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79)

“불붙여!”

관악이 소리쳤다. 

두둥!

궁수들이 활을 비스듬히 바닥으로 내려 겨누자 궁수 옆에 서있던 이들이 좌우로 팔을 뻗어 화전과 폭뢰전(爆雷箭)에 동시에 

불을 붙였다. 

“쏴라!”

관악이 다시 소리쳤다. 

두두두둥!

북 소리가 급박하게 울리는 순간 궁수들이 허공으로 활을 겨눴다가 일시에 시위를 놓았다. 

퓨퓨퓨퓨퓨퓨퓨퓽!

용왕선에서 시작된 화살 비는 곧 전 선단에서 동시에 토해낸 화살들로 인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날아갔다. 

“정신을 못 차리도록 계속 쏴라!”

두두두두두두두두둥!

대고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면서 궁수들은 쏜 화살이 만들어내는 결과조차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한 번에 

쏟아지는 화살이 무려 오백여 발이나 되는데, 계속해서 쏘아대니 하늘이 시커멓게 변할 지경이었다. 

궁수들을 독려하던 관악이 목가의 선단을 살폈다. 겨우 다섯 척의 대형선이 사십여 척의 소형선의 호위를 받고 있으니 

수로연맹의 선단에 비하면 초라하다 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악은 목가의 선단이 한 자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관악을 더욱 더 조바심 나게 하는 것은 화전과 폭뢰전이 전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쾌청한 하늘을 흐리게 만들 

정도로 끊임없이 쏘아대는데도 불길에 휩싸이는 배는 거의 없었다. 갑판에 서있던 사람들이 교대로 튀어 올라 배에 떨어지기 

전에 화살을 퉁겨냈고, 뜻대로 배에 꽂힌 화살들은 전신을 가리는 방패와 모래통을 든 사람들이 급히 다가가 꺼버렸다. 

관악은 선면에 박힌 화살들이 타오르기 기대해 보았으나 몇몇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꽂히기 무섭게 장대를 휘둘러 

재빨리 걷어내고 있었다. 

물론 폭뢰전이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갑판에 작은 구멍을 만드는 결과일 따름이니 그 또한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불길이 솟아오르는 곳이 있어 살펴보면 소형선 앞쪽에 비스듬하게 달린 커다란 방패가 타오는 것뿐이었다.

효과는 별로 없다하나 어쨌든 일방적으로 맹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은 사실이리라. 그런데 목가의 선단은 반격해오지 않았다. 

오로지 노만 저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다. 때려도 때려도 무표정하게 다가오는 상대를 맞이한 것처럼 관악의 심장은 

오그라들고 있었다.  

관악은 목가선단에서 쉬지 않고 충천하는 도기들을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려 소형선 주변을 살폈다. 지금쯤 

수뢰인들이 근처로 이동하였을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때 소형선에서 사 장에 이르는 협봉검을 지닌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가죽 주머니들이 속속 

떠오르고 곧 소형선 주변의 물들이 붉게 물들었다.

쾅! 쾅! 쾅!

몇몇 개의 혼강룡들이 제대로 점화된 듯 폭발을 일으켰다. 하얀 물보라가 치솟아 오르고 파도가 일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혼강룡들은 대형선에 접근하지 못한 채 애꿎은 물만 뒤흔들어 놓았고, 기껏해야 몇 개의 혼강룡들만이 소형선 몇 척만 뒤집었을 

따름이었다. 

관악은 초조한 눈빛으로 목가선단과의 거리를 눈대중해 보았다. 어느새 칠십여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관악은 물러설 때라고 

판단했다. 

그때 흑면사내가 말했다. 

“수뢰인들을 잠시 물리시오.”

관악은 생각할 틈도 없이 북소리로서 급히 명령을 하달했다. 

흑면사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소선들이 거치적거리는구나. 치우고, 수뢰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피라미 같은 놈들도 잡아.”

순간 어피같이 몸에 딱 달라붙은 옷을 입은 흑의인들이 소리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선수에 선 절영신도 목환승은 수백 개의 화살들이 날아오는데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전면만을 주시했다. 그의 좌우에 서 

있던, 목가의 호법이자 친동생들인 목강승과 목용승이 바쁘게 도를 휘둘렀다. 파란 도기가 일렁일 때마다 시커멓던 하늘은 금새 

하늘 본연은 색깔을 되찾았고, 또 다시 어두워졌다. 

목환승이 거리를 눈대중해보니 칠십여 장 안팎이었다. 사오십여 장만 더 전진하면 될 일이었다. 일전에 참여한 목가 사람들은 

기력 쇠한 노인들과 미숙한 소년들이 다 빠진, 그야말로 정예 중에 정예. 이삼십여 장의 거리라면 부서진 나무조각 몇 개만 

흩어놓아도 건너 뛸 수 있으리라. 

그 다음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양 떼 속에 호랑이를 풀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그것으로 일전은 끝이 난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목환승의 등 뒤에서 팡팡거리는 폭뢰전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갑판에 손상을 입을지언정 침몰할 

위험성은 없는지라, 목환승은 차분하게 시간만 지나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목환승은 뒤늦게 고개를 돌려 갑판 위에 잔뜩 쌓아진 굵은 통나무들을 보았다. 앞이 뾰족하게 깎인 통나무들이었다.

‘저것들을 사용할 시기가 되면 그때는---’

목환승은 다시 전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속도로 무언가가 빠르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오십여 개의 노로 움직이는 배가 겨우 십여 장 나아간 사이에 그 무언가는 어느새 삼십여 장을 움직여 목가 선단의 선두에 

있는 소형선들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촤! 촤! 촤!

물보라가 튀는 순간 물 밖으로 검은 인영들이 튀어 올랐다. 수차 같은 것이 번득이고 목가의 비어인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피를 뿌리며 물속으로 떨어졌다. 다시 물 속에 스며든 흑의인영들이 또 다시 소형선의 뒤쪽에서 튀어 올라 비어인들을 하나씩 

물고 물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종겸! 저놈들을 잡아!”

목환승이 소리치자 목종겸을 비롯한 목가의 십대도객들이 서슴없이 지휘선을 벗어났다. 그들은 지휘선의 주변에 있던 소형선과 

나무파편들 그리고 시체들을 밟으며 이동하여 아직 온전한 소형선 위에 내려섰다. 

촤! 촤! 촤!

또 다시 물보라가 이는 순간 십대도객들이 일제히 도를 휘둘러 오 장에 이르는 도기들을 뿜어냈다. 다섯 명의 흑의인영들이 

피를 뿌리며 물 속으로 빠졌다가 사지를 펼친 채 수면으로 떠올랐다. 

다시 눈을 감은 목가의 도객들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치뜨고 소형선을 벗어나 또 다시 시신들을 밟고 

이동했다. 

푸른 도기들이 수면을 가르고, 핏물이 보글거리며 수면 위로 솟아올라 호수를 오염시켰다. 다시 소형선에 몸을 실은 도객들은 

눈을 감고 물속으로 귀를 기울였다. 

“흐흠! 제법인데.”

흑면사내가 미소를 드리우며 십대도객들의 활약을 칭찬하자, 관악은 순간 오싹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희생은 불가피하다 

하나 수하들의 죽음을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흑면사내의 입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새어나왔다. 관악은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을까 싶어 급히 시선을 

옮겼다. 

몇 척의 소형선들이 물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도객들이 동분서주했지만 미처 잡지 못한 어피인들을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소형선들의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었다. 

“대충 반 이상 줄었군. 수뢰인들이 들어갈 틈은 있을 것 같은데---.”

흑면사내의 말에 정신을 차린 관악이 북소리로 명을 하달했다. 흑면사내가 또 다시 중얼거렸다.

“사십여 장이라! 위험한데.”

관악이 흠칫 놀라 목가선단을 살폈다. 관악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배를 돌려라.”

북소리 울려 퍼지고 노수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왔다. 그때였다. 

“저-저것은---.”

관악이 눈을 치뜨고 입을 쩍 벌렸다. 

대폭뢰전의 두 배는 될 듯한 수십 개의 통나무들이 마치 쇠뇌처럼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공력이 지고한 이들이 손으로 

던진 것이리라. 

관악은 질끈 눈을 감았다. 아무리 빨리 움직여 봐야 화살처럼 날아오는 통나무들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상상력이 미치는 한도 내인 것이 보통이다. 그 한계를 넘는 치명적인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나 공황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으리라.   

콰콰콰콰콰!

공기의 파동만으로 수면을 가르던 통나무들이 십여 장 앞에 이르러 수면에 닿았다. 하얗게 물보라가 이는 것으로 보아 물의 

저항이 상당한 것 같은데도 통나무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흑면사내는 터지듯이 부서져버리는 소형선들을 바라보며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흠! 내 차롄가?”

관악은 흑면사내의 중얼거림을 듣자마자 눈을 떴다. 그 순간 흑면사내는 이미 관악의 시야에서 사라져 수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관악은 급히 난간에 다가가 배 아래쪽을 살폈다. 

“허억!”

흑면사내는 수면 위에 서있었다. 분명히 물밖에 없는데도 마치 무언가를 밟고 있는 듯 편안하게 서있었다. 

그의 오 장 앞으로 통나무가 다가오고 있었다. 흑면사내가 수면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순간 굵은 물줄기가 치솟아 올라 

흑면사내의 손바닥에 맞닿았다. 

흑면사내는 두 손을 교차하여 두 줄기 물을 새끼처럼 꼬았다가 날개 짓하듯 흔들었다. 순간 흑면사내의 전면뿐이 아니라 

용왕선의 우측 선면 앞쪽에 거대한 파도가 솟구쳐 거칠 것 없이 다가오던 통나무들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그때 전장 전체에서 산발적으로 폭음이 들려왔다. 목가의 선단에서 던진 통나무들이 소형선을 포함한 수십 척의 수로연맹 소속 

배에 구멍을 뚫어놓았고, 목가 선단 곳곳에서도 연속적으로 폭발음이 들렸다. 

관악이 살펴보니 대형선 세 척을 포함한 목가선단의 반 정도가 전진을 멈추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갑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수뢰인 몇이 혼강룡을 제대로 터뜨린 것이었다.

관악은 급히 고개를 숙여 다시 흑면사내를 살폈다. 흑면사내는 물을 배 삼아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관악은 다시 고개를 들어 목환승이 승선해 있는 배를 바라보았다. 

바람도 없는데 파랑이 일더니 그 여파가 백무극의 소선에까지 이르렀다. 배가 흔들려 주안상이 흔들리자 소불과 혈응이 동시에 

천근추를 일으켜 배를 안정시켰다.

백무극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허! 인세의 하백이라. 물을 아예 가지고 논다고 보아야겠군. 물이 있는 곳이면 나로서도 엄두를 못 내겠어.”

백무극이 혀를 내두르자 소불은 물론 혈응마저도 노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백무극이 다시 전황을 살폈다.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수로연맹 측의 배들은 서서히 뱃머리를 뒤로 돌리고 

있었지만, 쉬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던 목가선단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저 배들 안에 목가의 힘 팔 할이 있다 했지?”

백무극의 물음에 소불이 즉시 대답했다. 

“패착이지요. 차라리 노련한 이들 오십여 명만 데려 왔다면  좋았을 텐데, 젊은이들까지 데려왔으니 우선 구하고 봐야겠지요. 

어쨌든 지금쯤 혼비백산해 있을 겁니다. 배는 버리되 사람은 큰 손실 없는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텐데, 

수왕천마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일이 점점 재미있어 지지요, 소군?”

백무극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목환승이 탄 배에서 통나무 다섯 개가 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뒤로 다섯 명의 장년인들이 

따라 떨어져 통나무 위에 올라섰다. 

파파파파파팡!

장년인들이 왼손을 뒤로 뻗는 순간 통나무들 뒤쪽에서 하얀 물보라 치솟아 올랐고 장년인들을 실은 통나무들은 쏜살같이 

흑면사내를 향해 나아갔다. 

파파파파파팡!

또 다시 물보라가 튀는 순간 장년인들은 어느새 흑면사내의 십 장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때 흑면사내가 두 손을 물로 뻗어 

사람 몸통만한 물줄기를 빨아들이면서 두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모양이 마치 어망을 당기는 어부와 같았는데, 일순간 

물줄기가 들어올려져 해일처럼 장년인들을 덮쳤다. 

장년인들이 자신들을 내리 누르려는 물을 바라보며 천근추로 통나무를 내리눌렀다가 몸을 가볍게 했다. 순간 그들의 신형이 

해일을 뛰어넘어 흑면사내에게로 날아갔다. 

푸른 도기가 오 장을 뻗어나갔다. 흑면사내가 전면으로 손을 휘돌리니, 거대한 물뱀이 똬리를 틀 듯 허공에서 휘감겨 

장년인들의 앞을 막았다. 

촤아아아!

다섯 줄기 푸른 도기가 하얀 물뱀의 몸통을 난자하고 튀어나왔다. 그 순간 흑면사내가 두 손을 아래로 내리 눌렀다. 그러자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라 그들의 전면을 막아섰다. 

탄력을 잃은 장년인들이 물줄기를 뚫지 못하고 물에 휘감겨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줄기가 사라졌다. 장년인들은 물의 장력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 순간 하백이 실존하여 두 손을 

뻗은 것처럼 두 줄기 물줄기가 흑면사내의 두 발을 떠받쳤고 흑면사내는 어느새 오 장 뒤로 물러나 있었다. 

장년인들은 힘을 잃고 물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그들이 타고 온 통나무를 찾았다. 그들이 수영하여 

통나무로 다가갔다. 그때 물러섰던 흑면사내가 물줄기를 말아 허공에 수패를 만들고 두 손으로 번갈아 후려쳤다. 날카로운 

수전들이 다섯 사람의 등과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쯧쯧쯔, 하체가 중심이 잡혀야 힘을 모으는 법, 저걸로 끝이군!”

백무극이 중얼거리는 순간 다섯 장년인들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뇌수를 흩뿌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놀고 있는데 상대는 속수무책인 것 같구만. 소불! 도대체 무슨 무공이 저 따윈가?”

“계수신공이라더군요. 원래 수기가 많은 아이를 골라 계수신공을 가르치고 물이 가득 찬 방에 가두어 기른다고 들었습니다. 

죽지 않으려면 물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십여 년을 살아야 기본이 된답니다. 그러나 저런 정도에는 이를 수 없고, 

결국 극에 이르려면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행천마경에 이른 이가 셋 밖에 안 된다 

들었습니다.”

“어허! 저것 봐라?”

백무극이 놀라 눈을 치뜨자 소불도 다시 전장을 바라보았다. 흑면사내가 물 위를 치달리고 있었다. 

흑면사내가 물줄기를 후려치자 소형선들이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뒤집어졌다. 그 순간 물속에서 잠복해 있던 어피들이 배고픈 

상어가 되어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흑면사내는 물속의 상황은 관심도 없는 듯 연속적으로 파랑을 일으키며 소형선들을 뒤집었다. 대형선으로부터 수십 개의 

통나무들이 날아와 오직 흑면사내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아하하하하하!”

차갑고 투명하던 흑면사내의 두 눈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광소와 함께 그의 두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고 수십 개의 통나무들이 물기둥에 튕겨져 올라 뒤집어졌다. 

흑면사내가 물 한 줄기를 끌어올려 통나무들 뒤로 후려쳤다. 순간 통나무들이 아직 온전한 두 척의 대형선으로 쏜살같이 

나아갔다. 

배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오는 순간 목강승을 비롯한 네 명의 초로인들이 앞 다투어 물로 떨어져 내리며 도를 휘둘렀다. 도기가 

물살을 갈라 흐름을 막았다. 통나무들의 속력이 느려지고 초로인들이 통나무에 내려선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파파파팡! 

벽공장으로 물을 후려쳐 추진력을 얻은 초로인들은 단숨에 칠 장을 접근해서 흑면사내에게로 몸을 날렸다. 순간 흑면사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이 일순간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표적을 잃은 초로인들은 도기로 물을 후려쳐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고 발끝으로 물을 찍어 그들이 타고 온 통나무에 내려섰다. 

초로인들이 두리번거리다가 원래 그들이 타고 있던 대형선을 바라보고는 눈을 치떴다. 

“안돼!”

네 초로인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흑면사내가 물과 맞닿은 선수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초로인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파파파팡! 

초로인들이 물을 후려쳐 흑면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흑면사내는 광기로 물든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선수 하단부를 후려쳤다. 

퍼퍼퍼퍼퍼퍽!

반장 간격으로 계속 구멍이 뚫려나갔다. 조금씩 물이 스며드는 것을 보며 흑면사내는 씩 미소를 짓고서 등 뒤로 날아오는 

도기를 피해 물속으로 스며들었다. 구멍 앞에 멈춰선 초로인들이 배 위로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선수에 구멍이 뚫렸다. 막아라.”

그러나 의미 없는 외침일 따름이었다. 반대쪽 선수에서 연속적으로 격타음이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초로인들이 물살을 

갈라 반대쪽으로 돌아간 순간 흑면사내는 선수에 깊이 박힌 손으로 사람 크기만 한 판자조각을 뜯어내며 하얗게 미소 지었다. 

초로인들이 분노할 사이도 없이 흑면사내는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 초로인들이 한참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배는 점점 가라앉고 

주변은 목가표단의 비어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퍽!

경기를 일으키게 만드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초로인들이 놀라 고개를 드니 흑면사내가 마지막 남은 배에 구멍을 뚫어놓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초로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은 통나무를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침수되고 있는 배 위로 오른 초로인들이 목환승의 

피 흐르는 입술을 바라보며 분노를 참았다. 목강승이 물었다. 

“가주! 잘못하면 전멸 당하게 생겼소. 어찌 해야 하오?”

목환승이 용왕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남은 것은 한 가지. 저 배에 올라탄다. 거리는 아직 사십 장. 우리 아이들도 충분히 건너리라. 명을 전하라.”

목강승 등은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했다. 목가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수로연맹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을 따져 대비책을 마련했었다. 

실수라면 단 한 가지, 천하에 흑면사내와 같은 물 도깨비가 존재할 줄을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만약 그와 같은 

존재가 있는 줄 알았다면 결코 수상에서 수로연맹을 상대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전하라. 아직은 늦지 않았다.”

목환승의 꾸짖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초로인들이 급히 움직였다. 

그랬다. 배는 모두 잃었지만 목가의 피해는 아직 미미했다. 비어인들을 잃은 것은 큰 손실이었지만 목가의 인명 피해는 

이삼십여 명이 안 되리라.

처처처처처척!

물로 통나무 떨어뜨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목환승은 뒤를 돌아보며 배의 돛을 주시했다. 그리고 바로 허공으로 몸을 

날려 도를 휘둘렀다. 돛대가 잘려 넘어졌다. 목환승은 돛대를 떠받혔다가 물로 던졌다. 그리고 이미 반쯤 빠진 배를 벗어나 

돛 위로 내려앉았다.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일대 장관이라 할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목가의 일백 칠십여 사람들이 각기 통나무 하나에 의지한 채 물을 

후려쳐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폭음이 끊이지 않고 들리며 하얀 물줄기가 연속적으로 치솟아 올랐다. 

“크하하하하하!”

그들의 바로 뒤쪽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흑면사내가 목가사람들의 등을 바라보며 서서히 몸을 휘돌리고 있었다. 두 발을 

받힌 물줄기가 꼬이면서 흑면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거대한 물줄기가 그의 발끝을 따라 올라가면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수십 개의 통나무들이 물의 힘에 휘말려 전진하지 못하고 

점점 뒤로 빨려 들어갔다. 

흑면사내의 몸이 허공으로 이십여 장이나 솟구치자 일백이 넘는 통나무들이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목가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목가 사람들이 아무리 뭍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는 호랑이 같은 

존재들이어도, 지금은 물에 빠진 한 조각 가녀린 꽃잎 같은 처지일 따름이었다. 

선두에서 나아가던 목환승이 방향을 바꾸어 흑면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바로 허공으로 솟구쳐 도를 휘둘렀다. 한 줄기 

거대한 도강이 하늘로 솟아오른 물줄기의 허리를 잘라버렸다. 

물이 떠받히는 힘을 잃은 흑면사내의 신형은 흩어진 물줄기와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목환승은 떨어지는 도중에 도를 두 발바닥 

아래로 돌려 후려차고 다시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흑면사내를 향해 세차게 도를 휘둘렀다. 

흑면사내는 예상이나 했다는 듯 손을 휘돌려 물막을 만들고 뒤로 퉁기면서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물을 모아 연속적으로 

물막을 만들어냈다. 도강에 부딪힌 물줄기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흑면사내는 이미 천근추를 이용하여 물에 꽂히듯 빠져들었다. 

그리고 종적을 감춰버렸다. 

겨우 제 힘으로 물질을 할 수 있게 된 백여 명의 사내들이 몸을 의지할 통나무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들 밑에서 수왕기의 

정예인 어피인들이 있었다. 

어피인들이 수차를 내질렀다. 순식간에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통나무를 타고 있던 목사사람들의 도에서 도기가 

난무하고 몇몇 어피인들이 피를 뿌렸고 살아남은 어피인들은 숨 한 모금을 들이마신 후에 다시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였다.    

“혼강룡의 주머니를 벗기고 점화하여 셋을 센 후에 던져라. 활을 쏘아 접근을 저지하라. 배를 물려라.”

혼란을 수습하고 전열을 가다듬은 후, 끼어들 시기만을 기다리던 관악이 소리쳤다. 

두 손으로 겨우 쥘만한 크기의 철구들이 이십여 장을 날아 허공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파편이 튀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물속으로 빠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통나무를 향해 수영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화살들이 집중되었다. 발밑이 

든든할 때는 아무 것도 아니던 화살들이 위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를 휘둘러 막아내 보아야 겨우 대여섯 개. 나머지는 

사람들의 얼굴과 어깨와 등에 꽂혔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혼강룡이 허공에서 터지니 피하기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화살이 

쏟아지니 저지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거기에 배는 속도를 더하여 항상 삼십 여 장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으니 좀처럼 올라가 볼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물에 

잠수하게 되면 어피인들이 접근하여 수차를 내지르고, 피했다 싶으면 때로 흑면사내가 나타나 하얀 미소를 보여주었다. 

겨우 몇몇 사람들만이 반 이상 가라앉은 수로연맹의 배에 올라탔으나 기본적으로 물질에 능한 수로연맹 사람들은 이미 배를 

벗어나 온전한 배 혹은 호변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분노를 풀 길이 없는 목가사람들의 절규가 허공을 메아리쳤으나 공허할 따름이었다. 목가에게는 이미 미래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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