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42/79)

일 보에 삼 장씩 천천히 몸을 날리던 운청산이 청인자에게 물었다. 

“외조부님은 어떤 분이셨죠?”

“고지식한 학자라고나 할까? 풍도에서 장강을 건너 이십 리 더 가면 무릉(武陵)이라는 곳이 있다. 이백여 호 정도 되는 

마을인데, 네 외조부께서는 그 마을에서 유일한 훈장님이셨지. 덕분에 회초리 깨나 맞았단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는 성격 아니냐? 놀고 싶어 죽겠는데 회초리 들고 글을 가르치시니---. 휴!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종아리 

간지럽구나. 하! 만약 네 어미가 건강했다면 한 문장 했을 거다. 침상에 누워 어깨 너머로 글을 깨쳐 놓고도 이 외숙 

못지않았지. 외조부는 그런 네 어미의 문재(文才)를 지극히 사랑하셨다. 네 어미에게만은 단 한 번도 찡그린 얼굴을 보이지 

않으셨단다.”

운청산은 청인자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상황을 눈앞에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얼굴을 찌푸리며 청력을 모았다. 

청인자는 운청산의 안색이 갑자기 흐려지자 의아심을 드러냈다. 

“갑자기 왜 그러느냐?”

운청산은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속력을 배가시켰다. 운청산이 초원의 낮은 구릉을 향해 쏘아져 나가자 청인자 역시 급히 

쫓았다. 구릉의 정상에 이르니 넓은 초원이 한 눈에 들어오고 오백 여 장 앞쪽에 사유하가 보였다.

청인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크으! 흑풍사? 또야?”

피가 솟구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낮은 비명소리와 말발굽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운청산은 청인자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내게 걸어오는 시비는 피하고---.”

운청산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에는 인색하지 않는다. 먼저 가겠습니다.”

운청산은 등짐을 내려놓자마자 바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청인자는 운청산을 말리지 않았다. 대신 등짐을 지고 운청산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호생지덕을 잊지 마라.”

운청산이 앞으로 나가면서 왼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어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했다. 

운청산이 원진의 이백여 장 앞까지 이른 순간, 흑풍사의 무리들이 원진과 십여 장의 공간을 두고 또 다른 원진을 취하여 

휘돌았다.

운청산은 순식간에 백 육십여 장을 달려 바로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챙! 

운청산이 오른손을 허공을 내뻗자 검이 튀어 올라 운청산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은빛 검신이 청기로 물들고 다시 

오 장을 뻗어나갔다. 

운청산은 이십여 장의 거리를 좁혀 땅에 내려서는 순간 직지단천으로 땅을 내리그었다. 

꽝! 

끼히히히히힝! 

달리는 말의 꼬리와 뒤따르던 말의 머리 사이를 정확히 가른 오 장의 푸른 검강이 땅을 가르고 뒤흔들어 뿌연 먼지를 일으키자 

낙타와 시신들은 물론 흑풍사의 인마들도 동시에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졌다. 달리던 말들이 놀라 앞발을 쳐들고 

멈추어서고 그 뒤를 따르던 말들 역시 앞말의 행동에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굴러 떨어지고 말들이 그 사람들을 

짓밟았다.

극도의 혼란 끝에 희한한 결과가 나타났다. 운청산이 버티고 선 앞쪽으로 원을 그리며 휘돌던 흑풍사의 무리들이 때를 지어 

뭉쳐 서있었다. 그들이 활을 버리고 일제히 몽골도를 뽑았다. 

운청산은 검을 검갑에 돌려보내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바로 흑풍사의 무리들에게 쏘아져나갔다. 수십 개의 몽골도가 

오직 운청산 한 사람에로 뻗어 나왔다. 운청산은 용유운상의 신법을 펼쳐 몽골도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연달아 두 손을 뻗었다. 

수십 개의 수영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운룡대팔식의 절초인 용유운상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천호만격이었다. 각각의 수영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흑풍사 무리들의 오른쪽 어깨를 후려치고 있었다. 

운청산이 선풍처럼 휘돌아 마운 등이 있는 곳으로 물러서는 순간 짧은 비명소리가 연이어지고 수십 명의 흑풍사 무리들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때 또 다시 기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당황하여 주춤거리고 있던 흑풍사의 무리들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물러섰다. 

그때서야 운청산은 마운을 발견했다. 마운이 소리쳤다. 

“운 소협! 저기 두 사람들을 구해주시오.”

운청산이 고개를 돌리니 한 장년인이 연신 뒤로 물러서는 두 남녀를 향해 도를 내리찍고 있었다. 운청산은 땅을 밟자마자 

그쪽으로 퉁겨 올라 검을 뽑았다. 

쉐엑! 

유성분천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장년인은 급히 도를 휘돌려 막아내고 연신 뒤로 물러섰다. 삼 장을 물러서서야 겨우 신형을 

안정시킨 장년인은 운청산의 기파를 확인하고 나서 강정과 문취옥을 노려보다가 흑풍사의 무리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운청산은 굳이 쫒지 않고 흑풍사의 무리들을 확인했다. 일백 사십여 명 남짓 남은 흑풍사의 무리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화살을 

재고 있었다. 

운청산은 그들이 자신을 기억해 내기를 바랐다. 그래야 피를 보지 않으리라. 기억을 상기시켜 주어야 했다. 

운청산은 검을 비켜들고 허공으로 내뻗어 육장에 이르는 검강지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전신을 휘돌리며 앞으로 나아가 선풍도룡의 

식으로 바닥을 향해 연속적으로 원을 그려 무수한 돌과 흙들을 퉁겨냈다.

파파파파파팡! 

뿌연 먼지가 안개같이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다. 먼지 안개 뒤쪽에서 연이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먼지 안개가 가라앉았다. 흑풍사 무리들의 삼분지 일 정도가 말에서 떨어져 엉금엉금 기고 있었다. 

운청산은 다시 검을 허공으로 곧추세웠다. 푸른 검강이 허공으로 뻗고 흙먼지들이 휘돌며 검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엄취취를 구할 

당시의 했던 그대로의 동작이었다. 

순간 흑풍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칠 척 거한의 옆에 있던 이들이 운청산을 손가락질 하며 칠 척 거한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칠 척 거한이‘또 너냐’하는 표정으로 운청산을 바라보다가 좌우에 뭔가 지시를 했다. 또 다시 큰 소리가 들리고 흑풍사의 

무리들이 일제히 활을 거두었다. 

칠 척 거한은 대도로 운청산을 가리키며 노려보다가 먼저 말머리를 돌렸다. 곧이어 흑풍사의 무리들이 썰물이 되어 사유하 

북쪽으로 달려갔다. 

상인 스물 셋과 감숙칠도가 열한 명의 상인들과 감숙사도로 변해 버렸으니, 인사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애절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운청산은 그 소리를 듣고 있기가 답답해서 아예 북쪽으로 올라가 망보기를 자임했다.

오십 마리의 죽은 낙타들 안쪽에 시신들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몇몇 사람들은 부상자들의 상처를 돌봤다. 

강정의 손길에 어깨를 맡긴 종길은 화살이 빠져나오는 순간 어금니를 꽉 물었다. 강정이 옷자락을 찢어 상처를 단단히 싸매자, 

종길은 금새 일어나 세 구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제기랄! 삼형! 잘 가시오. 사형과 오형도 편히 쉬시오. 내가 형님들 몫까지 신나게 살겠소.”

종길은 코를 훌쩍이며 소매로 눈을 닦고 시신들을 외면했다. 그때 강정이 다가왔다. 

“괜찮으냐?”

“젠장! 보면 모르오? 난 멀쩡하오. 막내는 어떻소?”

“오른 팔은 날아갔고 왼쪽 다리는 심줄이 나간 것 같다.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더 이상 같이 다닐 수는 없을 것 

종길은 문취옥의 간호를 받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았다가 외면하고는 땅바닥의 돌을 걷어찼다.

“젠장! 삼 년 동안 낙오 없이 잘 지내왔는데, 하루 만에 삼도가 돼버렸네.”

강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감숙칠도라 불리지만 딱히 사형제라든가 의형제는 아니었다. 언제든지 떠나도 좋다는 조건 하에 서로의 편리를 위해 뭉친 것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일곱 사람 모두 알게 모르게 정이 들어, 지난 삼 년간 단 한 사람 이탈하지 않고 형제처럼 지내왔다.

죽은 세 사람의 웃는 얼굴을 떠올린 강정은 어금니를 악다물고 눈을 떠 그 얼굴들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말인데, 죽은 녀석들의 몫은 막내에게 넘기려 한다. 괜찮겠느냐?”

“당연한 것을 뭐 하러 묻소? 아예 내 몫도 다 줘버리시오. 화주(火酒)는 한 병 있었으면 좋겠네. 제기랄!”

강정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종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종길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오? 세 명이서는 이 짓 해먹기도 수월찮을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겠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꾸나.”

종길이 쩝쩝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삼십여 장 앞쪽에서 등을 보인 채 앉아있는 운청산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괴물 같은 친구에게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목숨으로 갚아야할 은혜를 입었으니 인사가 가벼울 수는 없지. 대충 정리가 되면 그때 정식으로 하자꾸나.”

“알겠소.”

강정이 문득 종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젠장!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요?”

“아무 것도 안 물어봐 줘서 고맙다고.”

종길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고서 강정을 외면해 버렸다. 강정이 씁쓸히 웃으며 마운에게로 다가갔다. 

마운은 첫째 아들 마유천의 허벅지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고 상처를 살핀 후에 청인자와 마주앉아 한숨 돌리고 있었다. 

“어찌 하렵니까?”

강정의 물음에 마운이 고개를 들고 혈향 가득한 초원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돌아가야지요. 그런데 낙타들이 다 죽어버렸으니 시신들과 짐들을 어떻게 운반할지 난감하구려.”

그때 청인자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흑풍사의 말 몇 마리가 돌아다니는구려. 몇 사람이 도란현에 가서 낙타와 말들을 사오면 될 것 같은데---.”

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있었구려. 경황이 없어서 생각지도 못했었소.”

“서둘러야 할 것이오. 흑풍사 놈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야음을 틈타면 피를 많이 보아야 할 것이니---.”

마운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둘째 아들 마유정이 따라 나섰고, 청인자도 운청산에게 알리고 마운을 따랐다. 세 사람이 

도란현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있던 강정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운청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강정은 곧 문취옥과 종길을 불러 운청산에게로 다가갔다. 

*귀신들은 운청산의 백회혈에 봉인되었습니다. 운청산도 귀신들이 몸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의식하지는 못하지요. 

*운녹산이 손을 닦는 장면은 좀 더 자연스럽게 고쳐야겠다고 올리기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일이권은 삼 권 연재가 끝나기 전에 나올 것 같습니다.   

요함은 피바람 앞에 오는 이름이니 1

글보기 화면설정

댓글 부분으로

고치기

지우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