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79)

*성격이 조금 많이 변한 계기가 있기는 있지요. 중간쯤에 써놓았을 텐데요. 나중에 써먹으려고 숨기고 있다구요.(물론 이렇게 

안 썼지요.^^;;;) 오늘도 조금 나올 겁니다.

*오류신교입니다. 운강인과 운교인의 이름이 바뀌었네요. 이틀 전의 운교인이 오늘은 운강인입니다. -.-;;;

*주름살 문제는 잠깐요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어르신들이 가로주름 행복주름 세로주름 고민주름이라고도 하시데요. 원래 미간에 

잡으려 했는데 거울 보면서 인상을 써보니까 저같이 원만한 얼굴마저도^^;;; 악상이 되더군요. 사실성이 떨어져도 양해해 

주시길...

* 청인자를 사부라 부르는 것은 여행을 하면서 생긴 장사 노하우며 두 사람의 장난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특별히 

정해 놓을 필요는 없겠지요.

*만사불여튼튼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입니다. 많이 어색한가 보네요?^^;;;

*물론 인기도 얻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바라는 것이 있다면, 풍랑님이 십년 뒤에 뽑아서 읽어도 

변함없이 재미있는, 유행타지 않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저금통이 묵직하면 한 이 년 기획하고 한 번 시도해 볼 

텐데요...^^

*일이 권은 다음 주 정도 나오지 않을까 하네요. 괴선은 여섯 권 계획이구요.

*건곤불이기는 오 권 완결입니다.

*윤사월님, 어색하네요. 수정하지요. 

운청산이 연주를 끝냈다. 그 순간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더니만 소매로 눈물을 닦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몇 사람은 넋 나간 표정에서 벗어나 급히 발걸음을 옮겼으나, 몇몇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청인자를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청인자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한세상 사는 동안 뜻한 것 반에 반만 이루어도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허나 그것도 만만하지 않은 것이 세상사.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하고 능히 이룰 수 있는 일에 주력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 세상 편히 사는 첩경임을 안다 해도, 그마저도 

안개가 자욱하여 길 찾기가 어렵구나.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성취할 것인가? 이걸 포기하려니 자식이 걸리고 저걸 

해보려니 부모가 눈물 흘리네. 아! 이때 누가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순간 두 중년인과 세 장년부인들이 결심을 굳힌 얼굴로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청인자의 인생 상담이 시작되었다. 운청산이 지금껏 봐왔던 그대로, 손님이 고민을 풀어놓으면 청인자는 마음을 다독이는 말들로 

그들의 얼굴에 미약하나마 화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사람들이 조금은 안심된다는 표정으로 돌아가니 운청산의 얼굴에도 미약한 

미소가 감돌았다. 

운청산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람들이 아직 둘이나 남아있는데 아까 왔다 갔던 그 험악한 인상의 청년이 십여 명의 

건장한 사내들을 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얼굴에 흉험한 살기를 드리우며 사람들 뒤로 섰다. 운청산이 가만히 살펴보니 가장 중앙에 있는 장년인이 두목인 듯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서너 치나 작지만 다부진 몸에 눈매가 독사처럼 날카로웠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옆의 털북숭이 거한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상담에 열중하고 있는 청인자의 정수리에 대고 막 입을 

열려했다. 

운청산은 남들 모르게 발을 굴렸다. 육척 거구의 사내가 막 소리를 내려는 순간 허공으로 살짝 튀어 올랐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발을 보던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운청산이 다시 발을 굴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수하가 말을 하지 않자 우두머리 사내가 수하를 노려보았다. 그때 운청산이 다시 발을 굴려 우두머리 사내를 

허공으로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운청산은 마치 노래의 박자를 맞추듯 연속해서 발을 굴렸다. 

우두머리 사내가 계속해서 어깨를 꺼덕였다.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까닥거리고 있는 운청산의 발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운청산이 환하게 웃으며 조금 더 세게 발을 굴렸다. 그러자 사내는 한 치가 넘게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거한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의아한 눈빛으로 우두머리 사내를 주시했다.

사내는 즉시 표독스럽게 반짝이던 눈빛을 풀었다. 

그때 운청산이 미소 지으며 독사눈의 사내에게 다가가 포권을 취했다. 

“대협, 며칠 만 머물다가 떠날 생각입니다. 사정 좀 봐주시지요.”

독사눈의 사내가 눈동자를 빠르게 휘돌려 좌우의 눈치를 살피다가 문득 청인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가 바른 청년이로군. 출가인들의 삶이 어렵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네. 내가 비록 금전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으나 아량을 

베풀어 자네 사제들이 성도에 있는 동안은 자릿세를 받지 않을 테니 사부께는 열심히 사시라 하게.”

독사눈의 사내는 바르르 떨리는 손을 들어 운청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운청산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고맙소이다. 대협.”

독사눈의 사내가 두 손을 활짝 펼치며 좌우를 둘러보고 준엄하게 말했다. 

“너희들도 들었지? 가자!”

사내들이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독사눈의 사내를 바라보았지만 사내는 이미 빠른 걸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머지 사내들도 할 

수 없이 독사눈의 사내를 뒤따랐다.

운청산이 돌아서니 인생 상담에 열중하는 듯 하던 청인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운청산에게 미소를 보냈다. 운청산도 웃으며 

다관의 계단 옆으로 돌아갔다. 

운청산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눈물을 흘린 듯, 빨간 눈에 물기가 어린 귀여운 여인이 쪼그리고 앉은 채 운청산을 

바라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운청산은 소녀로도 보이고 여인으로도 보이는 당우리에게 다가가 대뜸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웃지?”

순간 당우리가 미간을 좁히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 운청산을 노려보았다. 

운청산은 당우리의 표정이 갑자기 표변한 것을 보고는 의아한 눈빛을 드리웠다. 그러나 머리 쓰다듬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때 머리 위쪽에서 낮은 교소가 터져 나왔다. 

“언니!”

당우리가 머리 위에 운청산의 손을 얹어둔 그대로 목을 비틀어 다관의 이층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운청산도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에 나라연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민 채 웃고 있었다.

나라연은 손으로 입술을 가리고는 창문 안으로 사라졌다. 당우리는 다시 운청산을 노려보며 낮게 소리쳤다. 

“이 손 안 치워요?”

“응? 싫어? 미안!”

운청산이 손을 치우자 당우리가 벌떡 일어나서 두 손을 허리춤에 대고 말했다. 

“이봐요? 당신 정말 뭘 모르는군요?”

“응? 뭘?”

운청산의 표정이 하도 순진하여 화를 내던 당우리도 차마 더 이상 화를 내지 못했다. 당우리는 다시 쪼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 산에서 살았죠? 강호초출이지요? 그죠?”

운청산이 고개를 끄덕이자 당우리는 한숨을 내쉬고 운청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럴 줄 알았어. 내가 한 가지 가르쳐줄게요. 앞으로는 절대 다 큰 처녀 머리는 쓰다듬지 말아요. 그거 큰 실례라구요. 

나 지금 화났어요.”

“다 큰 처녀? 몇 살인데? 열여덟?”

운청산이 웃으며 묻는데도 당우리는 다시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하! 처녀 나이를 스스럼없이 묻다니---. 스물 둘이에요. 그리고 반말도 안돼요.”

당우리는 야무진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 검지를 얼굴 앞으로 가져가 흔들어 보였다. 그때 청인자가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복채를 

주머니에 넣으며 일어섰다. 

“청산! 큰 실례를 했구나. 사과드려라. 처자! 우리 청산이 산에서만 살아 남녀간의 예의에 어둡소이다. 양해하시오.”

청인자는 당우리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고서 운청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름기가 차니 속이 안 좋구나. 잠시 다녀오마.”

청인자는 허리춤을 잡아당기며 당우리를 지나쳐 다관 안으로 들어갔다.

당우리가 운청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운청산이 멀뚱멀뚱 당우리의 얼굴을 마주 응시했다. 당우리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청산에게 눈짓했다. 

“무슨 뜻?”

“사부님 말 못 들었어요? 사과해야지요.”

“아! 미안하오.”

운청산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러나 당우리는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것으론 부족해요.”

운청산이 난감하다는 기색을 드러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말끝을 흐리고 당우리를 바라보는 그 얼굴이 당우리를 어린아이 취급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때서야 

당우리는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말했다. 

“한 곡조 더 불어주면 사과를 받아 줄게요. 단, 아까같이 눈물 흘리게 만들면 평생 저주할 거예요.”

운청산은 어색함을 떨쳐버리고 빙긋 웃으며 당우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단서를 달면서 나름대로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데 오히려 너무나 귀여워 또 다시 손을 뻗고 싶었던 것이었다. 

‘꼭 호연을 보는 것 같구나. 이크!’

“뭐해요?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당우리의 화난 얼굴을 보면서 운청산은 취령을 꺼내어 입에 대었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낮고 따사로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는 격정도 없고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었다. 꽃향기 가득한 벌판에서 

부드러운 달빛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한 평화로운 소리였다. 

당우리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고, 지나치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절로 가벼워졌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니 다관 안에서 소음에 호응하는 현금소리가 들려왔다. 

당우리는 갑자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현금소리도 사라지고, 옥소소리마저 사라졌다. 

그녀는 꽃밭에 누워 전신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달빛의 애무를 즐길 따름이었다. 

운청산이 옥소에서 입을 떼었다. 당우리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당우리의 미소어린 입가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채 미치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렸다. 

당우리가 눈을 떴다. 그녀는 꿈꾸는 듯한 몽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하아! 무슨 곡이에요?”

“화월교유(花月交遊)!”   

당우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번 눈을 끔벅이며 운청산을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이내 

반짝이는 눈을 되찾은 당우리는 운청산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한 곡으로는 용서가 안 되네요.”

운청산이 눈을 뚱그렇게 치떴다가 문득 그녀의 머리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머리 한 번 쓰다듬게 해주면---.”

운청산은 내심 스스로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청인자와 경의상을 제외하고 지금껏 당우리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직까지 호연을 떠올리고 있는가, 자문해보아도 그건 아니었다. 이미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입술을 만져보고 싶을 만큼 친근하게 느껴졌다. 

당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운청산을 노려보았다. 운청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하얗게 치뜬 눈을 많이 보아왔지만 거기서 받는 느낌은 대개가 경멸과 차가움이었다. 그러나 당우리로부터 받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귀엽기만 할 것 같았다. 좋은 느낌이었다. 처음 대하면서도 왠지 생소하지 않은, 꼭 전에 

경험해 봤던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좋아요. 딱 한 번이에요.”

운청산은 당우리의 머리에 서슴없이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 손바닥 가득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모두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운청산은 아쉬움을 삭이며 손을 뗐다.

“어떤 곡을 원하오?”

운청산의 물음에 당우리가 생각에 잠겼다. 그때 당우리의 뒤에서 당명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야, 그만 가자꾸나. 아버님, 걱정하실라.”

당우리가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당명방 뿐만이 아니라 운교인과 나라연이 함께 서 있었다. 당우리는 아쉬운 눈빛으로 

운청산과 당명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한테 한 곡 빚졌어요.”

운청산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라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훌륭한 무공에, 문득 금정의 밤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소리였어요.”

운청산은 원래의 무표정을 되찾아 가볍게 목례했다. 그 순간 당명방과 운강인이 미약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운강인이 말했다. 

“좋은 소리를 내더군. 즐거웠네.”

운강인은 품속에서 종이를 한 장을 꺼내어 운청산에게 던졌다. 운청산은 지도가 되어 날아오는 종이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가볍게 받아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받아들고 보니 열 냥짜리 전표였다. 

운강인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제법이군.”

운청산은 전표를 든 채로 운강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운강인의 얼굴에서 세월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운강인의 얼굴을 알아본 운청산은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보세요, 운 소협. 무슨 짓이에요?”

당우리가 운강인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운청산이 당우리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이미 지난 일, 떠올릴 필요 없지 않은가?’

운청산은 경의상의 묘에서 만났던 한 사람의 눈물 젖은 미소와 따뜻하게 느껴지던 손길을 떠올리며 진정으로 마음 편하게 

웃었다. 

운청산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운강인에게 말했다.

“잘 쓰겠소.”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던 듯, 이번에는 운강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운강인은 이내 운청산을 외면하고 나라연 등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나라연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앞서 걸었고 운강인이 따랐다. 그 뒤로 당명방이 당우리의 손을 끌고 걸었다. 

삼 장 정도를 걸어간 당우리가 갑자기 당명방의 손을 슬쩍 뿌리치고 운청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에요. 당우리.”

운청산이 이름을 말하려다가 문득 운강인의 등을 보며 주저했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산이오.”

당우리가 웃으며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이 안 보이는 순간 운청산은 가슴 속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이 느낌은 뭐지? ’

운청산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뒷모습을 보고는 떠올리지 못한 당우리의 얼굴이 나타났다. 보조개 파인 웃는 얼굴과 입술을 

삐죽 내민 화난 얼굴이 교차했다. 운청산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뭐야, 씨팔! 지금 시비 거는 거야?”

운청산은 갑자기 들려오는 사내의 거친 목소리에 눈을 떴다. 

‘내가 지금 왜 이러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야.’

운강인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유 만만한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라연과 관련된 일이라면 

불 같이 화가 났다. 

조금 전 운청산에게 전표를 던진 행위도 그랬다. 그의 옥소소리에 정녕 감탄해 놓고도 나라연이 칭찬을 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치졸함을 드러낸 행위였거늘, 채 스무 발자국도 못 걸은 짧은 시간 만에 또 다시 화를 내고 

있었다. 

운강인은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상욕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검파로 손을 뻗고 있었다. 운강인은 

손가락 끝에 힘을 넣어 애써 손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상대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무례하다. 아녀자의 얼굴을 그렇게 빤히 쳐다보고도 지금 잘했다는 소린가? 사죄하라.”

그러나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소매도 없는 죽의를 입고 도 한 자루를 등에 찬 민머리 청년은 미안해하기는커녕 

피식거리며 운강인을 응시했다. 

“사죄? 혈기 방장한 젊은 놈이 아름다운 여인을 봤다고, 그게 그렇게 잘못된 일이야? 내가 지분거렸어? 손이라도 잡았나? 

본능이잖아? 잠깐! 가만히 보니 당신, 잘 생겼군. 그것도 지독시리 잘났어. 여인들이 당신 얼굴 바라보지 않나? 당신은 

당신 얼굴 바라보는 여자들에게 무례하다고 사죄하라고 그러나? 흠모한다고 말이라도 건네면 죽여 버릴 기세구만.”

“무어라?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사내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운강인 자신도 처음 나라연을 보았을 때 사내와 똑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사내의 행색과 언동이 운강인을 기분 상하게 만들고 있었다. 

운강인은 슬쩍 나라연을 살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때 사내가 말했다. 

“이런 젠장! 놈이라? 언제 봤다고? 오호라. 이제야 알겠군. 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데 건방지게 나 같은 놈이 넘봤다? 

크크크크! 진즉 말하지 그랬어?”

운강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챙!

어느새 운강인의 손에 검이 들려있었다. 

“그만 두세요, 운 소협.”

사내에게 버럭 소리 지르려던 운강인이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렸다. 운강인은 슬그머니 검을 내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 소저, 난---.”

“제 기분은 제가 지킵니다.”

운강인은 서릿발 같은 나라연의 얼굴을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외면했다. 

본능적으로 도파를 잡아가던 민머리 사내가 긴장을 풀고 킥킥거렸다. 

쫙!

“아야!”

피해 볼 사이도 없이 나라연에게 뺨을 내준 민머리 사내는 두 손으로 볼을 잡고 쓰다듬으며 놀란 눈으로 나라연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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