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79)

방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하얀 대리석 공간이었다. 십 장이 넘는 벽도, 삼 장이 넘는 기둥도, 이 장에 달하는 창도 

모두 하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고 창의 가로 길이에 비견되는 긴 침상마저도 대리석이었다. 

침상이 있으니 방이 틀림없건만 벽과 기둥과 창과 침상 말고는 아무런 장식도, 가구도 없었다. 오직 침상 아래쪽에 바닥의 

일부인 듯한 넓은 단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단 위에 뭉게구름을 입은 듯, 넓게 펼쳐지는 백의를 입은 백발의 아름다운 장년인이 있었다. 그의 오른쪽 옷자락 위에는 

거대한 백호가 웅크리고 누워있었고 장년인은 백호를 고양이인 양 쓰다듬고 있었다. 

멀리 십여 장 앞쪽의 대리석 문이 열렸다. 장년인의 눈에 이채가 어리고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감도는 순간, 흑백의 대조적인 

수염을 기른 두 백의 노인이 들어섰다. 백염노인은 선풍도골의 인상이었고 흑염노인은 호골장군(虎骨將軍)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두 노인은 소리 없이 미끄러져 단 바로 앞에 이른 후에 깊숙이 부복했다. 

백염노인이 머리를 바닥에 댄 채로 말했다. 

“비직이 삼가 천군을 배알 하나이다.”

흑염노인도 같은 자세로 말했다. 

“대공을 이루심을 경하 드리옵니다.” 

백발 장년인이 만면에 웃음을 드리우며 말했다. 

“하하하하. 자! 그만 일어들 나시게. 민망하구먼.”

두 사람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무릎 꿇은 채로 앉았다. 백발 장년인은 웃으면서 백염노인을 바라보았다. 

“좌상!”

백염노인이 다시 허리를 접었다. 백발 장년인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비직이라는 말, 제발 쓰지 마시게. 그대 두 사람은 내게 형제와 같은 사람들, 어디 민망해서 듣고 있겠는가?”

백염노인은 대답 없이 다시 허리를 접었다. 

백발 장년인이 이번에는 흑염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상! 모르겠군. 분명히 성취를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늘어난 만큼 부족하다 느끼니 아직도 멀어나 봐.”

흑염노인이 바닥에 이마를 대고 말했다. 

“천하에 누가 있어 천군께 능히 대적코자 하겠습니까?”

백발 장년인이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건 모를 일이지. 천하는 좁은 듯 하나 또 넓은 곳. 또 어느 산골에 태을과 같은 고인이 살고 있을 지는 아무도 몰라. 

선사께서 당하신 일을 생각해 보게. 당시에도 선사의 일수를 감당할 사람이 없다 생각했으나 결과는 달랐지 않은가?”

흑염노인이 다시 말했다. 

“지금은 다르옵니다. 태을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감히 천군을 당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백발 장년인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었다. 

“하하하하! 그리 생각해주니 힘이 솟는구먼. 자! 두 사람 모두 편히 앉으시게나. 그리들 있으니 내가 더 이상 보고 있지 

못하겠네. 자! 어서.”

두 노인은 극히 조심스럽다는 태도로 어렵게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음! 이제 좀 낫군. 그래, 그 동안 일이 제법 있었다고?”

백염노인이 흑염노인을 흘끔 바라보고서 대답했다. 

“우상이 직접 나서 점창을 접수했습니다.”

“호오! 드디어 시작했는가? 오래 걸렸지, 아마?”

“근 삼십여 년 만에 얻은 결과입니다.”

백발 장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허면 생각만큼 소득이 있었는가?”

“얻은 것은 점창의 삼 할. 생각에 못 미쳤습니다.”

백염노인이 허리를 접어 사죄의 뜻을 보였다. 

“그렇군. 삼 할이라. 쓸데없이 시간만 지체한 것인가?”

이번에는 흑염노인이 말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속하가 어찌 좌상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점창을 접수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땅덩어리를 얻자는 것이 아니라 대계의 톱니바퀴를 끼워 맞추려는 의도라고 들었습니다.”

백발 장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질책하자는 건 아니야. 아쉬워서 그랬지. 허면 이제 끌어들이는 건가?”

백발 장년인의 시선이 다시 백염노인에게로 돌아갔다. 백염 노인이 말했다. 

“그리 할까 하옵니다.”

백발 장년인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저쪽은 그 동안 태평성대. 지금껏 심심했다고 이놈 저놈 다 오면 곤란할 텐데, 복안이 있는가?”

백염노인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 일은 소군께서 직접 하시겠다고---.”

백발 장년인이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무극이? 이놈 차분히 수련하라 일렀거늘, 그새를 못 참아서 나갔단 말인가? 어쩐지 사부가 나왔거늘 코빼기도 안보이더라니. 

그래, 지금 무극이 놈은 어디에 있는가?”

“대부분 악양에 머무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서장에 가셨답니다.”

백발 장년인이 이채를 발하며 반문했다. 

“악양이라면 심천궁을 말하는 것일 테니 사천 서부를 고립시키겠다는 뜻인 걸 알겠는데, 서장은 무슨 까닭으로 갔을꼬?”

백염 노인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제게 따로 언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만, 최근에 홍라교가 서장을 일통했다 들었습니다.”

백발 장년인도 뜻을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그쪽에 줄만한 것이 있을까?”

“저라면 서로 범접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나누고 빈번한 물자 교역을 약속하는 것으로써, 홍라교의 교세 일부를 청해성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정도만 요구하겠습니다.”

“오호라! 서장 무림이 동진한다면 산서무림은 긴장하여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중원에서 한 바탕 일이 벌어져야 제대로 

효과를 볼 것 같은데? 역시 악양 쪽 일이 그 건인가?”

백염 노인이 감탄을 삭이며 대답했다. 

“심천궁으로 하여금 장강수로연맹을 돕게 하여 호북 목가를 칠 모양입니다. 목가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장강의 표로를 

움켜쥐고 수로연맹의 기득권을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목가 자체의 무력도 무시하지 못하고, 또 무당이 있고 사천 운가와도 사돈 

관계라 어찌 해보지 못하고 화만 나있는 상태라지요.”

“좋군. 헌데 수로연맹은 결국 그것으로 끝장이 나겠네 그려.”

순간 흑염노인이 말했다. 

“천군께서 만드실 세상에 도적들이 설 땅은 없습니다.”

백발 장년인은 말없이 미소 짓다가 문득 백호를 내려다보았다. 백발장년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백호의 코를 건드렸다. 

“이놈, 소백! 또 내 옷에 침을 흘렸어.”

크르르르르! 

백호가 낮게 그르릉거리며 백발장년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벌렁 뒤집어 배를 까놓았다. 백발 장년인은 백호의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대충 어찌 돌아가는지 알겠군. 좌상!”

백염 노인이 허리를 접었다. 백발 장년인이 느릿하게 말했다. 

“선사께서는 너무 순진하셨고 또 급하셨지. 그때 자네와 우상은 너무 젊었었고 나는 너무 어렸었어.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 모두 기다리는 것이 실패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됐지. 서두르지 말게. 난 괜찮으니 내 눈치 볼 

것 없어. 뜻대로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천천히 해나가게나. 내 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고.”

순간 두 노인들이 다시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이마를 댔다. 

“천군께 영광을!”

백발 장년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 영광, 내가 누구하고 누리겠나?”

두 노인이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찍었다.

*불가피하게 며칠 작업을 중단하게 됐습니다. 안 그래도 체력과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며칠 쉬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작업이 밀린 관계로 짬을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아예 잊고 여행 떠난다는 생각으로 

편히 쉬겠습니다. 양해를...

늦어도 다음 주 수요일부터는 연재를 재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빛 노을 따라 뭇 별들이 움직이고 1

글보기 화면설정

댓글 부분으로

고치기

지우기


0