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79)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상자가 안도한 눈빛으로 물었다.

“반나절이라 하셨는데 인력은 얼마나 필요하시오?”

“인력이라 함은 빈도를 도와 힘을 쓰는 사람이 아니오이다. 빈도를 보호하고 적을 상대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생로와 사로의 갈림길에서 변화의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상대는 수월하게 우리를 공격할 수 있소이다.”

순간 현상자가 간만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표가 필요하시다 이 말씀이시구려. 그 일이라면 빈도가 기꺼이 맡겠소이다.”

그때 신수사태가 물었다.

“빈니가 진법에 대하여 문외한이라 어리석은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묻겠습니다. 혹시 밑에서부터 불을 놓는다든지 나무를 베어나가면 아니 되는 일입니까?”

당유연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건법진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리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누가 애를 써가면서 포진하오리까? 불을 놓는 순간 순풍이 역풍으로 변할 것이고 나무를 베어내는 순간 환몽이 찾아올 뿐만이 아니라, 그것 자체로 산을 죽이는 행위가 됩니다. 근원을 없애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당유연이 잠시 고민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물었다.

“허면 진 밖에서 쏜 화살이 진 안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그건 가능하오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진법의 기초는 배열로써 환각이나 착시를 일으키는 것이오. 그런데 화살은 눈이 없고 생각도 없으니 영향을 받을 리 만무하지요. 다만 우리가 진 안을 엿볼 수 없으니 화살을 쏜다 해봐야 소발로 쥐 잡으려는 격이겠지요.”

당유연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공격을 가하면 순풍이 역풍이 된다 하셨소이다. 화살에도 반응하겠습니까?”

건법진인은 고개를 저었다.

“진이 일단 설치가 되면 생명력을 갖소이다. 그러나 관심사는 오직 자신의 생존뿐. 자신의 배열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진안에서는 바람의 흐름이 바깥쪽과 다른가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법진인 또한 의아함을 드리운 채 일단 대답했다.

“다를 것 없소이다. 바람은 대지의 숨결. 진 안 또한 바람이 흘러 다니지요. 그래야 진의 근원이 되는 대지도 숨을 쉴 테니까요.”

당유연은 만족했다는 듯 입 꼬리에 미소를 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좌중을 둘러보며 장담하여 말했다.

“내일 파진(破陣)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 당가가 먼저 손을 쓰겠습니다. 진을 파해할 능력은 못되나 진 안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순간 현상자가 눈을 치떴다.

“설마 독을 쓰시려는 것은?”

당유연은 고개를 저었다.

“바람에 따라 인근의 피해가 막심해질 수도 있는 일인데 어찌 이 사람에게 섣불리 독을 쓸 담량이 있겠습니까? 내일 설명 드리지요.”

신수사태와 공명선사가 안심했다는 듯 놀란 가슴을 달랬다.“푸르르릉!”

숙영지의 외각 초소들을 따라 걷던 운청산이 말의 투레질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텅 빈 초지 한 가운데 말들이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쉬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오십여 마리. 그 가운데는 당가가 엄중한 기밀을 유지하던 수레들을 끈 말들도 있고 련의 무사들의 음식과 잠자리를 실은 수레를 끈 말들도 있었다. 그러나 운청산은 어떤 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고생 끝에 낙이 있는 셈인가? 지난 나흘간 고생하더니 참으로 편안해 보이는구나. 많이 먹고 푹들 자거라.”

운청산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번을 서던 정명단의 삼향 사조 조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도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번을 서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보아야 할 곳들을 살폈다.

왼쪽의 말들을 제외하면 눈앞 백여 장 안쪽은 시야를 가리는 바위 하나 없는 넓은 초지였고 그 뒤로 멀리 달빛이 수면을 반으로 가른 이해호와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는 점창산이 보였다.

“밤에 보니 낮과는 그 정취가 사뭇 다르구나. 달과 호수와 산이라!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무정하다 할 정도로 아름답군. 하늘은 모르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가?”

운청산은 호수를 등지고 반대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외면이 아니라 무관심인가? 아니면 구경꾼에 불과한 것인가?”

구름 한 점 없어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이 초롱거리고 있었다. 그는 별들 하나하나가 마치 무정하고 장난스러운 신들의 눈동자인양 원망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별들은 여전히 빤짝일 따름이었다.

운청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고서 다시 걸었다. 정명단이 관할하는 번초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그에게 주어진 개인 막사로 돌아갔다. 나올 때는 목소리들이 두런두런 들리더니만 지금은 대부분 잠들었는지 들리는 소리라고는 풀벌레 소리와 소곤거리는 목소리 몇 줄기뿐이었다.

“별 일 없던가?”

운청산은 그의 막사 옆에 자리한 이정의 막사를 바라보았다. 이정이 미첨도를 손질하다가 멈추고 운청산을 보고 있었다.

운청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정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피 흘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밤이라는 걸 저쪽도 아는 모양입니다.”

이정은 기름 묻힌 면포와 미첨도를 두 무릎 위에 올려두고서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럴까? 잘 모르겠는 걸. 살다보니 느낀 거네만, 낭만을 안다 하고 미의식이 있다 하는 자들이 오히려 위험해. 일시적인 감정의 충족을 위해 이성을 도구로 사용하는 자들이 허다하더군.”

운청산은 웃으면서도 이정의 말에는 수긍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소유와 착각하는 것입니다. 꽃이 아름답다고 꺾어서 생명력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습니까? 때때로 궁금해집니다. 누군가는 분명히 이 싸움에 의미를 두고 있겠지요? 도대체 이 싸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피 흘릴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이정은 씁쓸하게 웃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이 싸움에 부여한 애초의 가치는 돈이었네. 물론 지금은 보은(報恩)이지. 그러나 이 싸움의 주체들이 가지는 이유는 더 가지려 하거나 가진 것을 지키려는 것이겠지. 그 어떤 명분을 붙이더라도 결국 전쟁의 이유는 그뿐이야.”

“의외로 비관적이시네요. 그럼 협의나 대의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까?”

이정은 운청산의 치뜬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들렸는가? 아니야. 나도 숭고한 뜻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있다고 믿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너무 적어. 난 숭고한 뜻을 지닌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다른 인간들의 망각이라는 습성과 나약하고 천박한 심성을 불신할 뿐이네. 그 수단이 가장 원시적인 무력이라면 더더욱 믿지 못하지. 무기를 휘두르는 순간 나약한 인간은 야수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어. 그 무기는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여겼던 이성의 틀을 단번에 깨어버리지.”

이정은 쓸쓸한 눈빛으로 고소를 지었다. 운청산은 그의 모습에서 고통과 회한을 느꼈다. 그는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리라. 그러니 얼굴에서 그토록 뚜렷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리라.

운청산은 지금껏 이정이 보였던 언행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는 단 한 번도 대의니 명분이니 협의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소소한 인연을 중시했고 자신을 지키는데 주력했다.

운청산은 이정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만약 그가 숭고한 뜻을 지닌 인간이라면 그래서 인간같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옆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고뇌를 가진 인간, 그것을 드러내는 인간이었기에 벽을 허물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한편 이정은 쓸데없이 심란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려다가 운청산의 따뜻한 시선을 느끼고 피식 실소했다.

“어허! 어쩌다가 이렇게 심각해졌지? 청산! 전장에 나와 생각이 많은 것은 곤란해. 오직 한 가지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버겁다네.”

이정은 기름면포와 미첨도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이미 반들거리는 미첨도의 도신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더러워진 도신을 보는 것은 참으로 괴롭더구먼. 마치 중심을 못 잡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이 도신으로 직접 사람을 베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더럽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이 더러운 탓이거니 싶어서 말이야. 이놈에게는 어쩐지 미안해. 가끔씩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고 우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단 말이야. 자네도 그런가?”

운청산은 갑작스럽다는 듯 생각에 잠겼다. 마치 종길로부터 꿈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때처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아예 등에 진 검을 풀어내려 검을 뽑았다. 월광을 받은 검이 서늘한 광채를 발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검을 따로 떼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손에 대한 느낌이 없듯이 검에 대한 느낌도 없어요. 다만 요즘에는 검과 바람과 저 자신이 함께 할 때마다 편해지고 느긋해지지요.”

이정이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면포를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운청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생 무인인가? 아니야. 무인의 마음은 검의 본성을 닮아가지. 갈고 닦을수록 점점 더 예리해지고 차가와져. 그런 면에서 보면 자넨 검사가 아니라 검선을 꿈꾸어야 할지도 몰라. 평소의 내 느낌도 그래.”

운청산은 검을 검집에 넣고서 겸연쩍은 듯 미소 지었다.

“설마요? 그런 쪽으로는 꿈꾸어 본 적도 없습니다.”

이정이 의외라는 듯 눈을 치떴다.

“전혀?”

“예. 단 한 번도.”

이정은 운청산의 담담한 눈빛으로 직시하다가 실소했다.

“하하! 이제야 알겠구먼. 자네가 사랑에 빠져서 그런 거야. 틀림없어.”

“에이! 또 놀리시는군요.”

이정은 미첨도를 들고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놀리는 게 아니야. 옛 생각이 나는구먼. 부러우이.”

운청산도 일어섰다. 이정이 이어 말했다.

“자네도 들어가서 좀 쉬게. 한숨 꼬빡 했더니만 개운하네 그려. 지금부터는 내가 순찰을 돌 테니 눈 좀 붙이게.”

운청산은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린 후에 멀어져갔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천막에 머리가 닿을 것이 틀림없는 낮은 막사였고 두 다리 쭉 펴고 누우면 발끝과 머리끝이 닿을 정도로 좁은 막사였다.

운청산은 막사의 한 구석에 개어진 얇은 면포를 바닥에 깔고 막사 중앙의 지지대에 등을 대고 앉았다. 사람들이 이른 저녁부터 춥다고 투덜댔지만 바람막이에 불과한 막사 안에 들어서니 안온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때 운청산의 왼쪽 어깨에 앉아있던 운경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언제 봐도 좋은 사람이야. 드러나는 성격은 나를 닮았고 감추어진 속내는 현산 형과 같은 느낌이다. 슬픔과 나약함을 품고 있다지만 그렇다고 절대 회피할 사람은 아니야. 좋은 인연을 맺었구나.’

운청산도 미소 지어 동의했다. 그 순간 운추산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잘 테냐?’

운청산은 잠시 생각을 한 후에 고개를 저었다.

‘지금 기분으로는 잠을 청해봐야 올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운공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운경산과 운추산은 웃으면서도 얼굴을 찌푸렸다. 안에서 겪는 괴로움을 익히 아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운청산의 연공을 방해할 생각을 품지 않았다.

‘알겠다.’

두 영혼이 다시 운청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운청산은 가부좌를 튼 채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호흡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휘류류류류류류!

태풍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바라본다고 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구멍이 벌름거리는 것을 눈 둥그렇게 뜬 채 구경했건만 날이 갈수록 눈뜨기가 힘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회로 들어오는 기운들은 구멍으로 바로 빨려 들어갔으나, 지금은 운현산 등이 머무는 공간 전체를 휘감듯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구멍 역시 늘어났다가 오므라드는 정도가 아니라 공간을 지배하는 기운처럼 거세게 휘돌고 있었다. 그리고 구멍의 크기 역시 현저하게 커졌다. 이제는 혼령 둘을 합쳐 놓은 것만큼 커져서 모두를 삼켜버리려는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운현산 등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가늘게 치뜬 채로 구멍을 바라보았다. 천지의 기운을 마음껏 들이키는 구멍 아래쪽으로 기운의 강이 세차게 흘러가고 있는데 한 번 빠지면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빨려 들어가는 기운이 점차 더 거세어져 갔다. 운현산 등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선풍에 휘감겼다. 여섯 혼령들은 본능적으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버텼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으으으으! 안되겠다. 경산! 추산!’

운현산이 생각을 포효하듯 흘려내자 그들의 머리 위쪽에서 두 개의 손이 내려왔다. 운현산과 운명산은 동시에 손을 놓고 그 두 개의 손을 잡았다. 순간 여섯 혼령들이 선풍을 거스르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언제 폭풍이 몰아쳤냐는 듯, 다시 나온 세상은 아름다웠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운청산이 운공하는 모습뿐인데 그를 감싼 영롱한 푸른빛이 얼마나 황홀한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단하지요?’

운경산의 생각을 접한 운현산은 처음으로 빛으로부터 눈을 떼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영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한 마디로 경이.

운청산의 머리 위에서 만개한 꽃처럼 팔방을 점한 운현산 등은 운청산의 정수리에서 뿜어져 나와 그의 전신을 둥근 공처럼 감싸는 푸른 기운의 원구에 눈을 빼앗겼다가 곧 다른 광경을 발견했다.

‘저것인가?’

운현산이 주시하자 다른 이들도 모두 그들이 빠져나온 공간인 백회혈을 주시했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하얀 빛이 막사의 천장을 뚫고 바로 백회혈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단순히 이어진 느낌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푸른 원구가 청산의 공력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흰 빛은 하늘의 기운, 바로 말로만 듣던 천계의 기운이리라. 양신을 보게 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구나. 기뻐해야 할 일인가? 아니면 우려해야 할 일인가?’

그때 운명산이 미소 지으며 생각을 전했다.

‘당장 우려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잘못하면 막사가 터져버릴 것 같구나.’

모두가 뒤를 바라보았다. 운청산의 기에 밀린 막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누군가 발견한다면 눈을 의심해야 하리라.

운추산이 즉시 막사를 벗어나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주변에서 오가는 사람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빛은 막사의 입구를 통하여 계속해서 새어나가고 있었다.

운추산이 우려하는 순간 부풀어 올랐던 막사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새어나오던 빛도 누그러져 가고 있었다.

운추산이 다시 들어갔을 때, 운청산은 어느새 푸른 원구를 거두고 마지막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백회를 살펴보았다. 천계의 기운도 점차 가늘어져 이제 한 줄기 실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곧 사라졌다.

‘후! 우린 들어가마.’

운현산 등이 고개를 젓고서 다시 백회혈로 스며들어갔다. 그들의 공간은 다시 평온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들을 빨아들일 것 같이 껄떡대던 구멍은 포만감에 젖은 아이처럼 가늘게 호흡하고 있었다.

‘휴우! 처음에는 구멍 난 방죽에서 물 새어 나오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아예 방죽이 터져버린 격이구나. 앞부터는 청산이 운공할 때마다 아예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운현산의 생각을 전하는 순간 운명산이 구멍의 가에 걸치는 무릎을 보면서 웃었다.

‘흘러들어오는 기운이 정말 거세었다. 그 누구더라? 그때 그 양반 말이야. 그렇지. 용문수로표국의 표두 장오라 했지. 그 사람 표현처럼, 샛서방 잡은 남정네 몽둥이 휘두르듯 정말 세차더구만.’

‘또 밖을 의식했구나?’

운현산이 웃는 듯 꾸짖는 듯 생각을 전하자 운명산이 실소하며 대답했다.

‘청산이 혹시 입맞춤이라도 할까봐 조심은 하는데, 예전처럼 기운을 빨아들일 일이 없으니 정신이 분산되더라고.’

여섯 영혼들이 동시에 미소 지었다.

운청산은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눈을 떴다. 비개인 날 저녁에 반짝이는 북극성 같은 그 눈빛을 본다면 누구라도 빼앗고 싶으리라. 그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온전한 눈빛으로 되돌아갔을 때, 운경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상쾌한 모양이구나?’

운청산이 기쁨을 숨기지 않고 생각했다.

‘할아버지의 검을 수련한 이후로 늘 마음이 포근합니다.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들더군요.’

운경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혹시 양신을 느끼느냐?’

운청산은 명료하지 않은 느낌으로 대답했다.

‘공력은 확실히 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검환을 육 장에 이르도록 펼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양신이라면? 글쎄요. 조짐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붉은 빛을 띠고 있던 하주(下珠)가 이제는 확연하게 금빛을 띠고 있습니다. 오늘은 강렬하던 금빛이 투명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보이더군요.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변화가 이는지 모르겠습니다. 할아버지의 검 탓일까요?’

운경산은 귀곡산인의 안배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을 고쳐먹었다. 운청산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만에 하나 원망하여 지금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잘 모르겠구나. 살아생전에 내 성취는 지금 너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가 어찌 알겠느냐? 아직 시간이 있는 것 같으니 내일을 대비해서 일단은 좀 쉬어 두어라.’

운청산은 운경산의 따뜻한 미소를 고맙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경산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운청산은 벌렁 드러누웠다. 이제 모두가 잠들었는지 소곤대는 소리마저 사라지고 풀벌레들만 제 세상을 만난 듯 울어대고 있었다.

운청산은 두 손을 깍지 끼어 머리에 댔다. 운공으로 피로를 몰아낸 뒤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마치 음악소리처럼 정겨워 눈을 감은 채로 화음에 몰두했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풀벌레가 잠시 숨을 죽이는 것 같더니 곧 휘파람 소리와 어울려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운청산은 정작 자신이 휘파람을 분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운청산의 가슴에 앉아있던 운경산과 운추산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에 도취되어 있다가 갑자기 그 정적을 깨는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운추산이 막사를 벗어났다. 다시 돌아온 그가 운청산의 이마를 자극했다.

운청산이 눈을 뜨자 운추산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벌렸다.

‘우린 들어가 있으마. 내일 새벽에 보자꾸나.’

운청산은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영혼이 그의 정수리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때 막사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이정인가 하여 고개를 비틀어 본 운청산이 두 눈을 치떴다. 그리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 막사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사람이 오른손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쉬!”

당우리였다. 그녀는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비 맞은 참새처럼 애처롭게 떨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그녀가 그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여기를---?”

“쉬! 추워요.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요.”

당우리는 안겨 있으면서도 몸을 비틀어 최대한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그녀의 눈물 글썽한 얼굴과 춥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운청산은 뭐라 말도 못하고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휴! 일단은 넘어갔는데---.’

당우리는 운청산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 고소를 지었다.

그때 운청산은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 탓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도대체 그 눈물 어린 얼굴이 무엇이라고 입도 벙긋 못하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돌려보낼지, 당유연에게는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다른 이들에게는 뭐라 해야 할지, 모든 것이 답이 없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이 한숨이 되어 새어나왔다. 순간 당우리가 다시 가슴 속으로 들어갈 듯 얼굴을 비볐다.

운청산은 당우리의 등을 쓰다듬던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물었다.

“왜 왔소?”

순간 당우리가 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운청산을 바라보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운청산은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입술을 꿈틀거리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운청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다. 당우리는 급히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추고 다시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정수리에 입술을 대고 기다렸다.

당우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다시 물어보려 했지만 눈물어린 얼굴을 떠올리니 차마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운청산은 할 수 없이 질문을 바꾸었다.

“오는데 힘들지는 않았소? 어떻게 들어왔소?”

그때서야 당우리가 얼굴을 들어 처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힘들지는 않았어요, 외롭고 무서웠지만. 들어오는 건 쉬웠지요. 순찰 도는 이 대협을 만났거든요. 막사도 쉽게 찾았어요. 당신 말고는 아무도 불 수 없는 휘파람 소리가 날 인도했지요.”

대답을 마친 당우리는 금새 다시 운청산의 품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후유! 왜 왔소?”

운청산의 질문에 당우리는 아차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에 그렇게 술술 대답해 놓고 곤란한 질문이라고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우리는 한동안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어요.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왔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부담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날 보내지 말아요.”

운청산은 다시 눈을 감았다. 이미 부담이 되고 있었다. 책임을 진 입장, 당우리만을 지켜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지켜야 하지 않는가.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얼굴에 대놓고 어찌 화를 내고 다그칠 수 있겠는가. 결국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하지만 저도 자신을 돌볼 수 있어요. 제발 아버지에게 말하지 말아요. 그냥 곁에 있게 해주세요.”

운청산은 대답 대신에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부둥켜안았다. 당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 운청산이 말했다.

“우리! 그대를 어찌 하면 좋겠소? 그대가 바로 내 꿈인데 어찌 이 전장에 내팽개쳐 둔단 말이오?”

당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품속을 파고들 따름이었다. 얼굴이 부딪치고 가슴이 부딪쳤다. 전신을 빈 틈 하나 없이 밀착시켰다. 두 사람 사이는 한줄기 공기조차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운청산은 두 손바닥으로 온기를 뿜어 당우리의 등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바짝 붙어있던 두 사람 사이가 조금 벌어졌다. 그리고 새근대는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운청산은 오른손을 풀어 두 사람의 사이를 더 벌리고 당우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들어 있었다. 평소처럼 평온한 얼굴이 아니라 기묘한 얼굴이었다.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고 입가에 안심한 듯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운청산은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눈 주변을 닦아주고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 맞추었다. 그리고 다시 오른손을 원래의 위치로 돌렸다.

풀벌레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당우리의 평온한 숨소리가 장단을 맞추었다. 운청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당우리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따뜻하고 포근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운청산에게는 그 어떤 때보다도 불편한 밤이었다. 마음도 불편하고 몸도 불편한, 그러면서 기묘한 기분이 드는 밤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을 숙부들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밤이기도 했다.당우리의 숨소리는 여전히 차분하여 아직 더 잘 것이 분명한데 운청산의 손은 차갑고 저리다 못해 간지러웠다.

운청산은 슬며시 상체를 세워 밤새도록 당우리의 머리에 깔려있는 왼손을 살폈다.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변해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근육이 크게 움직이지 않도록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큼!”

이정이었다. 운청산은 낮은 목소리로 나간다 말하고 오른손으로 당우리의 머리를 받치고 왼손으로 바랑을 끌어 그녀의 머리 밑에 받쳤다. 그리고 바닥에 깔린 면포를 반으로 접듯이 들어 당우리를 덮어주었다.

운청산은 검을 들고 다시 당우리의 자는 모습을 살폈다.

‘나는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잘도 자는구나. 지금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놈도 우리처럼 늘어지게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운청산은 검을 한 차례 쓰다듬고서 등에 멨다. 밖으로 나가니 이정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중앙막사로 모이라는군.”

운청산은 쑥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이정과 함께 걸으며 왼팔을 꺼떡거렸다.

“팔베개?”

이정이 옛날에 다 해본 가락이라는 듯 웃으며 묻자 운청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이 다시 물었다.

“밤새도록?”

운청산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은 혀를 빼어 물고 고개를 저었다.

“휘유! 난 그렇게까지는 못한다.”

운청산이 문득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돌려보내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정이 얼굴의 반을 일그러뜨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지. 의원으로 자청하여 왔다 생각하고 일단 산 아래까지는 동행하게. 당가의 수레에 실은 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산으로 가지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니 반드시 누군가가 남게 될 거야. 거기에 남겨두고 가면 자네도 안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순간 운청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정이 웃으며 혀를 찼다.

“쯧쯧쯔, 밤새도록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가? 똑똑한 친구가 그럴 때는 어찌 그리 간단한 해답도 찾지 못하고---. 쯧쯔. 하기야 남의 문제는 쉽게 답을 찾아도 막상 자신의 문제가 되면 당황하는 게 사람이지.”

운청산은 또 다른 생각도 했음을 상기하고 이정 몰래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가 운경산 등이 의식을 밖으로 돌려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당황했다.

그때 운경산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가 웃으며 입을 벌렸다.

‘남자는 다 그런 거야. 창피할 것 없어.’

운청산은 붉은 얼굴이 목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이정이 그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술 마신 얼굴을 하고.”

운경산이 미소를 남기고 눈앞에서 사라졌다. 운청산은 당황하여 할 말을 찾다가 문득 수뇌진의 회합 막사를 발견하고 말했다.

“저기지요?”

이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서 막사를 향해 걸었다.

막사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대개가 젊은 사람들로 사방당의 책임자들, 즉 송월자를 비롯하여 운교인과 당명천 그리고 복호신장 대원은 물론 나라연의 모습도 보였고, 그녀가 있는 곳이면 늘 그렇듯이 운강인과 당명인도 있었다.

이정과 운청산이 합세하자 사람들이 소리 없이 수인사를 보냈다. 특히나 당명천과 당명인은 운청산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냈고, 운교인과 운강인은 의례적인 그러나 예의바른 인사를 보냈다. 그리고 아미파의 대원은 깊은 감회가 담긴 눈빛으로 이정에게 공손하게 합장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바로 나라연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간단하게 목례해 보이고 운청산을 외면했다.

운청산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나라연을 만나게 되면 당우리의 일을 상의해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녀를 감싸고 있는 서늘한 바람 탓에 입도 벙긋 못할 형편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때 두 사람 뒤로 벽송과 벽인이 도착했다. 인사는 오갔지만 이정과 운청산이 왔을 때와는 달리 서먹한 느낌이 주변을 감쌌다. 운청산이 안쓰럽게 여길 정도로 차갑고 어색한 분위기였다.

‘점창파 때문에 동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후! 이건 뭔가 잘못 됐다. 자청하고 나선 일이니 희생은 감수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일파의 장문인 대우는 못해줄망정 이렇게 홀대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저번에 아버지도 그리하더니만 같은 젊은 사람들마저도 이리 대하니 누구라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렇다고 자신의 집을 찾아주겠다고 모인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도 없는 입장이니 참으로 안쓰럽구나.’

그때 막사에서 수뇌진들이 다 함께 나왔다. 운청산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포권을 취해 읍하고서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차갑고 어색한 침묵은 깨어졌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대오를 갖춰 서고 그 맞은편에 수뇌진들이 늘어선 가운데 현상자가 먼저 부드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대충 예상하고 있다시피 오늘 산을 공략할 생각이네. 단순한 싸움으로 생각지 말고 그대들의 미래를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주기 바라네. 복수심이나 무모한 혈기를 앞세우지 말게. 냉철한 이성으로 계획에 따라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 주실 바라네. 천존께서 그대들을 보호하시길.”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젊은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접자 현상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뒤이어 나선 이는 운녹산이었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젊은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번과는 다른 싸움이 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지금 창두봉 초입에는 결계과 진이 쳐져있다. 즉 싸움은 산의 중턱이 아니라 초입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일단 상관을 지나면 당가가 먼저 나선다. 그 후 여기 건곤파의 두 분 진인과 연주 이하 우리 수뇌진 그리고 군룡전이 먼저 진에 진입하여 길을 열고 그 뒤로 그대들이 산에 오르게 될 것이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서 모두 합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난번과는 달리 힘을 나누지 않고 일제히 정상을 공략한다. 연주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무모하게 나서지 말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지도 말라. 이상.”

운청산은 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소리에 놀라서 건법진인과 곤술도인을 응시했다. 그 순간 운청산은 기이한 시선을 접했다. 노을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곤술진인이었다. 무표정했지만 그 눈은 마치 운청산의 머리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 것도 없는 그의 두 어깨를 바라보고 있었다.

운청산은 놀라서 곤술도인을 마주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눈앞에 운경산이 나타나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알아보는 것 같다. 우리 잠시 들어가 있으마.’

운청산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곤술도인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시선이 어깨에서 정수리 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은은한 노을빛을 띠던 그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운청산이 그를 외면하고 다시 운녹산을 보았을 때, 운녹산은 이미 뒤로 물러나고 대신 당유연이 앞으로 나섰다.

당유연은 느리게 시선을 움직여 젊은이들을 훑어보았다. 그의 눈과 운청산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당유연의 입술 끝이 미약하게 치켜져 올라갔다. 그러나 금새 눈길이 지나가고 입술의 움직임도 사라졌다.

“가져오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가 소속 군룡전 사람들이 몇 개의 지함을 들고 젊은이들 앞에 나타났다. 지함은 당가의 청룡당을 제외한 각 당의 당주들과 이정 그리고 벽송에게 건네졌다.

당유연이 말했다.

“그 지함들 속에는 본가의 단환이 들어있네. 각단과 당의 사람 수에 약간의 여분을 더한 것이니, 간직하고 있다가 상관에 이르렀을 때 나누어 주게. 무엇인가는 묻지 말게. 몸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란 사실만 밝혀 두겠네. 단환의 복용 시기는 내가 녹기(綠旗)를 쳐들었을 때이니 상관에 이른 후에는 나를 주시하고 있도록. 이상.”

당유연이 물러서자 운녹산이 다시 나서서 해산을 알렸다. 젊은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는 순간 수뇌진들이 막사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운청산은 뿔뿔이 흩어지기에 앞서 눈이 마주친 당명인, 운강인 등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먼저 보고 있던 나라연이었다.

목례는 운청산이 먼저 했다. 나라연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만날 때마다 드문드문 미소를 보여주었던 나라연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서늘하다 못해 차가운 안광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한기가 느껴져 다가가지 못할 정도로 차가운 눈빛, 벽을 쌓는 듯한 눈빛 그리고 은근히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나라연이 먼저 돌아섰다. 운청산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가로젓고서 이정의 뒤를 따랐다.

‘왜 저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 그때 그 일 때문인가? 주제넘은 말을 해서?’

운청산이 흠칫하여 다시 나라연을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후! 모르겠군. 나중에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뭐해? 어서 가세.”

이정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운청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정으로부터 지함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나란히 걸었다.

“이보게! 나 잠깐 보세.”

등 뒤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정과 운청산이 동시에 돌아섰다. 곤술도인이었다.

“저희들 말씀이십니까?”

이정이 정중하게 묻자 곤술도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일 없고, 옆의 젊은 친구 말일세.”

이정이 곤술도인과 운청산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지함을 넘겨받았다.

“먼저 가네.”

운청산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곤술도인을 바라보았다.

“하교하시지요. 진인!”

곤술도인은 운청산의 전신을 훑어보다가 그의 눈을 직시하고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자넨 뭔가?”

누구냐가 아니라 뭔가라고 물었다. 운청산은 그 한 마디 질문으로 그가 운경산과 운추산을 알아봤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나 일단은 시치미를 뗐다.

“정명단의 부단주 이청산입니다.”

곤술도인은 눈빛마저 차갑게 식히며 말했다.

“그걸 묻는 것이 아님을 알 터인데?”

그 순간 운청산의 눈앞으로 운경산과 운추산의 등이 나타났다.

곤술도인은 그들이 확연하게 보인다는 듯 눈동자를 굴린 후에 운청산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너의 정체가 무엇이건데 인간의 영을 수호정령으로 부리고 있는 것이냐?”

운청산으로서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곤술도인은 다그치는 기색이 역력한데, 운경산 등을 설명하려 하면 쓸데없이 말이 길어질 것이고 또 굳이 밝히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곤술도인은 성격이 급했다. 운청산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는 순간 그 투명할 정도로 하얀 왼손을 들었다.

운청산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마치 누가 뒷덜미를 잡아끄는 듯 두 발이 땅에 닿은 채로 삼 장의 거리를 물러선 순간, 곤술도인의 손에서 아무런 형체도 없는 둥그스름한 기운이 전광석화와 같이 운청산을 향해 다가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기파만 따진다면 곤술도인은 운청산의 일수조차 버티지 못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나온 기운은 운청산의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차고 빨랐다.

‘이런! 방심했다. 기파로 봐서는 기운을 삼 장까지 뻗어낼 정도는 아니었는데---.’

운청산은 발목을 비틀어 순식간에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 또한 방심이었다. 마치 항룡유회를 펼친 듯 곤술도인의 기운은 방향을 바꾸어 운청산에게로 달려들었다.

두 번 세 번을 달아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곤술도인의 기운은 악착같이 운청산을 따라왔다.

‘이런! 차라리 손을 쓰는 건데---.’

실수였다. 같이 손을 써서 폭음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나설 것이고 그리되면 구구하게 설명하고도 오해를 풀지 못할 것 같아 그냥 피한 것인데, 곤술도인의 능력은 운청산의 예상을 크게 상회하고 있었다.

그가 방향을 바꾸기를 다섯 차례, 그러나 곤술도인의 기운은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유령처럼 따라왔다. 가만히 서 있는 그대로 기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니 고금에 보기 드문 장법이었고, 그 거리로 따져도 십여 장을 넘으니 운청산을 능가하는 능력이었다.

운청산은 할 수없이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알아보는 것을 보니 말도 통할 것이다. 나가거라.’

운현산의 말에 운경산과 운추산은 즉시 백회혈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곤술도인이 운청산을 다그치면서 왼손을 뻗었다.

두 영혼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곤술도인의 장심에서 튀어나온 것은 무공이 아니었다. 길이 다섯 자가 넘을 것 같은 백호령이었다.

백호령은 세상에는 들리지 않는, 그러나 두 영혼들에게는 분명히 들리는 포효를 터뜨리며 운청산에게로 달려들었다.

‘시험이다.’

운경산이 곤술도인을 바라보며 생각을 전했다. 운추산이 살펴보니 곤술도인은 운청산이 아닌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운청산은 지면을 맴돌면서 계속 피해나가고 있는데 자신들은 도울 길이 없었다.

‘저놈은 우리와 같은 종류구나. 아! 이럴 때 검이 있다면 좋을 텐데---.’

운경산이 자신을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백호를 노려보았다. 그때 그의 내뻗은 손에서 하얀 광채가 튀어나왔다. 길이라고 해봤자 한 뼘도 못되지만 그것은 분명히 검이었다. 운경산이 놀라서 운추산을 보는 순간 운추산 역시 손을 뻗었다. 운경산과 마찬가지로 하얀 검이 튀어나왔다.

‘같은 류다. 부딪쳐보자.’

두 영혼이 백호를 향해 튀어나가며 검을 내뻗었다.

운청산은 눈을 치뜨고 앞으로 튀어나가는 운경산과 운추산을 바라보았다. 눈부신 빛이 번득이고 악착같이 쫓아오던 곤술도인의 기운이 처음으로 주춤했다.

운청산도 멈췄다. 두 영혼이 곤술도인의 투명한 기운 주변을 감돌며 한 뼘이나 될 정도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빛이 쉬지 않고 번득였다. 그러나 역부족인 듯 두 영혼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이건 뭔가? 그렇다면 저 도인의 기운 역시 같은 숙부들과 동류인가?’

운청산은 놀라서 곤술도인을 응시했다. 곤술도인이 차갑게 눈빛을 굳힌 채 그의 기운과 두 영혼이 뒤엉키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누가 볼 수만 있다면 고금에 드문 구경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누구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멀리 떨어져서 가만히 서 있는 곤술도인과 운청산 뿐이었다. 혹시라도 영감(靈感)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기운이 뒤엉켜 있다는 정도나 느낄 수 있으리라.

운청산은 다시 두 영혼을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밀린 두 영혼들은 어느새 운청산의 세 자 앞까지 밀려나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눈앞으로 또 다른 두 개의 영혼이 같은 길이의 검을 쥔 채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두 영혼이 정면에서 맞서고 나머지 두 영혼이 좌우에서 검을 휘두르니 곤술도인의 기운이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급격하게 밀린 후, 눈 깜짝할 순간에 곤술도인의 장심으로 빨려 들어갔다.

네 영혼이 아무 것도 들지 않은 모습으로 운청산에게로 돌아왔다. 그때 곤술도인이 차가운 기운을 버리고 부드러운 눈빛을 드리우며 다가왔다.

“자네 혹시 내 백호를 보았나?”

목소리마저 부드러워진 것을 확인한 운청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일종의 장법인 줄 알았습니다. 그저 차가운 기운만 느꼈지요.”

곤술도인이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운청산의 눈을 직시했다가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네 영혼들을 살폈다.

“그럼 자넨 술사가 아니란 말인가?”

운청산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일이군. 그럼 자네 어깨 위에 있는 네 신명들은 무엇인가? 정녕 자네가 부리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자네를 다그친 뜻은 혹시라도 자네가 정체를 숨긴 술사로 상대의 첩자인 줄 알았기 때문이네.”

운청산은 곤술도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적의가 없을뿐더러 영혼들까지 빤히 보고 있는데 말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운청산은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곤술도인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오른쪽 땅바닥을 두드렸다.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앉은 운청산은 곤술도인에게 모든 사실을 간략히 알려주었다.

“어허! 수령신의 저주라? 그런 일이 실제로 있다니---. 거기다가 입을 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하다? 허허허! 정말 기이하구먼. 헌데 곤륜의 귀곡 어르신께서 자네를 가르치셨다?”

운청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곤술도인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영혼들을 살폈다.

“귀곡 할아버지를 아십니까?”

곤술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지. 그분이 건재하시다니, 아직은 용호파의 비전이 끊어진 건 아니로구먼. 홍복이로세. 그런데 어째서 자네를 더 가르치지 않으시고 세상에 내어놓으셨는지 모르겠구먼. 내 보기에 자네의 자질은 기환선을 이루기에 충분한데 말일세.”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이 끊어졌다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곤술도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때 운경산이 눈앞에 나타나 입을 벌렸다.

‘우리가 원하니 손에 검이 나타났다. 우리가 과연 무공을 펼칠 수 있는지 물어다오.’

운청산은 운경산의 말을 전했다.

“영혼 역시 기라고 할 수 있으니 당연히 펼칠 수 있네. 다만 사람의 육신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 내 백호와 같은 동류의 영기라면 보았다시피 상대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람이라면 그 기운을 조금씩 죽일 수 있을 것이네. 빙의하여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뜻이지. 그러나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려면 수련이 필요하지. 허! 그나저나 자네가 부러우이.”

곤술도인이 처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운청산이 눈으로 의문을 표시하자 곤술도인이 설명했다.

“내가 백호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였는지 아는가? 벌써 사십 년일세. 사십 년 전, 어린 백호가 죽는 순간 그 영을 보듬어 내 왼손에 심었네. 내 공력의 반을 백호의 영력을 키우는데 사용했어. 이제 사악한 귀신을 잡아먹을 수준으로 키웠건만 자넨 가만히 앉아서 인간을 수호정령으로 얻었지 않은가?”

운청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곤술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지 모르겠으나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운경산 등은 그리 편한 존재들이 아닌 탓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구구하게 말할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말을 아꼈다.

“그런데 산룡의 결계는 먼저 풀어주기로 하셨습니까?”

곤술도인이 눈을 치떴다.

“자네도 봤는가?”

운청산이 싱긋 웃으며 좌우 어깨에 시선을 주었다. 곤술도인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 할 수는 없을 것 같네. 진이 있다했지? 음양팔괘포천대진이라네. 결계를 먼저 해체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아.”

“포천대진? 아! 그럼 점창은 당분간 일어서지 못하겠군요?”

“그렇게 봐야겠지. 차라리 도관을 옮기는 게 나을 게야.”

운청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책무가 있어서 그만 가봐야겠습니다.”

“음! 내가 괜한 의심을 해가지고 너무 오래 붙잡아 두었지? 일이 끝나고 보세.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생각해 두었다가 그때 물어보게나. 그리고 그대들도.”

곤술도인은 마지막 말을 하면서 운청산의 어깨 위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운청산이 포권을 취해 읍해 보였다.

“진인!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많으니 저와 제 숙부님들에 대해서는 함구해 주시겠습니까?”

곤술도인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말이 많았네만, 나도 말 많은 건 질색이야.”

운청산은 첫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담백하게 미소를 짓는 곤술도인을 바라보며 안심했다.

“장인어른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를 걱정해서 찾아왔다 했소.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고 해도 나 역시 그대가 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소. 그대에게 신경쓰다보면 나는 내 책무를 다할 수 없지 않겠소? 함께 가는 건 산 아래까지요. 거기서 기다리시오.”

운청산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요청이 당우리에게는 참으로 곤란했다. 그러나 그녀는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산 아래 있으면 당연히 아버지한테 들키잖아? 어쩌지? 못됐어, 정말!’

당우리는 이정과 함께 앞서가는 운청산의 등을 향해 눈을 흘겼다.

“강 아저씨! 정말 운 가가 무공이 강한가요?”

문취옥이 실소하는 순간 강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 소저! 왜 취옥 언니면서 강 아저씨요? 너무 하는군. 나이는---.”

“거기까지!”

문취옥이 강정의 입을 막았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강정이 문취옥에게 눈웃음을 치자 그녀는 슬쩍 눈을 흘겼다가 당우리에게 말했다.

“동생! 한 번도 못 봤나 보네?”

“보긴 봤는데, 혼자 연무하는 것만 봐서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취옥은 미간을 찌푸리는 당우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어디 보자. 어느 정도일까? 정명단 반 합친 것 정도 될까? 그 정도 되겠지?”

문취옥이 동의를 구하자 강정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합친 것만큼의 공력은 안 되지만, 맞부딪쳐 싸우면 아마 청산이 이길 걸.”

당우리가 눈을 치뜨고 뒤돌아보았다. 늘어선 대열은 모두 삼십육 열. 반이면 십팔 열에, 구십여 명이었다. 일대 구십으로 싸워도 지지 않는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와! 정말요? 세긴 세구나.”

문취옥과 강정이 그들 사이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는 당우리를 보면서 미소를 주고받았다.

멀리 상관의 석문이 보였다.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당우리가 대열의 끝에 있던 악동삼을 발견하고는 문취옥에게 소곤거려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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