸르렀고 어려움 속에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아낙네의 성품처럼 온유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은 청성산을 촉지사절의 하나로 꼽았다.
청성천하유(晴城天下腦), 드러난 곳보다 감추어진 곳이 더 많다는 뜻이리라.
백천휘는 숨을 들이마셔 산의 기운을 음미하고 정갈하게 다듬어져 있는 돌계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 그럼 가볼까?"
백무극이 눈짓하여 팔인교를 부르고 백천휘에게 말했다.
“오르시지요."
백천휘는 웃으면서 동계에 미간을 찌푸렸다.
“청성은 우리의 뿌리. 개조(開祖)께서 발로 걸으신 이곳을 내 어찌 가마로 오르겠느냐?"
백천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계단을 밟았다.
좁아서 답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넓어서 황량하지도 않은 돌계단이었다. 좌우로는 짙은 녹음이 우거져 여름 내내 품었던 산의 기운을 향기로 내뿜고 풀벌레 우는 소리 들리며 선선한 바람까지 도우니, 계단을 밟아 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산행으로 인한 땀방울과 신선지로를 따르는 듯한 황홀함이 동시에 드리워졌다.
백천휘가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석계를 밟는 순간 좌우로 드리워진 나무 그늘이 사라지고 따사로운 햇살이 전신을 감쌌다.
“이곳인가?"
바위를 평평하게 잘라 깐 거대한 연무장이 있고 그 뒤로 고색창연한 그러나 늘 관리에 신경을 쏟은 듯 정갈하게 보이는 툴은 전각이 보였다. 우측에는 정면의 전각보다는 작지만 역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전각들이 즐비했고 좌측에는 전각들 의에 석양을 바라보며 한담을 나누기에 적당한 정자들과 작은 연못들이 자리해 있었다.
백천휘는 가벼운 감회에 점은 듯 정면의 전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옥청궁이라. 우상! 사부께서 부숴놓았다던 그 옥현전이 저곳이겠지?"
백무강이 허리를 접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전대 천군께서는 당시 이 연무장을 가득 메웠던 무인들 앞으로 홀로 나서시어 산을 비우라 호령하셨지요.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 쌍수를 떨치셨고 그 순간 저 옥현전의 대들보는 단번에 내려앉아 버렸지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웃음기가 가시기도 전에 파랗게 질렸던 천하무인들의 그 얼굴들이......"
“그래. 그랬을 거야. 그래서 저 전각만 유독 새것 갈아. 보수하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백천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 백의인들이 성지를 밟은 순례자들처럼 경건한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
옥청궁의 분위기는 산의 기운과는 달리 깔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썰렁했다. 달포 전, 청성파 사람들은 산을 비우면서 느꼈던 슬픔이 하늘을 닿았을 것임에도 옥청궁 구석구석을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떠난 듯했다. 바람에 실려 온 나뭇잎사귀들만 연무장 위를 뒹굴 뿐, 대체로 정갈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썰렁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곧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인가?"
백천휘는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옥현전의 이십여 장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돌려 주변을 들러보고 다시 옥현전의 지붕 위쪽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산의 정상 바로 아래쪽에 자리한 또 다른 전각군들을 바라보던 그가 좌상 백문정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제들의 위폐는 이곳에 봉안(奉安)하는 것이 좋겠어."
백문정이 조금 놀란 듯한 눈으로 옥현전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이 옥현전 말씀이오니까? 이곳은 천군께서....."
백천휘는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난 저기 저 상청궁에 머물겠네. 본 교의 제자들이 늘 지나다닐 이곳 옥청궁의 중지는 오늘을 위해 죽어간 형제들인 차지하는 것이 옳아. 이곳을 승천당(昇天垈)으로 쓰게."
순간 좌상 백문정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있던 수뇌진 모두가 허리를 접었다.
“천령지계로 앞서 간 형제들이 천군께서 내리시는 하해와 같은 배려에 감읍할 것입니다."
백천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백문정의 말에 답하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포를."
활인교의 뒤를 따르던 백의소년이 들고 있던 지함을 열어 백의도포를 꺼내 들고 다가왔다. 소년은 조심스럽게 도포를 펼쳐 백천휘가 입기 쉽게 도왔다 백천휘의 앞쪽으로 움직인 소년인 무릎을 꿇고 도포의 앞섶을 단정하게 여며주었다.
백천휘는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들어 주고 백문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슬슬 과거의 이름을 되찾아야 할 것 같은데?"
백문정이 허리를 접으며 대답했다.
“친북의 무리들부터 정리하고 민심을 안돈시킨 후가 좋지 않을까 생각하옵니다."
“그래? 그럼 그리하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난 무극과 함께 잠시 다녀오겠네."
백문정은 백천휘가 갈 곳을 짐작하는 듯 따로 행선지를 묻지 않고 허리를 접었다.
백천휘는 백무극에게 따라오라 말하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옥청궁을 벗어나자마자 백천휘는 뒷짐을 쥔 채 소나무 숲 위쪽으로 솟구쳤다.
뒷짐을 지고 있으니 서두르는 것은 아니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천휘는 한 번 몸을 날릴 때마다 십오여 장을 나아갔다. 그것도 나무가 느낄 새도 없이 오직 한 치의 솔잎만이 잠깐 허리를 접는 사이에 연속해서 자리를 옮겨 나갔다.
산허리를 돌아 북향에 이르렀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옥룡봉(玉龍峰)과 하선봉(下仙)峰) 사이의 골짜기에 이르는 순간 백천휘의 뒤를 묵묵히 띠라가던 백무극이 안색을 흐렸다. 그때 백천휘가 멈춰 섰다.
“저곳이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백무극은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선기 가득한 청성산에 저렇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백무극의 말 그대로였다. 바람도 불지 않을 것 갈은 깊은 골짜기 속, 그곳은 나무도 없고 그늘져 어두우며 칙칙하게 느껴지는 바위들만 가득한 험지였다.
백천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부도 처음 봤을 때 깜짝 놀랐었다 그러나 천하만물에 음양이 따로 있는 것이 있더냐? 청성산 또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저러한 곳을 일러 친옥지지(天執之地)라 하지. 산이 신기를 발하도록 악기를 모아 가두고 순화시키는 곳이야. 저러한 곳에서 사람이 산다면 채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 버릴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가습이 답답하고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플 것입니다. 악귀나 되어야 머물지, 사람이 어찌 저런 곳에서 살겠습니까?"
백천휘는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산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한참 동안"
“예? 누굽니까?"
백천휘는 대답 대신 엉뚱한 말을 했다.
“천 년 전, 우리 승천도가 개조의 종지를 잊고 방탕함에 빠져 몰락했을 당시에도 신심 어린 사람들은 있었다. 개조를 처음부터 따랐던 복룡회의 후인들이었지. 탐욕의 시대에 의인들이 소외되는 것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역사. 뜻은 있으되 힘이 없었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대천사로 내정되셨던 백철의 조사를 모시고 세상의 이목으로부터 벗어나셨다. 너도 알다시피 당시 그분들께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힘을 모아보려 했으나 힘 있는 자들이 원하는 것은 꼭두각시 적통(滴統)뿐. 그분들은 결국 어린 조사를 모시고 운남에 자리 잡아 승천도의 종지를 받들며 조용히 살았다. 가진 건 없지만 평화로운 삶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삶도 초부로 살 때의 이야기. 세월이 흘러 사람이 많아지고 마을이 커지자 여러 가지 갈등들이 표출되었다. 묘족에게 쫓기고 백족과도 싸웠다.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피를 흘렸지. 그때 우연히 한 권의 책자가 백라촌에 흘러들어 왔다. 그것이 바로 개조의 언행을 기록해 놓은 천인승천록(天人然天T錄)이었어. 오백 년 전의 일이었다. 백라촌 사람들은 선조들에게 들었던 과거의 영화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부터 백라촌 사람들은 청성산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청성산에 유진(遺眞)을 남기신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지. 그러나 찾지 못했다. 이 작은 산을 무려 삼백 년 동안이나 이 잡듯 뒤져 놓고도 유진은 커녕 수도하신 장소마저 찾을 수가 없었다. "
백천휘가 잠시 말을 끊는 순간 백무극이 눈을 치뜨고 천옥지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설마 저곳에?"
백천휘는 다시 미소를 드리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백여 년 전, 네 태사조되시는 분께서 마침내 발견하셨다. 뒤지지 않은 유일한 저곳에서."
“하! 모든 분들이 설마 하셨군요. 제자라도 그리 생각했을 것입니다. 개조께서는 신선지도를 추구하시던 분. 선기 맺힌 곳에서 수도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저런 곳에서......"
백무극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백천휘가 말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겠지? 가자꾸나."
백천휘는 내리꽂히듯 천옥지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치 위에서 아래로 뚫린 동굴과 같았다. 두 사람은 악룡의 이빨같이 툭툭 튀어나온 바위들을 밟고 사십 장이나 내려가서야 바닥에 내려섰다.
백무극은 진저리를 쳤다. 생각과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어둡고 습하고 답답했다. 추위라고는 모르고 살았건만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벌레조차 살지 못할 공간인데도 등에서 벌레들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백천휘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저곳이다 "
백무극은 백천휘의 손끝을 따라갔다. 동굴이 하나 있었다. 백천휘가 걸음을 옮겼다. 백무극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할 수 없이 따랐다.
칙칙하고 어두운 동굴에 들어서자 백무극은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를 일으키고 안력을 돋웠다. 다행히 몇 발 내딛지도 않았건만 끝이 보였다.
분위기는 차치하고라도 참으로 초라한 동부였다. 깊이는 기껏 해봐야 삼 장. 안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가부좌 틀기에 적당한 석단 하나와 침상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긴 석탁 하나 그리고 비어 있는 돌 책장뿐이었다.
“이백 년 전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석단 위의 검은 뼈들과 책장의 죽간들이 없다는 것뿐이다. "
말을 마친 백천휘는 빈 석단을 향해 허리를 접고 예를 올렸다. 백무극도 즉시 예를 올렸다. 백천휘는 예를 끝내고 백무극을 바라보며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너도 앉아라."
백무극은 장년인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장년인이 웃으며 물었다.
“답답하지?"
“예. 당장 나가고 싶을 정돕니다."
“그래. 나가야겠지. 허나 그전에 네게 할 말이 있구나. 우선 그 석탁을 자세히 살펴보아라."
백무극은 의아한 눈빛으로 장년인의 미소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살펴볼 것도 없이 그냥 먼지 낀 석탁일 뿐인 탓이었다. 하지만 장년인이 계속 눈짓하자 백무극은 할 수 없이 석탁을 살폈다. 그러나 역시 별다를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장년인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던 백무극이 급히 석탁 위로 눈길을 들렀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석박을 더듬어 먼지를 훑어냈다.
“모든 것이 미혹(迷惑)이었다."
손가락으로 눌러 쓴 것이 확실한 음각의 글씨가 있었다. 그러나 의미는 짐작할 수 없었다. 백무극은 다시 장년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백천휘는 의혹뿐인 백무극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짐작컨대 이곳은 개조께서 도를 깨치신 곳이 아니다. 이조(二祖)께 모든 것을 맡기시고 돌아와 말년을 보내신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자는 개조께서 우화등선하신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말년을 보내시다니요? 무엇 때문에? 더구나 미혹이라니요? 도대체 무엇이 미혹이라는 말입니까?"
“나도 잘 모르겠구나. 몇 가지 짐작되는 바는 있으나 설마 하는 중이야. 그 짐작이라는 것들마저도 지금의 네 경지로는 이해할 수 없을 터, 굳이 말하지 않으련다."
백무극은 좀 더 자세한 답을 듣고 싶었으나 백의장년인은 그 이상의 대답을 주지 않을 기색을 보였다.
“사부님!"
“무극! 수련하여라. 당분간 싸움은 없을 터. 선기 가득한 청성에 왔으니 우선은 네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아라."
백무극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분간 소강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백천휘가 마음을 읽은 듯 쓰게 웃었다.
“놈! 또 곤륜을 생각하고 있구나. 그 아이가 그리 마음에 걸리느냐?"
백무극은 백천휘의 웃는 눈을 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만 감아도 절로 생각이 나는 녀석입니다. 그놈은 괄목상대(刮目相對)가 무슨 뜻인지를 제자에게 알려주려고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일단은 뿌리라도 잘라놓아야......"
백무극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백천휘가 눈을 감고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굴을 뜨는 것 또한 백무극이 바라던 바였기에 그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백천휘는 뒷짐을 쥔 채 동굴 밖으로 나섰다.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천옥지지에서도 파란 하늘은 보였다. 백무극은 잘게 끊어서 들이마셨던 공기를 한 번에 내뿜었다.
백천휘가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무극! 넌 정녕 승천도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믿느냐? 정녕 민선지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백무극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 백천휘 앞으로 돌아갔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부님께서는 태사조의 꿈을, 사조의 희생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사부님을 믿고 따르는 궁도들의 노력과 희생을 헛되다 하십니까, 지금? 제자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의 꿈과 이상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백천휘는 고개를 돌려 화난 듯한 그리고 열정으로 채워진 백무극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담담히 미소 지었다.
“좋은 눈이다. 내 눈도 한때 그러했지. 나 또한 네 나이 때는 의심이 없었다. 허나 그 눈이 개조께서 승천도를 여실 때 세상을 바라보시던 그 눈은 아닐 것이다. 넌 지금 패왕(覇王)의 눈을 가지고 있어. 부정하느냐?"
백무극은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치떴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조께서 승천도를 여실 때와는 세상이 다릅니다. 이기심과 탐욕이 저마다 도(道)의 이름을 빙자하여 판치고 있습니다. 일단은 깨부수고 뒤엎어놓아야 합니다. 패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모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 터, 사부님은 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백천휘는 백무극의 도발적인 언사를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고개를 저었다.
“너에게 내가 그리 나약한 인간으로 비춰졌더냐? 아니다. 백정휴 조사 그분과 우리가 다른 인간임을 말하는 것이다. 개조께서 승천도를 여실 때는 세상이 시끄러웠다. 오늘날과는 달리 천하는 여러 나라로 쪼개어져 있고 백성은 끊이지 않는 전란으로 고통받았다. 홀로 도를 얻어 독야청청하기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도를 전하여 만민과 함께 복락을 누리겠다는 뜻으로 승천도를 여셨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다르다.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관리들은 있을지언정 전란으로 헐벗고 굼주린 사람들은 별로 없다. 승천도로서의 삶은 금욕 그 자체. 누가 있어 지금 누리고 있는 삶보다 힘겨운 삶을 살려 하겠느냐? 지금의 네가 늘 낮은 곳으로 임하여 사셨던 조사의 삶을 견딜 수 있겠느냐? 너나 나나 조사처럼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구나."
백무극은 답하지 못하고 속마음을 읽으려는 듯한 백천휘의 눈을 피했다.
‘목적을 이루는 것과 이상을 이루는 것은 다른 것이라 말씀하시는가? 그런가? 과연 내가 어부로 초부로 살아갈 수 있는가? 일단 이루고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왜? 왜 사부님께서는 이 시점에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모두 거두고 여기서 멈추자는 말씀이신가?'
백무극은 마음속 혼란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으로 백천휘를 응시했다. 백천휘는 그 눈을 외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했다.
“민선지도는 이상에 불과하다. 인간이란 어려움은 쉽게 나눠도 복락을 함께 누리기는 힘든 존재, 나약하고 이기적인 그리고 유혹에 약한 존재다. 구원은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할 때 할 수 있을 뿐, 타인을 구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천하도처에 피를 뿌리고 그것을 밟은 채 민선지도를 이루는 얼은 더 더욱 불가능하지. 하물며 상대가 도적이 아니라 세상이 바르다고 규정하고 있는 인간들임에야...... 무극!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그만두자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솔직해지자는 것이다."
백무극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저뿐만이 아니라 사부님과 사조님 그리고 태사조님까지 모두 위선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풋! 아닌 것 같으냐? 네 태사조께서, 네 사조께서 이곳에서 얻은 것을 궁도들과 나누시면서 무공만은 전하지 못하게 하신 뜻이 무엇이겠느냐? 나누어준다면 백라천궁의 힘은 단숨에 천하를 뒤엎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데 왜? 불신에서 오는 두려움 탓이다. 또다시 천병들이 천사보다 강한 힘을 얻는 역사가 되풀이될 것을 두려워하신 탓이다. 개조의 뜻을 순수하게 따르던 이들마저 대부분 그분이 은거하신 후에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패도의 길을 가면서, 따르는 이들이 끝내 충성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지 않느냐? 그런 속내를 감추고 민선지도를 외치는 우리는 위선자임에 틀림없다."
백무극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욕망을 끄집어내었다. 그랬다. 그의 스승에게 바란 것은 천하를 평정한 일대천군. 그리고 그 스스로에게 바란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이대천군이었다.
그것은 만민의 복락과는 거리가 먼 자리었다. 금욕하고 스스로를 희생하여 백가 성을 얻으려는, 그래서 내생에는 천군의 좌우에 서서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려 하는 모든 백라천궁의 궁도들이 염원하는 자비로운 천군의 모습이 아니었다. 또 다른 황제의 자리, 피를 뒤집어쓰더라도 세상을 오시하는 자리에 앉은 천군이었다.
백무극은 처음으로 왜 천사가 아니라 천군이라 칭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개조의 유진을 얻은 태사조의 속내 또한 백무극 그와 별다르지 않았던 것이리라.
백천휘가 심유한 눈빛으로 백무극의 눈을 응시했다.
“이제 알겠느냐? 나는 인간이 능력만큼 욕망을 추구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만인혈(萬人血)을 요구한 역사 속의 그 어느 제왕이 위선자가 아니었더냐? 그들 모두 입으로는 명분을 말했지만 가슴으로는 욕망에 충실했다. 무극! 욕망을 인정하고 자신에게만은 솔직해져라."
백무극은 고개를 숙이고 낮게 말했다.
“사부님! 모르겠습니다. 대의명분을 버리고 궁도들에게 무어라 말할수 있습니까?"
“후후후, 굳이 말 할 필요 없다.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세상을 지배할 수는 있지만 혼자 가질 수는 없는 것. 그들이 억눌려 살아왔던 세월을 보상받기 원한다면 뜻을 이룬 후에 남는 것을 나누어주면 될 일이다. 내생의 복락이 아니라 현생의 복락을 안겨주면 되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백무극이 얼굴을 들었다. 백천휘는 백무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강해져라. 네가 추구하는 세상은 대다수의 인간들이 원치 않는 세상. 잠깐 뜻을 이룬다 해도 곧 만발이 있을 것이다. 네 자신이 강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어. 그래서 내가 늘 네게 수련하라 이르는 것이다. 알겠느냐?"
백무극은 의혹 이런 눈으로 백천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말씀 안에 사부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정념 그러한 뜻입니까?"
“개조와 우리가 다른 인간이듯이 너와 나도 서로 다른 인간이다. 너는 분명 패도를 추구하지만 나는 아직 내 갈 길을 정하지 못했다. 내가 앞장섰더라면 벌써 끝났을 일을 지금껏 좌상에게 일임하고 방관만 한 까닭이 바로 내 갈등에 있다. 한 단계, 단 한 단계만 넘어서면 모든 갈등이 풀리고 내 갈 길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어렵구나. 진전이 없어."
백무극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사부님! 그것은 아니 될 말씀이십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백천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놈! 네 녀석은 속내를 너무 빤히 드러내 보여."
“사부님 앞이니까요."
백무극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동시에 미소 지었다 백천휘도 웃으며 몸을 돌렸다.
‘미혹이었다. 하! 사조와 사부께서 발견하지 못한 그 한마디가 어찌하여 내 눈에 띄었더란 말이냐? 보지 못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주저하지는 않았으리라. 후회를 해도 이루어 놓고 했으리라. 그 숭고했던 삶마저 미혹이었다 여긴다면 방관만으로도 나는 이미 순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백천휘는 내심 한숨을 내쉬고 뒷짐을 쥔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가 단번에 천옥을 빠져나가는 동안 백무극은 자신이 그토록 답답해하던 천옥 안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멍한 눈으로 백천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우!"
운녹산은 읽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문득 정신없이 달려왔던 지난 두 달 동안의 일을 회상했다.
금사강의 치욕을 당한 것이 두 달 전의 일. 그리고 사천무림련이 통째로 당가타에 들러서 진혼재(鎭魂齋)를 올리고 천북으로 돌아온 것이 달포 전의 일이었다.
그 달포 동안 평소의 운녹산이라면 일희일비(一喜一悲)했을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했다.
당가 비전의 제조 설비들을 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폐허 속에서 다량다종의 독과 상당량의 비축암기들을 수거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적도들이 비록 지하의 암기고와 독고를 발견했으나 끝내 열지 못하고 몰살당해 버린 것이었다.
이른바 독룡출세(毒龍出世), 천뢰여우(天雷如雨).
당가의 비독(秘毒) 삼장무인연(三丈無人煙)이 암기고와 독고의 안팎을 가리지 않고 퍼져 나가고 동시에 통로의 상하좌우에서 수천 대의 천뢰전이 수시로 발사되니, 생존자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리라.
당가가 속 빈 강정이 되지 않은 것은 크게 기뻐할 일이었지만 운녹산은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만사에 희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적도들이 예상과는 달리 패악을 저지르지 않고 민심을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현상자와 공명 선사 등은 그들이 양민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일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평소의 운녹산이라면 누가 군림하더라도 손해만 끼치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민심을 확인하는 순간 속이 불편했으리라. 그러나 그것 또한 그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운녹산은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수시로 떠오르는 얼굴 때문이었다. 그 외면하는 눈초리와 쓸쓸하면서도 부드러운 미소 때문이었다.
비록 아들인지는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어쨌든 그가 마지막에 운청산에게 했던 말들은 이십오 년 전 아버지 운검정이 그에게 보냈던 그 무참한 언사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운청산은 괘념치 않는다는 눈빛으로 그를 무시했고 오히려 기묘한 미소로써 그를 비웃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몰랐다 해도 운청산은 그가 아버지인지 알고 있었건만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중에 들은 말에 따르면 운청산의 활약은 참으로 눈부신 것이었다. 그것이 운녹산의 마음을 더욱더 괴롭게 했다. 차라리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여인네와 노닥거리다가 책임을 저버렸으면 좋았으리라. 과거 그가 실패했던 것처럼 잘못된 처지였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편했으리라.
그러나 그동안 운청산이 보인 활약들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했고, 운강인의 생명도 구했으며, 많은 사천무림련 사람들을 구했다. 그것도 모지라 단신으로 사천의 적도들을 지체시켰으며 금사강에서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적의 술법마저 깨뜨려 풍전등화 지경에 이르렀던 사천무림련을 살렸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오히려 꺼림칙하게 여겨 외면했던 아들이 아비의 존재를 확인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공을 세우고 온갖 고초를 다 겪고도 끝내 사랑을 잃고 눈마저 잃어버린 그 순간, 운녹산은 아들의 심장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웃었다. 그리고 외면했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외면당한다는 것, 그것은 운녹산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일이었다. 두 번 참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그토록 주목받으려고 노력해 봤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지는 얼굴 하나, 잊고 있던 이청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외면하는 순간 운녹산은 만사에 의욕을 잃고 말았다.
그때부터 운녹산은 한동안 모든 일을 건성으로 처리했다. 그런 그를 단호한 어조로 꾸짖은 이가 있었다. 바로 운교인이었다. 정신 차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을 천북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 넋을 놓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야단맞았다. 운녹산은 그때서야 겨우 마음을 추슬렀다.
비록 천북까지 밀려나긴 했지만 전황 자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패퇴가 아니라 후퇴,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의 상황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운가는 청성과 아미 그리고 당가에 비해 전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만약 지금부터 일이 제대로 풀린다면 운가의 입지는 청성을 제치고 사천제일세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운녹산은 생각했다. 어차피 잊고 있던 아들이라고. 곤륜으로 돌아갔으니 별 탈 없이 살 것이고 자신은 애초에 만나지 않았던 것으로 여기면 된다고.
그때부터 운녹산은 정열적으로 일에 몰두했다. 그는 칠곡산을 지나 검각산 칠십이봉에 이르는 잔도에 사람을 배치하는 일부터 검각산에 이르는 몇 안 되는 험로를 막는 작업까지 직접 진두지휘했다. 마치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몰두했다. 그리고 사흘 전에야 겨우 본가로 돌아왔다.
운녹산은 쉬지 않았다. 본가로 돌아온 즉시 해밀각에서 작성한 모든 보고서들을 검토하느라 사흘을 모두 투자했고 오늘이 그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많이 피곤하십니까?"
운녹산은 우측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에 위안받았다. 옆에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인 운교인은 언제나 말없이 그의 옆에 있었다.
운녹산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피로가 역력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걱정 가득한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운교인은 운녹산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탁자로 다가가 화로에 얹어놓은 주전자를 들었다.
운녹산은 차를 준비하는 운교인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직 가르칠 것이 많은 아들이라고만 생각했건만 최근 들어 운교인이 크게 느껴졌다. 아마도 꾸지람을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저 녀석을 마음으로부터 의지하는 건가? 벌써?'
운녹산은 실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운교인이 찻잔을 뚜껑을 덮어 그에게로 가져왔다.
“고맙구나."
운녹산은 운교인에게 미소 지어 보이고 내려놓았던 보고서를 다시 들었다.
운교인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일 하시지요."
운녹산은 찻잔 뚜껑을 열어 향을 음미하고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보던 것만 마저 보고 잘 테니 너도 가서 쉬어라."
운녹산이 입술을 찻잔에 대면서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자 운교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허리를 접었다. 그리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그때 운녹산이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았고 운교인은 그 소리에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운녹산이 눈을 부릅뜬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얼 보시고 그리 놀라십니까?"
운녹산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운교인은 다시 책상 밑으로 다가가 보고서를 들었다. 보고서는 동정호에서 있었던 목가의 치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운교인의 외가가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상황을 기록한 것이라 개인적으로는 가습이 아팠지만, 그로서는 보고서와 사천무림련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었다.
운교인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운녹산이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늦은 감이 있다만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최근에 가장 고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더냐?"
운교인은 운녹산의 웃음 띤 얼굴을 잠시 외면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음에 답했다.
“세를 늘리는 문제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홍라교가 청해에서 물러났다 하니 화산과 종남의 도움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네 외가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무당이었어. 그러나 이 보고서대로라면 무당 또한 반드시 힘을 보탤게야."
운교인은 다시 보고서를 살펴보고서 역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느냐? 거기 목가를 혼자 상대하다시피 했다는 그 흑의사내에 관한 대목을 읽어보아라."
운녹산은 운교인이 서류를 다시 검토할 시간을 주고 그가 고개를 들자 다시 말했다.
“오행마궁의 사람이다. 당연하지. 아무리 수전이었다 하지만 장강수로연맹의 힘만으로 목가를 그리 만들 수는 없는 일이야. 그걸 지금껏 간과하고 있었으니...... 후!"
운녹산은 피곤함과 유쾌함 그리고 아쉬움이 범백이 된 얼굴을 가로저었다. 그때 운교인이 말했다.
“그렇군요. 그래야 말이 되겠습니다. 이번 금사강에서 저들이 쓴 그 무기는 혼강룡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무림에서는 오직 장강수로연맹만이 사용합니다. 그것을 적도들이 썼으니 수로연맹과 적도들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이제야 그 생각을 하게 되다니......"
운교인 역시 운녹산처럼 고개를 저었다. 운녹산은 자신과 똑같이 말을 흐리고 고개를 젓는 아들을 보면서 실소했다.
“이럴 때가 아니구나. 련주와 호법들께 연락하여라."
운교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 자시 중반입니다."
“벌써 그렇게나 되었어?"
운녹산은 다시 실소하고 목을 뒤로 꺾었다.
“알겠다. 내일 아침에 하자꾸나. 나도 이제 눈 즘 붙여야겠다."
운교인은 웃으며 허리를 접고 방을 나갔다. 홀로 남게 된 운녹산은 닫힌 방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없으니 금방 허전해지는군. 역시 늙었는가? 이럴 때 강인이 녀석만 마음을 잡는다면 좌우로 든든할 것인데......"
운녹산은 말을 해놓고 실소했다.
“그런 뜻이었나?"
운녹산은 먼 옛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왔었지. 떠들썩했고 화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모두 생신을 축하드리던 그 자리에서 아버님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씀하셨다. 말없이 듬직한 첫째와 속이 깊은 둘째 그리고 쾌활한 셋째가 등 뒤에 나란히 서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하셨다."
문득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잊겠다 해놓고 또다시 떠올린 얼굴 때문이었다.
“청봉! 아니, 청수야. 미안하구나."
운녹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자고 싶었다. 그러나 정신은 오히려 또렷해져만 갔다.
운녹산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주먹을 굳게 쥐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운녹산!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빨리 늙는다. 늙지 마. 아직 때가 아냐."
운녹산은 잠자리에 드는 대신 책상 뒤로 손을 뻗었다. 도가(刀架)에 걸려 있던 애도 청룡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