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79)

* 잊지 않고 대가를 치러주시는 분들께 오랜만에 감사인사 드립니다.^^;;;

   

미친 하백이 나타나 풍랑을 일으키다

        

호북성 무창(武昌)에 터를 잡은 목가(穆家)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이 과연 칠대세가의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세력인가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남손이 귀하여 형제 이상을 둔 부부 찾기가 힘든 목가는 가문 전체에 무력이라 할 만한 남정네들이 이백사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가는 따로 제자를 두는 것에 유달리 인색했다. 여아들에게 무공을 전하는 일에 제한을 두는 것 또한 

사천당가에 버금갈 정도였다. 하지만 목가의 사정을 안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리라. 

목가의 무공은 그 바탕이 너무 좁았다. 단양신공(丹陽神功)을 근본으로 한 비환단천도법(飛幻斷天刀法)과 기본이랄 수 있는 

신법 그리고 간단한 권장법 몇 가지가 있을 따름이었다. 

비환단천도법이야 하북(河北) 팽가(彭家)의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와 함께 정도의 도법쌍절(刀法雙絶)에 속할 뿐만이 아니라 

목가를 칠대세가의 하나로 올려놓은 극강의 도법이긴 하지만, 나머지 무공은 칠대세가의 격을 생각해 볼 때 내세울만한 것이 

없다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가처럼 무공이 방대하여 외부인을 제자로 들여 가르쳐도 정수를 지킬 수 있는 입장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목가는 

단양신공과 비환단천도법 뿐이라, 가르치지 않으면 홀대하는 것이고 가르치면 전부를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데릴사위를 들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자들이기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단양도법은 여자에게 적합한 내공이 아니다보니 

불가피하게 여아들을 홀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규모가 작은 집안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하더라도 무창을 벗어나는 목가의 사업이 수로표국 하나라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으리라. 규모가 작다 해도 세가로 손꼽히는 곳인데, 표국 하나로 살림이 유지된다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그러나 그 또한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장강! 

황하와 함께 십팔만 리 대륙을 가르는 강이다. 그것도 척박한 북부를 가르는 황하와는 달리 물산이 풍부한 남중부를 가르는 

강이 바로 장강이다. 

그 강을 통해 움직이는 대륙의 물자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무당파에 호북의 육로를 모두 양보한 목가는 오로지 장강 한 

곳에만 힘을 집중했다. 강을 통해 호북의 들고나는 모든 물자들을 목가가 독점하고 있는 것이었다. 

배를 젓지 않고 물살에만 의지해도 열흘이면 남경(南京)은 물론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에까지 닿을 수 있으니, 

표선(鏢船)이 아니라 금선(金船)이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더구나 그 배가 장강수로연맹의 수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어떤 사업이 부럽겠는가. 

그런 목가의 표선 두 척이 호남을 지나다가 약탈당하고 침몰 당했다. 그저 수로연맹이 시비를 걸어온 정도라면 도와줄 수는 

없지만 사정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니, 간단한 훈계 정도로 넘어갔으리라. 그러나 이번 일은 그리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백만 냥이 넘는 손해는 작은 것이나 실추된 명예는 큰일이었다. 목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호랑이인 줄 알고도 

건드렸으니 장강수로연맹이 치러야 할 대가는 호환밖에 없었다. 

목가의 가주 절영신도(切影神刀) 목환승(穆換昇)은 목가의 표선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그리고 가문의 장정들 가운데 아직 

미숙한 소년들을 제외한 이백여 명을 일제히 승선시켰다. 본때를 보인다는 의미보다는 가문의 젊은이들에게 목가가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더 컸다. 

승패에는 아무런 의문도 없이, 목가의 대형표선 다섯 척이 수십 척 소형선들의 호위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동정호로 나아간 

것이 바로 이틀 전의 일이었다.

동정호의 동쪽 끝에 자리한 악양(岳陽)의 심천궁은 그 정체가 모호한 집단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신비로만 싸인 무리라는 

뜻은 아니고, 다만 정확히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심천궁은 악양과 그 근동의 상권을 반 이상 지닌 세력이었다. 특히 기루, 도박장, 객잔, 다관과 같은 업종들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세력이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업에 손을 대며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독자적으로 표국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기루와 도박장 같이 환락과 관계된 업종을 독점하고 있으니 사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달리 패악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호남 무림의 거두라 할 수 있는 남궁세가(南宮世家)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딱히 사파라고 규정할 수 

없었다. 

동정호 동변에 있으니 장강수로연맹과 사이가 좋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것도 옳은 말은 아니었다. 

물론 이십여 년 전 심천궁이 처음 악양에 자리 잡았을 당시, 장강수로연맹과 큰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장강수로연맹을 뭍으로 끌어들인 단 한 번의 싸움으로 갈등은 깨끗이 종식되었다. 

결과는 머릿수가 비교도 안될 만큼 적었던 심천궁의 대승. 그러나 심천궁은 장강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표하고 장강수로연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고, 패자인 장강수로연맹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이후로 장강수로연맹과 심천궁의 사이는 우의랄 것은 없고 소와 닭 같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땅장사는 심천궁이, 물장사는 

장강수로연맹이 한다는 약속을 서로 어기지 않았던 것이었다.

심천궁은 정사를 따질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드러내지 않는, 모호한 존재였다. 

악양 심천궁의 궁주 접견실. 

“물론이오. 가실 때 함께 가도록 하시오. 땅이라면 모르나 물에서는 틀림없이 거력이 될 사람들이오.”

백견단삼 차림의 초로인이 의자의 등받이에 느긋하게 등을 기대며 미소 지었다. 

장강수로연맹의 부맹주인 지다룡(智多龍) 관악(寬岳)은 질끈 눈을 감았다. 세상은 장강수로연맹이 심천궁을 상대로 석패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강에서 싸웠다면 결과가 반대로 났으리라 생각하리라. 그러나 관악은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었다. 

삼십육 채의 고수들이 모두 달려들었건만 겨우 열여덟 명의 심천궁 고수들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그것도 궁주 

일수참룡(一手斬龍) 조무령(曺武嶺)은 나서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런 심천궁이 도움을 준다 해서 용기를 냈던 것이었다. 상대는 말석이라 하나 칠대세가의 하나로 꼽히는 목가. 그런데 이제 

와서 도와준다는 것이 관악 그가 알지도 못하는 오십여 명이라면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관악은 억지로 눈을 뜨고 초로인 심천궁주 조무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무령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관악을 보고 

있었다. 

“겨우 오십 명을 데리고 무엇을 하란 말이오? 잠깐이라도 죽음을 늦추라는 뜻이오?”

“허어! 관 부맹주가 지금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구려. 고인이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오. 수로연맹이 본궁과 부딪쳤을 

때를 생각해 보시오. 나 말고 어디 아는 사람이 있었소? 그들이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생각해 보시구려. 죽음을 

앞에 두고 왜 건드렸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부맹주는 우리와의 의리를 지킬 것이오? 난 기대하지 않소. 무슨 뜻인지 

관악은 자신의 심각함을 여전히 미소로 받는 조무령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이십여 년 동안 목가의 표선으로부터는 단 한 푼의 장강 이용료를 받지 못했다. 목가 하나라면 쌍방이 큰 피해를 입는 

싸움은 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으나, 장강을 따라 움직이는 많은 물산들이 목가의 표선에 의지하게 되면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목가의 뒤에 버티고 있는 무당도 그렇고, 여기저기 얽힌 정략결혼의 결과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 되니, 후환이 두려운 것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목가 그 자체였다. 

강호육대세가를 칠대세가로 바꾸어 버린 목가지만, 칠대세가 안에서는 신흥일 수밖에 없고 말석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상하게도 남자가 귀한 집안이어서 몸집이 잘 불어나지 않는 가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인해 목가는 오히려 무서운 상대였다. 보호본능이 지나친 목가는 무자비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말석이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하여, 또 남자가 귀하다는 약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하여, 일단 싸움에 임하면 사파가 무색할 

정도로 상대의 씨를 말리는 잔혹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장강수로연맹은 자신들을 곤궁한 처지로 몰아대는 목가를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심천궁의 표선이 

목가의 표선과 시비가 붙어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심천궁주 조무령이 내심 노화가 치밀어서 수로연맹에 은근한 제의를 하지 

않았다면, 장강수로연맹은 지금도 목가를 증오할 뿐 행동에 나서지는 못했으리라. 

‘조 궁주가 옳다. 죽음 앞에서 신의를 찾는 것은 바보 짓. 우리가 당한다면 결국 목가의 다음 상대는 심천궁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 믿을 수밖에.’

관악이 조무령에게 포권을 지어보이며 일어섰다. 

“궁주님의 말이 이치에 닿는구려. 믿겠소.”

조무령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해보였다. 

“물론이오. 솔직히 말해 나는 드러나고 싶지 않소이다. 그러나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하는 것. 뭍으로 나온 목가는 내가 모두 

책임지리다. 다만 한 가지만 주의해 주시구려.”

관악이 눈을 치뜨며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쉰세 명의 우두머리에게는 나를 대할 때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오. 그가 화나면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소이다. 비굴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떠받든다는 생각으로 대하시오.”

관악은 놀라 눈살을 찌푸렸다. 일수참룡 조무령이 누구인가? 세력을 빼고 생각하면 강호 삼십 대 고수 안에 들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런 그가 감당하지 못한다 하는데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으니 어찌 의아하지 않겠는가.

“그가 누구요?”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냥 수왕천마라고나 할까? 아! 뭐, 이름이란 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요. 수왕이라 하나 

장강수로연맹에는 관심을 두지 않을 사람이니 그냥 함께 있는 동안만 잘 대해 주시구려.”

조무령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관악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그를 알아 볼 수 있소?”

“물론!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거요. 온통 검은 색 일색일 테니까. 얼굴마저도---.”

관악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알겠소. 그럼.”

조무령이 웃으면서 일어섰다. 

“좋은 결과 기다리겠소.”

관악이 문으로 다가가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순간 관악은 안으로 들어서려는 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사내답게 생긴 

백의사내와 웃는 얼굴의 장년인 그리고 날카로운 얼굴의 장년인, 세 사람이었다. 

백의사내가 관악을 향해 가볍게 목례하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관악은 자신도 모르게 포권을 취해보이고 그를 스쳐 지났다. 

“예의바른 사람이군. 안 그런가, 소불?”

웃는 얼굴의 장년인이 말했다. 

“저 자가 바로 장강수로연맹의 부맹주 지다룡 관악입니다. 소군.”

“흠! 지다룡? 큿! 어쨌든 장수했으면 좋겠군.”

백의사내, 백무극은 빙긋 웃으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관악을 대면한 자리에서는 그리 여유가 만만하던 조무령이 벌떡 

일어서며 백무극에게로 다가왔다. 

“돌아오십니까, 소군?”

조무령이 깊숙이 읍했다. 

“아! 조 궁주. 별일 없었지요?”

백무극이 조무령을 스치고 지나면서 말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군.”

백무극이 미소 지으며 조금 전 조무령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소불과 혈응이 뒤에 시립했다. 그때서야 조무령이 

지금껏 관악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앉았다. 

조무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군께서는?”

“그 분이야 늘 그렇지요, 뭐. 출관하셨다 하여 부랴부랴 달려가 안부를 여쭈니 쓸데없이 돌아다닌다고 야단만 치시더이다. 허 

참! 이 일이 작다할 수 없는 일이거늘 칭찬은 못해주실망정 회초리라니---. 궁주!”

조무령이 앉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 일은 반드시 계획대로 되어야 하오. 만에 하나 틀어지면 회초리가 아니라 몽둥이로 맞게 생겼소. 게다가 이번 일의 

성패 여부에 따라 서장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이니, 목가는 반드시 무너져야 할 것이오.”

백무극이 빙긋 미소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조무령은 다시 한 번 깊숙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강에서 벌어질 일, 무공의 고하 만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더구나 좌상께서 수왕천마까지 보내주셨는데 

어찌 한 치의 오차가 있으오리까?”

백무극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돌려 소불을 향해 물었다. 

“소불! 그런데 말일세. 수왕천마라는 인간을 믿을 수가 있나? 과연 혼자서 목가를 상대해낼 수 있겠어? 희생을 줄이는 것도 

좋지만, 영 불안해.”

소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군께서도 직접 만나 보지 못하셨습니까?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들은 바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뭍에서야 능력이 

떨어진다 합니다만, 수상이라면 그를 당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 없지 싶습니다. 수인합일지경을 넘어서 거의 극마경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라 하더군요.”

백무극이 턱을 쓰다듬으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수마의 극이라? 그렇단 말이지.”

백무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무령도 급히 일어섰다. 백무극이 말했다. 

“궁주. 조그만 배 한 척 준비해 주시구려.”

“가보시렵니까?”

백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수마의 극이라 하니 궁금하지 않소? 청해성에 갔을 때 잠깐 즐거운 구경을 한 것 말고는 도통 재미를 못 보았소. 뱃놀이도 

할 겸, 수마의 극에 이르면 어찌 되는 지도 보고, 칠대세가의 하나인 목가가 어떻게 무너지는가도 보고, 뭐 겸사겸사 

다녀올까 하오.”

조무령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조무령이 다시 허리를 접으며 물러서려 했다. 그때 백무극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너무 화려한 놈은 아니 되오. 괜히 불똥이 튀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오긴 싫소이다.”

조무령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백무극이 소불과 혈응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혈응이 말했다. 

“수전(水戰)은 본 적이 없습니다. 소군.”

“음! 나도 처음이네. 뭐, 대충 짐작해 보면 허공에서 화전(火箭)이 난무하고 물밑에서는 수차가 오가지 않겠는가? 아무튼 

재밌는 구경거리가 되겠어. 자! 가 보세나.”

백무극과 두 사람도 방을 나섰다.

바람도 없고 구름도 없는, 햇볕만 따사로운 아침이었다. 

바다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망망한 동정호 정중앙에 대선단이 꼼짝도 않고 떠있었다. 팔십여 개의 노가 물속에 반쯤 잠겨있는 

삼십여 장 길이의 거선 다섯 척에, 십여 장 길이의 날렵하게 생긴 중선이 삼십 척, 그리고 겨우 여덟 개의 노에 의지한 

소선들이 이백여 척이었다.

그들 주위로는 단 한 척의 어선조차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선단은 장강수로연맹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느 

간 큰 어부들이 감히 배를 띄울 수 있겠는가. 

세 척의 거선 가운데 검붉은 깃발 수십 개가 동시에 펄럭이는 중앙의 배 갑판 위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눈에 띄는 사람들만도 

백 명이 넘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특히나 갑판 중앙의 탁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한결같이 무거웠다. 탁자 위에는 동정호를 그린 큰 지도가 놓여 

있고, 탁자 네 면에 한 사람씩 앉아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들이 바로 장강을 지배하는 

장강수로연맹의 수뇌부들이었다. 

지도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선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에 앉아있던 초로인이 마침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시작해 보지.”

맞은편에 앉아있던 지다룡 관악이 고개를 숙였다. 장강수로연맹의 부맹주가 고개를 숙이니 맞은편 노인의 신분은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그가 바로 장강수로연맹의 맹주 장강용왕(長江龍王) 방동한(方東漢)이리라. 

관악이 그의 왼쪽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검은 색 일색의 흑면사내의 눈치를 살피고 나서 지도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예상대로 어제 군산 입구에 도착한 목가선단은 북문협(北門峽)에 들어서지 않고 기다렸소이다. 이제 곧 이곳에 모습을 

보이겠지요. 결국 제일 승부처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될 것이고,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곳 출룡도(出龍島)로 물러설 

것입니다. 승부의 관건은 거리와 속도. 최소한 삼십여 장의 거리를 두고 싸우고 붙으려 하면 물러서야 승산이 있습니다.”

용왕도 방동한이 손을 뻗어 관악의 말을 막고 물었다. 

“지금 북문협에는 누가 있나?”

관악은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 매복을 놓는다고 해도 어디 걸려주겠습니까? 엊저녁과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희생만 늘릴 따름이지요. 해서 매복은 

출룡도에만 배치했습니다.”

“흐흠! 그렇겠지. 밤에 보낸 수뢰인(水雷人)들마저 하나도 성공을 못했으니, 의미가 없겠지. 역시 거리인가? 하기야 붙으면 

백전백패(百戰百敗), 무기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지.”

관악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문득 흑면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수 대협! 달리 하실 말씀이 있소?”

말이야 의견을 묻는 것이지만, 관악의 눈빛은 당신이 과연 우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었다. 

흑면사내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유현한 눈빛으로 관악을 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오. 내 몫은 알아서 할 테니까.”

관악과 방동한이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방동한이 못마땅한 눈초리로 흑면사내를 보며 막 입을 벌리려 했다. 그때 관악이 

눈짓을 보내 방동한을 제지했다. 

“알겠소. 대협에게 의지하는 바가 크니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죽음 말고 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흑면사내는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둥! 

대북 소리가 급박하게 들렸다. 순간 갑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선수 쪽으로 돌아갔다. 방동한과 관악은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수로 걸어갔다. 

“드디어!”

관악과 방동한이 긴장된 눈빛을 드리우며 멀리 북문협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목가의 선단을 바라보았다. 선단 가운데 소형선박 

몇 척이 북문협의 좌우로 다가가 막 북문협에서 내려온 목가 사람들을 실어 선단으로 합류했다. 

“역시! 매복했더라면 희생만 늘였을 따름인가?”

혀를 내두른 방동한이 관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악은 즉시 소리쳤다. 

“북을 쳐라. 화전을 준비하고 수뢰인에게 출정을 알려라.”

관악이 타고 있는 용왕선에서 대고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 주변의 배에서도 일제히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둥!

용왕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뇌부들 몇몇이 소선을 타고 다른 선박으로 옮겨가는 동안 기름을 

잔뜩 먹인 화살들이 갑판 위에 쌓이고 대궁을 든 궁수들이 갑판 우측 난간에 도열했다. 폭뢰가 달린 다섯 자 대전이 수십 

발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뒤로 발사대까지 있는 거대한 노가 세 명의 장정에 의해 갑판 중앙으로 옮겨졌다. 

소선들이 조금씩 움직여 좌우로 퍼지는 순간 용왕선 이하 모두 중대선들이 왼쪽 노들만 움직여 우측선면을 북문협쪽으로 돌렸다. 

“역풍이라도 차라리 바람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관악은 돛이 내려진 채 노의 추진력만으로 움직이는 목가의 배들을 바라보며 얼굴빛을 흐렸다. 화전의 위력을 십분 활용하려면 

돛을 노리는 것이 좋으리라. 선체에 꽂히는 화전들은 모래로써 어렵지 않게 진화할 수 있는 탓이었다. 

흑면사내가 관악의 옆으로 다가섰다. 

“화포 같은 건 없소?”

관악은 흑면사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흑면사내는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의 입 꼬리가 

조금 말려 올라간 것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라는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흑면사내는 관악의 대답을 듣지 못하자 미소를 짙게 만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빌어먹을 관(官) 때문인가?”

“그렇소. 기술자를 구해보려 했으나 관이 너무 엄격하게 관리하니 도통 빼돌릴 수가 없더이다. 그러나 화포가 없기는 저쪽도 

마찬가지요.”

흑면사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저들이 수뢰인인가 보오?”

수백 명의 벌거벗은 사내들이 북문협 근동에서 커다란 가죽주머니 같은 것들을 안고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그렇소.”

“수저뢰(水底雷)?”

관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혼강룡(混江龍)이라 부르오. 줄을 당김으로써 점화되는 수뢰를 옻칠한 소가죽 주머니에 넣어 배로 접근하여 터뜨리는 

것이오. 아무리 큰 배라도 저것 한 방 제대로 맞으면 사람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리게 되니 그대로 수장될 수밖에.”

“흠! 화포는 못 구하면서 작약(炸藥)은 용케 구했소이다. 어쨌든 말대로 되면 좋겠군.”

“무슨 소리요? 관의 수뢰보다 우리가 개발한 것이 훨씬 폭발력이 크오이다.”

흑면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내말은 결국 배 가까이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소리. 밤이라면 몰라도 목가를 상대로 이런 대낮에 쓸 물건은 아닌 듯한데?”

관악은 그때서야 진의를 파악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 혼강룡은 원래 밤에 쓰는 물건이오. 사실 엊저녁에도 삼십여 명을 추려 보냈었소.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하고 고기밥이 되고 말았소. 하지만 어쩌겠소? 저들은 목가. 저들 가운데 몇 놈만 접근하여 이선(移船)하는 순간이면 

우리는 전멸당할 수밖에 없소이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이오. 백 가운데 대여섯만 성공해도 승리는 우리의 

것, 해 볼만한 시도지요.”

흑면사내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깊이 잠수해서 배 밑에 구멍을 뚫는다거나 물에 기름을 부어 불바다를 만드는 게 나을 텐데?”

관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남은 수뢰인들의 다음 임무가 바로 배 밑창에 구멍을 내는 일이오. 허나 그 또한 어렵기는 마찬가지. 목가의 표단에는 

수공에 능한 사람들이 있소이다. 표사와는 달리 배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로, 비어인(飛漁人)이라 부르지요. 비록 

목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 개개인의 수공은 제대로 배운 것이라 우리 아이들보다 나을 것이오. 아마 저기 대선을 호위하듯 

오고 있는 소선에 탄 이들이 바로 목가표단의 비어인들이지 싶소. 그리고 기름 역시 마찬가지. 소형선에서 먼저 쉽게 알아볼 

수 있을뿐더러 차후에 문제가 되오. 동정호를 불바다로 만들었다가는---.”

“차후라? 흠! 아직은 여유가 있으시구만, 차후를 생각하니. 하! 제대로 배운 수공이라?”

흑면사내의 입가에 비웃음이 감돌았다. 관악이 반발하여 입을 열려 했다. 그때 뒤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펴졌다. 

“이백 장이요!”

관악이 한 걸음 나아가면서 소리쳤다. 

“대기! 침착하라. 백삼십 장 안에 들어오기 전에는 화전을 낭비하지 말라.”

그 순간 대고가 관악의 명령을 소리로 바꾸어 선단 전체로 퍼뜨렸다.

흑면사내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목가의 선단을 바라보았다. 

“흠! 재미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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